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 눈꽃 자매 루트 〈동맹 완료〉
“흐아아…”
“지쳤니?”
“네… 오늘은 특히나요…”
에키시 공은 나를 실컷 놀린 후에야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머리를 박박 긁은 후 돌아가셨다. 마지막에는 나와 언니로 마중을 했지만 내일 또 저 얼굴을 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여러모로 무거워졌다.
정말로 우리 언니와 처음 보는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합이 맞아떨어지는 모습. 언니도 나름 즐거웠던 건지 진심으로 즐기고 계셨고 오늘 그 짧은 사이 에키시 공과 언니의 관계는 예시를 들 수 없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덕분에 그것본 내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오늘 오고 갔던 대화 때문에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말이다.
“재밌는 사람이었어. 보기 드물게 좋은 남자라는 게 느껴졌지 뭐니?”
“대체 어디 가요… 저런 밉상스러운 인간…”
“후후, 정말로 좋은 사람이니까 네가 몸을 던진 것 아니겠어? 그렇지?”
“윽…”
언니는 내가 어젯밤 뭘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내 엉덩이를 콕콕 찔러왔다. 덕분에 아직 아릿함이 남아있는 엉덩이에 전류가 흘러들어왔고 나는 깩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다 알고 계셨던 거죠? 어제 등을 떠민 것도 그렇고… 밤에 제가 뭘 했는지도…”
“몰래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거든.”
“진짜요?!”
“잘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구나? 우리 음란 기사? 덕분에 에키시 공이 놀라 하고 계셨잖니?”
“그, 그치만 좋았던걸요! 정말로 좋아서 멈출 수가 없게 됐어요! 제 탓이 아니에요!”
“그 마음이야 이해하는데… 그렇게 짐승 같은 소리를 내다니… 우리 여동생은 언제부터 그렇게 음란해졌을까나…”
“너무하세요! 놀리지 마세요! 잊어주세요!”
“그런 걸 잊을 수 있을 리 없잖니~! 아하하핫~!”
언니는 불쾌함 하나 없이 사랑 이야기를 떠드는 소녀처럼 내 이야기를 받아주셨다. 언니는 내 유일한 아군이기도 했기에 나도 서슴없이 내 본심을 털어놓았다. 어제 그런 광경을 직접 지켜보셨다면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순간이 왔기에 좀 더 본심을 털어놓을 예정이었다.
“너무 남자 생활을 강요한 탓인가? 그 반동일지도 모르겠구나?”
“그저 제 천성이 더러운 것뿐이에요… 어제의 저는 제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여자였습니다… 설마 하룻밤에 그런 짓을 하다니…”
“걱정 말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야. 어제 하루 시간을 준 것만으로 거기까지 할 거라는 건 아무리 나라도 예상 외였지만. 네 각오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러나 에키시 공을 상대로… 저는 정말로 위험한 짓을 했군요… 또 언니를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어요…”
“에키시 공은 내 기준으로 봐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널 방해하는 일은 없을 거란다. 물론, 이 이후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를 판단하려 하는데………”
마음의 준비는 됐냐며 내게 되물어오는 언니. 마침 나도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기에 망설임 없이 수긍했다. 나도 언니도 목소리는 진지하면서도 얼굴과 눈가는 상냥하게 풀어져 있는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언니, 언니, 이 바보 같은 여동생의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일생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되리라 생각됩니다만.”
“응석하나 부리지 않던, 정의를 굽히지 않던, 올곧게 살아온, 내 자랑스럽고도 귀여운 여동생 썬. 네가 이 언니에게 뭘 부탁할지 참으로 기대되는구나. 거짓말 하나 섞지 말고 본심 그대로 말해보련. 이 언니는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단다.”
“그럼 말하겠습니다만. 저는 에키시 공이 가지고 싶습니다. 첫 만남은 변변찮았고 사랑에 빠진 계기도 애매모호했지만. 그래도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가지고 싶다, 인 거지?”
“네.”
“그런가… 가지고 싶다인가…”
아마 처음으로 드러낸 내 독점욕에 언니가 당황해하셨다. 그와 결혼하고 싶다 둥의 상냥한 발언을 기대하신 거겠지. 나도 그렇게 말씀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만큼은 본심을 숨기지 않기로 했고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만약 안된다고 한다면 깔끔하게 손 떼겠습니다. 언니와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마음은 한때의 신기루라 생각하고 여태까지처럼 조용히 남자로 살 겁니다. 다만, 어젯밤의 추억을 위안거리로 삼겠지만요.”
“그렇게 심한 일을 강요하진 않는단다.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그런 짓을 강요할 정도로 못된 언니로 보이니?”
