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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귀족 여체 하렘-49화 (49/199)

 무능 귀족 - 젖소 무리와 백돼지 자매(1)

에키시의 기준으로 봐도 그 여자는 아주 특이한 쪽에 분류됐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연구원 같은 복장은 물론 그 안쪽에 입은 옷도 에키시의 누님이 입을 것 같은 복장이었다. 쫙 달라붙는 검은 바지와 가슴을 강조하는 배꼽티. 에키시의 마음에 쏙 드는 폭유 여성.

아이 공주님이 연상될 정도로 외형이 좋았으나 분위기가 그녀와 정 반대였다. 잔머리가 여기저기 뻗은 지저분한 백발에 약이라도 한 것 같은 썩어빠진 백안. 그 커다란 가슴을 감추듯 몸을 구부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은 여성이었다.

특히 눈가 바로 아래에 생긴 다크서클이 눈에 띈다. 흰 피부와 머리카락에 어울리지 않는 그것. 에키시는 그녀를 보며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젖소가 생각났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얼굴 표정만을 가다듬었다.

“아으와… 감사합니다아… 덕분에 살았습니다아…”

그 외형에 어울리는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 누군가에게 맞고 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숙이는 것이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엘피와 비교해도 이쪽이 더 불쌍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을 굽혀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에키시와 엘피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졌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순간에 감이 오게 됐다.

“흐이이,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아… 히으, 주위에 폐를 끼치고 말았습니다아… 으이윽, 으이윽, 다른 시종 분들도 그렇고오… 아무도 나무라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이이이이…”

“어려울 때는 돕고 사는 거죠. 이 거리는 바깥 왕도와 달리 가게 하나부터 시종 한 명까지 전부 검열돼서 들어오는 분들이니 이 정도 일로 손님을 나무라진 않습니다.”

“아으와… 이야기로는 들었습니다만 역시 이상한 곳이네요오… 히이이이이…”

말을 할 때마다 떠는 목소리를 내는 게 습관인 여성. 에키시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엘피와 시선을 교환했고. 그 두 사람은 그 짧은 순간만에 「이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라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이대로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에키시·블랙우드. 이쪽은 저희 가문에서 종사하는 기사 엘피. 그쪽은 호모우 왕국에서 온 손님이라 보았습니다만…”

“히에에에에!!! 어떻게 아셨습니까아아아~?!”

“그게… 등 뒤에 눈꽃 모양의 인장을 그대로 달고 계시니… 보통은 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 아앗! 맞아요! 그랬었죠오?! 에헤헤… 바, 밖으로 나오는 건 오래간만이었던지라…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아아… 에헤…”

외형처럼 방구석 폐인인 건지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머리를 숙이는 정체불명의 젖소 여자. 에키시가 그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도 자기소개를 했다.

“저, 저어는… 호모우 왕국 소속… 하드 교단의 수석 연구원… 파이파이라고 합니다아… 이, 이이, 이번에느은, 여기 레즈우 왕국 학교 부지 내의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잠깐 이 땅에 들리게 됐습니다마아아안… 설마 이런 곳에서 공작 가문을 뵙게 될 줄으으은…”

“긴장하지 마세요. 해봤자 딸린 자식 나부랭이입니다. 아버지만큼의 위엄은 없고 학교 부지 내에서는 암묵적으로 직위를 밀어붙이는 게 금지돼 있습니다. 하물며 타국에서 온 손님분께 작위 관련 예의를 바라진 않으니 그저 편히 있어주시면 됩니다.”

“아아… 네에… 가, 감사합니다아…”

에키시는 여성을 꼬실 때만 보여주는 나긋한 얼굴을 지으면서 그녀를 안정시켰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건지 벌벌 떠는 건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새로 나온 케이크나 차를 입에 머금는 것이 단것을 아주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우음, 우으으음, 후흥, 흐으읍, 아아아아, 달아서 좋아요오… 오래간만에 먹는 감미라 그런지… 후으으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아아아아아…”

게다가 케이크의 산이 사라지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일단 이야기 도중이었으니 조금만 먹은 후 다시 말을 꺼낼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음식들이 사라져나갔다. 애초에 케이크를 등분해서 주문한 것도 아니고 한 덩어리들을 몇 개나 주문했으니 그녀의 식성을 어렴풋 예측하고는 있었다만.

