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광기의 여자들(6)
반면 에키시가 그렇게 화딱지를 뜯고 있을 무렵…
로키시와 아이는 뭘 하고 있을까?
에키시를 강제로 재운 그 시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으니.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뿐.
“아가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 시간에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돌려보…”
“로키시 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이·호모우 님도…”
“네? 자, 잠시만요! 왜 이런 시간에 그 두 사람이?!”
“그게! 앗?!”
문 너머 시종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컥 열리는 문. 메이드복 차림의 여시종이 뒤로 넘어지고 그 앞으로 로키시와 아이가 당당히 나타난다. 로키시는 레인과 한창 뒹굴었던 사이기도 했으니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프리 패스로 올려보낸 모양인지 누구 하나 그녀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 다 각자의 정장 차림으로 손에는 사람만큼 커다란 짐가방까지 들고 온 것 같은 모습. 반면 레인은 이제 막 자려고 한 건지 속옷마저 벗고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하이, 잘 지냈어?”
“로키시?!”
“저도 있어요~?”
“아이도?!”
깜짝 놀란 듯 이불로 몸을 가린 채 벌벌 떠는 레인. 로키시라면 몰라도 아이에게는 찔리는 구석도 있고 두 사람의 손에 쥔 것까지 이것도 저것도 평소와 달랐으니 수상스러워 보였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온 듯 황급히 온 기색마저 있었으니 아니꼬운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놀람이 우선.
특히 그때 연회장에서 술을 먹고 본심을 드러내버린 것을 생각하면 이 상황은 좋지 않았다.
“왜, 왜 왔어요?! 그것도 이런 늦은 시간에! 상식이란 게 있으면 이런 시간에 올 때는 연락 정도는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욧?!”
“너에게 상식 운운 듣고 싶지 않아~!”
“맞아요. 기껏 즐겁게 노려고 온 건데 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뭐라고요?!”
목구멍을 화통으로 찜질한 것처럼 놀라는 레인.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능글능글. 갑자기 밤에 한 나라의 공주님 방에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들고 있던 짐을 땅바닥에 놓아두고는 쓰러진 시종에게 「술을 가져와라」라고 명령할 정도로 파천황스러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레인은 이 모든 행동에 반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피해야 하는 건지, 적대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숙여야 하는 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만을 반복하던 이 상황에 본인들이 직접 쳐들어왔으니 말이다.
혹시나 해코지 당하는 걸까?!
협박?!
살인?!
그렇게 생각하니 무서워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말지만…
‘감시역! 감시역은?! 앗!’
없다.
아무도 없었다.
‘맞아, 혹시 세스트가 일을 터트릴까 봐 그쪽에 보냈었어?!’
하필이면 그 세스트란 놈. 그때 연회장에서 자기를 띄워줬던 영애들을 만나기 위해 외출 중.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생각해본데 그 돼지가 또 여자를 범하고 다닐까 봐 스노를 믿지 않고 자신의 감시역을 보낸 결과가 이거였다.
‘기, 기사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상대는 아이에 로키시고! 아, 아앗…’
고민하는 사이에도 두 사람은 다가온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침대 중앙에서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양옆에 앉았다. 로키시야 그렇게 능글맞게 대하는 것을 자주 봤으니 익숙했다지만 아이의 그런 행동은 정말로 의외였다.
썬이 입는 것과 똑같은 흰 정장 차림. 로키시는 그와 반대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아이와 함께 흑백을 만들어냈다. 대체 뭘 노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와중에도 레인은 자그맣게 흥분하고 있다.
그야 레인 본인이 원했던 상황이었으니까 당연하겠지. 원래부터 여왕님 취급하던 로키시는 물론이고 약까지 써서 노리려고 했던 아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이밀어주고 있는 거니까 싫을 리 없다. 여기에 썬까지 끼였으면 당황하는 것도 잊고 코피를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다가오는 건데요?! 대체 뭐가 목적이에요! 그때 술을 마시고 말한 거 전부 본심이에요! 그 이상 원하는 거 없어요! 제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둘이서 무시해놓고는…?!”
“그리 경계하지 마세요. 오늘은 에키시도 깊게 잠들었겠다 그의 눈을 피해서 몰래 온 거니까요.”
“그래, 동생도 없겠다 여자끼리 본심 털어놓고 싶어서 몰래 온 거야.”
“네, 넷?! 본심이요?”
“그럼, 설마 그때 거기서 보인 게 본심이겠어?”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차갑게 대할 리 없잖아요?”
