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능 귀족 여체 하렘-2화 (2/199)

 무능 귀족 - 지뢰와 착각이 크로스!(1)

우리 누님은 이 게임 대표 악역이었다.

로키시·블랙우드.

레즈우 왕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여걸.

악역 영애 역할에 위치하며 주인공이 공략하는 히로인들에게 찝쩍거리는 역할을 가지고 있던 여자. 이 게임 특유의 개그 성분이 현실에 침투해버린 탓에 게임과 별반 다름없는 성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인도 그쪽 성향이 있었기에 언젠가 남자 주인공과 히로인들을 사이에 두고 다툴 예정에 있는 여자다.

아름다운 긴 흑발과 적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사람이 갈라지고 전장에 길이 생겨난다. 그 까탈스러운 성격만 아니라면 구국의 영웅이라 불러도 될 사람이었지만 빈말로도 그리 좋은 취급을 받는 여성은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잖은가?

악역 영애다?

이 게임 최종 보스 위치에 있는 사람.

경우에 따라선 위치가 좀 바뀌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사람의 성격이 좋을 리가 없지.

우리 블랙우드 가문은 공작가. 레즈우 왕가 다음가는 서열을 가지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레즈우 왕가와 가까운 핏줄을 잇고 있으며 여차할 때는 왕위를 정식적으로 찬탈하는 게 가능한 위치에 있다.

게다가 당주가 될 우리 누님은 이 나라 최강의 여걸이며 가문의 앞 날도 창창. 실력도 실적도 돈도 권력도 전부 가지고 있는 우리 가문이기에 이빨을 드러내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나 에키시·블랙우드…

전생에 최현준이라 불린 소년의 목숨이 또 위협받고 있던 거지만…

“응? 또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니? 막 행위를 끝낸 것치고는 너무 무덤덤한 표정이구나. 혹시 나 몰래 걱정거리라도 생겼니? 이 누님이 해결해주고 올까?”

그런 걱정을 비웃듯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침대 옆 커다란 거울이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나와 누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내게 안겨 있는 누님. 커다랗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몸과 가슴에 허벅지 살이 탄탄한 여성.

반대로 나는 아직도 익숙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흑발의 미남. 전생은 확실히 동양인이었을 텐데 이렇게 오똑한 코가 생겨버리면 놀랄 만도 하다. 몸도 자연스럽게 커져서 안 그래도 커다란 누님보다 더 커다랗게 자라버렸다.

“아뇨…”

“어딜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자신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시선을 돌리고 내 옆에 안겨 있는 누님 쪽에 눈을 고정시켰다.

“누님도 참. 응석이 과하십니다.”

“그럼 오늘 플레이가 안 좋았거구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성의 일실에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침대. 그 옆에는 피를 나눈 가족인 로키시 누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리 묻힌 건지 찐득해진 흑발에 잔뜩 번진 화장. 눈물 자국이 눈 근처에 남아있고 예쁘게 부푼 가슴에는 이빨 자국이 몇이나 남아있다. 혹시 어딘가 불편한 곳이 없을까 몸 전체를 바라보니 엉덩이에 내가 남긴 손바닥 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고 있다 보니까 옛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옛 생각?”

“누님이 저를 죽이려고 안달이 났을 때 말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않을래? 이 누님이랑 이어졌으면 됐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 이 누님이 네 발치락에 엎어져서 징징 짜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니?”

“하하…”

서로의 몸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었다. 이렇게 보여도 우리 누님은 열등감이 가득한 여자다. 누군가에게 무엇 하나 밀린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닦달같이 화내 그것을 덮으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안되면 상대방을 죽이려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둔다.

