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 악역 영애 누님 루트 〈전쟁 개시〉
에키시·블랙우드가 당황해하는 동안 시종들이 침실로 들어와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침실 안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고 있는 그녀들. 바로 옆에서 시종들의 손에 의해 몸이 닦여나가는 에키시. 이 얼마나 기묘한 광경인가 싶지만 그녀들의 시선은 에키시 한쪽에만 쏠려있다.
‘그날 밤은 여동생의 그림자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만. 역시 탄탄하게 자란 몸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 치고는 색기가 넘치네요.’
‘에키시 공의 몸을 볼 때마다 그날 일이 생각나서 죄악감이…’
‘어제 그렇게 물고 빨아줬는데 저렇게 닦여나가는 걸 보니 너무 아쉽다앙.’
에키시가 당황하든 말든 자기네들끼리 욕망이 뒤얽히는 중. 과연 이 사람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 여식들이 맞나 싶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그, 왜 여러분은 아침 댓바람부터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아침? 아냐. 밖을 봐.”
“눼?”
샛노랗게 변한 눈을 비비고 밖을 바라보는 에키시. 그러나 그 샛노란 시야가 바뀔 리 없었고 높게 뜬 태양은 지금이 점심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왜 안 깨우신 겁니까…”
“아침에 그거 즐기면서 말해줬잖아? 수업이 없었거든. 어제오늘 그렇게 하기도 했고 도중에 지쳐 쓰러져 자버렸어. 그래서 일부러 안 깨운 거야.”
“누님… 손님들이 계시는데…”
“아, 괜찮아. 방금까지 정사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또 무슨…”
대체 무슨 소리냐며 아이 공주님과 썬을 바라보는 에키시. 자기가 자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섣불리 발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니 남몰래 노리고 있던 공주님께 정사 이야기를 하는 누님이라니. 가족의 수치를 넘어 얼굴이 새파랗게 될 안건이었다.
“괜찮답니다, 에키시 공. 요즘 시대에 남매간의 정사야 평범한 일이니까요~?”
“먼저 우리가 연락도 없이 무례하게 오기도 했고.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의외로 말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지 뭐야~? 그래서 에키시가 자는 것도 잊고 여기서 떠들어버렸어~! 아하하하~!”
“아하핫, 로키시 공도 참, 에키시 공이 부끄러워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의미로요~! 하핫~!”
아하하 하고 셋이서 동시에 똑같이 웃는다. 마치 사이좋은 친구 관계 같았지만 그 동시에 웃는 웃음소리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서로 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은 막 일어난 에키시에게도 닿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라냐…’
에키시가 구조선을 요청하듯 썬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로키시와 아이 공주님 사이에 끼인 채 같이 웃으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것치고는 묘한 분위기인데요…”
“모처럼 수업이 없는 날이잖아요? 썬도 기사 관련 수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썬과 함께 손을 맞잡고 에키시 공을 만나러 왔다가 로키시 공과 함께 떠들게 된 거랍니다.”
“전 로키시 공과는 첫 만남이니까요. 아이 공주님과는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만 제가 낀 것으로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나야 기사라고 해서 사람을 차별하진 않으니 금방 친해졌지만~!”
“아하하~!”
보란 듯 썬의 어깨를 잡고 빙그레 웃는 로키시. 어깨를 잡힌 썬도 빙그레 웃으면서 대응했지만 에키시의 의심은 영 풀리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영 불안한데요…”
“사실이고 뭐고 우리가 거짓말할 이유가 어딨니?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분이셔서 놀랐지 뭐야. 내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었나 봐.”
마치 저번에 있었던 질투가 거짓말이라고 하듯 크게 웃으며 아이 공주님과 썬을 반기는 로키시·블랙우드. 그러나 지금 막 잠에서 깬 에키시라도 해도 그 말을 곧대로 믿을 리 없었고. 계속해서 썬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눈치를 주고 있지만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불여우 같은 분. 처음부터 우리 의도를 눈치채고 바로 정사 이야기나 늘어놓고. 저와 언니의 심기를 막 건들더니 결국 에키시 공까지 깨우셨습니까. 굳이 에키시 공의 방에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다니. 덕분에 다그치지도 못하고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어버렸잖습니까…’
왜냐면 지금의 썬은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았으니까. 에키시의 시선에 답해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에키시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마당까지 왔다.
‘헤, 이 남장 계집애. 몸에서 여자 냄새가 풀풀 나. 아이 공주님은 몰라도 얘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물론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로키시도 마찬가지다. 오늘 하루도 에키시와 즐거운 냥냥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초대도 안한 사람이 둘이나 오더니 그중 하나는 완전히 적으로 보고 있던 공주님이었으니까 말이다.
