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젖소 무리와 백돼지 자매(2)
놀랄 일은…
아니었… 다…
아니, 그, 그래, 호모 루트도 있는 녀석이다…
일단 하렘 루트를 노리자고 오늘 막 결심한 참이니까 썬의 사랑을 받아도 나쁜 기분은 아니다. 좀 놀랐을 뿐. 녀석이 이상하게 여자스러운 반응을 보인 게 그것 때문인가 생각하면 납득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니 이 여자의 정체가 좀 더 궁금해졌다. 파이파이라고 하는 캐릭터는 모르는 뿐더러 이 시점에서 썬과 아이 공주님은 하드 교단과의 접점이 거의 없다. 하물며 이렇게 속마음을 터놓은 편지 상대 따위 있을 리 없는 거다.
이 세상이 게임이 아니라며 착각하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경고하고 살았지만 설마 이렇게 이그러짐이 생길 줄이야.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졌다. 게다가 이 여자의 행동이 너무 가벼운지라 더욱이 이상했다.
이 여자…
썬과 아이 공주님…
그 두 사람과 무슨 사이지?
“그러고 보니 재밌는 것도 많이 적혀 있었어요오오~! 에헤헤~!”
내가 고민을 하든 말든 이 여자의 입은 가벼웠다. 마치 편지의 내용 따위 언제든 말해도 된다는 태도로 가슴을 뽀용뽀용 흔들면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케이크가 마음에 든 건지 내가 마음에 든 건지 모를 태도다.
정말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신용하고 있는 건가?
진짜로?
예를 들어, 아이 공주님이 누군가에게 빠진 건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누구인지는 명시되어있지 않았고 최근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과 아이 공주님이 친한 관계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별생각 없이 편지 내용을 주르륵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에 가깝겠지. 이 여자에게 무언가를 자랑해서 권위를 나타내려는 수작질을 할 대가리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또 예를 들어, 썬이 나를 좋아하는 것 이외에도 요즘 고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블랙우드 가문의 누군가와 대립하게 돼서 사랑하는 에키시 공과 만나기 힘들다는 것도. 이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서 방금 생각했던 이 여자가 빡대가리라는 설을 완전히 확증 지었고 썬에 관한 생각도 여러모로 바뀌게 됐다.
또 또 예를 들어, 본국에서 아이 공주님을 칭송하는 추종자들이 순조롭게 늘고 있다는 것도 나불거려댔다. 왕성의 참새들인지 까마귀인지 모를 비유를 하면서 걔네도 점차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자국의 정치 상황이 많이 어지러웠던 모양이다. 그게 정리돼 있다고 하니 듣던 내가 마음이 다 놓였지만 어쩐지 레인 공주님을 비난하지 않은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다.
정말로 이렇게 쉽게 나불거려 주다니.
대체 어떻게 된 여자냐.
덕분에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몇 가지 내용을 알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원하는 「말」 은 아니었다. 체스판 위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년은 필요 없다. 다행히 이 여자에게 무언가 알려준 건 없으니 어디 가서 나에 대해 떠들고 다니지는 않겠지.
설마 이렇게 입이 가벼운 년이 있을 줄이야. 그 가슴이나 몸뚱어리는 최고지만 머리는 필요 없었다. 그건 엘피도 똑같은 생각이었던 건지 파이파이 수석 연구원이 입을 열 때마다 「이 녀석 미친 거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럴 것이 여기에 있는 엘피는 우리 가문의 정보를 흘렸다가 다리가 아작난 거니 기분이 이상하겠지.
‘이 여자, 자기가 아이 공주님과 친하단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당연하단 관계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렇게 머리가 비어도 등 뒤에 권위 있는 사람이 있으니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겠지. 사람이 좋은 건 맞지만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바보다.’
그래, 이렇게 나불거러 댄 거다. 아이 공주님과 어떻게 그리 친해졌냐고 물어볼까 싶어서 그것에 관해서도 질문했고. 이 여자는 그 질문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 이미 여러 번 설명한 것처럼 말해줬다.
“아하하~!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저어, 저어, 이렇게 보여도 한때는 왕가의 사람이었던지라아아~?”
“호모우 직계?”
“아뇨, 그럴리가요오~! 피가 아주 옅은 데다가 친척의 친척에 또 친척이라고 할 정도네요오? 실제론 호모우 왕가의 피가 섞여있다고 하면 타인에게 코웃음 쳐지는 수주운~? 게다가 가문도 이미 망해버렸고오… 왕성에 들어갈 권위도 잃어버린지 오래 됐던지라아… 으헤… 흐으윽…”
그래도 가문 자체가 남아 있던 아주아주아주 어릴 무렵. 그 어린 시절 우연찮게 아이 공주님과 만나 의기투합해서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됐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편지는 주기적으로 주고받았고 왕성에서 몰래 빠져나온 아이 공주님과 길을 거닐며 함께 놀았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거짓말같이 가문이 망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고. 안 그래도 자칭 왕가의 핏줄 취급받고 있었던지라 다른 귀족에게서도 배척받으면서 홀로 출셋길에 올랐다고 한다. 귀족으로서는 재기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하드 교단에 들어가 그 똑똑한 머리로 자리를 꿰찼다나 뭐라나.