그렇기에 본래 나는 죽어야 할 인물이었다. 레즈우 왕국이라는 우스운 이름을 가진 나라지만 그 전원이 레즈비언은 아니며 주인공이나 히로인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이끌어나가려고 한 제작진들의 생각이 반영된 이름일 뿐. 이 왕국의 내용물은 평범한 남존여비 사회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남자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거의 확실하게 가문을 물려받았을 우리 로키시 누님. 그러나 남자인 에키시가 태어나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고 그 남동생을 죽여 가문을 찬탈하는 게 그녀의 뒷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귀여운 남동생 에키시. 너에게 무능이라고 하는 이명을 짊어지게 한 이 바보 같은 누님을 용서해다오.”

“잔뜩 봉사 받았기도 하고 화나지도 않습니다만. 그 일이야 이제 와서 화낼 일도 아니잖습니까.”

“그치마안…”

다만, 나는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남았다.

죽기 전 20세, 현재 전생 후 15세, 누님은 18세.

본래 엑스트라로서 죽어야 할 에키시와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빌었고 지금의 내가 탄생하게 됐다. 누님을 위해서 이 국토 전체에 이름이 울릴 정도로 무능한 인간이 될 테니 살려달라고 했다만 그게 누님의 뭘 감동시킨 건지 그 자리에서 질질 짜기까지 하셨다.

당주가 되고 싶은 욕망에 이런 착한 동생을 죽이려고 하다니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냐며 자신을 비하하는 것도 있었고. 나도 누님도 아주 어렸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던 지라 어린아이 특유의 감성에 빠져 나를 살려두기로 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누님이 무섭기 그지없었다.

당시에 나는 7살이었고 누님은 10살.

누님은 그 시절부터 나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까고 말해 지금도 무섭다.

‘과연 이 게임 최종 보스… 모든 히로인들을 클리어한 후 겨우 히로인으로 공략 루트가 보이는 사람… 하지만 지금은 동생과 근친상간을 해대는 변태라니…’

“갑자기 또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말이야. 혹시 이 누님을 협박하는 거니? 흐응~?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우리 동생은 응석꾸러기니까 이 누나의 혀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니까~! 이 상냥한 누나야가 마지못해 펠라 해주는 수밖에 없네에~?”

‘뭐가 그리 기쁘신 걸까. 들뜬 모습이 귀여워서 좋지만 가끔씩 누님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그런 살벌한 옛 추억에 빠져 있자 누님의 입술이 빙그레 늘어났다. 눈이 쭉 째지고 혀가 뻗어져 내 귀두 근처까지 나아간다. 동생의 협박에 못 이겨 봉사를 해주는 이 여자는 지금 한정으로 내 적이 아니었다. 적이라 말하기도 우습고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있는 창녀도 여기까지 음탕하진 않을 거라 본다.

“쥬르읍, 츄으읍, 으응, 으으읍~!”

“윽…”

방심하는 사이 올라오는 쾌락. 혀가 내 귀두 뒷편을 긁어온다. 그렇게 드센 얼굴을 하는 것치고는 작은 입술이 내 귀두를 꽉 물어 남자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색골 놈… 역시 같은 핏줄이라니까… 후으음… 으웁…”

나를 올려다보면서 그 적갈색 눈을 가늘게 떠 음탕하게 혀를 놀려댔다. 귀두 전체에 침을 묻힌 후 엄지로 귀두 뒤를 살살 누르면서 혀로 요도 끄트머리를 놀려대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운 걸까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금방 답이 나와버렸다. 생각할 것도 없었던 거다. 우리 누님은 나와 몸을 겹칠 때마다 이런 봉사 능력이 오르고 계셨다.

사람의 목을 뜯던 그 손은 내 불알을 어루만지고 있고. 누군가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버린 그 입은 내 귀두를 만지고 있으며. 한 번 지껄이는 것으로 자기와 같이 떠들던 귀족 영애를 지옥으로 보내버린 그 혀는 지금 내 자지를 휘감고 있다.

‘커다란 암사자에게 안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후, 후흐으, 으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눈으로 웃어 보이는 누님.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빨아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감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누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펠라를 멈췄고 내 자지에 손을 올린 채 그것을 흔들며 불만을 쏟아내왔다.

“벌써 끝났니? 내용물이 텅텅 비었어? 어째 반응이 없다?”

