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34화 (34/199)

 무능 귀족 - 수습 불능! 레즈 폭탄!(2)

일어나기 전 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난 왜 쓰러졌지?

누님은 요즘 왜 그러지?

아이 공주님은 또 왜 그러고?

두 사람의 급변한 태도를 따라갈 수 없어.

‘영문을 알 수 없다. 오늘 일도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누님은 날 좋아한다. 그 누님은 아이 공주님께서 날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주님이 날 좋아한다고 딱 잘라서 말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공주님께서 내게 취하는 태도는 유혹과 마찬가지. 100% 순수한 사랑은 아니라고 판단됐다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날 노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눈이 안 떠져…’

죽기 전, 내가 아직 최현준일 무렵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맹장 수술 당시인가?

그 당시 현대 사회로 비춰 보자면 별것 아닌 일이긴 했는데 의사가 돌팔이라 문제였다. 배가 아파 병원을 갔는데 단순히 똥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었지. 그러나 계속해서 몰려오는 고통에 몸서리를 쳤고 결국 맹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간 후에야 다른 병원에서 왜 이제 왔냐고 꾸중을 들었다.

‘그래, 그때 같아. 의식은 있는데 눈이 안 떠지는 게…’

마취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눈꺼풀이 무겁다.

억지로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다.

‘그때랑 지금이랑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아이 공주님께서 내게 약을 먹인 건가 싶었다.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가능성을 닫아둘 이유는 없다. 너무 부자연스럽게 쓰러진 것도 그렇고 허브를 먹었을 때 있었던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고의가 아니라 믿고 싶다.

‘씨발… 왜 아이 공주님 상대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냐… 그럴 사람 아니라니까…’

그분의 인성을 믿고 다시 몸에 힘을 줬다. 그때처럼 아예 못 움직이는 건 아닌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자는 동안 해부당하는 둥의 무서운 생각을 했지만 그런 흔적도 없다. 움직인 손으로 푹신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눈은 여전히 떠지지 않았지만 상체를 일으켰으면 나머지도 어떻게 할 수 있다. 손을 움직여 얼굴을 더듬고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억지로 연다. 희미하게 보인 시야가 처음 보는 방을 비춰주고 있었지만 디자인적으로 레즈우 왕국의 기숙사와 비슷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흐… 내가 생각해도 피지컬 괴물이라니까…”

그 핏줄, 그 블랙우드, 그 누님의 동생.

겨우 이 정도 잠기운으로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냐.

어중간한 약물은 통하지도 않는다 짜식들아.

“몸… 이상 없음… 옷도 그대로고… 몸이 좀 나른한 거 빼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본다. 땅 전체를 가리고 있는 어둠이 지금이 깊은 밤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지금 내가 있는 건물이 얼마나 큰 곳인지도 함께 알려주었다. 꽤 고층 건물인데다가 나 자신이 있는 곳도 최상층. 아마 레인 공주님께서 지내고 있는 쁘띠 왕성의 꼭대기일 것이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심히 궁금했지만 그것보다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저 멀리 보이는 나와 누님의 저택 겸 기숙사. 그리고 거리를 가로지른 반대편에는 아이 공주님의 숙소. 어느 쪽도 아직 불이 켜져 있으니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된다.

“아이 공주님의 허벅지에 뺨을 대고 잤더니 우리나라의 공주님이 지내는 쁘띠 왕성까지 휙 날아왔다 그거군…”

내가 말해놓고도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일단 공주님을 찾아야겠어… 뭐가 어쨌든 이 쁘띠 왕성의 최상층에 발을 들였다는 소리는 우리 공주님도 연관돼 있단 소리니까…’

일단 발을 움직여 땅바닥에 발바닥을 댔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필요 이상의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안 좋은 예감이 물씬 느껴져온다. 누님도 그렇고 우리 집안사람들은 이런 쪽 감각이 날카로워서 불길한 예감이 빗나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커다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자그마한 불이 켜져 있는 것 빼고는 어두컴컴하긴 매한가지였다. 사람도 없고 인기척조차 없다. 최상층에는 타인을 들여놓지 않는 건가. 적어도 메이드나 기사는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빗나갔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나…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을 만나 사정을 듣고 싶었다만…’

숨을 들이켜고 한 발짝 두 발짝 내디뎠다. 정신을 차린 후 몸을 움직이니 열기가 도는 건지 몸 상태가 아까보단 훨씬 나아졌고 이득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역시 그 핏줄 어디 안 간다고 몸이 완전해지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런 완전한 상태로 조금 더 나아가니 커다란 방문을 발견. 거기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확인 후 여기가 레인 공주님의 방이라고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게임에서도 이런 비슷한 방이 있었고 아마 틀리지 않았으리라. 밤이 깊었는데 아직까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면 안에서 뭔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드려야… 하는… 건가…?’

손목 스냅을 이용해 문을 똑똑 두드릴까 했지만 그 순간 위험에 관련된 직감이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문을 두드리면 안 된다는 강렬한 예감. 얼마나 놀랐는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아니, 잠깐만.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는데…’

커다란 일직선 복도에 떡하니 선 커다란 문. 그리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왜냐면 아침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있었던 아이 공주님의 가느다란 목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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