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젖소 무리와 백돼지 자매(4)
반면, 네티아가 그런 경계를 하고 있을 무렵.
이쪽은 여전했다.
“…………………………”
이번에야말로 진짜 설명 종료…
이번에야말로 진짜 설…
이번에야말로 진…
이번에야…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그러나 파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도구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고 어떻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는지 필사적으로 말한다. 바보면서도 이쪽 이야기에 관한 지식은 풍부해서 혀가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 마치 모터기와도 같았다. 끝없이 돌아가는 것과 탈탈 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걸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비유도 아니다.
에키시는 아이 공주님과 친한 그녀의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꾹 참고 이야기에 어울려줬지만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 식으로 참고 또 참다 보니 날이 어두워진다. 파이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건 물론이요 에키시 일행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던 영애들도 그쯤 되니 가만히 있기 힘들어졌다.
「에키시 공이 이상한 사람에게 붙잡혔어」, 「불쌍해라」, 「누군가 도움을 줘야 해」 같은 착각을 하기 시작한 거다. 마치 파이파이를 잡 도구를 강요 판매하는 사람처럼 취급했고 그쯤 되니 그녀도 자신의 잘못을 눈치채게 됐다.
에키시에게 사과한 후 영애들의 오해를 풀고 자리를 뜨는 파이파이. 오래간만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했지만 자신의 실수에 낙담. 그 후 손에 잔뜩 쥔 케이크를 들고 아이 공주님과 썬을 만나러 가 오늘 일을 사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쪽은 약속 지점에 갔다가 금방 돌아와 있었다.
파이파이가 길을 잃었다고 판단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하니…
그녀의 실수는 거의 일상에 녹아있는 수준이었다고 봐야겠지…
애초에 처음부터 약속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안한 건지 잠깐 산책을 나가는 기분으로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파이파이가 아닌 다른 사람도 픽업해 왔으니 그걸로 됐다는 마인드. 아이 공주님과 썬은 파이파이와 몇 마디 나눈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당연한 소리지만 그런 당연한 마인드였기에 파이파이에게 화내는 일도 없었다.
밤이 온 것도 있고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로 미뤘단 소리지만 이번에는 손님이 온 관계로 썬이 자기 언니와 같은 방에서 잔다고 하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 다 각자 다른 방에서 평범하게 수면. 그러나 파이파이 쪽은 두 사람. 손님용 방에서 커다란 가슴을 흔들며 오늘 있었던 일을 즐겁게 회상하는 파이파이의 앞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거다.
“그래서, 어땠어-용?”
“뭐가요오~?”
“그 살인마 에키시에 관한 이야기 이에-용.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고 했잖아-용? 저는 아이 공주님과 친하지 않아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용. 혹시 나쁜 일 당하지는 않았나-용?”
“다 헛소문이네요~! 인육을 먹는 게 취미라던가, 살인을 하기 위해 일부러 도적을 잡으러 다닌다던가, 야만인을 잡아다가 고문한다던가, 완전히 헛소무우운~! 으힛힛…”
“어, 그래-용? 분명 팔이 여덟 개는 달린 괴물이라고 들었는데-용!”
“아니에요옹~! 멀쩡한 신사분이셨어요옹~!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옹~!”
“흠, 호오…”
파이파이의 앞에서 익살스러운 말투로 연구복을 펄럭거리는 한 여성.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똑같은 모습을 했지만 이쪽은 파이파이와 달리 바보스러운 분위기가 없다. 말투가 좀 웃긴 것을 빼면 나쁜 연구를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에 기미도 없고, 허리는 똑바로 펴져, 파이파이를 보는 눈에는 지성이 담겨 있다. 완전히 똑같이 생긴 쌍둥이지만 그런 작은 부분으로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말투를 웃기게 하는 건 파이파이와 같이 놀아주기 위해서. 쌍둥이 자매이기에 옛날부터 자기네들끼리 해온 장난 중 하나였다.
“너는 바보지만 옛날부터 사람 보는 눈은 좋았지. 그런 오라가 있는 건지 운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에키시라는 사람이 네 눈에 들 정도로 괜찮았다는 건가?”
“에요옹~! 에요옹~!”
“이제 장난은 됐어. 진지하게 답해.”
“으으, 치이이이~!”
그러나 그 익살적인 말투도 금방 그만뒀다. 무슨 영문인지 질린 모양이다. 침대에 드러누워 팔을 허우적거리는 파이파이를 내려다보면서 싸늘하게 웃고 있지만 좋은 기분으로 보이진 않았다.
