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73화 (73/199)

 프롤로그 - 성욕에 충실한 자들

에키시, 로키시, 아이, 썬, 엘피, 충견, 젖소 자매, 누가 어쨌든, 그들이 그러고 있든 말든, 무슨 일이 일어났든, 전혀 문제없는 것처럼 오늘도 마이 페이스인 금발 암퇘지가 하나…

레인·레즈우는 오늘도 보지를 벌렁거리면서…

크게 날뛰고 있었다…

“끄이이이이이!!! 로키시이이이이이이!!! 로키시이이이이이이이!!! 어디간거에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괴물. 성욕의 화신. 이젠 레즈비언이니 아니니 그런 걸 따질 수준이 아닌 발광. 적어도 여자로서의 형태는 갖추고 있으나 일렁이는 분노의 불길이 모든 걸 망친다. 침실 내를 부수고 또 부숴서 가구가 아작 나고 있으며 천장 위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첩자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쉬고 있다.

그중 저번처럼 레인에게 반말을 하며 간단하게 접근하던 이도 섞여 있었으나 오늘은 도저히 못 말리겠다고 생각한 건지 천장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저건 안된다고 연신 지껄이면서 부하들을 달래는 모습이 영 보기 안쓰러웠다.

“오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자! 여자! 이년도! 저년도! 하나같이 쓸모없어요! 우리나라는 원래 이렇게 인재가 없었던 건가요?! 로키시나 아이의 대용은 나오지도 않고! 오히려 전원이 나자빠지는 꼴이라니! 게다가 약도 다 썼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해도 약은 없어. 구하는 것도 무리야.”

“무슨 의미인가요!”

“뭐긴,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끝까지 가만히 있어도 될 텐데 레인의 질문 아닌 질문에 대답하는 금발의 첩자. 천장 위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어 그녀에게 대답하는 것이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퇴로를 준비하는 것만 같았다. 반면 레인은 그런 부하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눈을 부라리며 왜 약을 못 구하냐고 성질 사납게 물어본다.

“그야 그럴 것이 손절할 준비를 하고 있었잖아? 어디서 냄새를 맡아 붙었는지 저쪽에서 먼저 도망쳤거든. 아지트에 남겨진 흔적은 물론 녀석들을 감시하기 위해 내버려 둔 부하들도 조교 당해버렸지 뭐야. 덕분에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안 보여.”

“뭐라고욧?! 그전에! 그렇게 감시하고 있었다면 녀석들의 정체 정도는 알고 있겠죠오오~?! 그, 그걸 토대로! 도망 쳐버린 머리를 콱 하고! 잡아버리며언?!”

“첩보라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잖아. 저쪽도 바보가 아냐. 녀석들이 아지트로 나와 활동할 때는 우리 눈이 닿지 않는 곳을 통해버려. 안 그래도 똘마니가 많고 그 사이에 끼여있다 하면 누군지 못 알아봐. 특히 하급 귀족이 많은 게 거슬리네. 그쪽은 대놓고 활동하고 다니니까 괜찮다지만 그 사이에 진짜가 끼여있다고 생각하면 전부 잡아도 문제, 전부 놓쳐도 문제, 뭘 하든 문제, 그렇다고 부하를 잠입시키자니 금방 들켜버려서 약으로 조교 당해버려. 덕분에 이쪽 정보가 줄줄 새어나갔어. 처녀들을 그렇게 만드는 약이니 우리 부하들에게도 잘 먹힌 모양이지. 아하핫…”

“그게 지금 웃을 일인가요?!”

“웃을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줄줄 늘어놓는 거야. 본래라면 그때 아지트를 알아낸 시점에서 단체로 덮쳤어야 하는 건이잖아? 그걸 전부 공주가 「그 약을 가지고 싶어요!」라며 거래를 걸었으니까 이렇게 된 거라구. 그렇게 약이 가지고 싶었으면 차라리 전부 처리한 후 거기에 비축된 물자만 빼앗아도 됐잖아.”

“전부 제 탓으로 할 생각인가요?! 애초에 그 당시에는 그 녀석들이 얼마나 물자를 비축하고 있는 지도 몰랐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거래를 건 거라고요!”

“핫, 거래 상대가 예쁜 여자라는 말에 혹한 주제에.”

“알고 보니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무언가였지만 말이죠!!! 크으으으윽~! 그 녀석들~! 나를 속이다니이이이이~!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요오오오오~!”

그 말에 눈가를 가늘게 뜨고 비웃는 첩자녀. 「거래한다고 해서 얼굴을 깔 리 없잖아」라는데 그 말이 레인에게 잘 먹힌 건지 얼굴이 또 빨갛게 됐다. 그 이후 거래는 전부 첩자나 부하들이 하고 있기도 했고 그녀도 나름 불만이 있었다 그거지만 레인에겐 씨알도 먹히질 않는다.

