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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귀족 여체 하렘-82화 (82/199)

 프롤로그 종료 - 흑막 루트 〈잠입 완료〉

레인이 자기가 대비한 게 무색해질 정도로 에키시에게 놀림당하는 도중. 스노라고 하는 이 정체불명의 파란 머리 소녀는 세스트의 옆을 지나 쁘띠 왕성을 나섰다. 물론 회장 내부에서 드레스를 벗고 파란 교복 차림으로 시원하게 갈아입었다.

속은 로리 할망구인 주제에 겉과 잘 어울리는 소녀 오라가 풀풀 풍긴다. 어떤 상점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일하는 어른들에게 깜찍하게 인사하고 다니는 그 모습은 마치 겉의 모습과 똑같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아선 안된다.

이 여자는 속에서 능구렁이를 기르고 있으니까.

“다녀왔습니다.”

“응, 어서 와라.”

상점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눈 후 안쪽 깊숙이 들어간 스노. 상점 안에서도 제일 큰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한 여자. 아마 이 상점의 주인인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과자를 씹으며 서류들을 훑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보기 드문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블랙우드 가문의 그것과는 약간 동떨어진 칙칙한 색. 마치 중국인처럼 귀엽게 빵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검은색 치파오도 그렇고 명백히 제작사(신)란 놈이 인위적으로 만든 캐릭터.

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저번에 에키시에게 도움을 받은 그 여자.

그리고 이 여자의 지인이기도 했다.

“차오.”

“음, 잠깐 기다려 봐라.”

뭔가 잘 안 풀리는 건지 그 평범한 몸을 강조하듯 기지개를 펴는 차오라고 불린 여성. 그리고는 좋은 방안이 떠올랐다는 것처럼 서류에 글자를 휘갈겨 써놓고는 스노를 다시 반겼다.

“그래, 미안, 이번에 미약 관련으로 머리가 아픈 일이 생겨서.”

“배 침몰한 거요? 이야기 들었어요. 과연 라키시·블랙우드. 배가 잡혔을 때의 대응 매뉴얼도 건네놨는데 설마 배를 통째로 잘라버릴 줄이야.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다음에는 배에 폭탄이라도 실어 놔야겠네요.”

“덕분에 머리가 아파아~! 그 배에 얼마나 돈을 발랐다고 생각하는 건지… 으으으…”

머리를 감싸며 화를 터트리는 차오. 그것을 바라보며 쿡쿡쿡 웃는 스노. 타인도 없겠다 여태까지 자기네들이 저지른 일을 가볍게 터트린다. 마치 자기네들의 정체 따위 처음부터 숨길 필요 없었다면서 네타를 해대는 것이다. 커다란 방구석에 걸려있는 망토와 가면은 그녀들이 누구인지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외부에 퍼져서 이쪽에 시선이 안 닿고 있잖아요? 설마 학교 내에서 미약이 뿌려지고 있다니… 이 학교 특유의 폐쇄감도 그렇고 눈치채기엔 아직 시간이 걸리겠죠…”

“그건 아냐. 눈치가 빠르니까 널 파견한 거잖아. 저 돼지를 갱생한다는 건 겉으로 드러난 명목일 뿐. 그렇지만 레즈우 왕도 안됐네. 제일 믿음직했던 네가 사실은 마약을 뿌리는 주범 중 하나였다니.”

“이 날을 위해서 노력한 거잖아요? 나도, 당신도, 공주도, 야만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전부요.”

“그렇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놀랐어. 세스트 왕자가 나를 덮치려고 했을 때는 진심으로 당황했지만.”

“그렇지만 간단했죠? 전부 제가 말한 대로.”

“그래, 간단한 일이었네.”

질린다는 뜻이 담긴 한숨.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차오. 현대의 사무실처럼 방 중앙에 떡하니 책상이 있고 앞에는 손님용 책상과 소파가 늘어져 있다. 그녀는 오늘 할 일을 다 끝냈다며 찻잔과 차를 가져와서는 스노가 앉아 있는 손님용 책상과 소파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대접했다.

늘상 있는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노 또한 이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그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카락을 빗으로 살살 쓸어넘기면서 점점 표정을 굳혀갔다.

“네가 여기 왔다는 건 에키시·블랙우드와 접촉하는 것도 끝냈고. 세스트 왕자를 조종하는 것을 포함해 레인 공주에게도 헛소리를 불어넣었다 그거네?”

“당연하죠. 아주 간단했어요.”

“됐어, 평소처럼 해. 굳이 활발한 척하는 것도 질리잖아?”

“아, 그렇게 말한다면야.”

차오의 말과 동시에 표정이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변했다.

“짧고 간단히. 이게 편함. 역시 활발한 소녀는 질림.”

“그렇지. 그게 너다워.”

아까까지는 착한 소녀로만 보였던 그녀는 지금 한정으로 건방져 보이는 무표정 소녀로 변모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여자 없었다는 것처럼 시원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은 그녀가 이중인격이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연극이다. 여태까지의 모습은 의도적인 것. 에키시처럼 안에 누가 하나 더 있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라키시처럼 누군가를 위해 평상시의 모습을 숨기고 있을 뿐인 이야기란 소리다.

“그럼 나도 평소대로 하겠노라.”

물론 이쪽도 마찬가지다. 방에 걸린 가면 하나를 들고 눈앞에 대며 즐겁게 낄낄 거린다.

“당초의 이야기대로 진행됐다는 거면 지금쯤 골치 좀 썩고 있다는 게지. 세스트는 네 말대로 레인을 덮칠 준비를 할 테고. 레인은 네 말만을 믿고 그 돼지가 갱생되도록 기다릴 테지.”