그렇게 비난받고 살았으면서 잘도 사람을 믿을 수 있구나 싶었다. 천성이 착한 애인지 머리가 나쁜 건지 그런 양자택일로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하는 행동이 비난을 부르는 타입인 건 확실하다.
“하드 교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그 수석 연구원이란 직함은 대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겁니까?”
“정확히는 1급 연구원… 또는 연구팀 총 관리자… 저는 그중에서도 교황님의 직속 연구팀의 우두머리라… 제 위치는… 현 교황 아저씨와 그 대리의 오른팔 정도… 일까요… 적어도 그만한 취급은 받아왔으니까요오…”
‘겍! 이런 여자가?!’
‘역시…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물이었잖냐… 게다가 교황을 아저씨 취급하고 있고…’
호모우 왕국과 레즈우 왕국은 사실상 교국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각 교단의 교리에 물들어 있다. 그런 나라니 각 교단에서 영향을 주는 인물들은 당연히 왕성이나 다른 귀족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현 교황을 쉽게 만나는 건 물론 그 본인의 오른팔을 자처할 정도라면 지금 내게 머리를 숙여도 될 인물은 아니다.
‘왜 너 같은 게 이런 길거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데에에에에~?! 바보냐! 바보냐! 바보냐! 나도 그렇지만! 이 거리에는 바보밖에 없는 거야?!’
어쩐지 엘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추한 표정으로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엘피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황 대리가 공주님을 만나러 타국에 왔다가 길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이 여자 호위는 어쩐 건지 진짜로 궁금해졌다.
“호위는 어쨌습니까.”
“아, 없네? 어디로 갔지이~? 방금까지 있었을텐데에…”
“적당히 해라 이 바보 녀석아. 나중에 처벌을 받는 건 당신이 아니라 호위 측이란 말이야. 그렇게 권위가 있는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난리야.”
“으헷, 그렇게 대놓고 혼난 건 아이 공주님 이후네요오… 아니, 그냥 아이라 불러도 되죠오? 에키시 님도 아이를 아이라 부르는 것 같든데에에~!”
“귀찮으니 그냥 에키시라 부르시죠.”
“그럼 저도 양 빼고 그냥 파이로오~? 으히힛…”
‘도련님께 친근하게 대하기는… 몰락 귀족에… 어쩌다 운 좋게 출세한 덜떨어진 년이…’
바로 옆에서 엘피의 증오 어린 중얼거림이 들렸기에 다시 한 번 머리를 살살 긁어서 그 기분을 풀어줬다. 내게 의존하게 된 영향인지 날 띄워주는 경향이 생기고 말았다. 아마 본인은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게 되면 부끄러워질 텐데 잘도 지껄이는구나 싶다.
‘역시 가까이해두고 싶은 사람은 아니군. 마음대로 입을 열고 다니는 데다가 쓸데없이 권위가 있다. 물어보고 싶은 건 물어봤으니 적당한 부근에서 빠질까. 친분만 유지해두면 언제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대고 말이야.’
그녀에 관한 대응을 확정 지은 후 얼굴에 가면을 썼다. 쓸데없이 옆으로 우회하는 것 같은 말투는 필요 없다. 대놓고 먹을 걸 먹이면서 아이 공주님이나 본인을 칭찬하면 알아서 들떠주는 타입의 인간이다.
“또 뭐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오~?”
“아이 공주님이 금방 돌아오리라 생각되진 않고… 흠, 뭘 연구하는지 들어봐도 될까요? 제가 알기로는 하드 교단은 다른 교단과 달리 특히나 재밌는 걸 많이 만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아아, 그쵸, 그쵸, 그쵸오~?! 저희 교단은 다른 교단과 달리 약물이나 도구로도 성(姓)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모토라서요오~? 그래서 그쪽 관련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오오~!”
연구원이니 자기가 만드는 것에 관한 자부심은 있겠지. 그래서 그에 관한 질문을 하자마자 파이의 눈이 밝게 빛났다. 그 커다란 살덩어리 두 개를 테이블 위에 편히 얹어놓고 기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이쪽 방면에서는 확실히 프로다운 면모가 있었다.
