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75화 (375/383)

제법 어두워진 시간, 노희방은 소교주의 제의에 대답하지 않은채 다시 감금상태로 돌아갔다.

소교주의 제의는 비교적 명확했으나, 그녀로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종류였기에 돌아와서도 노희방은 고민에 빠졌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상업에 진출한다?'

전대미문, 마교라는 단체 자체가 총력을 기울여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그것을 개방에서 보조해주길 바란다는 제의였으니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째서입니까? 귀교가 금전적으로 곤란할 일은 없을텐데요?>

<그렇더라도 돈은 많을수록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대가 승낙하면 알려주도록 하지.>

대륙에서 무력과 돈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 현재 개방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 이외에도 마교에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줄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영호경이 인정한 것처럼 마교에는 상업 이외의 목적이 있을 것은 분명한데, 그 정답까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

다만 노희방은 한 가지 결론은 확실히 내릴 수 있었다.

'마교는 정파와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즉시 그녀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살려두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정파 최대의 정보단체인 개방의 우두머리를 살려두어 얻는 이득은 거의 없지만, 만에 하나 그녀를 놓쳤을 경우 은밀하게 진행하던 일이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설득하려 한다는 것은, 정파와 충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으나 노희방은 도리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장 자신의 명줄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무림일통 이외의 목적에 눈을 돌린 마교라니, 대체 어떤 심모원려가 숨어있을 것이란 말인가.

만약 소교주의 말대로 어디까지나 새로운 유통의 흐름을 창출해내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개방이 한 다리 걸쳐서 이득을 챙기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겠지만, 역시나 단서가 너무나 부족했다.

"...우선 머리를 식히고 보자."

예상하지도 못했던 소교주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녀에게 상상 이상의 제안을 해온 탓에 생각이 좀처럼 정리되질 않았다.

욕실로 들어간 노희방은 바가지로 물을 떠서 세수를 했다. 차가운 감각이 피부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문득 어깨까지 담갔던 따뜻한 목욕물이 생각났다.

<강 소협은, 지금 어디에 두셨습니까?>

<적어도 그대가 있는 곳으로 지금 되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알고 있겠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만약 강윤이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그렇게 속전속결로 탈출을 결행하지 못했을테니까.

애초에 내력도 온전한 두 사람을 한 곳에 모아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대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장 그 자를 해코지할 일은 없으니 염려마라.>

노희방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소교주의 대답이 허언이 아니기를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답답하지만,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야 아무 의미 없는 문제라는 것도 사실.

결국 노희방은 다시 한 번 얼굴에 찬물을 뿌리면서 식혀진 머리가 좋은 생각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노희방이 한창 걱정으로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사내가 몽아의 눈앞에 나타났고, 그녀는 얼른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라."

상당히 높은 경지의 마교 무사가 뒤에서 사내를 손으로 떠밀었고, 사내는 미간을 순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다친 곳은 없을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사내의 전신을 훑은 몽아는 우선 그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내심 안도했다.

"얌전히 있어라. 또 허튼 수작을 부렸다가는..."

마교 무사는 한 차례 으르렁대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고, 갑자기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된 상황에서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지난 겨울, 두 사람의 동행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형태로 끝을 맺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태."

"...오랜만일세, 1년만인가?"

그런 상황에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어 인사하자, 몽아도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침묵.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떻게 대화의 운을 떼어야할지 알 수 없었던 몽아는 곧 이상한 점을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자, 마교도겠지? 어째서 자네를 여기에 넣은 것인가?"

"글쎄요... 아마 감금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저도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나자, 사내 쪽에서 알아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고 몽아는 티나지 않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사실 눈앞의 사내에 대한 몽아의 감상은 꽤나 복잡한 것이었다.

남편을 잃고난 이후, 그녀는 사내란 족속을 꺼리다못해 적개심까지 품어왔다.

남편의 벗을 자처했던 사내들은 정작 남편이 위험할 때는 아무도 도움을 주려하지 않았고 홀로 남은 그녀에게 음심을 드러내는 작자들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불문에 몸을 두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맨들맨들하게 머리를 삭발했음에도 파락호들에게 희롱당한 횟수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

"...그러니까 노 방주와 함께 뒀다간 또 탈출하려고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죠. 그럴 바에야 내력을 봉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랬군..."

하지만 막상 그녀가 사내에게 당한 짓은 그야말로 최악, 어둠 속에서 알몸을 탐닉당하며 부끄러운 뒷구멍을 사정없이 범해졌다.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살심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정작 사내를 보는 그녀의 마음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운 것도...'

"머리..."

"으, 음?"

저도 모르게 귀밑머리를 만지작대고 있던 몽아는 사내의 목소리에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머리가 많이 자랐군요."

"그, 그래. 그, 그게, 어쩌다보니... 자를, 기회가 없어서..."

거짓말이었다.

