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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귀족 여체 하렘-15화 (15/199)

 에피소드 1 - 눈꽃 자매 루트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누님의 성욕을 해소시키는 나날.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 인지라 썬의 반응이 여러모로 격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침착해졌다. 그리고 수 일 지났을 무렵 공주님과 우연찮게 마주쳤지만 공주님도 썬도 침착해진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썬은 담담히 그때의 무례를 사과했고 공주님도 아무런 일 없었다는 것처럼 웃고 끝났다. 다만 공주님의 표정이 광기에 물들어 있었지. 살짝 늘어난 눈가에 금안이 스멀스멀 움직이는 게 마치 벌레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아버지가 떠올랐지만 딱히 틀린 비유는 아니리라.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싶다, 인가.’

공주님은 썬의 행동을 꿰뚫고 있었다. 왜 그가 화가 났는지 깨달았고 나를 보며 올곧은 모습으로 사과했다. 그 덕에 썬도 사과하기 편해졌고 조금이나마 불신을 불식시킨 모습이었다.

아마 날 이용한 거겠지. 굳이 내게 사과하는 것으로 그때 있었던 이미지를 지우려 한 거다. 실제로 잘 먹혔고 일주일 후에는 썬과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행동력도 눈썰미도 다 좋은데 그를 여자로 봐버리다니 그 점만큼은 웃기기 그지없었고 또한 불편하기도 했다.

첫눈에 남자라는 걸 알았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됐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어찌 됐든 공주님과 썬의 사이가 깊어지고 있다. 그것만큼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잘하면 썬이 남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흘리고 있으니 원작처럼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공주님이 썬에게 깊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남자라는 사실을 알린다는 작전은 꽤 유효하게 먹힐 것 같았다.

“에키시 공?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별것 아냐. 이렇게 느긋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싶어서.”

그런 공주님과 썬의 들러붙음 대작전을 하고 있는 나였지만 평상시와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여짐 없이 원작 주인공과의 대화 중. 저번에 난리를 피웠던 그 분수대 앞에서 둘이서 늘어앉아 가벼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저는 학교를 다니는 겸 레즈우 학교의 사교회에 얼굴을 비추러 온 건데…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긴 합니다만…”

“공주님에게 저지른 일이 있잖아. 어디서 소문이 흘러나갔는지 이름도 모를 무례한 기사를 찾고 있는 파벌이 있어. 좀 빈둥거리면서 소문이 흘러나가길 기다렸다가 저 사교회에 참석하는 게 좋을 거다.”

“그거 진짜인가요? 분명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만…”

“이렇게 보여도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까 그중 하나겠지.”

물론 출처는 우리 누님 쪽 파벌이지만 그 정보는 틀림없을 거다. 이런 학교를 운용하고 있는 거고 귀족들끼리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스토퍼 정도는 있는 게 정상이다. 실제로 학교 내에서는 전투 시 패배해도 죽는 엔딩은 없다. 대신 스토리상 루트를 잘못 타서 독살 당하는 엔딩이 있을 뿐이다.

“공주님은 따듯하게 맞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만…”

“오히려 눈에 띌걸. 그 따뜻함이 무슨 기준인지 생각하면 추천하질 못하겠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 따뜻함이란 거, 혹시 달아올랐을 때 느끼는 그 따뜻함입니까?

대놓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우리 바보 공주님은 눈치가 좋아. 그렇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생각이 없으신 분이거든. 최근에는 너만 바라보고 있으니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상한 소문이 퍼질 거다. 얼굴도 모를 프로이라인들에게 원망을 사서 등을 찔리고 싶지 않다면 공주님이 침착해지길 기다려라.”

“네… 에키시 공이 그렇다면야…”

내 말에 동의하면서 고급 찻잔에 담긴 차를 호로록 마시는 썬. 기사지만 이렇게 느긋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뺨을 늘려댔다. 태양에 비치는 은발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띈다.

「남자인데도 공주 기사 장비라니 고생하는구나」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 네, 좀 그렇죠~?」라며 어색하게 눈을 돌린 것이다. 하반신 부근이 치마처럼 팔락이는 갑옷이니 남자로서는 불편한 부분도 있을 거고 괜히 말을 꺼냈나 싶었다.

‘햇빛도 좋고, 바람도 좋고, 이런 기분 좋은 날 어떻게든 더 친해지고 싶은데… 흐으으으으음…’

원작 기준으로 썬이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찰나.

“엉?”

“아…”

“에키시 님!”

하늘이 나를 도운 것처럼 분수대 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맞았다.

‘엘피와 네티아 인가.’