‘저쪽도 우리 의도를 모르고 있고. 일단 적대하고 있으니까 정사를 늘어놓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라면 이야기가 안 끝나겠는데요.’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뒤에서 소리치는 에키시를 무시하고 세 명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말도 없이 세 명의 생각이 겹쳐지는 순간 그녀들은 동시에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에키시.”
“아, 넵.”
“네 방에서 이러고 있어서 미안한데에~! 우리 지금부터 잠깐 나갔다 올 게에~?”
“곧 돌아올 테니 몸단장을 해주시고 기다려 주실래요?”
“에키시 공, 정말로 실례했습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
당황한 에키시가 그녀들을 불러 세우지만 여자들 측은 그것을 듣지도 않았다. 테이블에서 엉덩이를 떼고 이미 방 밖으로 나간 세 사람. 그 장면을 시종들과 함께 멍하니 지켜보던 에키시는 뒤늦게서야 「대체 뭐냐고! 씨발!」하고서 크게 소리 질러댔다.
그러나 그런 소리가 들리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갈 길을 가는 세 사람.
그녀들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저 백돼지에게 내 에키시를 빼앗길 순 없어.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쳐서 고백했지. 본격적으로 에키시의 몸과 마음을 공략하려는 타이밍이기도 했고. 그리고 슬슬 느낌이 온다 싶었는데 이 타이밍에 저 백돼지와 남장 기사가 왔다고? 어디서 소문이 흐른 거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예상은 했지만 이걸로 서로 확실해졌네요. 로키시 공은 저를 적으로 보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열렬히 보내던 시선이 증오로 바뀔 리 없죠. 제 여동생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본 것도 그렇고 우습게 볼 수 없네요. 전장을 가르는 걸물이라 했으니 얼굴이나 신체를 보고 단번에 정체를 알아본 게 확실해요.’
‘한동안 안 보는 사이에 그렇고 그런 짓까지… 에키시 공에게 그런 짓을… 부러워라… 괘씸해라… 나도 그런 냥냥 플레이하고 싶은데… 에키시 공과 함께 냥냥… 하필이면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위치에 있으니이이이이…’
약 한 명.
복잡하기는 무슨, 번뇌에 찌든 기사가 있지만.
어쨌든 세 사람의 상황은 기묘하기만 했다.
“““……………”””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저택 뒤뜰에 도착하기 전까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누군가가 본다면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겠지만 다행히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그저 뒤뜰에 도착한 후 서로를 노려보듯 자세를 잡을 뿐.
“이쯤 오면 됐겠죠… 원래라면 이렇게 노려 볼 필요도 없었다고 보는데요…”
“내 적은 아이 공주님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기사였던 거구나. 공주님 홀로 안정된 분위기를 뿌린다 싶었는데. 그래, 이런 일이었던 거네? 으후후후…”
“눈치가 빠르셔서 좋네요. 원래라면 공작가의 사람과 이렇게 노려봐도 될 입장은 아닙니다만. 여기까지 왔다면 당당히 나가는 것도 괜찮겠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공주님께서 말려도 전 물러설 생각이 없으니까요.”
“잘난 척 지껄이긴, 먼저 정체부터 알려주실까? 대체 누군데 아이 공주님을 밀치고 내 동생을 넘보는 거야?”
“거기까지 눈치가 좋다면 이미 감 잡지 않으셨나요?”
썬이 입고 있던 갑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가슴 부분만 살그머니 열어내고 안쪽의 옷감을 보이며 당당히 말했다.
“제 진짜 이름은 썬·호모우. 라이니르 가문이 숨기고 있던 호모우 왕국의 제2 공주입니다.”
“아… 과연…”
“그 싱거운 반응… 역시 예상하고 계셨군요…”
“놀라운 사실은 아냐. 아이 공주님과 함께 여기까지 와서 그리 지껄여댈 정도라면 그런 위치는 있어야지. 진짜로 평범한 기사일까 걱정했지만 그게 아니라서 다행일 뿐. 내 동생과 기사를 이어주기 위해 공주가 나타나다니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어?”
눈앞에 타국에서 온 공주님 둘. 그러나 로키시는 평소와 같은 태도를 고수하면서 두 사람을 적대하듯 노려봤다.
“그래, 정말로 다행이야, 아침부터 공주님 둘인가? 우리 동생이 인기가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호화로운 식사가 도착할 줄이야. 그래도 먹으면 배탈 날 것 같으니까 못멱여주겠네?”