‘히에에엑… 이 여자… 간이 큰 건지 작은 건지 모르겠어… 단 것을 눈앞에 두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타입인가… 아무리 도련님의 소문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예의 없이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대체 얼마나 단 거에 굶주려 했던 거야…’

먹은 것이 대체 어디로 들어가나 싶은 레벨이었지만 엘피는 파이파이의 가슴을 본 후 「아, 과연…」하고는 어렴풋 짐작한 말투를 내뱉었다. 그때 본 아이 공주님의 가슴보다 크다니 이미 인간의 젖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련님…”

“쉿, 괜찮으니 아무 말 하지 마라… 알겠지…?”

“끄으으응… 으으응…”

엘피가 눈치를 주려 했지만 에키시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에키시는 엘피를 달래듯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그녀의 비위를 맞추어줬다. 물론 엘피는 그 기분 좋은 감각이 약기운 때문이라면서 필사적으로 변명해댔지만 그 기분 좋은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처럼 고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이번 이야기에서 휙 빠져버렸던 거다.

“아우으음, 으으음, 으흐으으으으음~! 달아, 달아, 달아아~! 으헤에~!”

그 사이 행복한 목소리를 내며 다음 케이크를 부탁하는 파이파이. 에키시는 그 식성에 놀라 하면서도 얼굴을 굳히며 그녀를 위해 입을 놀려댔다.

“만족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만 저 또한 레즈우 왕국의 사람. 타국의 분이 그리 기뻐하시니 저도 덩달아 기뻐지네요. 케이크뿐만 아니라 다른 먹거리도 풍족하니 분명 입이 즐거운 나들이가 되실 거라 장담합니다.”

“으와아, 으와으읏, 생각만 해도 입이 행복해지네요오… 으헤헤헤…”

에키시는 파이파이에 관한 정보를 아주 조금 수정했다. 가슴이 크고, 겁이 많고, 세상 물정 모르고, 단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식탐이 많은 것 같다고. 연구원이란 직함을 달고 있으니 머리가 나쁘진 않을 테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에키시는 이 여자를 어떻게 구슬려서 말을 뽑아낼까 고민했다. 이 타이밍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하드 교단의 여자. 혹시 아이 공주님과 인연이 있을 지도 모르는 데다가 앞길이 막막한 에키시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놓칠 수 없는 호기 중 하나였다.

‘먹는 거에 정신이 팔려서 기분을 띄워줘도 음식에 집중할 뿐. 식탐이 많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외형은 그럭저럭이지만 옆에 둘 여자는 아니군.’

에키시… 아니, 최현준은 이런 타입이 골칫거리였다. 평소처럼 천박하게 나가면 겁에 질려 도망칠 타입. 그렇다고 정중히 대하자니 좀 멍한 면모 때문에 에키시의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에키시가 바보 흉내를 내자니 영 아니꼬웠다.

이걸 어떻게 한담?

그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대놓고 물어볼까?

“아, 우음, 그러고 보면…”

“?”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아주 짧게 고민하는 사이 파이파이가 입을 열었다.

“에키시·블랙우드… 블랙우드… 공작가… 장남…”

“저에 대해 아십니까? 소문이라면 꽤 퍼져 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만.”

“아니요오오~? 그쪽 소문이 아니라아…”

그러더니 다시 말을 끊고 케이크 덩어리들을 삼켰다. 그 많은 케이크의 산이 어디로 갔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소화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광경이었지만 그것을 다 먹어치운 후에야 그 입이 다시 열렸다.

“끄흐으, 그, 그게에~? 이번에 제가 만나러 온 지인의… 그녀가 보낸 편지 중에… 공작님의 이야기가 잔뜩 있었던 지라아아아…”

“지인의 편지에 말입니까?”

“지금 생각해본 결과… 제 지인과 에키시 님은 아주 친하신 거 같네요오오… 그럼 숨길 필요도 없이 이름을 말해도 되지 않아 싶어서어어…”

“혹시 아이 공주님을 만나러 오신 건지?”