한쪽은 몸집이 작은 거무칙칙한 금발 소녀. 이쪽을 바라보는 파란 눈은 먹구름이 낀 것 같고 오늘은 드물게도 망토를 걸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우리 가문이 등용했다는 증거를 가진 검은 나무 자수가 박힌 메이드 복을 걸치고 두 손에는 책을 가득 들고 있었다.

반대로 날 보며 기뻐하는 여기사는 주인을 만난 개처럼 검은 눈을 반짝여 댔다. 뒤로 굵직하게 땋은 갈색 머리는 개의 꼬리처럼 흔들리고 있다. 백합 기사단 특유의 공주 기사 차림으로 이쪽에 날아오는 게 썬의 친척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저쪽은 시골 처녀 느낌이고 썬은 화려한 공주님 같았던지라 같은 기사인데도 신분 차이가 꽤 달라 보였다.

“칫.”

이쪽을 만난 게 싫었던 건지 일단 혀를 차는 엘피. 내가 안 보이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자세히 보면 다 보이는 행동이었다.

“바람을 쐬고 계셨습니까?! 나가신다면 호위를 해드렸을 텐데요!”

“네티아, 목소리가 커. 도련님께 실례야.”

“앗.”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네티아를 혼내는 엘피.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본인의 행동이 실례였을 테지만 귀여우니까 용서해줬다.

“저기, 두 분은?”

“한쪽은 우리 누님의 부관 겸 호위 기사인 엘피. 또 한쪽은 내 호위 기사인 네티아다.”

“크흠! 큰소리쳐서 죄송합니다! 에키시 님!”

“괜찮다. 충견 같아서 좋게 보고 있으니까. 그때 이후로 수업만 보내고 할 일을 안 시킨 내 잘못이기도 하지. 다음부터는 제 일을 시켜줄 테니 걱정 말도록.”

“멍!”

속으로는 「목소리가 큰 개가 겁이 많다」며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티를 안 냈다. 네티아는 그저 숨기지 못할 정도의 기쁨을 얼굴로 표현하며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섰다.

“도련님과 이렇게 밖에서 만나는 건 오래간만 아닌가요? 학교로 들어온 이후 같은 기숙사… 아니, 저택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만…”

“보다시피 내가 한동안 바빴거든.”

“아응…”

엘피의 비아냥스러운 목소리에 썬의 머리 위로 손바닥을 올리고 두피를 살살 긁어줬다. 마치 비단을 만진 것 같은 싸늘한 감각이 몰려왔지만 썬은 마냥 좋은 것처럼 고양이 같은 목소리를 내왔다.

“처음 보는 기사네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이름을 자칭 받을 수 있을까요?”

“흐? 하아앗! 네! 썬·라이니르 입니닷! 호모우 국에서 온 기사로 지금은 아이·호모우 님을 시중들고 있습니다!”

“아하… 그 눈꽃 공주님의 호위 기사…”

눈썹을 모으는 엘피.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데 근처에 호위 기사가 없어서 누군가 싶었다며 또 비아냥거렸다. 우리와 달리 기사들은 따로 수업이 나뉘어 있기도 하고 그쪽에서 본 적 없었으니 수업을 땡땡이치는 방탕한 기사로 보였으리라. 이 녀석 누님과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아양을 떨어대면서 왜 내 앞에선 이런 거냐.

“말을 삼가해. 이렇게 보여도 훌륭한 기사님이다. 수업 말고 공주님의 호위를 우선시하고 있으니까 수업에 참가하고 있지 않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공주님 근처에서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안 보이는 곳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거다.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야.”

“아, 에키시 공~!”

내 말에 잠시 기쁜 표정을 짓는 썬. 그러나 그렇게 실드를 쳐준 것치고는 여태 자기가 한 행동에 다시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 눈꽃 공주님을 지키기는 무슨 타국의 공주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을 내줬으니 말이다.

“흐응… 여자인가…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에키시 님의 손아귀에 걸렸나 싶었는데… 그 눈꽃 공주님의 호위 기사라…”

“벼, 별로 그런 거 아닌데요! 저는 남자예요!”

“뭐?”

“저는 남자라고요!”

“도련님은 드디어 야오이 교단에도 손을 대셨는지? 여자를 넘어 남자에도 손을 대다니 도련님도 어지간하시네요. 각 교단의 교리를 실천하는 모습이 교황님도 경악하겠어요.”