“현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제 사랑과 언니의 즉위 문제. 그리고 아버지의 심로를 생각하면 어느 쪽을 포기하는 게 맞는지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일이니까요.”
“이런 일에는 영 딱딱하다니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도…”
이리 오라고 하며 날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주시는 아이 언니. 키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내 뒷머리가 아이 언니의 그 커다란 가슴에 잠겨버렸다. 같은 여자끼리라고 해도 피가 나눠진 여자끼리 너무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됐다. 어젯밤 그런 일을 해서 그런가 타인의 피부에는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해버리고 만다.
“저기, 썬. 내가 즉위했다고 해도 아이 문제는 생긴단다. 아버님이 남자애를 안 낳은 탓으로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 내가 즉위 한 후에도 그 걱정은 계속되겠지…”
“네, 그렇겠죠. 안 봐도 뻔한 사실입니다. 언니께 결혼을 요구해, 아이를 요구해, 남자애를 요구해, 그리고 다음 남자애를 왕으로 삼으려 들겠죠.”
“그래, 그건 확정적이야. 우리나라의 특성이나 풍습 상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지.”
“그러나,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후후후…”
아이 언니가 팔을 뻗어 내 몸을 꽉 잡고 뺨으로 내 뺨을 비볐다. 안 그래도 차가운 피부가 오늘은 더욱 차가웠고 어느 때라도 안심되는 언니의 품은 오늘만큼은 무서운 무언가로 느껴졌다.
“썬, 그렇게나 에키시 공을 가지고 싶어? 그렇게 원한다면 호모우 왕국에 아예 붙들어줄까?”
“언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네가 조금만 양보해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란다.”
등이 오싹해졌지만 에키시 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귀가 팔랑거렸다. 처음으로 느끼는 마음속 깊은 곳의 열기. 마치 희망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냐. 나는 레즈우 왕국과 깊게 맺어지고 싶어. 호모우 왕국에 남겨진 고서에 따르면 원래 두 왕국은 하나였지만 어느 순간 교단 째로 분단하게 됐잖니? 내가 즉위할 때 두 왕국을 합치진 못해도 저쪽에 있는 사람의 피를 수중에 두고 싶었단다.”
“레즈우 왕국이 언니를 지지해준다면… 호모우 왕국에서도 좀 더 영향력을 늘릴 수 있게 되니까요…”
“맞아. 나야 백성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왕성 내 파벌을 한꺼번에 모으진 못했으니까. 그것도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되겠지만 기왕이면 레즈우 왕국에서 지지를 받는 편이 더 빨라.”
“혹시 에키시 공을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눈치가 빠르네.”
“언니……”
언니에게서 도망치려고 몸을 버둥거렸지만 그 가녀린 손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 귓가에 입술을 대고 뿌리치지 못하는 목소리를 불어넣고. 내가 이 이야기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마녀의 계약을 행하려 하고 있었다.
“블랙우드 가문은 그의 누나가 이어받는 게 거의 확정됐어. 반면 에키시 공은 가문도 피도 더할 나위 없지만 그 소문이 발을 잡아버렸지. 왕가의 혈통을 잇고 있는 블랙우드 가문의 남자가 지금 저 나이가 되도록 홀몸이라니 너무 안성맞춤 아니니?”
“블랙우드 가문의 왕가의 피가 섞인 레즈우 왕가의 다음가는 가문. 그 가문의 남자를 손에 넣어서 레즈우 왕국의 지지를 얻어보겠다는 거군요.”
“그를 손에 넣으면 여왕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일도 없어져. 무능이라 불린 남자니까 정치계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정상일 테고. 아이를 임신해도 나 홀로 호모우 왕국을 이끌어갈 수 있단다.”
“거절하겠습니다. 저에게 오는 메리트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에키시 공을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할 수는…”
“그럴 리 없잖니. 에키시 공을 가지게 된다면 너도 그와 마음 놓고 접촉할 수 있게 돼. 왕성 내부에 왕가 직계만 들어갈 수 있는 방에 틀어박혀 당당히 문란하게 지낼 수 있어.”
“윽?!”
내 얼굴이 단번에 새빨갛게 되고 언니는 내 마음을 꿰뚫어본 것처럼 다음 말을 줄줄이 이어나갔다. 방금도 말했듯 마치 마녀가 사람에게 계약서를 읊어주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만약 누군가가 그 문란한 생활을 지적한다 하더라도 문제없단다. 호모우 왕가의 피를 이은 사람이 여자 둘뿐이니 그걸 방패로도 삼을 수 있으니까.”
“방패라뇨?”