“아하, 역시이이~!”

파이파이의 그늘진 얼굴이 밝게 빛난다. 「공주님의 지인분들은 친절한 분들이 많다」라며 에키시를 칭찬했다. 이 타이밍에 에키시가 그녀를 도운 것은 일종의 운명이나 마찬가지. 설마 진짜 아이 공주님의 지인이었냐며 에키시와 엘피가 동시에 놀라 했다.

“파, 파이파이 양?”

“아, 부르기 힘드실 테니 파이로 짧게 불러주시기일~! 에헤헤~!”

“그럼, 파이 양. 당신은 왜 이런 곳에 있나요? 저와 도련님이 듣기로는 아이 공주님은 오늘 아침부터 이 거리를 나가 왕도로 가셨는데요.”

“응? 으으응? 응? 응? 네, 네에에에에~? 어, 어어, 어째서요오오오~?! 그럴 리가 없는데요오오오오~?! 오, 오늘, 분명히 오늘 이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단 말이에요오오오~!”

“우리도 오늘 아침에 직접 기숙사까지 가서야 알겠습니다. 호모우 왕국에서 온 지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야기의 흐름을 보아하니 그 지인이 파이 양으로 보입니다만…”

“호, 호, 혹시, 틀렸나? 아니, 그럴 리가…”

역시 바보라고 해야 할지 이 자칭 수석 연구원은 약속 장소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바로 눈앞에 에키시와 엘피가 있는데도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자신의 실패 사유를 유추하고 있었다.

“부, 분명! 레즈우 왕도 중앙 거리에서! 제일 큰 디저트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단 말이에요오오~?!”

“아마 그 점 때문에 헷갈리신 것 같은데요. 레즈우 왕도와 학교 부지 내는 따로 취급됩니다. 파이 양은 학교 부지 내를 왕도로 취급해서 이 거리까지 온 모양이지만 저쪽은 왕도 그 자체를 생각한 모양이네요.”

“자주 틀리는 실수는 아닌 거 같다만.”

“도련님의 말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실수는 아니지요. 애초에 학교 부지 내에 들어오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한데 잘도 그것을 밟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요. 대게 그 부근에서 눈치챌 텐데 말이에요.”

“와으으윽?! 또, 또, 또 실수했어어?! 어,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어엇! 공주님은 오지도 않고! 썬도 안 보이고! 히이이이이이잉!”

‘약속한 사람이 안 나왔으면 케이크를 먹지 말고 뭔가 잘못됐는지를 의심하라고…’

에키시와 엘피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바보란 말을 내뱉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일단 눈앞에 있는 상대가 아이 공주님과 친밀한 건 물론이고 이런 무례를 취해도 될 정도로 뭔가 있는 여자라 봤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왕도로 가시겠습니까? 거리도 얼마 안 되고. 지금이라도 나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는 거리인데요.”

“그… 사실… 이 경우 기숙사에서 만날 예정을 잡아놔서… 아마 금방 돌아오실 거라 생각하는데요오…”

‘이 여자, 처음부터 길을 잃었을 때의 대비도 해둔 모양인데.’

‘심각한 사람이네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거겠지.’

어째서인지 보고 있는 에키시와 엘피 쪽이 머리가 아파지는 여자였다.

“케이크 때문에 카페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거죠?”

“아앗, 앗, 아으으, 에헤헤헤헤, 으헤…”

‘웃어넘길 일이 아닐 텐데.’

한 나라의 공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케이크가 우선이라니. 두 사람은 여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들을 여럿 봐왔지만 오늘 이 여자는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바보였다. 에키시는 이 여자를 어떻게 구슬릴까 생각했지만 그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됐다.

아마 상식보다 본능이 우선시 되는 여자. 어떻게 수석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달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이 공주님과 아주 친밀한 사람. 에키시는 생각을 바꿔 친절하게 대하는 것보다 대놓고 속물적으로 나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드 교단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이 공주님과 그 정도의 친분이 있으시다면야 느긋이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죠. 아이 공주님이야 이런 일로 화내는 분도 아니니 별문제 없을 겁니다. 제 쪽이 케이크를 주문해 드릴 테니 먹어 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게 있다면 아이 공주님께 선물로 가져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아아아, 지지, 지지, 진, 진짜요~?! 정말로 케이크를~! 더 먹어도 되는 거죠오~?!”

