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83화 (83/199)

 에피소드 1 - 레인 조교 루트

레인의 입은 가벼웠다.

정확히는 술이 들어가자마자 울음보가 터져서 분위기가 완전 엉망이 됐다.

혹시 연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도중에 보인 분노는 반 진심으로 나머지 반은 의도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럴 예정으로 부하들과 열심히 연극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걸 나불거려도 되는 건가 싶었다.

술에 약한 건가. 아니면 스트레스가 쌓인 건가. 아주 날아갈 듯 나불나불 지껄여대는 그 모습에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주 약간 동정했다. 놀란 이야기가 많았으니 그 동정도 정말 손톱 만큼이었고 여운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 스노라고 하는 여자가 세스트를 교육하겠다는 이야기, 정치적으로 위험해졌기에 그에 관한 본심, 이번에 일어난 마약 사건 등 빠짐없이 지껄여왔기에 도중에 썬을 불러 그 이야기를 전부 적어두기로 했다. 아예 손절할 생각으로 있었는데 여기까지 지껄여주면 이대로 손놓아버릴 수 없다.

설마 왕족이란 게 왕도 내에서 미약 뿌리고 다니는 미친년들이랑 거래하는 것도 모자라 여자들 수십 명 따먹고 버렸다니. 저게 진짜로 내가 장차 섬겨야 할 사람들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처음부터 존경 따위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같은 티는 내야 할 텐데 왜 저 저러는 걸까.

‘그럼 세스트에 관한 건 일단 접어두고 레인 부하들이랑 연계해서 그 미약 상인을 잡는 쪽으로 가자. 내가 잡는 것도 아니고 파이와 와이에게 붙여두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레인은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끝장낼 예정이었으니 이대로 뒤통수칠 준비를 하면 되겠어.’

범인을 잡은 후 그놈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레인을 실추시킨다. 그 이전에 뒤통수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오면 그대로 조교해버리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후자가 우선순위가 더 높다고 하니 아이도 긍정했다. 파이와 와이에게도 말해놨고 내일부터라도 자기네들끼리 알아온 것을 보고 해오겠지.

‘재밌는 것도 봤겠다 오늘은 이걸로 쫑칠까…’

이야기도 끝냈고 연회도 빠르게 끝났다. 우리들은 아이의 기숙사로 돌아왔고 모두를 해산시킨 세스트는 권력 욕구가 심한 여자들과 함께 뒤풀이로 향했다. 스노 선생님이 그를 갱생시킨다고는 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하루 종일 여자들의 무리에 끼여 있었다. 감시역으로 왔다고 해놓고 저 돼지를 자유롭게 풀어주다니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방치. 만약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해도 방치다. 저 돼지가 레인을 건들든 뭘 하든 이제 상관없다. 일단 미약 관련된 사람을 잡아 레인을 실추시키는 게 우리 목적. 그 이전에 저 돼지에게 범해져서 미쳐 날뛰는 걸 봐도 이득. 우리에게 기어 와서 머리를 땅바닥에 문질러대도 이득. 뭘 해도 행복 그 자체인 엔딩이다.

살다 살다 저 돼지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인생은 참 재밌어.

“에키시 공.”

“아?”

그런 분위기로 홀로 개인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무렵 썬이 불쑥 나타났다. 정장을 벗고 가벼운 흰 천 옷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빗으로 살살 쓸어내리고 있었다. 녀석도 막 씻은 건지 머리에서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왔다만 그 모습이 상당히 요염하다.

같은 성별이기도 하고 기왕 온 김에 같이 씻으면 될 텐데. 굳이 따로 욕실을 준비해서 씻다니 역시 호모인가 싶을 뿐이다. 차라리 내 쪽에서 덮칠까 싶은 마음마저 들었지만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 일단 그런 마음을 숨겼다.

“다 씻으셨습니까?”

“엉.”

“그럼 식사라도 하실 겸 내려가실까요?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손님? 이 시간에?”

왜 썬이 내게 왔나 했지만 이게 또 의외였다. 기숙사로 돌아와 이제 발 좀 뻗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왔다고 한다. 얼마나 무례한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누군가가 오나 했지만 썬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날 지긋이 바라보면서 얼굴을 빨갛게 했다.

방금 막 씻고 나와서 아직 열이 덜 빠진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치 무언가를 평가하는 것 같은 눈동자. 그 썬이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다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착각마저 든다.

“정확하게는 아까 연회에서 만난 분들이 아이 공주님의 권유에 따라오신 겁니다. 아이 공주님이나 로키시 공은 아까 있었던 일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들뜬 표정이셨고. 오래간만에 여자들끼리 모여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계시더군요.”

우리 새하얀 기사님은 내가 거기로 내려가서 여자들과 있는 게 불만인 것 같았다. 진짜로 호모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반응. 그렇기에 나 또한 불만인 표정으로 그 말에 답변을 해줬다.

“즉, 여자회라는 거잖냐. 내가 거기에 왜 끼어들어? 배가 고픈 것도 아니니 안 내려간다고 전해라.”

“영애분들이 한가득인데 에키시 공이 안 내려갈 이유가 있습니까?”