“바보! 멍청이! 쓸모없는 녀석들! 여태까지 뭘 한 건가요?! 어떻게 이리 가까운 곳에 있는데 정체하나 못 캐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화나는데. 이쪽은 부하를 잃어서 신경이 곤두서 있어. 우리가 못한 것도 아니고 저쪽이 너무 이상한 걸 어쩌라는 거야.”

“뭐가 어떻게 이상하단 건데요? 쓸데없는 변명이라도 늘어놓을 거라면 당장………”

“상식이 안 통해서 말이야, 상식이.”

“네?”

첩자가 읊조린다.

“아지트 내에 하급 귀족의 얼굴과 몸을 본뜬 부하 하나를 잠입 시킨 적이 있어. 원본이 되는 귀족 놈은 우리에게 잡혀서 거기로 들어가는 방법과 녀석들과 접촉 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다 불었지만 그 자리에서 들켰지. 그것도 가면을 쓴 세 놈 중 한 녀석의 후각에 의해서.”

“자, 잠깐, 영문을 모르는 소릴 지껄이지…”

“계속 들어봐.”

“또 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망원경으로 멀리서 바라봤어. 녀석들이 모이는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회합이라던가, 만남이라던가, 거래라던가, 모이는 시간만 알고 있으면 되잖아? 그래서 그렇게 명령한 결과 멀리서 날아온 투석에 의해 머리 하나가 날아갔어.”

“………………………………”

그 말에 레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가 말한 「상식이 안통한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 표정이다. 물론 그 순간 로키시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설마 하는 마음마저 생겨난다. 로키시와 오래 몸을 겹친 그녀는 그 괴물의 신체 능력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뭔데요. 그럼 로키시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요?”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했어. 한때 그렇게 추측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참 묘해서. 그날 이후 아이 공주님의 기숙사에서 나온 흔적도 없고 기숙사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한데 정보 수집이 너무 늦어서 아는 게 없어. 왜 아이 공주님의 기숙사에 박혀있는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아무것도.”

“로키시가 약을 팔 리 없잖아요. 그럴 이유가 없어요. 쓸데 없는 추측으로 제 마음을 흔드는 건 그만두세요.”

“흔들려고 한 적은 없어. 그냥 추측을 말했을 뿐. 게다가 상대의 실력이 이상해. 로키시·블랙우드라면 가능한 기행이긴 한데 뭔가를 눈치채는 건 그 여자 이상이야. 본인이 아닐 확률이 더 높아.”

“로키시 급의 신체능력에 그녀 이상의 감이라니 믿고 싶지도 않아요. 완전히 악몽 그 자체 아니에요?”

“그렇지.”

나도 이런 추측 말하기 싫었다면서 눈을 가늘게 드는 첩자. 무엇 하나 드러나지 않은 정체불명의 그녀라 해도 로키시 같은 여자와 싸우긴 싫다면서 진심으로 몸서리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맨몸으로 군대와 맞설 수 있는 괴물과 누가 싸우고 싶겠나.

“흠, 제 말은 취소에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신네들을 나무랄 순 없죠. 그럼 약에 대해서는 이대로 맡기기로 하고…”

레인이 한발 물러선 자세로 천장에서 내려오질 않는 그녀와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럼 그 로키시의 이야기를 합시다. 갑자기 아이의 기숙사에 처박혀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나요?”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정도? 숨어 들어가려 했더니 기사들에게 막혀졌어. 그 본인에게 「오려면 레인을 데려와」라고 혼나기까지 했는 걸.”

“본인을 만난 건가요?!”

“딱히 숨기고 있단 느낌은 없었어. 분위기도 평상시랑 똑같았고. 아이 공주님이랑 많이 친해진 건지 잘 떠들고 있다는 분위기였지. 아, 맞아. 에키시·블랙우드만 자기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고 있던 건지 그쪽은 잠입이 편했어. 원래라면 로키시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도 않던 곳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인원수까지 전부 파악했거든.”

“동생이랑 싸우기라도 한 걸까요? 에키시 공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굳이 아이의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니.”

“저택이 소란스러웠다고 하니까 가족 싸움이라도 한 걸 수도 있지.”

“흠…”

평소라면 「에키시 공의 정보 따위는 아무래도 좋거든요」하고 바로 고개를 저었을 레인이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미약 사건도 그렇고 지금 이 땅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 본래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아닌 거다. 약을 사용하기까지 했으니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영 좋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상황이 안 좋은 걸요… 손절에 실패한 것도 그렇고… 로키시가 아이의 기숙사에 있다니… 그렇게 보여도 공녀… 블랙우드 가문에는 왕가의 피가 섞여있는 데다가 당연히 서열도 높아요…”

“최근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고. 로키시가 아이와 손을 잡으면 레인 너 하나쯤 어떻게 돼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도 그 일로 여기에 도망치듯 온 거잖아? 블랙우드 가문에서까지 손절당하면 이제 끝장이네?”

