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의심암귀와 목줄(1)
나 최현준에게 있어서 엘피란 여자애는 평범한 서브 히로인에 불과했다.
칙칙한 금발, 총명한 머리, 남자를 싫어한다고 하는 캐릭터성, 조그마한 키, 빈유, 독설가, 그야말로 로리콘이나 마조가 좋아할 캐릭터. 물론 외형도 나쁘지 않았고 이런 시대니 어린 여자애나 그런 외형의 결혼한 사람도 적지 않기에 나도 괜찮다 싶었지만 실제론 영 손이 가지 않는 녀석이었다.
나는 블랙우드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 돈이나 여자로 궁한 적이 없었다. 본래라면 엑스트라 취급일 사람도 여기에서는 평범히 살아가고 있는 거다. 엘피보다 아름다운 창녀나 내 취향에 맞는 살집 있는 여성을 먹고 다녔으니 엘피에게 신경이 갈 리 없었다. 히로인이라고 해봤자 그런 스테이터스는 게임 안에서나 통용되는 거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애도 아니었다. 레인 공주님도 그렇지만 이쪽 계열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가정사가 있다. 엘피의 경우는 길바닥에서 지낸 인생이다 보니 남자에게 힘으로 억눌러져 범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로 인해 힘을 기르고 블랙우드 가문에 들어온 타입이다.
남자와의 행위는 트라우마 그 자체. 우리 누님에게 푹 빠진 이유도 그거다. 자기가 손에 넣을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부족한 부분을 지식으로 채워 로키시의 바로 옆에서 섰지만 유독 날 싫어했다.
힘도, 재력도, 외형도, 그 전부를 가지고 있으며 가족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남자. 그러나 기력이 없고 헛소문을 퍼트리는 바보. 우리 누님을 위해서 그런 소문을 뿌렸다 하더라도 의욕이 없는 건 물론이요 여자를 먹고 다닌 것도 사실이었기에 엘피가 싫어하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귀여운 애다.
독설을 내뿜어도 햄스터가 볼을 부풀리고 있는 걸로 밖에 안 보이니까.
최현준이 아니라 에키시·블랙우드로서는 엘피를 싫어하지 않았다. 우리 가문의 일원으로서 아주 잘해주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저번 날 누님이 엘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엘피가 배신? 나와 누님의 이야기를 타국에 흘리고 다녔다고?’
무슨 소린지 몰랐다.
그 엘피가 배신하다니.
누님은 자세히 설명하질 않았다.
‘이해가 가질 않는군.’
나는 몰라도 누님을 배신할 리 없는 여자애.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누님은 완고히 고개를 저으면서 「이미 확인이 끝났다」라며 통고를 해왔다.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누님이 엘피를 아무렇게 내칠 리 없고 조사까지 끝마쳤다며 확인 사살까지 했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타국에 누설했는지는 몰라도 누님의 심기를 건들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레인 공주님의 아이 공주님 강간 사태… 그건 레인 공주님과 누님이 직접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서로 이야기를 마무리 시켰지만… 결국 호모우 왕가와 척을 져버렸다… 해피엔딩에서 멀어진 건 물론 이미 끝장난 걸 수도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이 상황에 엘피의 배신까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지났다고! 근데 벌써부터 이런 일이 연달아서 생겼다 이거냐?!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는데! 제기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누님과 아이 공주님에 썬 그 세명이 모인 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아이 공주님과의 섹스 때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갑자기 빠져든 수면에 대해서도 캐묻지 못했기에 발밑이 텅 비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 타이밍에 엘피가 우리를 배신할 리 없는데…
‘당장이라도 레인 공주님이나 아이 공주님을 만나 이야기를 한 번 더 수습하고 싶지만…’
엘피의 처벌이 끝나기 전까지는 기숙사에 있으란 말을 듣고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엘피와 함게 온 네티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당황한 채 기사가 지내는 방에서 프리즈 상태. 이번 일에 대해서 캐물어도 자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누님이 지하실에 들어간지 오늘로 나흘째. 식사를 하려고 잠깐 올라오거나 씻을 때 이외에는 계속 아래쪽에 있어. 게다가 피투성이일 때도 있고 애액 범벅일 때도 있으니 불안해서 못 참겠다.’
첫날에는 의사까지 불렀다. 이대로 엘피를 내칠 수는 없으니 직접 교정하겠다는 말을 한 결과가 이거다. 엘피를 죽여버릴 생각인지 지하실에서 퍼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나도 깜짝깜짝 놀랐다.
올라올 때마다 엘피가 무슨 이야기를 누설했냐고 질문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들으면 불쾌할 이야기라면서 눈을 돌리셨다. 정말로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어쩐지 속아넘어가지고 있는 감이 있다.
‘슬슬 마무리한다고 하셨으면서…’
지하실 앞에서 멀뚱히 선 나.
그 자리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어두컴컴한 밤을 맞이했다.
지하실에서 들리는 비명은 오늘도 끝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