아는 사람이 본다면 알겠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지극히 최근에 다듬어진 흔적이 있었다.

실은 사내와 헤어진 뒤부터 '귀찮아서 내버려두는 것뿐이다' 라고 자신에게 거짓을 속삭이면서 길렀지만, 결국 사천을 찾기 직전에 한 번 손질을 하고야 만 것이다.

"아름다우십니다."

"아, 아름답기는, 무슨..."

몽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이런 판에 박힌 찬사를 듣는 것 역시도 사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천하제일의 무공 따위에는 관심을 안 보이는 담백한 인간이라서? 그가 젊고 잘생긴 남자라서? 자신의 어려움을 염려해서 뒤를 밟기까지 해주는 사람이라서? 생명을 거둔 상대가 악적임에도 그에 고통받는 여린 모습 때문에? 그도 아니면 그녀에게 욕정을 품는 것이 실은 꽤나 마음에 들었나?

이러한 혼란스러운 마음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몽아는 사내의 행방을 쫓을 수 있는 노희방까지 부추겨가며 사내의 뒤를 밟았다.

<강 소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행적이 있습니다.>

<뭐라구요?>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내에게 이미 의심을 품은 노희방을 살짝, 아주 살짝 부추길만한 정황만을 골라말했을뿐.

원래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사내를 뒤따르다 적절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서 합류할 작정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뼈아팠다.

'아무래도 지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겠어.'

몽아는 일단 자신의 목적은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소교주와 같이 있었던 것인가?"

"아, 그건 아닙니다. 잠깐 얼굴을 볼 기회는 있었습니다만..."

"하긴, 그렇겠군."

몽아는 자신을 영호경이라고 소개한 마교 소교주를 떠올렸다. 늦은 나이에 아이라도 가진 것인지 부풀어오른 배는 운신하기에도 버거워보였지만, 막강한 내력을 머금은 이기어검은 악랄하기까지 한 기세를 피워올리며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압도했다.

설령 넷이 동시에 덤비더라도 그녀를 당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다른 신통한 계책이라도 떠올리기 전에는 섣부른 짓은 하지 못할 것.

'마교가 손을 쓰지 않는 사이에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해야할텐데...'

영호경의 존재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로 그들이 빠져나가려고 해도 아마도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눈앞의 남자가 그녀를 설득해서 끌어들이고, 굳이 탈출할 필요성도 없게 만드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알 도리가 없는 상태였다.

내가 기억하는 몽아라는 여자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자기 개인의 일을 우선하는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썅마이웨이.

어느 정도 대의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던 황보효선이나 노희방과는 다른, 그녀를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는 사실 마땅한 계획이 세워진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이랑은 반응이 많이 다른데?'

나를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써준 것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같은 방에 들어온 결과, 나는 그녀에게서 기대 이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받았다.

사실 머릴 기른 모습이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는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했는데 그녀는 애매한 태도로 부정할 뿐 전혀 싫어하는 모양새는 보이지 않았다.

내 참견, 아니 내 존재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점에서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그녀와의 인상적인 이벤트라면 단 하나뿐이었다.

설산 속에 갇힌 채 그녀와 체온을 나누며 끈적하게 녹아내릴듯이 박아댔던 즐거운 항문섹스.

'혹시 정말 먹히는 건가, 자지 외교?'

어쩌면 황보효선이 이상했던 거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먹히는 것 아닐까.

저번에 채수란이 말했던 것처럼, 얼렁뚱땅 보지에 자지를 넣고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박아대면 정말로 밀프를 넘어오게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기대가 내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따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슬쩍 시선을 움직여 몽아의 전신을 스캔했다.

소박한 승복을 걸쳐입었다지만 꼴리는 몸매가 어디 딴 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작년 겨울, 눈보라가 치는 곤륜산 깊은 곳에서도 내 자지를 발기시켰던 풍만한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아무래도 민머리라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머리.

'가능, 엄청나게 가능하다.'

이 곳도 방의 구조는 노희방이나 황보효선의 방과 마찬가지라서, 어엿한 침상이 갖추어져 있었고 거기에서 이 여자를 범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바라마지 않는 일.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이었던 그 때와는 달리, 촛불 아래에서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알몸을 처음 볼 생각을 하니 조금만 긴장을 늦추어도 발기할 것만 같았다.

"...강 소협?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고 있는가?"

"앗, 죄송합니다, 사태."

유일한 문제점이라면 그녀의 신분이 불제자이고 색을 멀리해야할 계율이 있다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짐에서 발견된 애널비즈의 존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기왕이면 앞쪽도 오픈해주면 좋겠지만 당장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게 좋겠지.'

아마도 다른 두 사람은 당분간 얌전히 있어줄테니 나와 몽아가 여기서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꽤 길 것이 분명했다.

난 그 시간동안 몽아를 자빠뜨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그리고 섹스의 쾌락으로 절여진 그녀가 내게 우호적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대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