“큭…”

부하가 비아냥거려도 뭐라 한마디도 못하고 입술만을 씹게 되는 레인. 그녀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건지 옛날 일에 몸서리친다. 그 사실 또한 에키시가 알고 있지만 반대로 레인은 그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음을 모른다.

타인이, 그것도 적이나 다름없는 남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알고 있다는 치욕. 만약 알게 된다면 에키시를 죽이려 들 테지. 지금도 그를 싫어하는데 그때가 된다면 이젠 뒤도 안 보고 내달리게 되리라.

“이번 사건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뒤처리를 못한 것도 있고 두말할 것도 없이 큰일 나겠지. 잘하면 그 돼지 놈이 너한테 참견하러 올지도 몰라. 아니, 이미 늦었을 수도 있나? 그런 일이 있어도 하루 종일 널 주목하고 있었으니 지금쯤 정보가 들어갔을 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에키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당장 처리할 일에 눈이 멀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 성, 본래라면 우리만 쓰는 곳이 아니야. 레즈우 왕국의 왕족 자제들이 쓰는 곳이잖아? 곧 새로운 사람들이 입학하게 될 테고 그 사이에는 그 녀석이 끼여있어. 틀림없이 널 만나러 오는 거겠지.”

“그 불쾌한 남자의 말은 하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대체 뭘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듣자 하니 저쪽은 레인과 이번 일에 관해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고 있어. 레인이 약을 투입하고 그에 관해서 사과했지만 그 출처라던가 이야기하지 않았잖아? 이러다 하드 교단과도 척을 지면 정치적으로 아주 곤란한 일이 돼.”

“하드 교단의 중진들을 불렀었지요. 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라 그건가요.”

“당연한 일이지. 일을 벌인 네가 해야 할 마땅한 성의. 그리고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로키시나 아이 공주님에게 좋게 보여야 해. 만에 하나 그 남자에게 이번 일에 관한 꼬투리가 잡히면 그걸로 끝이니까.”

“크으윽…”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레인. 그러나 그 말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레인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누군가가 곧 이 땅에 오며 여기에 입학할 것이라는 말에 구토마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에키시보다 싫어하는 상대라니. 그녀의 과거사가 어떨지 쉽사리 예상이 가는 상태였다.

“미약, 강간 사태, 그 남자, 그리고 정체불명의 집단, 이런 와중에도 여자를 먹고 버리는 우리 레인 공주.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았더라면 당장 버려졌을 홍보용 왕녀. 그 배짱에는 감탄했지만 이젠 움직일 때야. 이 이상 당신의 바보짓을 내버려 둘 순 없어.”

“드디어 감시역으로서의 일을 하겠다 그건가요.”

“언제까지 첩보 놀이를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눈감아줄 수 있는 것도 한계란 게 있어.”

이걸로 됐다면서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면으로 내려오는 그 금발의 첩자. 그리고는 천장에 있는 나머지 부하들도 지면으로 내린다. 전원이 비슷한 얼굴을 한 금발녀들. 일부로 외형을 맞춘 듯 전부 엇비슷한 얼굴에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같이 미녀투성이인지라 보통이라면 흥분할 터. 그러나 레인은 움직이지 않는다. 방금 내뱉은 이름 모를 첩자의 말이 걸렸는지 인상을 구길 뿐.

“우리는 레즈우 왕국의 왕 직속 감시역. 정확하게는 그들의 후계자가 될 사람들. 왕과 당대 감시역들의 명령으로 레인을 보필하며 실적을 쌓고 있지만 레인 넌 언제든 잘려나갈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어야 해.”

“겨우 임시 감시역 따위가 입이 거치네요. 언제든 죽을 목숨일 사람들이.”

“그건 레인 너도 마찬가지잖아? 우리는 그저 다른 자녀들보다 네가 왕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이러고 있는 거야. 즉, 진지하게 고려해주고 있는 거라고. 그렇지 않더라면 그때 널 구해주지도 않았어. 같은 핏줄끼리 그런 짓을 하든 말든 원래라면 우리가 자의적으로 끼어들 일이 아니잖아?”

“흥, 알고 있어요. 그 부분은 감사하고 있다고요.”

“정말로 알고 있는 걸까?”

“칫.”

“여전히 고집 하나는 쌔다니까…”

그들이 질린 표정을 하지만 레인을 뚱한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그것과 동시에 첩자나 감시역이라 말한 그녀들이 온몸을 가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그 안에서 평상복을 드러냈다. 마치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 같은 여교사스러운 복장. 하나같이 타입이 다르지만 치마가 짧거나 가슴이 드러나 있거나 하는 공통점이 있다.