“……?!”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갑작스럽게 들이밀어지는 우호적인 반응. 로키시도 아이도 둘 다 한결같이 웃고 있는 모습에 레인의 욕망 센서가 삐빗 거리고 있다. 이런 등신 같은 상황에도 「어? 이거 잘하면 가능해?」같은 망상이나 하다니 역시 머리에 나사가 한 둘 빠진 게 확실한 여자다.
그런 표정이 겉으로 드러난 건지 두 사람의 표정이 좀 더 음흉해진다. 침대 양옆에 앉은 두 사람이 좀 더 레인에게 다가가고 술을 권했다. 갑작스럽게 와서 미안하는 말도 섞으며 간지러운 목소리로 고막을 살살 긁어대는 것이 이런 상황을 늘 바라왔던 그녀가 버틸 리 없었다.
“으, 수, 술? 술 때문에 온 건가요? 그 정도라면 어울려 드리겠는데… 그보다 방금 한 말의 의미를 알려주면 좋겠어요…”
“후후, 어떨까? 오래간만에 와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입이 열리지 않겠어.”
은근히도 아니고 대놓고 그때 그럴 작정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로키시. 마치 여태까의 불화는 있어선 안 되는 것 취급하면서 그녀의 금발을 살살 쓰담는 그 행동에 레인의 마음이 흔들린다.
원래라면 이게 일상이었다. 로키시가 그녀를 유혹해 그 몸을 탐하고 레인은 그 아래에 깔려서 헐떡이는 게 당연한 일.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느끼는 해피 타임. 그게 좀 돌아왔을 뿐이지만 그렇기에 레인은 금방 혹해버리고 말았다.
레인의 일갈과 함께 황급히 들어온 다른 시종들. 그 손에 들린 가지각색의 술들과 안줏거리를 방 안에 늘어놓고 방을 뛰쳐나간다. 시종들은 레인과 로키시의 난폭한 행동에는 익숙해져 있는 건지 모두들 금방 익숙해진 표정으로 자기네들의 일을 끝마쳤지만 과연 이런 새벽에까지 일하게 될 줄은 몰랐는지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제 시종들을 부를 일도 없었다. 레인은 자기가 부르기 전까지 방 근처에 아무도 다가오지 말라고 명령했고 시종들은 그것을 받들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을 전파했다. 이로써 이 방과 그 근처에는 로키시, 아이, 레인 이외에 아무도 없게 됐으며 이 상황을 바란 두 사람은 내심 크게 웃고 있었다.
“설마하니 또 이상한 꿍꿍이를 꾸고 있는 건 아니죠? 저 아무리 그래도 안 속아넘어가요? 그런 일도 있었겠다 차라리 정면으로 당당히 비난 주는 편이 더…”
몇 번이고 말하지만 레인 이 바보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 의심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얕은 미혹이나 다름없었다. 대놓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그 증거였으며 아이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레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상하다… 고요…?”
“저야 뭐, 당신에게 화가 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런 식으로 남성분과 섹스해서 기분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물며 몇 번 몸을 겹쳤다고 곧 여왕 될 사람이 남편분을 막 지목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당신?! 그때는 저한테!”
“전부 사정이 있었단 거야. 아이도. 나도.”
“로키시…?”
와인병이 로키시의 손날에 의해 잘린다. 잘린 뚜껑 부근이 침대 아래를 뒹구르르 구르지만 레인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로키시의 그런 난폭한 행동은 언제나 레인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고 오늘 이 자리 또한 그랬다.
“움, 으음, 푸흐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당신이 아이의 기숙사로 들어간 이후 소식이 뚝 끊긴 것과 그 남자와 무슨 연관이라도?”
“그야… 있을 수밖에…”
로키시가 병에 담긴 내용물을 가볍게 털어먹는 동안 질문.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다 털어먹은 후 고개를 두 번 끄덕이며 레인의 말에 긍정했다.
“협박 당했거든. 내 동생에게.”
“협박?”
“그때 네가 저지른 일로 나랑 아이를 동시에 협박한 거야. 무슨 내용의 협박인지는 대강 뭔지 알겠지?”
“아뇨, 그, 그게…”
레인은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로키시와 아이는 알아서 잘 헤아려 달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거짓말에 대해 자세히 정해놓지 않았기에 그 두 사람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게 본심이었지만…
“덕분에 이런 꼬락서니에요. 밤마다 더러운 일을 강요당하고. 로키시는 로키시대로 지금의 현 가주에게 언제 이번 일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는 상태죠…”
“맞아, 그걸 생각해보면 저번에 연회장에서 보인 그 날카로운 모습은 애교 정도지.”