최근 연구하고 있는 것, 연구 목적, 이 연구 결과가 왜 그렇게 멋진지, 하드 교단의 중요한 점, 그 외에도 이것저것 떠들어댔지만 쓸데없는 말도 섞여있다. 호모우든 레즈우든 어느 쪽도 섹스나 성에 관련된 교단이 주류인지라 그쪽 이야기로 흘러들어가는 건 필연.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이 여자는 역시 좀 바보였다.
“저는요오~? 어렸을 때 가문이 무너진 후… 얼굴들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잔뜩 받는 생활에… 마음이 닳고 닳아 버렸거든요오… 그래서 상심에 빠진 상태로 자위를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느 날 도구에 빠져버려서어… 그 상태로 하드 교단의 교리에 눈을 떠버린 거예요오~! 그래! 이 세상 누구든 기분 좋은 자위를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늘 현자 타임으로 있을 수 있다며언~! 이 세상에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고요오오~!”
“………”
“역시 하드 교단의 교리는 대단해요오~! 섹스리스 때문에 불화에 빠진 부부도 약 한 방울이면 어머나 어머나 해버려요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기분 좋은 도구로 쾌락에 빠지고 나면~! 뭐든 용서해버리고 만다니까요오~?! 저는 이 쾌락을 모두에게 널리 알려서어~!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오~! 모두가 기분 좋은 쾌락에 허덕이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각 교단의 교리나 불화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오오오오~! 으히히힛~!”
‘미치겠네 진짜.’
마음속으로 이 미친년의 머리를 잡아 케이크 웅덩이에 몇 번이고 박아 넣었지만 실제로는 행하지 않았다. 본인에게는 감동의 이야기였을 테니까 말이다. 케이크를 먹으며 오늘 처음 보는 여자의 자위 쇼 이야기나 들으며 감동을 해야 한다니 내 인생도 참 기구하구나 싶다.
혹시 날 유혹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배꼽 티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건지 그 커다란 유두가 발딱 서 있었기에 그것을 잡아 뜯어보고 싶은 기분만 들었다. 그렇게 살집을 좋아하는 내가 이 여자의 몸을 보고도 그런 생각 밖에 안 들다니 정말 특이한 년이었다.
“교리에 관해서는 잘 알겠습니다만… 그… 혹시 아이 공주님… 아니지, 아냐, 크흠… 아이를 만나러 온 것 이외에는… 다른 일은 없는 건지…”
“물론 일을 하러 왔어요오오~! 아무리 그래도 아이의 얼굴을 본다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오~? 사실 이번 일은 아무리 저라도 화가 날 정도라~! 빨리 끝마치고 돌아가고 싶어요오~!”
다행히 이 머리에 나사 빠진 년이 자위를 하기 위해서 온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여기까지 온 목적을 듣자 하니 상당히 의외인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블랙우드 가문의… 그, 로키시·블랙우드 님께서 야만족의 영토를 대거 빼앗으셨잖아요오오~? 원래라면 음문을 박는 원료가 거기서 밖에 나질 않아서요오~? 근데 이번에 영토를 빼앗은 걸로 우리도 음문에 쓰는 약초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지라아~! 그걸 가지고 약을 만들었는데… 그, 그, 그게에에…”
“혹시 지금 이 거리의 뒤에서 유통되고 있는… 음문 효과를 내는 약을 말하는 겁니까…?”
“앗, 역시 알고 계셨군요오?! 맞아요! 맞아요!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와버렸어요오오오… 원래라면 우리 하드 교단이 모조리 독점하기로 한 건데에엣… 누가 그걸 빼돌렸는지 몰라도 그 약이 이 거리에 유통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오~! 듣자 하니 소량으로 아주 조금 유통되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 하드 교단으로서는 눈 감고 볼 수 없는 일인지라아…”
그것을 듣자마자 엘피의 얼굴이 새파랗게 된 건 물론 나도 아이 공주님과 레인 공주님의 일이 떠올라서 인상이 구겨지고 말았다. 이 여자는 아직 아이 공주님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설마 아이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라며 당황하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아, 처음 보는 분께 일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요~? 죄송해요오…”
‘일 이야기로 사과라니, 그 이전에 했던 말들을 사과하는 편이 더 좋을 텐데. 이 여자의 괜찮음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만.’
나는 괜찮다고 말한 후 그 사과를 일축했다. 자연스럽게 「우린 이제 친구 아닙니까? 그 정도 푸념이야 들어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파이의 얼굴이 밝게 빛나는 걸 넘어 눈물이 주룩주룩 맺혔다. 이쪽도 아이 공주님과 마찬가지로 친구가 몇 없는 타입인 모양이다.