“왕성에 자리 잡은 참새들은 남자애를 요구하고 있어. 걔네가 그토록 원하는 남자애를 낳기 위해서라면 우리 두 사람을 동시에 임신시키는 편이 빠르다고 그런 웃기지도 않는 변명을 할 수 있는 거지. 물론 그들은 그런 웃기지 않는 변명을 대 환영할 거야. 그 무엇보다 자기네들이 원했던 일이잖니?”
“그런… 에키시 공을… 마치 종마 같은 취급을 하겠다니…”
“실제론 그런 취급하지 않을 거란 거 너도 잘 알고 있잖니? 겨우 두 사람 임신시키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야. 어디까지나 사람 대 사람으로 남편으로서 대할 수 있단다.”
까놓고 말해 불륜. 대외적으로는 누님과 에키시 공이 결혼을 한 게 되고 실제로는 나도 거기에 당당히 섞일 수 있게 된다. 일단 임신한다면 그걸로 OK니까.
“우리 둘이 임신한 후 아버지를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은…?”
“그걸 막기 위해서 레즈우 왕국의 지지가 필요한 거야. 애초에 궁정 안의 참새들도 아버님을 거의 포기한 모습이잖니? 수십 년간 닥달한 결과 만든 게 여자애 둘. 내가 그들의 의향을 맞춰 남자애를 낳아주겠다 하면 기꺼이 충성을 내주겠지.”
“과연… 아버지의 고집불통스러운 성벽이 이럴 때 도움이 된다는 거군요…”
“맞아, 근성이 강하시달까, 아무리 봐도 불쌍한 분이야. 빨리 그 자리를 물러나게 해서 아버님이 좋아하는 남성분들과 조용히 지내게 해드리고 싶어.”
어째선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자연스레 정리되는 상태였다. 나는 전혀 수긍하지 않았는데 언니는 내 몸을 꽉 붙들어 잡은 채 자신의 장기 말이 돼달라 속삭이고 있다. 장기 말이라고는 해도 내가 얻는 게 너무 많고 언니 측이 잃는 게 너무 많은 교환비. 이런 걸 장기 말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싶다.
“하지만 레인이 널 노리고 있는 게 뼈아프구나. 왕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주렴. 너무 너한테 집착하면 나중에 원한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언니도 노리고 있지 않을까요…”
“흠, 그렇다고 정체를 까발릴 수도 없고.”
“까발리면 진짜 덮쳐질 겁니다. 레즈우 왕가의 지지는 얻을 수 있으시겠지만 제 원한을 그대로 받으실 거고요. 저는 언니에게 그런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기 싫어요.”
“동생의 사랑을 막는 건 물론 저 사이코 레즈비언에게 덮치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싫어… 참 머리 아픈 일이야…”
언니는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 차선책을 내놓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지속하는 수밖에. 에키시 공은 널 남자로 착각하고 있고 레인은 여자로 보고 있지. 어떻게든 에키시 공과 친밀한 관계로 보이도록 해. 그리고 에키시 공에게 직접 남자라는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럼 레인은 여전히 너와 에키시 공이 사귄다고 착각할 테고 에키시 공은 평소와 똑같이 너를 대하겠지.”
실제로는 여자인데 남자인 척하다가 이젠 아예 남자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니.
나면서도 머리가 아픈 일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에키시 공에게는 정체를 까발리는 편이…”
“정체를 까발리고 뭐라고 하려 그러니? 나와 썬 둘이서 당신을 호모우 왕국으로 데려가 우리 둘을 임신시키게 하겠습니다?”
“아…”
“어제 그런 일도 있었고 도리어 어색해질걸.”
“그럼 교섭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에키시 공과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언젠가 말을 꺼내긴 해야 할 텐데…”
“걱정 마, 이 언니만 믿으렴.”
“네?”
“너 대신 에키시 공을 꼬셔줄 테니까.”
“예?”
설마 했던 약탈애 선언. 실제론 내용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것과 별반 다름없는 말이었다. 분명 연애 상담을 했을 텐데 왜 그 결과 언니가 나 다신 에키시 공을 꼬셔주겠다는 게 된 걸까.
“내가 직접 그를 반하게 만든 후 블랙우드 가문과 이야기까지 끝내 줄게. 그대로 결혼까지 확정하고 왕국에 돌아간 시점에서 정체를 까발리는 거야. 물론 에키시 공은 놀라 하겠지만 어제 널 보고 그렇게 말한 것도 있고 싫어하진 않으시겠지.”
“도, 도, 도망칠 길을 없애시겠다는 거네요?! 심해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사랑은 싸움이란다. 그를 가지고 싶다면 이 정도 각오는 해야지.”
언니가 힐쭉 웃으면서 그 새하얀 눈을 번뜩였다.