“하하, 뭡니까 그 반응은? 누군가에게 뭘 먹는 걸 금지당한 적이라도 있습니까?”

“그게에~! 같은 동료들… 특히 여성분들에게… 먹으면 먹을수록 가슴이 계속 커진다고… 웬만하면 적당히 먹으란 말을 들어서어어어… 그래서 최근에는 자중하고 있던 차인지라아아… 히이잉… 따로 이유가 있는 데… 그렇게 가슴으로 놀려대고오오오…”

‘뭐냐 그 개쩌는 몸매 원리는? 이쪽 누님이나 엘피에게도 도입하고 싶은 능력인데. 설마 먹으면 먹을수록 더 커지는 거냐. 이미 핵폭탄 레벨인데? 오오오오오…’

“그래도, 그래도, 타인의 호의를 무시하는 건 좀 그렇고오오~? 에헤헤…”

“네, 네, 마음대로 드세요. 어차피 도련님의 돈이고. 그렇게 케이크나 감미가 좋으시다면야…”

뒤늦게 정신을 차려 틱틱 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엘피. 약기운에 빠져 에키시의 손놀림에 당했던 그녀가 왜 정신을 차렸는가 하니 다름 아닌 파이파이의 가슴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키도 작고 가슴도 없는 그녀였던지라 파이파이의 몸매 관리 비법은 엘피에게 있어서 불만을 주는 이야기였다.

“우헤, 감사합니다아아… 그럼 감사히… 잘먹겠습니다아…”

“켁!”

그러나 그런 비꼼도 통하지 않는다. 입으로 침을 츄릅 삼키면서 먹을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 완전히 먹보나 다름없었다. 이게 정녕 사람의 행동인가 싶었지만 엘피는 참고 또 참아 다음 케이크를 주문하면서 열을 식혔다.

‘참자, 참아, 에키시 도련님이 화내고 계시지 않은데 내가 화낼 필요 없어… 도련님께서 아무 말 안 하는데 멋대로 나섰다가 일 커지면 나만 혼나… 안 그래도 뒤가 없는데 이런 곳에서 화낼 필요 없잖아…’

“으헷, 에헤헤헷, 달아~! 달아요오~! 으우움~! 우흐음~!”

‘그래도 화가나! 이 젖소 여자가아아~?! 뭘 맛있게 냠냠 거리고 있는 거야앗?! 도련님이 질색하고 계시잖아?!’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예의가 없으리라고는. 엘피는 눈을 질끈 감고 시선을 돌렸으나 에키시는 그런 그녀를 노려보면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흐음, 흐음, 이거 찬스 아닌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머리가 비어있는 여자인데…’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천재일우의 찬스라는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다. 여전히 이 여자가 무언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에키시의 입이 움직였다.

“그나저나, 아이 공주님의 편지에 제 이름이 적혀 있다니. 이렇게 보여도 아이 공주님의 친우이기도 하고. 저란 놈을 어떻게 보고 소개하셨을지 꽤 궁금해집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내용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으으움? 아, 편지의 내용 말이네요~? 아하하하핫…”

‘아,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노골적인 게 아니신지~?! 아무리 저 여자가 바보라도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물어보시며어어언~?!’

너무 노골적. 파이파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고. 엘피는 에키시의 말을 수정하기 위해서 입을 열려고 했으나 몸 전체에 아릿함이 돌아와 버렸다. 아무래도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는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으, 으으, 으흐으…?! 하필이면 이럴 때…’

엘피의 머리가 뿌옇게 되고 에키시의 손길이 다시 기분 좋아질 무렵. 파이파이는 고민하는 척하더니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어왔다.

“으으으음~? 뭐라고 했더라아아~? 기억나질 않네요오~?”

“혹시 기억나지 않으시다면야 단어를 몇 개 추려서 질문해도 되겠는지요?”