전원이 똑같은 얼굴인지라 여교사 한 명이 갑자기 분신술을 한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지는 공간. 하나같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레인을 나무라는 것은 단 한 명뿐. 그녀만은 레인에게 있어서 특별한 여자였다.

“공부는 질렸어요. 왕성 내에서 누가 절 적대하고 있고 현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질리도록 들었다고요. 이 이상의 공부는 필요 없어요.”

“아니, 공부가 아냐. 아이 공주님께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건 필연. 레인 널 데려오라고 불러내기까지 했어. 공부보다는 그에 대한 대처를 하는 연습을 해야겠지.”

“대처요?”

“그래.”

그녀의 손뼉 소리와 함께 몇 여교사들이 다시 옷을 벗어던지고 한순간에 모습을 바꾸었다. 누군가는 썬을, 누군가는 아이를, 누군가는 로키시를, 또 누군가는 기사들의 모습이나 시종이 되기도 했다.

“그때 레인 널 데려오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여러 가지 플롯을 짜봤어. 호위는 데려가겠지만 그럼에도 난폭한 짓을 할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아픈 부분만을 찔러올 수도 있으니 우리 애들을 상대로 말을 넘기는 법을 연습하자.”

“재밌는 짓을 생각하네요. 설마 이렇게 대응 준비를 하다니.”

“네가 사과한다고 해도 일이 풀리지 않을 거란건 잘 알고 있거든. 그렇다면 이쪽에서 미리 연습해가는 게 좋겠다 싶었어.”

그 말에 레인의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대놓고 레인을 사고뭉치 취급하고 있으나 레인은 자기가 여태 뭘 저질렀는지 알기에 뭐라 말대답이 불가능했다. 자존심이 박박 깎여나가고 있으나 말대답까지 못한다니… 그것참…

“흥, 두고 봐요. 이번 일 끝내 그 망할 녀석도 처리하고. 그러는 김에 로키시 마음도 돌려놓고 나서. 그 후 제가 여왕이 되면 당신 같은 거 하루 종일 부려먹어 줄 테니까.”

“오, 그럼 나는 여왕님의 고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건가? 제발 좀 그래줬으면 좋겠다야.”

“크으, 시건방진 여자 같으니라고.”

그래서 당신이 싫지 않다며 이빨을 갈아대며 홍조를 띤다. 이 마조히스트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여자였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죽여버리려고 하기는 무슨 분노와 기쁨을 같이 느끼다니. 그만큼 상대가 특별하단 의미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레인의 성벽은 여러 의미로 도가 지나쳐 있다.

“그렇게까지 큰소리쳤으면 제대로 준비해 왔겠죠? 일단 아이가 날 나무라는 장면부터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그 하드 교단의 중진들에게서 이번 일에 관해서 추궁당하는 것도요.”

“네가 바라는 일은 없어. 정말로 진지하게 할 거야.”

“알! 고! 있! 어! 욧! 이번 일은 제 미래가 달린 일이잖아요? 성벽 빼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기할 테니까 그쪽도 진지하게 하세요!”

“아아, 그래, 그래, 알겠어.”

레인의 일갈과 함께 그 이름 모를 금발녀는 크게 손뼉을 치며 「그러시댄다~!」라고 비꼬아 소리쳤다. 물론 부하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아주 짧은 순간에 서로의 포지션을 바꿔 자리를 잡았고 본격적인 연기 준비를 했다.

드센 얼굴을 한 아이, 화가 난 썬,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키시, 거기에 가짜 에키시와 젖소 자매가 대기 중. 레인은 누군가가 가져온 의자에 앉아 그런 그들과 대화를 하며 추궁당할 준비가 됐지만 다음 벌어진 일에 입을 쩍 벌렸다.

‘?!’

그들은 연극하는 사람들만을 가짜 벽지를 사용해 사방으로 막았는데. 그 벽지의 모양은 새하얀 하늘과 정원에 뜰이 그려진 것이었다. 레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주위가 정원으로 변하는 것처럼만 보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고. 상대방은 벌써 연극을 시작한 건지 가짜 아이 쪽에서 먼저 「어머, 레인? 여기 와서 같이 차라도?」같은 말을 하며 그녀를 반기는 척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뭔가요! 이 본격적인 준비는?! 정말 이런 일은 쓸데없이 잘 한다니까!’

누군가가 밖에서 불어대는 부채질에 바람이 만들어지고 벽지를 든 여자가 새의 연기를 한다. 정말로 정원에 온 착각마저 들지만 레인은 이 장난질에 진지하게 어울려주기로 했다.

이번 일을 넘기면 왕위는 자신의 것.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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