“맞아요~! 제가 바보짓 잔뜩 했는데도~! 화 하나 안 냈고요~! 오냐오냐 해줬어요~!”
“네 바보짓을 받아 줄 정도로 비위가 좋았단 건가?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이었다는 거구나. 그렇게 안 좋은 소문이 퍼진 남자라면 분명 인성이 좋지 않은 쓰레기 귀족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소문과 정 반대라니 우스울 노릇이군. 나는 네 목이 날아가는 것까지 각오했는데 말이야.”
“와이와이는 대체 어디에 있었어요? 저랑 같이 와놓고 어느 순간 사라졌더라고요. 분명히 제 호위 겸 조수로 왔을 텐데에…”
“너야말로 어디에 있었던 거냐 이 멍청아. 아주 잠깐 눈을 땠을 뿐인데 닌자처럼 사라지다니.”
“목적지가 명확해서! 거기까지 휙 달렸더니 거리 안이었어요! 으히히…”
“검문은 어떻게 피한 거야.”
“저도 잘 모르겠네요오~?”
“이 녀석이 진짜…”
어느 쪽이 언니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모습. 파이파이인지, 와이와이인지, 어쨌든 하나 확실한 것은 어른스러운 쪽은 와이와이고 바보인 것은 파이파이라는 것. 그럼에도 바보 쪽이 좀 더 직위가 높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와이와이는 명확히 화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얼굴을 구길 뿐 버럭거리지 않는다. 성격 나쁜 분위기를 내면서도 파이파이를 믿고 있는 것 같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통이라면 크게 화낼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자유롭게 거리를 싸돌아다녔으면 뭘 알아오긴 한 거겠지…?”
“네에에에~! 본분 자체는 잊지 않았으니 잊지 마시기일~!”
“말해봐.”
“이번에도 우연찮게 여러 소문을 들어버렸어요~!”
“어떤 경위로?”
“그 에키시에게 바보처럼 도구 설명을 늘어놓다가 이 학교 영애 분들에게 둘러싸였는데요오… 그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여러모로 재밌는 말이 섞여 있어서요?! 아무래도 이 거리에는 수상한 약물이나 도구를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오…”
“강요 판매라… 수상한 이야기는 해도…”
“저번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아예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에요오… 에키시도 약물 관련으로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고요오오…”
“그 사람이 약물을 뿌릴 가능성은? 블랙우드 가문의 장남이잖아. 상인과 커넥션이 많을 테지. 소문도 안 좋고. 네 이야기만 듣고선 좋은 사람인지 확증 못 내려.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와이와이가 그를 의심하는 건 타당하다고 봐요오… 저… 이 거리에 들어온 후 에키시와 이야기를 나눈 순간부터 계속 누군가에게 감시당했으니까요오…”
“감시? 호위일 가능성은? 몇 명이나 있었지?”
“두 명이에요오… 한쪽은 에키시와 눈이 마주쳤으니 호위인 건 확저엉… 그러나 다른 한쪽은 그 호위도 누군지 눈치 못 챈 것 같은 움직임이었어요… 바보 흉내를 내면서 계속 그쪽에 신경을 썼는데에에에에…”
좀 과한 움직임을 하자마자 금세 사라졌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파이파이. 그냥 그 자리를 박차고 시선을 쫓을 걸 그랬다며 화를 냈다.
“바보 흉내라니, 바보 맞잖아.”
“오늘은 필요 이상으로 그랬거든요옷?! 도구 설명에 빠진 건 사실이지만요… 그래도 경계를 늦추진 않았어요오…”
“흐응, 이 거리에 퍼졌다는 건 확정이라는 건가. 너를 주목한 걸 보면 이미 우리 목적도 들켰단 거겠지. 그 에키시라는 사람이 일부러 연기를 했을 수도 있겠어. 어느 쪽이든 우리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야.”
“저도 경계는 하겠지만요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될 줄으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시작하기도 전부터 힌트를 얻고 뒤가 막혀버렸네.”
