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귀족 - 지뢰와 착각이 크로스!(8)
챙!
“큭?!”
“어?”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검 조각 하나. 갈색 머리의 귀족이 휘두른 검이 반 조각이 나 땅으로 떨어졌다. 날붙이는 정확하게 분수 안으로 들어갔으며 검을 휘두른 귀족은 물론이고 썬·라이니르도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봤다.
크고 검은 망토에 두꺼워 보이는 정장. 머리부터 말끝까지 온통 흑으로 도배된 남자. 최현준이 거울을 볼 때마다 「야 이거 너무 중2병 스럽지 않아?」라고 자기 비하를 할 정도로 크고 검은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넌 누구냐?! 또 어떤 주제도 모르는 놈이……!!!”
검을 휘두른 남성이 이빨을 갈아대며 그 갈색 눈동자를 진하게 불태웠지만 이득고 입을 다물게 됐다. 망토의 옆에 새겨진 검은 나무의 자수를 어디서 많이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나무… 블랙우드 가문인가…?!”
“눈치가 빠르시군. 그 말대로 나는 블랙우드 공작가의 장남 에키시·블랙우드. 아침부터 너무나 자극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던지라 무심코 손을 내버렸다만. 아침부터 피분수를 보여주려 하다니 아가씨들에게 보여줄 개인기 치고는 너무 자극이 강하지 않은가?”
“블랙우드 가문의 무능아가! 소문답게 눈치도 없는 건가!”
“그 명칭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껄이고 있는 당신은 돌프 가문의 삼남 보리스라 보았는데 어찌하여 아침부터 피를 보려는 건지 이 무능한 후배에게 알려주지 않겠나? 경우에 따라서는 저기 있는 용감한 자의 편을 들 것이라고 미리 경고해 두겠다만.”
“큭?!”
에키시의 말투에 무언가를 느낀 건지 보리스의 이빨이 더욱 사납게 갈려댔다. 다행히 두 사람의 말은 군중에까지 닿지 않았고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노려보는 것 같은 자세가 돼 있었다.
“다 보고 있었음에도… 그런 말투를…”
그래도 사람이기에 눈치가 있다. 이 시점에서 사람이 너무 몰려들었다는 걸 눈치채고 당황하는 모습. 그러나 그는 이 자리를 빠질 생각이 없었다.
“나는 지금 협박하고 있는 게 아니야. 후배의 앞에서 관용의 자세를 보이는 것도 선배가 내놓을 수 있는 하나의 치세라 보기에 말을 한 거다.”
“이 무능이… 잘 들어라… 겨우 기사 나부랭이가 우리 귀족의 행동을 지적했다… 그것도 백작가의 혈통을 잇고 있는 이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 검을 뽑으려 한 멍청이다… 그렇기에 저 주제도 모르는 놈을 엄벌에 처하려 했거늘…”
“경고하겠다 백작가의 삼남.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지껄이면 용서하지 않겠다. 이 이상 수치를 보이기 전에 이 자리에서 물러서라. 지금이라면 저 기사가 뭣도 모르고 귀족에게 덤벼들었다는 소문 정도로 그칠 수 있으니.”
“핫! 웃기고 있군!”
그 말에 보리스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입고 있던 정장 목덜미를 풀어 뒤로 물러섰다. 넥타이는 하늘에 날아갔으며 뭐가 그리 열이 받은 건지 보리스는 영웅심에 빠져 에키시와 대립했다.
“나는 보리스! 돌프 가문의 기린아! 전 국토에 소문이 난 무능아에게 머리를 굽힐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어리석은 놈이.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가? 나 개인의 무능을 비난하는 거면 몰라도 가문 끼리의 이야기라면 머리가 아파지는 일이 될 텐데…”
“흐극?!”
현 돌프 당주가 꽤나 골치 좀 썩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부러진 검을 집어던지고 에키시에게 주먹으로 달려들어오는 보리스. 그러나 그 기세도 오래가지 않고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명치를 무릎으로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무능한 귀족… 실제로 그림(게임)이었던 만큼 그 행동이 두드러져 보여서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야… 「나 엄청 쌔애애애애애애애!!!」 같은 행위 할 생각 없었는데… 완전 그쪽 방면으로 화려히 저질러버렸는딩…’
내심 「웩, 내 손발!」같은 소리를 내면서 당황하는 에키시. 그러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보리스를 내려보며 이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 시켰다.
“이, 이놈이, 비겁하게에…”
“자라, 이번 사건은 소문이 좀 날 테지만 따로 보복을 가하진 않으마.”
“꺼윽?!”
