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 부관 엘피 루트
저택 겸 기숙사의 지하실.
블랙우드 가문의 이름답게 어두컴컴한 그 장소에서 소녀가 몸을 떨어댔다.
“로키시… 님…”
“엘피. 이번에는 선을 넘었어. 내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알지?”
“네…”
전라인 상태로 무릎을 꿇어 정중히 머리를 숙이는 엘피. 본디지 차림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로키시. 평소라면 체벌도 기쁘게 받아들일 엘피였지만 지금은 그런 체벌이 아니었다. 로키시 본인도 상을 줄 생각은 없었고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다.
“보통이라면 그 질투조차 귀엽다며 넘어가 줄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고자질한 상대가 백돼지 공주라니. 너 나랑 척이라도 지고 싶었던 거야?”
“아뇨,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놈의 질투, 질투, 질투,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크으윽~! 그 여자와 척을 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타이밍에 내 주위 사람들이 발목을 잡다니…”
“로키시 님…”
왜 하필 네가 그런 짓을 했냐며 눈을 부라리는 로키시. 나름 엘피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던 만큼 실망이 컸던지 손에 쥐고 있던 채찍을 내려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랬어? 왜 하필 네가 그래?”
“그 말 그대로 질투 때문입니다… 갑자기 아이 공주님을 만난 것도 있고… 홧김에…”
“홧김에 내 마음에 불을 질러버렸구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떤 벌이든 받겠다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 순간 로키시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고 엘피는 놀란 목소리를 내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로키시의 화를 풀어 줄 궁리를 했다.
‘으으으으, 역시 들켰어! 들켜버렸다고~! 어, 어어어어어, 어어어, 어쩌지?! 어떻게 로키시 님의 마음을 풀어주지?! 이번에 화가 단단히 나신 것 같은데! 나 때문에 연쇄 폭발하듯 일이 터진 거 같고! 레인 공주님도 이번 일에 낀 거 같은데에에에!’
밑바닥 출신인 엘피. 로키시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부관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래봤자 평민 출신의 기사직. 로키시나 에키시야 그 특유의 성격 탓에 가깝게 대해지고 있지만 그뿐이면 몰라도 아이 공주님이든 레인 공주님이든 천상에 사는 분이나 마찬가지.
애초에 엘피의 주인인 그 두 사람도 화를 내기 시작하면 엘피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엘피 본인도 자기가 오냐오냐 키워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짓을 저질러버렸으니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로키시의 막 나가는 성격을 생각하면 이제 뒤가 없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괜히 나불거렸어, 쓸데없이 질투심 태우지 말걸, 진짜 큰일 났어, 나 이대로면 진짜 죽어어어어어?!’
지금 자기가 알몸인 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공포심에 질린 엘피. 반면 로키시는 성이나 그것을 그대로 폭발시키려 하는 건지, 아니면 그것을 참아내서 엘피를 용서해주려는 건지, 어느 쪽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얼굴로 이빨을 까득 갈아댔다.
“머리 굴리지 마.”
“죄송합니다…”
“날 봐.”
“네…”
“이 망할 계집년!!!”
“으그윽?!”
엘피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뺨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난 것과 동시에 지면과 머리가 맞닿고 있었다. 엘피는 자기가 맞아서 날아간 상황을 깨닫기까지 30초는 필요로 했고 로키시는 그렇게 강하게 때렸음에도 성이 안난 것처럼 엘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뻗지 마! 지랄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
“네! 넷! 네으윽…?!”
로키시가 크게 소리치지만 뇌가 흔들린 건지 두 눈을 흔들면서 일어났다가 넘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엘피. 그러나 로키시는 여전히 이빨을 갈면서 엘피의 머리채를 잡아 그 몸을 똑바로 세웠고. 엘피는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로키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리를 벌벌 떨어댔다.
‘때렸어, 때렸어, 그 로키시 님이, 나를, 진심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죽기 직전까지 힘을 줘서 때렸어…’
평소 그녀와 전장이나 도적 사냥을 다니던 엘피. 그렇기에 로키시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다. 돌덩어리 정도야 주먹으로 가볍게 부숴버리는 악력이니 방금 진심으로 때렸다면 100% 죽었을 거란 것도 말이다.
그러나 힘 조절해도 이 꼴이다. 뒤늦게 흘러나오는 코피. 새하얀 몸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빨간 피와 어질한 머리가 현실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로키시는 엘피가 알고 있는 그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이번에 로키시의 역린을 건들고야 말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흐, 흐악, 흐으으, 흐으윽…”
“뭘 잘했다고 울어?”