“나는 레즈우 왕국과 그 필두 귀족인 블랙우드 가문의 지지를 얻을 거야. 그것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남자애를 낳아 궁정 내의 귀족들의 지지율도 얻을 거란다. 그동안 우리 귀여운 썬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에키시 공을 수중에 넣을 수 있어.”
“서로 이득이 된다고 하시는 거네요?”
“그래.”
결혼하고 싶다가 아니라 가지고 싶다고 대답한 결과가 이거인가.
문답무용.
자업자득.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 두 단어가 무서워졌다.
“어쩔래?”
“좋아요… 어차피 이 장소에서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는 건 사실이고… 나중이라도 좋으니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불쾌하진 않아?”
“불쾌해요. 그러나 언니를 더 좋아해요. 물론, 에키시 공도요.”
“둘 다 잃고 싶지 않지?”
“네.”
추잡한 관계가 되겠지만 어제 내가 했던 일보단 덜했다. 그의 전신에 내 흔적을 남겼고 직접 수건을 짜 그 흔적을 지워냈다. 오늘 아침 에키시 공의 얼굴을 보고 내가 얼마나 짓무른 생각을 했는지 언니와 에키시 공은 모를 거다.
흥분했다.
발정했다.
사랑했다.
단 한 번의 추억이 되리라 믿고 필사적으로 정을 요구했다. 질내 사정을 하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했다. 평소부터 종속 욕구가 있었던 건지 그 무방비한 발가락에 입을 맞추고 기사의 맹세를 했다.
처음으로 내 몸에 숨어있는 여자를 자각했다. 그렇게나 가지고 싶은 사람이다. 겨우 이 정도 지출로 그를 가질 수 있다면 횡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나눠가지는 상대는 다름 아닌 우리 언니.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거절하는 일 따위 있을 수 없었다.
“에키시 공의 방탕함을 생각하면 이 작전이 실패할 일은 없겠죠. 언니는 에키시 공의 취향에 그대로 들어맞는 분인 거 같고. 조금만 밀어도 넘어져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게 틱틱 거리지마. 지금 당장 에키시 공과 못 이어진다고 해서 그와 몸을 못 섞는 건 아니잖니?”
“아뇨, 별로 그런 건 아닌데요.”
“시치미 떼긴, 이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 유혹한다고 삐진 주제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
“그런 동생을 위해~! 짜잔~!”
언니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의 약병이 그 커다란 가슴골 사이에서 나왔던 거다. 가끔씩 남자들을 놀리기 위해서 저런 짓을 할 때가 있었지만 오늘도 그런 꼴이었다.
“그건 또 뭔가요?”
“드래곤도 잠재우는 최강 수면제~!”
“네? 무슨 수면제요?”
“하드 교단이 만든 거야. 본래라면 군 전용으로 엄밀히 관리되는 거지만 혹시나 싶어서 하나 가져왔는데 써먹을 일이 생겼네?”
“?!”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치려 했지만 내 입이 언니의 그 새하얀 손에 막혔다. 여전히 목소리를 내려 깐 채 우후후 웃고 있는 것이 평소의 언니답지 않았다.
“자, 손을 내미렴.”
“으, 으웁, 으윽…”
“어서.”
“으으으으읏…”
놓아줄 생각도 없어 보였고 언니께 난폭한 짓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았다. 차갑게 찰랑찰랑 움직이는 그 빨간색 액체도 그렇고 사람에게 써도 될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에키시 공의 내성을 보아하니 안에 있는 스포이트로 다섯 방울 정도면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할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한 방울로 충분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쓸 생각은 없지?”
“으읍, 으읍, 읍…”
“그럼 됐어.”
“푸하?!”
언니는 진심이었다. 다음 왕이 되기 위해서 발판을 닦을 예정이며 진심으로 에키시 공을 끌어들일 생각이다. 그러나 나보고 임신은 하지 말라면서 경고도 해줬다. 그런 건 나중에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이 약은 영 못 버틸 때 쓰라고 줬다.
‘영 못 버틸 때라니…’
또 그 진득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겼던 건지 언니는 다시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웃으셨다. 동생을 위해서 여기까지 생각을 해주는 언니가 있다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머리가 굽혀졌다.
“썬, 에키시 공 근처에 다른 여자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해주렴. 어디까지나 에키시 공의 동성 친구로서 붙어 다니면서 주위를 주시하는 거야. 그 정도 서포트는 해줄 수 있지?”
“네, 언니. 당연하죠.”
“그리고 에키시 공의 소문이 좋게 변하는 것도 억제해줘. 명백하게 바보 취급받는 건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좋아지는 것도 곤란해. 소문이란 언제나 적당한 편이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언니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인 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상냥한 언니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에키시 공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겠습니다…’
나 썬·라이니르는.
오늘 이 자리에서 언니와 동맹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