에피소드 2 - 노예 루트 〈굴복 완료〉
썬의 정체가 들킨 줄 모르는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자고 일어나 레인의 상태를 확인하자며 잠옷 차림으로 에키시의 방에 들린 순간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혹시 아직까지 레인과 하고 있나 싶어서 방 문을 살짝 열어 그 틈을 바라보는 아이와 로키시.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보이는 세 사람의 모습에 뒷걸음질 친다. 거기에는 자기네들이 비밀 삼아 지키고 있던 썬이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잠을 못 자 퀭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에키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들켰어?’
‘그런… 모양이네요… 보아하니 썬이 아는 거 다 불어버린 것 같고…’
‘위험한 거 아냐?’
‘아직 레인의 정체는 안 들켰으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좋을 거 같아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깜빡 거리면서 당황해하는 두 사람. 그 사이 아침까지 에키시의 자지를 빨아대고 있던 썬이 몽롱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봤다. 에키시와 달리 기척에 민감한 그녀다. 아이와 로키시의 강렬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고 그녀들을 눈치챈 듯 행동했다.
“에키시 공…”
“응? 아, 그렇지. 벌써 아침이냐?”
“그보다…”
문틈을 향해 계속 시선을 보내면서 에키시의 귓가에 입술을 댄다. 에키시는 피곤한 표정으로 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쪽 손으로는 자고 있는 레인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새 정이라도 든 건지 마스크를 쓰고 있든 말든 애완견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레인은 완전히 뻗어서 쿨쿨 수면 중. 에키시는 썬의 이야기를 듣고 피곤한 눈동자를 꿈틀거리면서 문을 바라봤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에키시라도 「밖에 그 두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들어버리면 누가 왔는지 정도는 눈치챈다.
“아침부터 음흉들 하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연히…”
에키시는 말없이 손짓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보였다. 문틈 사이로 자기를 보고 있을 두 사람에게 「다른 데로 가라」라는 의미를 담아 손을 흔든 것이다. 잠도 못 자서 피곤한데 굳이 이야깃거리 꺼내서 머리 아프게 하지 말라 그거다.
아이와 로키시는 그 손동작을 보고 오늘 하루나 내일이 고단해질 거라 예측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썬의 정체가 들키고 저런 관계가 된 이상 자기네들이 숨기던 것이 모조리 들켰을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에키시도 하룻밤 내내 두 사람과 섹스하는 동안 생각할 게 많았으니 지금까지 일어나 있었다.
“그걸로 괜찮으신 겁니까?”
“일단 하룻밤 자고 생각하자. 이제 아침이고 나도 피곤해.”
“그렇습니까.”
그럼 이른 낮잠을 즐기자면서 에키시의 품에 안기는 썬. 이젠 자중할 생각도 없는 건지 대놓고 헤실 거리면서 발을 차 레인을 저 멀리 떨어뜨렸다. 원래라면 그녀를 파이와 와이에게 가져다줘야 하지만 지금의 에키시는 그런 건 기억도 나지 않는 건지 피곤한 티를 내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크게 숨을 쉴 때마다 방 안에 자욱이 퍼진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그게 불편해서 눈을 감은 채 베개를 던져 창문을 열고 그대로 애액 범벅인 침대 위에서 드러누워 코를 골았다. 썬은 고양이처럼 에키시의 배 위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겹치고 똑같이 눈을 감았으며 레인은 자신이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른 채 수면에 빠진다.
이 모든 것이 하룻밤만에 완성된 관계라니. 세상살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 상황. 뒤늦게 이 방을 찾아온 파이와 와이도 아차 싶은 마음에 그 세 명을 깨우진 않았다. 살짝 열린 방문을 굳게 닫고 나올 정도로 침착했으며 이런 사태는 예상 외였다는 것처럼 서로가 했던 내기를 취소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침이 지나고 점심이 찾아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세 명이 일어날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사태는 좀 더 조용히 커져갔다. 다름 아닌 이 자리에 없어야 할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서 말이다.
“혹시 레인 공주님께서 여기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새파랗게 퍼진 긴 머리카락과 눈동자. 아무도 입지 않는 파란 교복 차림. 어린애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함께 나타난 그녀.
바다 건너에서 온 현자, 스노.
그녀가 오늘 이 기숙사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