“잘모,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로키시 님…”
“홧김에 그런 짓을 했다며? 나도 홧김에 네 대갈통 날려버려도 되는 거 아냐? 안 그래? 어?!”
“끅?!”
또다시 뺨을 맞는다. 몸이 공중을 살짝 떴다가 떨어져 내렸다. 뒤로 넘어진 엘피가 머리를 돌바닥에 찍고 피를 흘려댔다. 겨우 두 대 맞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으며 가랑이 사이로 소변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아이 공주님을 이용해 로키시를 엿 먹였던 그 머리통은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 데도 쓸데가 없다. 떨려오는 다리와 풀려버린 요도에 힘을 꽉 주고 버텨야 할 뿐.
“히, 히엑, 으엑, 으으윽, 으에…”
“네 주인이 누구야?”
“끄흡… 로키시 님… 입, 다그윽?! 끄흐으으윽! 끄으으으으으으으윽!!”
어떻게든 로키시의 비위를 맞추고자 아픔을 참고 그 질문에 즉각 답했으나 돌아온 건 채찍이었다. 「다시 말해!」라며 채찍을 치켜드는 것이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엘피도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다시, 네 주인은 누구야?”
“로, 키시, 니이윽?! 끄아아아아악?! 끄흑! 끄가악?! 가하아아아아아아아악!!!”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만해달라고 소리쳤지만 채찍이 다시 돌아온다. 등에 선명히 남은 채찍 자국이 엘피의 고통을 알려주고 있지만 로키시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땅바닥에 흘러나온 소변은 점차 늘어났으며 그 웅덩이 위에서 몸을 굴리며 눈물을 뽑아냈다.
“어쭈, 네 주인이 누구라고?”
“로키시 님! 로, 로키시니이이이이이이이익?! 끄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까흑! 가하아아아악?! 프학! 으학! 으흑! 흐으이이이이이익?! 시러어어어어억!!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네 주인이 누구냐니까!!!”
“끄흐으으으, 끄윽, 로키시, 니이임, 으흑!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계속 똑같은 질문하게 하지 마! 죽여버릴 거다?! 진짜로 죽여버릴 거야! 알겠어?!”
“히이이이이! 이익! 이이이이이이익?!”
자기 오줌을 온몸으로 받아낸 엘피. 그렇게 더러워진 그녀를 구둣발로 밟으면서 채찍을 다시 치켜드는 로키시. 엘피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자기가 해야 할 말을 골라내야 했다.
“흐힉, 흐윽, 끄으으윽…”
“진짜 마지막 질문이야! 네 주인이 누구야!”
로키시의 손이 움직인다. 이번에도 틀릴 거라 예상하고 채찍을 내려치려 한 거다.
“에, 에키시 님! 그리고 로키시 님! 두, 두 분! 두 분이세요! 제 주인님은 두 분이십니다! 끄윽!”
“흥!”
그러나 그 손이 딱 멈추었다. 그 자그마한 몸에 빨간색 줄을 긋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엘피는 답을 끌어냈다. 여태까지 에키시를 피하고 있던 엘피였기에 단번에 떠올리지 못한 대답. 그래도 머리가 좋았던 건지 이 상황에서 해답을 골라내버렸다.
“흐으, 흐으으윽, 흐으으으으으으윽…”
날아오지 않는 채찍에 잠깐 안도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는다. 로키시의 얼굴이 엘피의 눈앞으로 들이밀어졌고 그 얼굴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밉살맞은 부분 고치라고 몇 번 말했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 질문했어? 진짜 상식선에서 질문했던 거 같은데?”
“네, 마, 맞아요… 제가 바보였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랄하긴, 이미 늦었어.”
“흐으으으으으으윽?!”
말 그대로 상식적인 질문. 자기 주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기사가 여기에 있다. 평소 로키시만 너무 따르다 보니 자기 주인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백합 기사단은 대외적으로는 로키시의 것. 그러나 창설 계기를 따지자면 로키시는 물론 에키시까지 깊게 섞여있으며 그 사실은 엘피도 알고 있었다.