“아, 네네~! 괜찮아요오~!”

그러나 에키시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 여자가 완전히 바보라는 걸 깨달았으니 대놓고 질문하기로 했다. 특히 자기 누님이 얼버무렸던 그 사실이 제일 궁금했다.

“혹시 연애라던가, 그런 말은 있었습니까?”

“아, 그래! 연애! 연애! 연애에~! 이히히히히힛~!”

‘어?’

“있었어요~! 있었고 말고요~! 아하핫~! 보는 제가 낯간지러워질 정도로 멋진 이야기가 있었답니다아~!”

‘게엑?! 그걸 왜 말하는 건데! 도련님의 연애 사정을 들추지마아아아아앗!!! 안 그래도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들 투성이란 말이야! 로키시 님이라던가! 로키시 님이라던가! 로키시 님이라던가아아아아앗!!!’

이 타이밍에 연애 관련 단어가 있었다고 한 거니 에키시를 뜻하는 게 거의 확실해졌다. 즉각 튀어나오는 파이파이의 대답에 에키시와 엘피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어갔고 특히나 엘피의 반응이 격했다.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조금은 들었으니 안다고! 로키시 님이 나를 에키시 님께 붙인 이유라던가! 지금 이 상황이라던가! 아이 공주님이라던가! 그런데 하필이면 이 바보 년이 불씨에 기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부어버렸잖아아아!!!’

에키시를 감시하는 겸 로키시에게서 붙여지게 된 목줄 같은 것. 에키시가 자기 주위의 연애 사정을 모르길 바랐다만 결국 이렇게 알려져 버렸구나 싶어서 머리가 점점 아파져왔다.

“혹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제 관련 이야기라면 저도 귀에 담아두고 싶은데!”

“도, 도련님?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들어도 로키시 님의 눈이 뒤집어질 뿐일 텐데요?!”

“쉿! 조용히 해! 나도 내 일을 알 권리가 있어!”

“그치마안~?! 으으으윽…”

엘피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로키시에 그 남장 여자(썬)가 있다. 게다가 아이 공주님에 대해서도 대강 듣고 있으니 상황이 심각하긴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의 엘피가 에키시를 막을 수 있을 리 없고 그저 저 바보 여자가 딴소리를 하길 바랐는데…

“자, 말씀해주시죠!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저를 좋아하고 계신다고! 아이 공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죠?!”

“에? 아아아, 잠, 잠시만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오…”

“무슨 오해 말입니까?”

“그, 그게에…”

근데 이게 웬일인지 엘피의 기도가 통한 것 같았다. 파이파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음흉한 표정이 되더니 그대로 에키시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 아이 공주님의 편지에는 연애 내용이 없었고… 그 대신 함께 날아온 썬의 편지에서… 그… 에키시 님에 관한 사랑 내용이 있었던지라아… 잠깐 착각을 한 것 같은데요오…”

“네?”

‘히엑.’

그리고는 또다시 폭탄 발언. 이번에는 엘피의 안도감이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에키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자기가 뭘 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 남자 간의 사랑이라니… 말씀드리면 안 되는… 내용이었을까요…?”

“에, 써, 썬이? 저를?”

“아, 혹시 모르는 건가요? 아이 공주님의 바로 옆에 있는 그 새하얀 기사를 말씀하는 건데에…”

“아니! 알고는 있는데! 잠시만! 잠시만요! 나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데에?! 써, 썬이 나를? 나르을~?!”

‘아, 이거 또 오해가 섞이겠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싶지만… 이건 로키시 님께 어떻게 보고하면 좋단 말이야…’

에키시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당혹해하는 사이 엘피가 다시 침착성을 되찾았다. 반면 그 말을 꺼낸 파이파이는 「남자끼리의 연애도 참 좋지요오~!」하면서 썩은 분위기를 풀풀 뿌려댔다. 호모우 왕국의 야오이 교단의 영향인지 본인은 위험한 말을 했다는 자각이 없다.

분명히 오늘 이 자리에서 뭔가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찬스. 그러나 에키시의 오해가 깊어져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별로 이 남자가 무능한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무능해져버리고 마는 게 이 남자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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