쓰러진 보리스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 높게 들어 올린 후 그대로 기절시킨 에키시.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에서 보자면 갑자기 보리스 측에서 덤벼들어 한 대 맞고 쓰러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다행히 공주님께서 끼어들진 않으셨고… 주변 사람들은 상황 파악이 안돼서 입을 다물었나…’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에키시는 쓰러진 보리스를 정중히 벤치에 놓은 후 크게 소리쳐 헛소문을 퍼트렸다. 그가 술에 취해서 의도치 않게 날뛰어버렸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도 본의가 아니었을 테니 부디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자 공주님을 포함해 대부분의 여성이 억지로 납득하는 얼굴로 자리를 떠나줬다.
‘공주님도 떠나갔나?’
공주님은 몰라도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있어선 갑작스러운 사건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유혈 사태를 볼 뻔했으니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산책이라도 떠나는 모양이다. 하나같이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이 에키시는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들」이라는 감상을 품었다.
“아, 그, 그게…”
에키시가 그런 별것 아닌 감상을 흘리고 있자 옆에서 그 은발 머리 소년이 다가왔다. 썬·라이니르라고 하는 주인공과 드디어 1:1로 마주 보게 된 거다. 예상보다 일이 쉽게 끝나기도 했고 에키시의 얼굴은 미묘하게 밝아 있었다.
“감사드립니다! 에키시·블랙우드 공! 덕분에 소란 없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난 그저 네가 흘린 은화를 주워 담았을 뿐이다. 너와 같은 기사에게 칭찬을 받기에는 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소인배스럽구나. 방금 한 거짓말도 아가씨들이 일부러 속아넘어갔을 뿐이니 그렇게까지 머리 숙일 필요 없다.”
“아뇨, 덕분에 유혈 사태로 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성품인 건지 순수하게 에키시의 행동을 감사하는 썬. 그러나 이 에키시라는 놈은 속으로 「오래간만에 힘 좀 썼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썩어빠진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실력에 외형까지 갖추고 있지만 웬만하면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인지라 이럴 때가 아니면 갑질 같은 건 못하니까 말이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시 자기소개를 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난 에키시·블랙우드. 블랙우드 공작가의 장남이며 세간에서는 무능이라 불리는 남자다. 어제 이곳에 발을 들이밀었으며 산책을 하다가 그 행패를 보아 얼굴을 들이밀게 됐다. 직위와 나라 간의 차이를 뛰어넘고 상대방을 구하려는 그 의기가 훌륭했으니 필시 이름 있는 기사라 보았다만…”
“핫! 제 이름은 썬·라이니르! 호모우 왕가를 지탱하는 기둥인 라이니르 가문이 배출한 기사입니다! 세간에서 불리는 별명은 잘못됐음을 한눈에 알았으니 신경 쓰지 마시길! 덕분에 살았습니다!”
서로 이름과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다시 이름을 교환한다. 아까와 달리 서로 매우 정중한 모습이었고 썬은 제대로 기사스러운 모습을 내보였다.
“뭘,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네 덕분에 왕성에서 파견 나온 메이드도 무사히 돌아갔다. 저기서 뻗어져 자고 있는 돌프 가문의 삼남과 그 가주를 대신해 감사를 표하마.”
“어, 어째서 블랙우드 공이 그를 대신해 사과를?!”
“음, 몰랐던 거냐? 그 메이드의 목에 달린 먹구름 브로치는 레즈우 왕가의 상징이다. 저 녀석은 그것도 모르고 주인이 있는, 그것도 왕가 아래에서 일하는 메이드를 추행한 거지. 나도 들은 이야기이긴 했지만 저것을 보자마자 확신했다.”
“어… 왕성… 입니까…?”
“방금 그 자리에는 레인 공주님도 계셨다.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공주님이 개입해 즉석 해 벌을 내렸을 테지. 너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저 남자를 구해주는 셈이 됐구나.”
“앗! 아아아앗?!”
설마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줄은 몰랐는지 두 눈을 깜빡이면서 놀라 하는 썬. 무능한 아이 때문에 돌프 가문의 가주가 고통받지 않게 됐으니 어떤 의미론 두 사람을 살린 셈이 됐다. 정작 저기 쓰러져 있는 보리스는 그것도 모르고 일어나자마자 성을 내겠지만 말이다.
“고, 공주님 앞에서 그런 추태를?!”
“그대로 내버려 뒀더라도 사건이 됐을 일이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으으으으…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힘을 빌려주지. 그러니 지금은 진정하고 이야기라도 나누자. 마침 나이대도 비슷한 것 같고 이것도 인연이니까.”
“으, 블랙우드 공~!”
에키시는 썬을 다독이면서 크게 웃었다. 대범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산책을 하자며 거리로 나아갔다. 쓰러진 보리스를 위해 시종을 부르기는 했다만 그 이상의 접점은 가지지 않도록 했고 에키시와 썬의 만남은 의외로 좋게 시작됐다.
‘소리 지르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가 너무 여성스러운데? 남자라는 걸 몰랐으면 진짜로 속았겠어.’
물론, 어느 게임이든 외전 스토리 같은 게 있는 법이다만.
지금의 에키시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