사실상 백합 기사단 전원이 아는 사실…
그러니까 기사단 내에서도 파벌 두 개가 공존할 수 있는 거지만…
“나는 평소에도 경고를 줬고 넌 내 권유를 무시했어. 평소라면 웃으면서 넘어가 줬겠지만 이번에 벌인 일도 그렇고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거든?”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렇게 빌게요…”
“네가 방금 그 질문을 틀린 게 컸어. 내 안에 남아있던 네 평가가 완전히 가루가 된 거 알아? 한 번이면 모를까 여러 번 질문했는데도 겨우 떠올리다니. 너 그렇게 우리 에키시를 무시하고 살았던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필사적으로 로키시의 다리에 매달리는 엘피지만 구둣발로 차일뿐 자비라고는 일절 없었다. 평소라면 이 부근에서 뭐든 용서해주는 로키시지만 오늘은 한 가닥 달랐으니까 말이다.
“난 어디까지나 서로 즐길 수 있는 부분만 용서해준 거야. 물론 에키시도 그런 성격이니까 아무렇지 않았던 거고.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 진심으로 그따위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교정해야겠지?”
“대체 무엇을… 하실… 생각인가요…?”
“네가 엎지른 물이야. 너 때문에 아이 공주님이 냄새를 맡았고 내 작전이 엉망이 됐어. 그것도 모자라서 웬 영문모를 애새끼까지 참전해서 내 사랑을 방해하고 있다고. 아니, 이렇게 말해도 모르려나? 어쨌든 난 지금 엘피 네가 필요하긴 해. 물론 몸뚱이를 굴린다는 의미로 말이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로키시 님! 손에 든 그거! 대체 뭔가요?!”
“이 상황을 보렴, 뭐긴 뭐겠니? 네가 에키시에게 푹 빠지는 약이지.”
아하핫 웃는 로키시. 그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피와 소변을 질질 흘리면서 고래를 도리도리 저어대는 엘피. 자신이 어떻게 될지 쉽사리 예상이 간 거겠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 건지 또 눈물을 터트렸다.
“시, 싫어, 싫어요! 싫어요! 그러지 말아 주세요! 싫어요! 제발! 제발! 저를 그렇게 노리개로 쓰는 건?! 그만둬 주세요! 아아아아! 그런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여태 그렇게 노력해온 건데! 으아, 으아, 으아아, 아아아아아악?!”
“그 노력을 허사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너잖아?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로키시의 손에 들린 약이 뭔지도 모르면서 발작을 한다. 그 약이 뭔지 몰랐음에도 로키시의 의도가 명확했기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팔과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도 필사적으로 땅바닥을 기어 지하실 구석으로 숨어들었지만 결국 발목이 잡혔다.
“어머, 우리 건방진 부관. 채찍도 버틴 여자가 뭘 그리 무서워하는 거야? 나 아직 이게 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끄흐으으으으으으으윽?!”
그렇게 발목이 잡힌 상태로 물고기처럼 반대로 들려지는 엘피.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저항할 기력도 없어 보였지만 입은 유창했다.
“으, 으흑, 로키시 님이 가져오신 겁니다! 그것도 저를 에키시 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평범한 약일 리 없잖아요! 피, 필시 무서운 것이겠죠! 제가 얼마나 남자를 싫어하는지 잘 아시고! 미쳐 발광하기 직전까지 가는 물건이겠죠?! 네?! 안 그래요?!”
“아하핫, 맞아. 똑똑하긴… 그 총명함이 아까 전에 발휘됐으면 좋았을 텐데…”
“제, 제발! 싫어요! 싫어요! 살려주세요! 저를 부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발… 로키시 님을 위해서 여태 그렇게 공부했는데…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렇게 힘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허무하게엣…”
“나를 위해서만 했구나? 끝까지… 끝까지… 나를 위해서만…”
“으, 으으, 으윽?!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지막의 마지막에 또 말실수를 해버린 엘피. 로키시의 웃음에 차가움이 섞이고 그 웃음은 이득고 냉소로 바뀌었다. 잡혀 있던 발목에 비틀려버릴 것처럼 압력이 가해졌고 잡힌 부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뻐, 엘피.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노력해주다니.”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로키시 님! 로키시 님! 로키시 니이이이이임?!”
“그럼 나를 위해서 또 노력해주길 바라. 이번에는 내 동생의 바로 옆에서 성처리를 해주는 간단한 일이란다. 전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엘피도 기쁘게 해주리라 믿어.”
“으하, 으하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싱그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과 별개로 하고 있는 짓은 악독했다. 엘피의 다리에서 들리면 안 되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입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로키시 본인의 손에도 피가 한가득 묻었으면서도 엘피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악역 영애 그 자체였다.
“엘피, 나머지 발목도 부숴버려줄까?”
“싫어! 싫어어엇! 으끄으으으으으으으윽?! 끄학!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로키시 님! 살려주세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아하하, 그럼 해야 할 말이 있잖아? 응?”