“레인, 당신의 사정은 알겠지만 우리도 당신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요.”
“아윽…”
그 어렴풋한 거짓말에 살을 덧붙인다. 도중의 과정 따위 전혀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그럴듯한 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그때 있었던 일을 나무라는 말까지 해버리면 지금의 레인이 말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효과적.
그런 거짓말마저 제대로 먹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한 말인데도 두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하는 상황. 로키시도 아이도 연기 하나는 잘하는 건지 여태 있었던 일을 늘어놓으며 불편한 티를 내는 게 아주 수준급이었다. 특히 아이는 레인에게도 강간당하고 에키시에게도 강간당한 말투로 힘들어하는 티를 내는 게 레인의 죄책감을 아주 강렬히 자극했다.
“우리도 고민 많이 했어. 이번 일을 벌인 레인 널 옹호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 둘을 동시에 협박하고 있는 에키시를 옹호해야 하는 건지, 근데 그 연회장에서의 일도 그렇고 너랑 나랑 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그때 널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고.”
“한동안 절 방치했을 때를 말하는 거죠?”
“그래. 우후후…”
그래서 약속대로 돌아왔다면서 레인의 턱을 붙잡는 로키시. 그러면서 평소처럼 입술을 한두 번 빼앗은 후 여왕님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아음, 움, 읏…”
“그래, 좋아. 오래간만인데도 잘 하잖아. 나 말고 다른 여자애들로 군것질 한 건 용서 못 하지만. 이번에는 애교라 생각하고 봐줄게.”
“우읏… 아아…”
귀를 한 번 핥고 나며 얼굴을 떼니 레인의 스위치가 완전히 올라간 것 같은 표정이 됐다.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의 심정이 복잡하기만 했지만 연기를 그만두진 않았다. 로키시와 레인이 벌이는 그 행태를 조용히 지켜보면서 말을 꺼낼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이렇게 왔다는 건… 에키시 그 발칙한 남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야기하는 겸… 제 도움을 바랐기 때문인가요…?”
“반대야.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으니까 널 써서 에키시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수작이라고.”
“즉, 에키시에게서 도망쳤다고요? 그 남자가 벌인 일 때문에?”
“심한 일 당했다고 했잖아. 밤마다 추잡한 일을 당했다고.”
“아앗…”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이해 못 한 주제에 「이해했다」고 지껄이는 레인. 로키시와의 키스가 오래간만이라 그런 건지 상황 파악을 못한 채 그저 두 사람이 자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에키시의 손에서 도망쳐 왔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세스트 탓에 적잖이 남성 혐오가 있는 여자. 그렇기에 그런 간단한 이야기로 분노가 머리를 채운다. 덕분에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며 로키시는 레인의 그런 면모를 잘 알고 있었고 일부로 에키시의 이야기를 꺼내 레인의 화를 돋우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도록 했다.
“레인, 당신 요즘 우리 때문에 고민이 많죠? 그 방면으로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어요. 에키시의 건도 그렇고 이야기할게 꽤 많아요.”
“방금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방을 빌려드릴 테니 적어도 아침에……”
“우리도 시간이 없거든요. 부디 아침까지 우리랑 어울려줬으면 해요. 응? 응? 부탁해요… 레인… 우후후…”
“으읏…?!”
거기까지 왔으면 아이도 그런 행위를 꺼리지 않는다. 같이 밤새 이야기하자며 레인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허리를 잡고 야릇하게 숨결을 불어넣자 레인의 혼이 쏙 빠져나갔고 로키시가 했던 것처럼 귀를 물어대니 허리가 팔딱 튀었다.
“그,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죠… 네, 그렇고말고요… 후우으…”
당연하지만 그렇게 유혹 당한 그녀가 그대로 잠에 들 리 없었다. 결국 알몸 그대로 침대 위에서 내려와 여자를 상대할 때 입는 핑크색 네글리제 차림을 하고 그녀들과 마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을 마주 본 채 숨이 거칠어지는 레인. 지금 레인이 뭘 기대하고 있는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그에 응하듯 로키시와 아이도 고혹적인 미소로 혀를 날름거렸으며 레인은 그녀들의 반응에 가랑이를 모으고 이제부터 있을 일을 잔뜩 기대했다.
그녀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의 거짓말에 호이호이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