“좀 봐주세요. 불과 방금 전에 한 손으로는 다 못 샐 정도로 사정했잖습니까. 아무리 저라고 해도 이 이상 나오진 않습니다.”

“누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나 보네? 아니면 뭐야? 또 그 계집년들이랑 붙어먹느라 정액이 고갈된 걸까? 오늘 누님이 집에 돌아온다고 하는데도 그 계집년이라 붙어먹었다 그거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프니까 자지 잡아당기지 마세요.”

“흐으으응…”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어둡게 웃는 누님. 이 세계의 메인 히로인들 전원이 그렇듯 사랑이 무겁다. 누님은 영지를 떠나 야만인들과 싸우고 있는 날이 많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풀 목적으로 밤에 내 방에 들어온다. 그리고 전장의 스트레스를 풀듯 나와 몸을 섞는 게 일종의 관례가 됐다만…

‘나도 단련하고 있는데… 힘 싸움은 몰라도 성욕을 이길 수가 없어…’

결국 죽을 예정인 엑스트라. 블랙우드 가문의 핏줄을 이어 재능 넘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이 게임 최종 보스에게 이기는 능력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심을 내면 성벽도 가르는 누님을 힘 싸움으로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자란 신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누님을 침실에서 이기기엔 모자란 점이 너무 많았다.

“누님, 내일도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밤늦게까지 동생의 몸을 갈구할 시간이 있으십니까?”

“동생과의 스킨십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있나.”

“스킨십?”

“그래, 스킨시이입~!”

이걸 스킨십으로 분류하고 있는 건가.

상식이 이상하다.

똑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말과 행동이 다른 것 같은데.

‘아아… 하나, 둘, 셋, 넷… 나 일단 대륙 공용어 쓰고 있는 거 맞지…?’

원래 내가 있던 세계의 각종 나라의 언어가 섞여버린 짬뽕 같은 언어. 애초에 게임 개발사가 이 미소녀 게임을 그따위로 만들었으니 언어가 맛이 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이제 와서는 이것도 친숙해진 말이다.

“일이라고 해도 야만족 그 쓰레기들을 정리할 뿐인 간단한 일이고~? 이 누님에게 걸리면 하루도 안돼서 정리되는 거고~? 우리 귀여운 남동생은 이 아름다운 누님을 위해 열심히 어리광 부리면 그걸로 OK 거드은~?”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만 생각 외로 빠르게 끝났군요.”

“앙? 한 달?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누님의 부하인 엘피가 그랬습니다만?”

“아… 엘피가 그런 소리를… 그 녀석 너 싫어하잖아? 나랑 너랑 떼어 놓으려고 일부러 그런 소리를 한 걸지도~?”

“흠, 일리 있네요.”

방금 말한 누님의 부관 엘피는 이 게임의 서브 히로인. 누님을 공략하면 나중에 공략할 수 있게 추가되는 캐릭터지만 여기서는 그저 레즈비언일 뿐이다. 누님이랑 육체관계가 있는 내가 싫고 싫어서 저주까지 할 상대이기에 굳이 그녀를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녀석에게 들은 말은 잊어. 당주로서 해야 할 일은 끝냈고 야만인들도 밀어냈으니 이제 다시 왕도의 학교생활로 돌아갈 예정이야.”

“공주님도 참 큰일이네요. 일개 학생인 누님을 투입할 정도로 야만인들의 저항이 거세니 말입니다. 학창 생활과 전장을 왔다 갔다 하라니 처음에는 뭐 그리 심한 명령인가 싶었습니다만…”

“단순히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난 거잖아.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그냥 학생으로 두기엔 아까웠던 거겠지. 실제로 날 투입한 기점으로 야만인들 대부분이 대륙 구석으로 사라졌고 호모우 왕국과의 국교도 안정됐으니 왕도에 전입해오는 호모우 국의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왕도의 학교라…”

“너도 곧 이쪽에 편입될 예정이잖니? 이번 일을 빨리 끝마친 것도 동생과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특별 사관으로 전장에 서 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들었습니다만.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전장에서 붉은 피니 검은 늑대니 열심히 띄워줘도 역시 옆에 동생이 없으면 옆구리가 시려서 말이야~? 군부에 속하지 않겠냐는 말도 뻥 차고 한 걸음에 집까지 달려와버렸지 뭐야~?”