“있을 수 없는 일임. 그 돼지를 막을 생각은 물론 갱생할 생각 전혀 없음. 애초에 진심으로 한다고 해도 갱생당할 인물이 아님.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처음 보는 내게 믿는다고 했음. 바보가 확실함.”

“정치적으로도 몰리고 있고 미약 사건에도 연루됐다. 뒤가 없으니 초조해진 걸 테지. 자기가 다시 강간당하는 일은 없다고 믿고 있는 게야. 여태까지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던 여자. 그 돼지에게 강간당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업보이니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폭탄 발언…

폭탄, 폭탄, 폭탄, 폭탄…

여기도 폭탄… 저기도 폭탄…

그러나 에키시에겐 영향이 가지 않는 기묘한 사건…

“레인은 그 돼지의 손에 처리될 것임. 그렇다면 이 학교의 지배자는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그 사이 학생들에게 약을 뿌려 왕도를 곪게 만들어주겠음. 레인과 돼지는 그 초석이 될 것임.”

“그건 좋지만 아이·호모우는 어쩌려는 게냐? 에키시·블랙우드에게 푹 빠졌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건들 필요 없음. 막는 건 하드 교단에서 온 두 사람으로 충분함. 오늘 상태를 보아하니 로키시는 이빨 빠진 호랑이. 자기 남동생에게 푹 빠져서 발언권을 넘겨주고 있었음. 아이도 마찬가지. 덕분에 레인은 하루 종일 울상임.”

“의외구나? 너라면 틀림없이 그쪽도 봉쇄해버릴 거라 생각했노라. 혹시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쪽을 처리하는데도 힘을 빌려주겠다만?”

“에키시·블랙우드를 건들지 않는 건 내 개인 사정임. 애초에 너희들과 계약할 때 그렇게 정했음. 그러니까 왕성에 기어들어가 왕의 신임도 얻어냈음. 일이 여기까지 커진 이상 귀족들이나 왕도가 약에 곪아지는 건 확정적. 가만히 있어로 약을 팔 판로는 넓혀짐. 괜히 적을 만들지 말길 경고함.”

갑자기 나불거리는 스노. 그 말투에 차오가 재미있는 걸 발견한 것처럼 입술을 고양이처럼 만든다. 「나는 그 개인 사정이라는 것에 흥미가 있도다」라며 스노에게 본심을 물어보지만.

“별것 없음. 너희가 에키시·블랙우드를 건들면 죽인다. 그뿐인 이야기임.”

“호오.”

마치 당연하다는 걸 말하는 말투로 다시 차를 홀짝이는 스노.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은 건지 다리를 흔들거리는 그 모습은 겉모습에 맞는 소녀의 그것이었다. 대체 누구를 떠올린 건지 그리 기분이 좋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녀가 그렇게까지 반응하니 물어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레즈우 왕국의 전복. 나는 그 대가로 이 나라의 모든 상회와 판로에 대한 이득을 꾀하고 있노라. 공주가 원하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자네에 대한 대가는 여태 들어보질 못했구나. 잘 보면 우리 중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여자인데 말이다.”

“내가 그리 노력했음?”

“왕성에 침입해, 왕의 신임을 얻어, 왕도 내에 미약을 풀어, 귀족 학생들을 미약에 찌들게 해, 해로를 사용해 미약을 공급할 방법에, 강간마 세스트를 꾀어내, 나와 에키시·블랙우드 개인과의 접점을 만들어, 레인을 속여 언제 강간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까지,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행보를 보였노라. 그렇게 열심히 일한 자네가 무슨 대가를 받을지 궁금한 건 당연지사 아닌가?”

“흠. 그렇게 대단한 일은 한 기억은 없었음. 대가도 별 것 아니었던지라.”

“흐음? 별것 아니라고?”

“정말로 별것 아님. 말해줘도 상관없을 정도임. 그러니까 말해버릴 거임.”

“응?”

임, 임, 임, 가볍게 말을 띄우면서 기쁘게 지껄이는 스노. 그 반응에 차오도 놀랐던 건지 다음 내뱉을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그런 그녀에게 되돌아오는 짧은 답변.

“에키시·블랙우드 본인. 또는, 그의 지식.”

“그것뿐이더냐?”

“응, 그것뿐임.”

“………?”

그 말에 차오가 여러 번 갸우뚱.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갸우뚱 갸우뚱 갸우뚱. 「가문은?」이라는 추가 질문에 「필요 없음」이라는 즉답까지 돌아왔다. 마치 처음부터 그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재빠른 즉답에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에, 으, 으음, 그래, 그, 그럴 수 있지.”

“반응 지랄맞음. 예상은 했지만 화남.”

“아무리 그래도 그걸 나보고 이해하라는 건… 무리 노라…”

나라를 엎는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수세에 몰린 야만족들이 왕도에 침입해서 귀족 자재들에게 약을 뿌리고 있는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그런 대가를 원한다니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일. 나라를 엎고 한 남자를 얻는다니. 들을 때는 로맨틱하면서도 실제론 광기에 가까운 행위다.

“이해해달라는 말 따위 일절 안 함. 어차피 나 개인의 기준임.”

“뭐가 그리 마음에 든 건지는 말 해줬으면 좋으련만.”

“별것 없음. 어렸을 때 자기 손으로 기른 그 소년.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뿐. 특히 철로에 관한 이야기는 로망이 있었음.”

“철로?”

“몰라도 됨.”

“흐응…”

그러니까 그 녀석은 건들지 말라고 거듭 경고하는 스노. 반면 차오는 돈 냄새가 날 것 같은 이야기라며 키득키득 웃고는 새로운 과자를 준비해온다. 아직까지 조용한 학교지만 내부는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음을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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