“왜, 왜, 왜 그런 양자택일을?! 끄흑! 강요하시는?! 끄하아아아아아악!!!”
“어머, 아직도 말할 기운이 있니?”
보지로 물을 내뿜고 입으로 구토를 하는 엘피. 점점 말라비틀어진 생선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집이 너무 강했다.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싶진 않다는 의지. 그게 또 로키시의 심기를 건드려서 한쪽 발목을 완전히 부러뜨려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끄힉! 끄히익?! 끄하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줫! 살려줘어엇! 아파아아! 아파요! 아파요오오오오오오!!!! 그흑?! 구에에에엑! 그헵! 구헤에에엑?!”
“이걸로 기사로서는 완전히 아웃~! 잘라내진 않겠지만 평생 절뚝거리면서 살려나~?”
“으흑! 으흐으으윽! 으헤엑! 로키시 님… 로키시… 니임…?!”
“이대로 반대쪽도 또독 해버릴까? 응?”
“시, 러엇! 시러어어어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바, 반대쪽은?! 반대쪽 만큼으으으은!!!”
“그럼 내가 말 한대로 할 거지?”
“흐아, 흐아아, 하,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 제발! 자비를! 제게 자비를?! 의사를 불러주세요… 제발…?!”
양 다리가 완전히 부러지는 건 무서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숙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리가 부서지는 건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약의 효능을 자세히 모르니 지금 이 상태에서 반대쪽 다리까지 부러지는 것을 더욱이 무서워했다.
“진작에 그렇게 말하면 좋았잖아. 으흐흐, 안심하렴? 깨끗이 또각! 해버렸으니까 의외로 쉽게 붙는단다?”
“히, 흐아, 히으흐윽… 흐으으으윽… 흐아… 끄흑…”
“어, 울어? 그렇게 아팠나? 농담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그런 엘피를 어둡게 내려보는 로키시. 분명히 불과 수일 전만 해도 아주 친했던 부관과 상사 사이였을 텐데 지금은 그런 낌새가 조금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엘피를 자기가 에키시를 유혹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보고 있을 뿐이다.
분명히 같은 침대 위에서 몸을 겹쳤던 관계인데, 전장에서는 지혜와 힘을 빌려주는 가족 같던 사이인데, 그러나 이제는 다리를 분질러놓고 그 꼴을 구경하고 있어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는다.
“의사… 의사앗… 다리를… 제 다리를… 제발…?!”
“안심해… 일단 늦지 않게 불러 줄 테니까… 그런데… 의사가 오기 전까지 빈 시간도 있고… 다리도 아플 테니까… 다리가 안 아프게… 기분 좋아지는 약 좀 발라볼까 하는데…?”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끄흐으으으윽!!!”
말하지 않아도 이 이후의 일을 쉽게 망상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는 한없이 무르면서도 적에게는 끝없이 잔혹한 여자. 야만인들의 시체를 가로질러 고깃 덩어리로 산을 만드는 괴물. 엘피는 지금 그런 괴물에게 적으로 인식당하고 있는 거다.
‘이, 이대로 내버려 두면… 끝장이야… 그렇다고 로키시 님의 의향을 무시해서 약을 거부하면… 끝장을 넘어 보면 안 되는 걸 보게 될 거야… 어느 쪽이든 난 이제 마지막이란 거야?! 싫어… 이런 거 싫어… 살려줘어어엇…’
아주 잠깐 나쁜 생각을 했던 거다. 너무나 가까운 관계였던 탓에 선을 잠깐 넘었을 뿐. 그러나 그것이 로키시의 역린을 건드려 여태까지 공들여 쌓은 지위를 무너지게 한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약까지 몸에 바를 상황에 처했다.
“끄, 끄으하아, 끄으흐으, 크흐아아아아아아~?!”
“어, 또 고민하는구나? 내 앞에서 머리를 굴리네? 그 자그마한 머리에서 뭐가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잖아. 혹시 좀 두드려 놔야 딸랑거리는 게 멈추려나?”
“끗, 끄흑?! 죄송해요! 죄송해요! 때리지 말아 주세요! 분지르지 말아 주세요… 하면… 하면 되잖아요… 제발… 끅… 끄흐윽… 끄으으윽…”
“이히히힛… 귀엽기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던 엘피. 이 이후 수일간 로키시의 손에 의해 엘피의 조교가 이어졌지만 그 내용물이 어떨지는 오늘 이 하루만으로 알 수 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이 꺾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야말로 피를 쏟고 뼈를 깎아내리는 것 같은 로키시의 손장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