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21화 (21/199)

 에피소드 2 - 악역 영애 누님 루트

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이 남자.

에키시·블랙우드.

통칭 무능 또는 방탕아라 불리는 남자.

그가 무능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저 자기 누님인 로키시를 위해서. 그리고 그 누님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 자업자득인 부분도 컸다. 본성 자체가 소인배이기도 하고 천박한 점도 있었기에 그런 행동과 잘 어우러져 전 국토에 그 이름이 널리 퍼지는 멍청이가 됐으니까 말이다.

어느 때는 용병의 입에서, 또 어느 때는 창녀의 입에서, 또 또 어느 때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블랙우드 가문의 장남은 무능하고 방탕하다고. 실제로 영지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자유인에 가까웠고 그런 소문은 날이 갈수록 부풀려져 모르는 이에게도 혐오를 줄 정도가 됐다.

여자를 탐하고, 공부를 게을리하며, 산적 사냥에만 신경을 쓴다. 영지민과 대화하는데도 격식을 요구하지 않고 천박한 행동거지를 용서하는 바보. 게다가 심기가 뒤틀려 창녀를 수십 명 죽여버렸다고 하는 소문까지. 그렇기에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귀족들 사이에서는 좋은 인상이 없는 남자였다.

전부 자기가 저지른 일이지만 오늘날까지 수습하려 하지 않았다. 그 내면에 있는 소인배(최현준)는 말을 꺼낼 때마다 「무능」또는 「방탕아」라며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소개를 한다. 이젠 일종의 습관이었기에 고치질 못 했던 거다. 다른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으면서도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살기 위해서 이런 말버릇을 배워버렸다. 누님의 눈에 들기 위한 정도로 무능이 되기 위해. 이쪽 세계로 전생해서 지금까지 목숨을 걸어온 자의 입방정이다.

그것도 8년간…

8년 동안 쌓은 입버릇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다…

“썬 하나에 너무 시간을 투자했어…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자기 입방정 하나 고치지 못하던 바보는 오늘도 고뇌에 빠져 있었다. 학교에 와서 그 소문을 수습하려 했지만 썬의 일로 수업을 땡땡이치고 다녔으니 그 인상이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던 거다. 덕분에 고민은 쌓여만 가고 오늘 쁘띠 왕성에서 펼쳐질 연회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받아 한숨만 나오게 됐다.

에키시는 만능 초인이 아니다. 하물며 게임처럼 공부 시간이나 대화 시간을 나눠 한 사람의 마음을 단기간에 사로잡는 방법 따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썬과 친해지려면 다소의 땡땡이는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 했고. 가문의 존속과 누님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썬과 친해지는 걸 뒤로 미룰 수 없었던 게 오늘 이 자리에서 업보가 되어 돌아왔다.

‘설마 신입생 환영 연회에 파트너가 필요할 줄이야… 게다가 전부 차여버렸고…’

처음에는 그 얼굴을 보고 호의를 가지고 접하려 했던 여성들도 지금은 떨어지게 됐다. 에키시의 편이던 로키시도 그의 태도를 나무라는 건 물론 공주도 왜 그러고 다니는지 질문할 정도로 눈에 띄게 됐다. 그 결과 파트너는 물론 그의 누님인 로키시도 고개를 저어버렸다.

“게임이 아니니까 시간은 유한해… 세이브도 로드도 없어… 한 번 실수했다고 이렇게 수습하기 힘들어지는 건가…”

로키시는 공주님과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동생의 권유를 거절했다. 그러는 김에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라는 말까지 했으니 에키시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썬과 친해지기도 했고 이제 좀 여유를 두고 소문을 수습하려 했더니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떨어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썬도 중요하지만 자신도 중요하니까.

일단 오늘 연회를 기점으로 무언가를 바꿔야 했다.

‘누님은 내 권유를 거절했다. 언제나 물고기를 낚아주시는 분은 아니니 이번 일을 기회로 이미지를 바꾸라는 거겠지. 그러니 억지로 권유해봤자 누님의 빈축을 살 뿐. 그러나 여태까지의 소문을 의심스럽게 만들 건덕지가 그리 간단히 나오는 건 아닌데…’

평소라면 아주 잘 돌아갈 잔머리였지만 오늘은 그런 게 없었다. 춤이나 예법을 배웠어도 그걸 써먹을 수 있는 상대가 없다면 말짱 꽝이다. 그렇다고 분수대 앞에서 저질렀을 때처럼 힘자랑하자니 무식한 바보로만 보일까 봐 무서웠다.

‘새 히로인은… 만날 수 있을 리 없다… 썬과 지낸다고 다른 이들이랑 접촉한 적 없고… 최악의 경우 아버지가 말했던 사람들과 접촉해서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집을 나와 학교로 왔는데 결국 아버지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에 에키시의 얼굴이 구겨졌다. 언제나 여유로운 그 치고는 드문 모습. 그를 모르는 여성들은 에키시의 표정이 무서웠던 건지 길을 걷다가 얼굴을 보고 휙 비켜나기까지 했으나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기사를 부를까? 네티아나 엘피라면 응해주겠지만 역시 그걸로는 임팩트가 부족한데. 내 소문도 그렇고 빈축을 살 수 있는 인선이다. 그렇다고 썬을 여장시켜서 데려나갈 수도 없고. 정말로 아버지의 힘을 빌리는 게 전부란 말인가?’

그 순간 에키시의 뇌에 무언가가 번뜩인다. 지금 자기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에키시 공,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앗.”

등 뒤에서 들리는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

등을 돌린 순간 에키시의 시야를 장악한 새하얀 그녀.

너무 과분한 상대였기에 잊고 있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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