“날 그 돼지 취급하지 마라. 여자라고 다 먹고 다니겠냐. 창녀는 예외라 쳐도 다른 여자는 골라서 안는 편이야. 성병이 무섭기도 하고 창관도 나름 정해진 곳만 다닌다.”

“흐음…”

내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그 건방진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생각이 맞았던 건지 먹고 다니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니 예상 그대로의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고 영 좋지 않은 분위기였다.

혹시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나 싶었다만.

다음에 나온 말로 확신이 섰다.

“그분도 오셨어요.”

“누구?”

“마스크요.”

“흠………”

마냥 날 깎아내리기 위한 건 아닌 거였구나. 썬이 그 영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조오오오오금 의외였다. 이 저택을 지키는 기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모를 수 없긴 하지만 이렇게 핀 포인트로 찔러 올 줄이야. 내 반응을 보고 싶은 건가.

“곧 졸업하는 사람이라고 들어서 안은 거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기억 안 나. 이렇다 할 감정을 품은 적도 없으니 잘 즐기고 가라고 전해라. 굳이 얼굴 봐서 추억 깨트리고 싶지 않고 말이야.”

“그 말은 상당히 의외네요.”

“어떤 점이?”

“그냥? 여러 가지요. 특히 여자 방면. 피가 이어진 로키시 공을 저렇게 만들었을 정도니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대로 할 타입이 아닐까 의심했는데요.”

“헷, 기분 나쁘게시리. 누나는 누나대로 일을 저지른 전적이 있으니까 저런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이 나무랄 게 아냐.”

“그렇게 심했습니까?”

“너니까 말해줄 수 있지만. 누나가 누님일 때 보인 그 모습도 성격이 많이 죽은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저번 조교 때 누나의 목을 베는 것도 염두해웠을 거다.”

“?”

이렇게 말해도 썬은 못 알아먹는 듯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누나에게 동정하지 않는 건 아니며 그렇다고 아예 분노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쓸데 없는 지식이 있는 탓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으니까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나가 죽었으면 하고 기도한 적이 있고, 내 누나라 좋았다고 생각한 적 있으며, 이 멋진 세계에 감사한 적도 있고, 이 좆같은 세계에 원망한 적도 있으니, 그러니까 썬의 이런 생각은 곤란하다. 마치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누나를 조교해버린 쓰레기 동생 취급을 해버리면 나라도 움찔해버린단 말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수만 명이 죽는 전쟁을 일으키는 여자. 그렇다고 죽이기에는 같이 붙어 다닌 기간이 길다. 그걸 어떻게 못해서 날 무능 취급하는 건 상관없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따먹기 OK로 생각하는 플레이보이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나라도 기준이 있다고.

이 호모 짜샤.

“모르면 알 필요 없어. 하여튼, 나랑 누나 관계가 좀 복잡하다는 거야. 그리고 영애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곳은 오늘 내려가고 싶지 않아. 레인 관련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거든. 막 씻었겠다 이대로 쉬고 싶어.”

“그럼 에키시 공은 피곤하니 이대로 쉰다고 전해놓을게요.”

“그래주면 고맙지.”

“으~?!”

정말로 몇 없는 친한 남자애겠다 그 뺨을 잡아다가 당겨줬다. 아프게 한 것도 아니고 장난을 치듯 가볍게. 그러자 볼이 떡처럼 쭈욱 늘어나서 재미있는 감각을 선사해줬다. 사람의 뺨이 이렇게 늘어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좋은 감촉이다.

그대로 놔주니 다시 뺨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썬은 약간 불만인 듯했다. 당겨진 뺨을 살살 쓰다듬으며 손에 들고 있던 양초 하나를 쥐여주고는 등을 돌리려 한다.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빗과 함께 쥐고 있던 것이지만 색이 특이한 것이었다.

“아으, 그, 그거, 주무실 거면 사용해주세요…”

“뭔데 이거?”

“제가 쓰려고 파이에게 받아 온 양초예요. 불이 붙어 녹는 순간 방에 약이 퍼져서 깊게 잠들 수 있다는데 심신이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으니 나쁘진 않을 거예요.”

“호오…”

턱을 쓰다듬으면서 작게 감탄. 핑크색으로 예쁘게 만들어진 양초다. 파이 그 멍한 여자의 손에서 이런 게 나올 수 있는 건가 놀랐다.

“누나랑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해주라. 혹시 파이도 있으면 잘 쓴다고 해주고. 그리고 원래 네가 쓰려던 거 아니었냐? 내가 써도 돼?”

“처음부터 모두가 쓸 양을 받아왔거든요.”

“그래?”

안심하고 써달라며 빙그레 웃고는 뒤로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서는 썬. 그리고는 두 분께 말씀드리고 오겠다며 좋은 밤 되시라고 한다.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행동이 수상스럽게 보인다. 아니면 단순히 내 의심이 깊을 뿐이라던가.

‘위험한 건 아니겠지.’

마침 마음 정리가 필요하기도 했고 일단 믿고 써보기로 했다. 오늘 같이 좋은 정보를 얻은 날 꿀같은 단잠에 빠진 후 깨끗해진 머리로 레인을 골일 방법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처럼 가져다준 거고.’

그러니 난 의심 없이 그것을 썼다.

자기 전 아이의 시종을 불러 가벼운 마사지와 함께 촛불을 켜고 수면.

그리고 그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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