“까고 있네, 그럴 리 있겠냐? 썬과는 진지한 친구 관계다. 나에겐 상관없지만 썬에겐 무례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모시는 분이 공주님이기도 하고 국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흠… 도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친구 관계가 진지해지면 뭐겠냐 싶긴 하다만 어쨌든 그런 거다. 엘피는 마지못해 납득하는 얼굴이었고 네티아는 두 눈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그가 진짜로 남자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썬은 나 이외 친구가 없기도 했고 그런 그녀들을 자연스레 반기고 있었지만…

“그, 저는 괜찮습니다. 에키시 공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같은 기사끼리 친한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블랙우드 가문을 지탱하는 분들 중 하나니 분명 나쁜 관계가 되지 않을 거라 봅니다만.”

“안일하구나.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작은 꼬맹이는 우리 누님도 인정하는 독설가야. 네 감정이 상했으면 상했지 친해질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제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 습니다만…”

썬이 네티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네티아가 얼굴을 돌렸다. 썬의 빛나는 외모가 태양을 받아 반짝이고 있으며 네티아가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듯 손을 겨우 잡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 꼬맹이 독설가 부관은…

“진짜로 남자야?”

“네.”

“그런 음탕한 얼굴을 하고 무슨. 가랑이 사이로 여자 냄새 풀풀 나거든? 그런 얼굴로 남자라고 말하는 것보단 여자라고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 여색가인 사람도 남색가가 될걸. 아니면 우리 도련님이 목적이야?”

“엘피 부관?!”

“크흠…”

예상대로다. 누님이나 날 상대로 막 나가는 년다웠다. 평상시 선은 지키지만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대로 선을 뚫고 마하로 나아가버리는 여자.

“아하, 아하핫, 하하하하핫…”

“어머, 실성했어? 아니면 정곡이야?”

“아뇨, 그, 그렇게 대놓고 욕하시는 분은 처음인지라… 여태까지 예쁘니 뭐니 칭찬만 들었기에 신선하다 싶어서… 그, 뭐라 해야할지, 이런 일은 그렇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웃을 필요가 있었어?”

“제 기준으론 웃긴 말이었던지라…”

“여자 얼굴을 한 남자인 것도 모자라 마조라니… 진짜 글러먹은 기사네…”

그러나 썬의 반응이 예상 외였던 건지 엘피가 한발 물러섰다. 그녀 치고는 드물게도 날 지키는 것 같은 자세로 한쪽 팔을 내게 내밀고 물러서라는 말까지 해왔다.

“도련님, 아무리 봐도 이 기사는 도련님의 엉덩이를 노리는 거 같아요.”

“네가 자랑하는 욕설이 통하지 않는다 해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건 어떨까 싶은데.”

“그치만 저런 얼굴로 남자라니 믿을 수 있나요? 방금 보인 반응도 그렇고 절대 야오이 교단의 독실한 신자라니까요?”

“차라리 그랬으면 본인도 편하게 살았을걸.”

좀 과하게 잘생긴 남자일 뿐이라고 다독이듯 말했다. 그러나 엘피는 썬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노려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면은 텄네요」라고 말한 후 휙 떠나버렸다.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썬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타국에서 온 기사에게 취할 행동은 아니었구나…

‘자연스럽게 네티아를 남기고 가버렸군.’

혼자 남은 네티아가 멀뚱멀뚱 이쪽을 바라보는 게 엘피를 뒤쫓아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마침 썬과 말동무가 될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싶었으니 잘 됐다고 봐야겠지.

“너도 엘피랑 똑같은 생각을?”

“아뇨! 손에 박힌 굳은살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기사입니다! 외형은 어쨌든 그것으로 사람을 비하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외형 이외로 칭찬을 들은 건 오래간만이네요.”

“애초에 공주님의 호위에 물렁한 자를 쓸 리 없겠죠. 이 정도면 상식적인 범위라고 생각합니다.”

썬 본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 상식을 내다 버리고 달려버린 엘피가 있지만. 쟤는 저래도 용서받을 수 있는 캐릭터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근데, 엘피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야만인들의 풍습을 알아내면 다음에는 좀 더 편하게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빌린 책도 대부분이 그쪽 관련이었고 아마도 다음 싸움을 준비하고 계신 거겠죠.”

“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군. 야만족의 히로인을 공략하면 싸움은 알아서 종식된다. 엘피에게는 미안하지만 쓸데 없는 노력이라고 밖엔…

‘아니, 그런 것도 아닌가. 주인공인 썬이 공주님을 공략해도 그 야만족 측의 히로인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보험을 들어놓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나.’