오호호호 웃으며 내 귀두와 불알을 살살 쓰다듬는 누님. 그리고 혀가 내 유두로 나아가 그것을 두세 번 살살 빨고는 내 목덜미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사랑이 무겁다 못해 짓눌릴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누님의 애정을 받아들였다.

‘스토리가 이상해졌어. 누님이 벌써 등장하진 않을 텐데.’

레즈우 왕도의 학교는 이 게임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올해 야만인들의 침공이 정리되고 옆 나라인 호모우 왕국과의 국교도 안정됐으니 주인공인 왕자님께서 그 학교에 전입을 시작할 거다.

본래 누님은 그 학교 3학년 여학생으로서 이야기 후반부에 등장할 예정이지만 현실은 그것과 달랐다. 내가 있어서 그런지 누님은 야만인들과의 전쟁을 하루아침에 끝내버리고 학교로 귀환하는 스토리가 됐다.

‘머리가 아파.’

호모가 되기 전에 주인공을 레즈비언 공주님과 결혼 시켜야 하는 게 내 목표. 그렇지 못하면 호모우 왕국과 레즈우 왕국의 전면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는 불행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을 누님이라고 하는 커다란 혹덩어리를 달고 성공시켜야 한다니…

‘좆망겜. 만든 새끼 뒤졌으면.’

무심코 옛날 말투로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난 절대 나쁘지 않다.

‘호모우 왕국와 레즈우 왕국이라니 네이밍 센스 뭐냐고. 아직도 익숙해지질 않잖아 이 미친놈들아.’

네이밍 센스도 그렇지만 진짜 좆같은 난이도잖아.

전부 이 세계가 나쁜 거야.

난 나쁘지 않아.

“하지만 정말 왕도에 가도 괜찮겠어?”

“갑자기 왜요?”

“네 의견을 수용해서 왕도행을 허락했어.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 좋긴 좋다만. 원래 이 근처에서 나간 적도 없잖아? 자랑하는 기사단과도 떨어지게 될 테고 강제로 기숙사 행일텐데…”

“그 기사단은 누님 겁니다. 곧 가주가 되실 분이 그런 걸 착각하시면 곤란하죠. 그리고 이 근처에서 나간 적도 없다 하셔도 도적 토벌도 다녀왔던 몸입니다. 옆 나라를 다녀온 적도 있고 아예 성에 틀어박혀 산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내용물은 소시민이다. 에키시로써 산 시간과 캐릭터 성이 남아있는 것 외에는 아직 내 안에 나란 놈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기숙사에서 지내는 거야 별 불만 없었다. 옛 기억은 거의 사라진지 오래인지라 추억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런 부분은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무능이라고 불리는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을지… 이 누님은 걱정에 또 걱정이라…”

“………”

무능한 에키시.

그게 내 별명이다.

누님을 가주로 밀어주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무능한 짓을 하고 그런 소문을 퍼트린 결과 말 그대로 전 국토에 울리는 바보가 됐다. 나로서는 성공적인 결과였지만 후에 마음을 개심한 누님에게 있어선 트라우마가 되는 단어. 누님이 날 이렇게 아끼는 것도 그게 이유기도 했다.

“누님도 참 시답잖은 걸로 고민하십니다.”

“시답잖다니, 네 이야기인데…”

그러나 내 안에서는 이미 끝난 이야기다. 슬슬 잠도 오고 눕고 싶었기에 누님의 호감도를 벌기 위해서 단어를 선택했다.