“그러게요오…”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 커다란 폭유 두 짝이 동시에 커졌다가 줄어드는 광경이 벌어진다. 파이파이는 뭐가 그리 불편한 건지 드러누워 있던 상태에서 허리를 들어 천장과 벽을 몇 번이고 뚫어져라 봤다. 그리고서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와이와이는 눈치 챘어요오~? 아이의 몸에서… 아주 조금이지만 그 약 냄새가 났어요오… 아니지… 냄새 자체는 오인으로 볼 수 있지만… 상태가 그 약에 빠진 사람의 초기 증상이었어요오… 허벅지 사이에 아주 조금이지만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했고요오…”
“알아, 안다고, 너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거면 거의 확정이지. 본국에 건의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우리가 놓친 약과 그 재료를 회수하러 왔더니 이미 아이 공주님께서 약에 당해있단 거야. 웃기지도 않은 일이네. 우리가 약의 소재를 잃어버린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싶어질 지경이야.”
“이미 범인 패거리에 당했던가, 아이 본인이 약을 판매하고 있던가, 아니면 밤놀이에 쓰고 있는 건지… 저는 맨 후자라고 생각해요…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을까요오…?”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어. 리스크가 커.”
“아이가 그런 나쁜 짓 하고 다닐 거 같진 않은데요오…”
“네 말마따나 피해자일 확률이 제일 크겠지. 그렇지만 그 약을 개발한 우리에게 설명해주지 않은 시점에서 의심을 해야 할 상황이 됐어. 게다가 그 에키시라는 사람과도 아주 친한 모양이지? 경계를 풀어선 안되는 시점이니 정에 휩쓸리지 마. 어느 쪽이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끄으으응…”
와이와이가 그렇게 말하니 에키시 바로 옆에 있던 여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걸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어졌다. 엘피는 명확하게 상태가 안 좋았던 데다가 파이파이의 후각에 걸릴 정도로 약 냄새가 진하게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못 맡을 냄새지만 파이파이는 물론 와이와이도 엘피 근처에 가면 그녀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눈치채리라.
‘확실히 에키시가 제일 의심스럽긴 하는데… 여태까지 감이 빗나간 적이 없고… 아이가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기 힘들어요오… 역시 전 정에 너무 약한 걸까요오… 두 사람 다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싶다니이이잇…’
두 사람에게 최악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약을 회수하러 왔다가 공주님께 뒤통수를 맞아 남몰래 처리될 수도 있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했다. 그 순간 하드 교단과 아이 공주님의 사이가 끝장나고 배드 엔딩으로 돌입하겠지만 두 사람이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지극히 당연한 대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에키시? 의심받음.
아이 공주님? 의심받음.
엘피? 피해자.
하드 교단과의 사이? 틀어지기 일보 직전.
에키시가 안 보는 사이 오늘도 일이 커져간다. 그렇다고 아이 공주님께서 레인 공주님께 당한 것을 말하는 순간 또 문제가 발생. 뭘 어떻게 해도 배드 엔딩을 피할 수 없는 이 상황. 그러나 아예 루트가 막힌 것도 아니었다.
‘막 거리에 왔을 뿐이니 많은 건 바라지 않지마아안… 적어도 아이의 혐의가 풀릴 무언가가 필요하네요오… 에키시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제 감이 말하고 있으니까요오오… 일단 두 사람의 혐의를 풀어야 겠죠오~? 그리고 나서 그 두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제 감이 크게 말해주고 있어요오~!’
아무리 그래도 에키시의 불운이 계속될 리 없었다. 파이파이에게 호인상을 준 에키시. 여자라면 누구나 친절하게 대하는 이 무능남의 업보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다.
‘와이와이에게는 미안하지마안… 한동안 아이를 지켜보는 겸 혐의를 벗어낼 단서를 얻어야겠어요오… 제일 유력한 용의자인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으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테니까요오~? 범인이라면 와이와이에게 알려 상황을 정리하도록 하고오… 아니라면 아닌 대로 혐의를 벗겨내면 되니까요오…’
파이파이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침대 옆벽을 여러 번 두드렸다. 지금 자기네들이 쉬고 있는 저택 안을 확인하는 것처럼 벽을 두드리고는 가늘게 웃는다.
‘벽은 두껍지만… 천장은 비어있으려나… 급조해서 만든 건물이니 예상은 했지마안…’
그리고는 곧 샛길이 될만한 곳을 찾아냈다. 이 건물을 만들도록 주도한 레즈우 왕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만한 수상스러운 공간들. 마치 닌자처럼 천장 위를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을 눈치채 그것을 이용할 생각을 했다.
그것이 바로 파이파이의 비밀 통로.
그리고 그 통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키시의 구명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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