‘일단 이 여자가 여러모로 바보인 건 둘째치더라도… 듣자 하니 꽤 차별받고 산 모양이고… 자위에 빠질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거겠지…’
이런 바보 같은 이야기에도 공감해주는 내 공감대가 너무 싫다. 덕분에 이 여자의 환심을 사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케이크도 그렇고 환심사기 너무 좋은 여자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렇게 뒤가 구린 게 없으니 오히려 친구 사귀기 힘든 게 아닐까 싶었다.
“듣자 하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훌륭한 교리를 따라 멋진 아이템을 만들었는데 누군지도 모를 무뢰배가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그것을 만든 파이가 얼마나 마음을 아파했을지 적잖아 이해가 갑니다. 네, 이해하고 말고요. 참 힘드셨겠네요.”
“아아아, 으으, 맞아요~! 맞아요~! 으흐으으으… 그러려고 만든 거 아닌 데에…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질러요오… 역시 에키시는 뭔가 다르네요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는데에~! 역시 아이가 친우라고 소개한 사람은 뭔가 달랐어요오오오~! 흐에에에엥~!”
‘도련님, 이 여자 역시 바보인데요?’
‘말하지 마라. 이 세상에는 이런 바보가 필요한 법이야.’
‘으에, 이해는 해도 납득하기는 싫어요.’
이 녀석 혼자 그런 약을 만든 건 아니겠지만 원인을 따져보자면 이 녀석도 문제 덩어리 중 하나다. 마치 걸어 다니는 폭탄이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다. 그것도 이쪽은 심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확인도 안된 폭탄. 불안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뭔가 명확한 점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나와 엘피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파이의 기분은 점점 더 좋아져 가기만 했다. 발정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크게 헐떡이면서 의자 바로 아래에 놓아둔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렸고. 나와 엘피는 그녀가 또 뭘 하려는 건가 싶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흐으으… 케이크도 잔뜩 먹여졌고오… 솔직히 너무 먹은 감도 있고… 게다가 에키시는 좋은 사람인 거 같으니…”
홀로 중얼중얼 거리면서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헝클어진 백발도 그렇고 안 그래도 다크서클이 진하게 낀 눈 때문에 꽤나 음흉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가방은 뭡니까?”
“제, 제 도구 가방이에요~! 주로 일할 때 쓰는 물건이라앙~! 그, 그리고오… 대부분은 자기 위로 도구들이 전부에요오… 이렇게 보여도 저는 직접 영업하는 일이 많거든요오… 사람들이 하드 교단에 올 수 있도록 권유하는데 이 도구를 쓰는 거예요오… 새 신도들을 권유하는 겸 제가 만든 물건들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해요오오오…”
‘즉, 성인 용품이 가득 든 가방이란 거네요. 음탕하기는.’
‘그렇게 틱틱 거리지 마라.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잖아. 저게 하드 교단이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하니 알아서 납득해라. 애초에 여자들끼리 보지 비빔밥 만들어서 레즈비언으로 만드는 시저링(가위치기) 교단이 할 소리는 아니잖냐.’
‘느으으으윽… 그, 그건 그렇습니다마안…’
아무리 그래도 저것들이랑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은 건지 엘피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 상태라면 이제 말대꾸하는 일은 없겠다 싶어서 다시 고개를 돌려 파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만…
“아? 아, 어, 어어, 어어…”
“이거어, 이거어, 전부 에키시 줄게요~! 전부우~! 전부우~!”
이 미친 여자는 나와 엘피가 비밀 대화를 하는 사이 주위 시선도 안 쓰고 테이블 위에 그 도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적나라한 것들만을 꺼내서 보는 내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아, 이거, 이거! 전부 신제품이에요오~! 쓰는 법도 전부 알려줄게요~! 어차피 신도 권유용으로 가져온 것도 있고오~! 최근에 만든 신제품을 테스트할 기회도 될 거예요오~! 이히히히~!”
‘진짜로 상식을 내다 버려버린 건가.’
다시 한 번 내 인내심을 시험했으나 파이의 미소는 아까보다 밝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나와 달리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에 침을 뱉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게 내 마음을 한층 더 깊게 갉아먹었고 내 얼굴에는 딱딱한 미소만 꽃 피었다.
“에헤헤헤~! 분명 에키시도 기뻐할 거예요오~! 제가 만든 물건은 전부 확실한 쾌락을 보장하니까요오~! 자, 자, 사양 없이 받아주세요오~! 저와 친구가 된 증거에요오~! 에헤헥~!”
‘이 여자는 대체 뭐란 말이야… 진짜… 미치겠군… 미치겠어…’
이젠 아예 얼이 빠져버린 엘피를 품에 끌어안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전부 어떻게 쓰는 건지 알려주겠다며 멋지게 떠들어재끼는 파이를 무시하고서 나는 나 자신의 머리에 박힌 정신줄을 뽑아버린 채 의도적으로 엘피와 같은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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