겨울, 싸움이 잠잠해질 무렵 이쪽에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엘피 부관의 건으로 무언가 고민이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너도 앉아서 한 잔 하자」고 네티아를 유혹하니 「기쁘게 마시겠습니다!」하고 무릎을 꿇었다. 기쁘게 땋은 머리를 흔들어대는 것이 계속해서 개의 꼬리가 연상됐다. 실제로 충견이기도 하고 명령을 내려서 한동안 썬과 붙어있도록 해둘까. 썬이 나 개인을 넘어 블랙우드 가문과 깊어지면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쁜 일이 되진 않을 거 같고.

“흠… 흐으으음…”

“에키시 공?”

“다음 주 부근에는 우리 기숙사에 와볼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누님을 소개해 주고 싶거든.”

“오히려 제가 드리고 말씀드리고 싶은 말입니다만.”

“응?”

이대로 누님도 소개해서 친밀한 관계로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 말이 썬에 의해서 끊겨나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라니 무슨 의미인가 싶었지만 곧이어 나온 말에 두근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에키시 공께서 저희 쪽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저번 일도 있고 아이 공주님께서 에키시 공에게 흥미를 가지신 모양인지라…”

“나에게? 그 공주님께서?”

“사실 오늘 나온 것도 이 말을 하려고 나왔던 겁니다. 혹시나 에키시 공께 부담이 되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에키시 공께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을 줄이야.”

이 타이밍에 부르는 건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예상은 안 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아예 안 하고 있었다. 제일 마음에 들어 하던 게임 히로인에게 초대받다니 그런 송구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보냐.

‘아이·호모우인가. 성씨는 웃겨도 아이 공주님이라 부르면 그 얼굴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 돼. 한 번쯤 만나보고는 싶었지만 생각 외로 빨라서 놀랐구나.’

게임상의 스토리도 그렇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안다만 이렇게 사람을 부를 여자가 아닐 텐데.

“혹시 화가 나신 건가?”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됩니까.”

“그렇지만 여태 좋은 일을 한 기억이 없잖냐. 하루 종일 너랑 놀러 다닌 기억밖에 없단 말이지. 애초에 공주님과 만날 수 있도록 세팅한 것도 나고 말이야.”

“그렇다고 언… 아니, 공주님께서 에키시 공에게 화를 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대로 좋은 부분을 말해 놨으니 인상도 나쁘지 않으실 테고! 애초에 친목을 목적으로 부르는 거니 불안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 눈꽃 공주님이라니… 부담스러라…”

내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건지 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된 것도 그렇고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불만스러운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된 거다.

“눈꽃 공주님이 부담스러운 겁니까? 다른 분들도 그런 반응을 하십니다만.”

“예쁘시잖아. 솔직히 말해서 이상형이야.”

“흐응…”

그러나 내 선택지가 안 좋았던 건지 이번엔 아예 얼굴이 어두워졌다. 같은 남자인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엘피에게 한 소리 들을만하다 싶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질투하는 건 아닐 테고 왜 이런 반응일까. 일단 그녀의 호위 기사 겸 온 거고 그런 부분에 민감할 수도 있겠지. 썬이 게이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공주님의 어느 부분이 이상형이시란 건지?”

“터질 것 같은 가슴이랑 엉덩이. 그리고 쫙 들어간 허리 라인이랑 튼튼한 허벅지. 그분이 낳을 아이는 건강하다 못해 차세대를 이끌겠지 싶을 정도로 몸매가 완벽하시잖냐. 게다가 이 나라에도 소문이 퍼질 정도로 좋은 성격이시고 말이야.”

“첫눈에 반했다 그겁니까?”

“첫눈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소문은 예전부터 들어왔으니.”

애초에 게임을 몇 번이고 플레이하며 공략했던 상대다. 첫눈에 반했다고 하기에는 뭣 할 정도 아닐까. 차라리 내가 눈꽃 공주님을 공략해서 호모우 왕국과 이어지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썬을 왕으로 추대하고 양국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면 하드 교단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의외로 나쁘지 않은걸…’

나도 행복해지고 썬도 공주님 공략에 실패해도 어떻게든 되고. 누님만 어떻게든 억제해서 개짓거리 안 하게 하면 된다.

“흐으으응~?”

“뭐 그리 기분 나쁜 얼굴을 하냐? 네가 물어본 거잖아?”

“별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예,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말고요.”

자기가 모시고 있는 공주님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본인도 알고 있다면서 눈을 돌린다. 자기가 권유해놓고 혼자 삐지다니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차를 음미하던 네티아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나만 이 상황이 이상한 건 아니리라.

“큿…”

영문도 모를 분노를 내뿜은 후 자기 가슴 부근을 바라보고 이빨을 갈아대는 썬·라이니르.

그는 이 문답이 끝난 이후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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