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냥냥! 질투의 메이드다냥!(5)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일주일까진 아니지만 3일 정도 지날 무렵 아이·호모우와 썬·라이니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현 상황을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근 3일간 에키시는 아이 공주님의 권유를 모조리 차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연회 당시에는 에키시는 아이 공주님을 보며 헤벌쭉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분명 정중히 거절했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는 안개만 낄뿐. 특히나 아이 공주님은 이런 경험이 처음인 건지 진심으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 덕에 기분도 찜찜해졌고 두 사람은 평상시와 똑같은 드레스와 갑옷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바람을 쐬기 위해서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 다니며 시원한 공기를 맛보고 현 상황을 파악하는데 급급했다.
“에키시 공… 그날 이후 초대를 안 받으시네… 분명 반응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열심히 소문 개선에 노력하고 계시니까요. 에키시 공과 그 누님인 로키시 님과 함께 같은 파벌에서 얼굴을 팔고 계신 모양입니다.”
“괜히 도와줬을까 싶어. 당초 계획은 무능이란 이름을 빌리는 거기도 했고. 너무 소문이 구리면 좀 그렇다 싶어서 조금 도와줬을 뿐인데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그만큼 언니의 이름이 드높았단 거겠죠. 에키시 공도 완전히 무뢰배는 아니니 분명 빠른 시일 내에 얼굴을 비추러 오실 겁니다.”
그러나, 겨우 3일.
그 짧은 시간으로 수년간 지속한 소문의 일각을 잠재운다.
로키시의 파벌은 물론 아이 공주님의 덕망이 가능했기에 가능한 기적.
이 가라앉은 소문은 학교의 귀족이나 기사들이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본다. 소문 자체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학교 내에서는 적당히 조용해질 것이었다.
“능력이 너무 좋은 것도 탈이네. 하지만 완전히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얼굴 정도는 비춰도 될 텐데. 에키시 공도 참 무정하시지. 마치 팽 당한 것 같은 기분이야.”
“드무시네요, 언니가 초조해하시다니.”
“어머나, 그렇게 보여?”
“언니의 권유를 찬 남성분은 처음이죠? 그 영향이겠죠.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이 단기간에 그리 여러 번 차버렸으니 신경 쓰일 만도 하겠죠.”
“끄응…”
설마 자기 여동생인 썬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아이 공주님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로 들고 있던 양산을 접었다. 여동생인 썬이 사랑을 해서 그런지 이쪽 방면 이야기는 아무리 아이 공주님이라 해도 쉽사리 놀릴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는구나 싶은 마음으로 먼저 벤치에 앉은 아이 공주님. 결국 돌아온 곳은 저번에 썬이 난리를 피웠던 그 분수대 앞. 묘하게 정감이 가는 이 장소의 벤치에 앉아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눌 준비를 했다만.
‘대체 뭐가 그리 바쁘길래 내 권유를 차는 걸까.’
에키시가 자기 권유를 찬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확신할 찰나 그런 아이 공주님의 앞으로 한 사람이 지나갔다.
“앗.”
“으응?”
완전한 금이라 부르기에는 좀 거무칙칙하고 꼬불꼬불한 금발. 눈은 파랗지만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딘가 어두운 소녀. 몸매는 작고 또 작아서 검은 나무 자수가 박힌 원피스가 아주 잘 어울렸지만 기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여자애였다.
아이 공주님은 그 아이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놀란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 대신 놀란 소리를 낸 것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썬이었다. 그 소녀와 지인이었던 건지 아이 공주님께서 「아는 사람이야?」라고 물으니 금방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아, 엘피~?!”
“썬·라이니르. 네게 이름을 허락한 기억 없어. 뭐 그리 기쁘다고 달려오고 난리야. 더우니까 떨어져.”
“에헤헷! 저번 수업에는 엘피 덕분에 살았어요!”
“큿… 도련님의 지인이란 전부 이렇다니까… 천연덕스럽긴…”
새침 떼는 목소리로 썬을 바라보는 엘피 부관. 그러나 썬은 반가운 얼굴로 꼬리를 흔들 기세로 엘피에게 다가갔다. 정작 그녀는 귀찮은 얼굴이었지만 썬을 내치지 않는 것이 그날 이 자리에서 만난 이후로 몇 번이고 얼굴을 마주친듯했다.
그러나 과연 아이 공주님에게까지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는 건지 그쪽에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오늘은 손에 책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작법도 완벽했고 그때처럼 틱틱 거리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블랙우드 가문이 이끄는 백합 기사단의 부관 엘피라 합니다. 고명하신 아이 공주님의 얼굴을 뵈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중한 인사 감사해요.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가 했더니 저번에 썬과 함께 같은 조를 짜줬다고 하던 그분이시네요. 이야기는 들었답니다.”
물론 아이 공주님도 사근사근 대해줬지만 그 말이 나온 순간 엘피의 날카로운 눈이 썬으로 향했다. 「타국의 공주님께 대체 무슨 말을 불어넣은 거냐」고 협박하는 것 같은 눈동자. 그러나 썬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면서 엘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썬은 저 때문에 수업을 자주 못 나가는지라 같은 기사인 지인이 적어서요. 그 때문에 조별 수업 같은 것에 골머리를 앓는 아이였는데 부관께서 도움을 주셨다 들었어요.”
“송구스럽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도운 것도 아니니 공주님께 감사를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후훗, 감사 정도야 받아주셔도 되는데.”
은근히 자신을 비하하는 엘피, 대놓고 자신을 비하하는 에키시, 주종끼리 똑 닮았다고 말한 순간 엘피의 입가가 심하게 비틀렸지만 아이 공주님은 굳이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 잘 됐네요…”
“?”
“이것도 인연이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마침 블랙우드 가문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아…”
아이 공주님의 권유와 함께 엘피의 얼굴이 한 번 더 비틀렸다. 공주님 앞에서 해도 될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방금과 마찬가지로 그런 행위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건수를 잡아낸 것 같은 기쁜 표정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일개 기사인 엘피가 그 권유를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두 사람의 손에 이끌려 아이 공주님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까지 끌려갔다. 그 등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같았지만 썬은 엘피의 기분을 전혀 모르고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제기이일…’
군인이 휴가 겸 군부대 밖으로 나왔는데 장성은 무슨 타국의 대통령과 만나 그 집에 초대당한 꼴이다. 기숙사 겸 저택에 도착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차를 대접받기 전까지 양 다리를 오므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게다가 오늘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도 엘피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에키시와 로키시가 개판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로키시의 상태가 많이 이상해져서 부관인 엘피마저 내치고 동생과 섹스와 냥냥 플레이 삼매경이었기에 그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서 도서실로 도망치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붙잡힌 거다.
여러모로 괴롭기 그지없는 상황. 원래라면 즐거운 학창 생활이 됐어야 했는데 도련님 하나로 전부 망가졌다. 설마 했는데 로키시에게 밤 시중까지 거절당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밤까지 쭈욱 애정행각을 펼쳐대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런 상태의 엘피에게 에키시나 로키시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될지 쉽사리 예상이 가지 않나?
‘아니 차라리 잘 됐어… 역시 우리 도련님이랄까… 벌써 아이 공주님에게도 손을 댄 것 같고… 그때 연회장에서 보인 모습도 그렇고 완전 빼박이야…’
백합 기사단의 부관 겸 브레인 엘피.
‘아이 공주님과 이 정체불명의 남장 기사를 사용해서… 로키시 님과 에키시 님을 떨어뜨려야 해…’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