“어머나, 천박해라. 오늘 아침에 분명히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저 에키시 공을 보러 왔을 뿐이라고요. 저야 동생의 사랑을 응원하기 위해 잠깐 얼굴을 들이밀었을 뿐입니다만. 그렇게 날카롭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으신지?”
“웃기네. 연회장에서 내 동생을 홀린 주제에.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있는 동생분과 함께 내 귀여운 남동생을 나눠 먹으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요즘 공주님들은 남자 하나에 여자가 둘 붙는 게 정석인가 봐?”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와 처음 만난 날 제 몸을 보며 그렇게 흥분했던 주제에… 에키시 공께서 제게 마음이 쏠렸다 생각하니 단번에 손바닥을 뒤집으시고… 진짜로 천박한 건 어느 쪽이신지…?”
“큭…”
그러나 그 여유도 얼마 가지 않았다. 썬은 어쨌든 아이 공주님은 로키시 본인이 인정하는 적대자. 게다가 아침부터 그렇게 진한 섹스를 즐기며 기분이 좋았던 찰나 이렇게 방해꾼이 끼어든 거니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화를 풀어주세요. 저는 로키시 공과 그리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일부러 이렇게 정체를 밝힌 것도 어떻게든 말로 풀어나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웃기지 마. 아침부터 흙 묻은 발로 찾아오기는. 너희만 오지 않았더라면 오늘도 에키시와 즐거운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어. 나도 동생도 이젠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까 너희가 낄 자리는 없어.”
“분명 연락 없이 찾아온 것은 사죄드립니다만. 에키시 공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사랑을 요구하는 건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무슨 소릴까? 너희가 늦었을 뿐, 내 고백이 빨랐을 뿐, 그저 그뿐인 이야기야.”
“그래서 대답을 들으신 건 아니잖아요?!”
“글쎄, 난 모르겠다니까?”
“얼버무리지 마세요! 에키시 공에게 물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파벌로 에키시 공을 둘러싸다니! 에키시 공 본인만 모르고! 감금당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습니까!”
썬의 일갈에 다시 한 번 인상을 구기는 로키시. 그녀의 말대로 아직 에키시에게 답을 들은 것도 아니고 거의 반 감금하듯 지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파벌에 속한 여성들로 둘러싸 밖을 못 나가게 하는 건 물론 대체로 집에서 섹스만 하고 있었으니까.
“저기, 로키시 공. 왜 다른 여자들은 되고 우리 여동생은 안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보아하니 다른 여자들이 접근하는 건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고 있는 것 같던데.”
“말하지 않겠어.”
“어머나, 어째서? 자존심이 걸린 이야기인가요?”
“흥…”
정실의 위치가 위험하다는 말을 자기 입으로 내뱉을 리 없었고 그저 고개를 돌리는 로키시. 그러나 아이 공주님은 대게 유추했다는 얼굴로 그녀의 질투심을 꿰뚫어보았다. 애초에 시작부터 지금까지 질투만 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가…”
물론, 여기까지 오면 아무리 썬이라 해도 로키시의 심정을 눈치챈다.
“자신이 없는 겁니까. 먼저 선수를 쳐서 고백까지 했으면서. 나 또는 언니에게 에키시 공의 마음을 빼앗길까 봐.”
“웃기지 마, 말 정정해. 저 백돼지는 몰라도 너 같은 꼬맹이에게 질 정도는 아냐.”
“그쪽이야말로 뭡니까! 정정해주시죠! 우리 언니를 보고 백돼지라뇨!”
“저 흉물스러운 살집으로 내 남동생을 유혹한 거야! 당연한 처사잖아!”
“네? 제 살집이요?”
“내 동생은 그쪽이 취향이란 말이야! 완전히 뻑 갔다니까!”
그 순간 로키시가 「앗」하면서 자기 입을 막았다. 완전히 자폭인 단어였으나 아이 공주님은 영 싫지 않은 얼굴이었고 그녀 바로 옆에 있던 썬은 아쉬운 얼굴로 자기 몸매를 내려다보면서 입술을 씹었다.
“가만히 있던 언니가 승리자였습니까… 물론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에키시 공의 바로 옆에 계신 분께 그런 소리를 들으니 더욱 암담해집니다만…”
“너야말로 뭐야… 우리 남동생은 저런 게 취향이야… 너 따위가 상대될 리 없잖아…”
“그건 로키시 공도 마찬가지 아니신지…?”