“그러니 더욱이 왕도로 가겠습니다. 누님이 가주가 되는 건 거의 확실시된 분위기고 저는 왕도로 떠나 거기서 제 오명을 풀고 오겠습니다. 그러는 김에 누님과 왕도 거리를 누벼보는 것도 한때의 일흥이라 생각합니다만.”

“거리라… 집안 호랑이인 너에겐 위험하지 않을까…”

“하, 누님이 저를 지켜주실 거 아니었습니까?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야만족을 죄다 물리친 누님이 제 옆에 있는 겁니다. 그런 제가 대체 뭘 무서워해야 하는 건지 이 무능한 동생에게 알려주길 바랍니다만?”

“……아.”

내 말에 뾰족한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웃는 누님. 내가 누님을 대놓고 칭찬하는 일이 드물어서 그런지 매우 기쁘신 모습이다. 평소라면 좀 애둘러서 잘했다는 식으로 끝마쳤지만 오늘은 좀 띄워주기로 했다.

“누님의 명성과 수완이라면 학교 내에서도 파벌을 쌓고 있을 것 아닙니까. 누님의 다리 아래에 깔리고 싶은 변태라면 셀 수 없이 있을 거라고 망상해봅니다만. 혹시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아, 아니! 이 누님 엄청 잘 나가지! 아무렴!”

메인이나 서브에 속한 히로인 대부분이 레즈비언이고 대놓고 나에게 적의를 보내는 엘피도 있으니까 누님이 학교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안 봐도 뻔했다. 예정된 스토리 라인 중 하나니까 이 부분만큼은 변함이 없으리라. 우리 누님이 레즈 퀸이라니 솔직히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누님과 파벌의 비호 아래에 있는 저를 건들 수 있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 하는 겁니까? 그것도 블랙우드 공작가의 핏줄을 이은 저를?”

“아니, 없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잔가지를 쳐내듯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 아닙니까? 누님도 참 재밌는 걱정을 하십니다.”

제갈공명이 된 것처럼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흔들고 그대로 누님의 어깨를 안아 같은 잠자리에 누웠다. 이걸로 잘 준비도 됐고 누님도 적당히 들떴으니 곧 안심한 얼굴을 하시리라.

“그래… 내가 헛된 생각을 한 걸지도… 하지만 역시 색안경 낀 눈으로 보이게 될 걸 생각하면 이 누님은… 마음이 아파서…”

“그보다, 누님.”

“응?”

“배가 차갑습니다만.”

“아, 응…”

장난삼아 그렇게 말하니 누님은 엉덩이에 개 꼬리를 단 것처럼 내 위에 달라붙어왔다. 키 자체는 내가 더 크니까 누님이 내 가슴팍을 베개 삼아 누운 것 같은 자세가 완성됐다. 하던 말이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말이 끊긴 것을 계기로 입을 닫아주셨다.

“후… 후흐흥…”

이 자세가 마음에 드신 건지 그대로 내 심장 부근에 귀를 대고 눈을 감은 누님. 그런 누님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불을 손으로 끌어와 두 사람의 몸을 덮었다. 귀엽게 코를 골아대는 것이 정말로 잠이 왔던 모양이다.

‘배고프고 무겁다. 너무 정기를 빨린 탓인지 전립선도 아파.’

그런 누님을 내려보는 내 기분은 찜찜했다. 친족 살인 예정의 레즈 퀸을 공략했더니 이젠 근친상간 완전 좋아하는 병적 사랑 누님이 된 거다. 막 전생했을 무렵은 죽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만 결과물은 근친상간을 즐기는 무능 귀족인가.

‘미소녀 게임의 최종 보스와 함께 원작 돌입이라니…’

왕도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지만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무능한 나를 레즈비언 공주님께서 얼마나 좋게 봐줄까. 정체를 숨긴 왕자님과 얼마나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공주와 왕자들의 측근을 밀어내고 두 사람을 해피엔딩으로 이끌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누님의 힘을 빌릴 뿐인가.’

결국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의문투성이의 밤.

난 그대로 눈을 감아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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