“난 어느 정도 있어… 너 정도는 아냐…”
“큭…”
분명 방금까지 화를 내고 있었건만 순식간에 작은 유대감이 생긴 두 사람. 일이 왜 이렇게 되는 거냐면서 고개를 돌리는 아이 공주님. 그러나 이 가벼운 공기도 오래가지는 않았고 로키시 측에서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그런 거야. 거기 있는 백돼지 공주가 내 남동생을 유혹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어.”
“지금, 저는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겁니까?”
“질 리 없잖아. 키도 쪼매난 주제에.”
“헷, 아쉽게 되셨네요? 저희 언니도 에키시 공을 노리고 계신지라 로키시 공에게는 승산이 없습니다만? 오히려 지금이라도 좋으니 우리 자매에게 머리를 꿇고 한자리 내달라 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너 의외로 더러운 성격이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로키시 공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습니닷!”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로키시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 로키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지라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러나 로키시 본인이 워낙 머리가 좋은지라 금방 이 상황의 이상함을 깨달았다.
“뭔데, 너 뭔데?!”
“뭐가요!”
“왜 네 사랑 이야기에 네 언니를 끼어들게 해! 왜 너는 여자인 거 안 밝히고 그런 짓을 하는 거야?!”
“고도의 정치적 판단입니다!”
“그럼 내가 네 정체를 에키시에게 까발려도 된다 그거네?!”
“느윽?!”
약점 하나 때문에 단번에 수세로 몰리는 썬. 그리고 그 광경을 웃음도 아니고 경멸도 아닌 미묘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아이 공주님이 끼어들었다.
“그럼 저도 그런 식으로 나가도 되겠죠? 공작가의 여식이 저를 백돼지 취급했다고요. 나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든 학교에 소문을 퍼트리든 파벌 싸움으로 번져도 되는 거네요?”
“너, 너어~?!”
“우리 귀여운 썬이 굳이 정체까지 밝혀가면서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서로의 약점을 잡는 짓 말고 정정당당히 에키시 공의 마음을 빼앗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그럼 2:1로 내가 불리하잖아!”
“걱정 마세요. 우리 썬은 보다시피 남장을 하는 것 때문에 에키시 공에게 당당히 어택할 수 없으니까요. 실질적으로 1:1이나 다름없답니다.”
즉, 로키시와 아이 공주님의 단두대 매치.
“제가 이기면 에키시 공을 저희가 데려갈게요. 제가 즉위한 후 겉으로는 제 남편 삼을 것이고 뒤에서는 썬과 이어주게 할 겁니다. 당신이 이기면 그대로 영지로 돌아가 에키시 공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시면 돼요.”
“애초에 싸움을 받아 줄 이유가 없어! 에키시는 원래부터……”
“애초부터 당신 게 아니잖아요? 누굴 선택하든 에키시 공의 마음이에요.”
“크윽…”
부들부들 거리는 로키시를 향해 아이 공주님이 도발한다.
「에키시 공의 취향에 딱 맞는 여자」인가?
그게 아니면 「에키시 공과 그 누구보다 오래 있었던 여자」인가?
이 도발을 로키시가 무시할 순 없었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겨도 져도 서로 앙금 없이 끝내는 걸로 어때요?”
“방금 말했던 파벌 싸움은 전혀 없는 쪽으로?”
“네, 당연하죠. 그쪽도 곧 가주를 이으실 몸이고. 저도 곧 즉위할 몸이니까요.”
“서로 여기서 일을 터트리면…”
“서로 망하네요?”
“좋아… 어쩔 수 없지… 그런 조건이라면 절대 지진 않겠지만…”
그 순간 서로 뭘 느낀 건지 두 사람은 자존심을 굽혔다.
“그래도 진 쪽에 구원 정도는 해주는 게 어때?”
“당신도요. 제가 지면 우리 동생을 그쪽 가문에 데려가 주세요.”
“내가 지면?”
“그때는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걸로 좋아. 기간은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서로 정정당당히 부탁드릴게요?”
“흥… 말할 것도 없어…”
어디 한 번 해보자면서 이빨을 드러내는 로키시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실눈을 뜬 아이 공주님. 그리고 자기 이야기나 마찬가지인데도 아무것도 못하게 된 썬이 뭔가를 저질러주겠다는 얼굴로 눈썹을 모았다.
‘썬과 느긋한 학창 생활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이것도 꽤 자극적이라 좋네요…’
‘에키시 공… 저에게 힘을 주세요…’
‘이런 백돼지 자매들에게 내 동생을 줄까 보냐?!’
그렇다…
에키시 본인만 모르는 여자들의 승부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