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해가 기울어진 야심한 시각.
"하아아..."
노희방은 뜨거운 목욕물에 어깨까지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숨소리를 토해냈다.
운기행공을 하면 근육의 피로도 해소되기 마련이니 그녀의 몸에 쌓인 피로 따위 있을리가 없건만, 목욕물에 몸을 담그자 절로 몸이 풀리는 듯한 것이 실로 낯선 감각이 아닐 수 없었다.
첨벙
손으로 목욕물을 떠서 얼굴을 한 번 적신 노희방은, 그녀가 들어와있는 욕실을 둘러보았다.
뇌옥이라고 하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내장.
아마도 신분이 높은 사람을 가두는 것을 전제로 제작된 곳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 때문인지 이렇게 갖추어진 욕실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사용하게 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주께서 먼저 사용하시겠습니까?>
강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을 받고 그것을 내력으로 데우며 준비해주는데, 그것을 거절하기에도 이유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개방 제자 가운데 하나가 몸을 다쳐 강윤의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데, '위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며 정기적으로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고 들었다.
결국 노희방은 반쯤 떠밀리듯이 욕실에 들어오게 되었고, 난생 처음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해보게 된 것이었다.
'목욕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개방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여인이었기에 몸을 씻는 것은 꽤 신경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데워서 사용한 적은 없었는데, 내력이 깊어 차고 뜨거운 것에 비교적 자유로운 그녀 입장에서는 물을 데울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력이 일천하고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방도들에게 감춰야했던 시기에는 날이 춥고 물이 차면 따뜻한 물은커녕 애초에 씻지를 않는 것이 거지의 생활방식이었다.
그러니 몸이 깨끗해지기만 하면 그만. 그것이 지금까지의 노희방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본방으로 돌아가면... 하나쯤 만들어볼까."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목욕물에 들어와보니, 따끈한 물이 뿜어내는 온기가 몸에 스며드는 느낌은 꽤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그녀의 위치에 비하면 대단한 사치도 아니었고.
갇혀있는 몸으로 하기에는 태평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노희방은 아마 문제없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확인한 바 있지만 강윤의 무공은 이미 후기지수 반열에 둘 수 없는 수준이었고,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적들은 그들의 내력을 봉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몸을 수색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내일 아침.'
아침 식사가 들어오는 순간에, 결판을 낼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아니면 새벽에 일을 벌이고 싶었지만 강윤이 반대했다.
<황보 여협에게 손을 썼다면 저희를 이렇게 곱게 놓아둘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놈들은 방주나 몽아사태가 성급하게 움직이도록 일부러 덫을 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기에, 노희방은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게다가 어제와 오늘 확인해본 바로는 여기에 주둔하고 있는 무사들은 오히려 낮에 바깥으로 들락거리는 것 같았으니, 아침에 일을 벌이는 편이 더 성공률이 높을 것이라고 결론지은 참이었다.
'그리고 만전을 기하려면 우선 쉬어야지.'
노희방은 몸을 일으킨 다음, 속곳을 걸치고 한쪽에 걸어둔 옷을 집어들었다.
그녀의 몸에는 전혀 맞지 않을만큼 커다란 옷에 대강 팔을 꿰고, 허리띠로 묶자 조금 찢어진 곳이 있기는 해도 얼추 몸이 전부 가려졌다.
그리고 사내에게 빌린 옷을 걸친 모양을 한 번 훑어본 노희방은, 그녀가 씻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사내에게 약간 머뭇대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두 가지.
내가 노희방과 같은 방에 오늘 하루 낮을 갇혀있으면서 느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자세히 뜯어볼수록 노희방의 미모가 상당하다는 것.
꾸미는데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개방이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몰라도, 더럽지는 않은 정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그녀를 씻겨놓고 보니 예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외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기가 채 닦이지 않아 촉촉한 머리카락을 묶고, 말끔해진 얼굴 아래로 내 장포를 대강 걸쳐 가린 몸매를 보니 색마의 본성이 미친듯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궁혜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얄팍한 가슴은 조금 아쉬웠지만, 헐렁한 옷에 가려져있던 커다란 골반과 굴곡진 엉덩이를 무심한 척 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고역이었다.
그리고 둘째.
'부족해... 하룻밤으로는 엄청 부족해...!'
지난 며칠간 응축되어있던 성욕을 다 처리하기에 영호경과 채수란과 보냈던 하룻밤으로는 아무래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방아쇠가 될만한 것이 없었다면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겠지만, 갑자기 노희방이 여자 냄새를 풀풀 풍기기 시작하자 자지가 폭풍발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이 뒤집혀서 바로 힘으로 덮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뭐하고 있습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괘, 괜찮습니다. 방주 혼자 쓰셔도..."
"안 됩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보이지만 한 번 기진해서 쓰러진 몸 아닙니까? 게다가 옷가지까지 맡겨놓고 침상까지 혼자 차지하다니, 저는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애초에 보통 사람을 가두면 한 명씩 가두니, 침상을 마련한다고 해도 당연히 하나.
그 하나뿐인 침상에 누워서 이불을 들어올린채 옆에 누우라며 손으로 팡팡 두드리는 노희방의 얼굴을 보니 애초에 딱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노희방에게 내 옷을 빌려준 이유는, 서로 옷이 꽤나 지저분한데도 갈아입지 못하니 세탁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홀딱 벗겨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쪽이 무림에서 후배이기도 하고, 호의를 베풀어두면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결과였는데 그 쓸모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생겨난 것 같았다.
"저는 그냥 바닥에서 자겠습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웬만하면 하루 정도는 푹 잠을 자서 회복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 다음 노희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내일 강 소협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려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저러한 구실이 있으니 괜찮다, 라는 식으로 구슬리는 이 여자는 대체 내가 왜 거절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무리 아줌마라도 여자와는 함께 눕지 못하는 예의바른 청년이라서? 아니면 엄마랑 같이 자기 싫다는 어린애 같은 기분으로?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잠꼬대인척, 허리에 손을 감고 엉덩이에 풀발기한 자지를 문지르고 목덜미에 코를 박고 살냄새를 맡고 싶었다.
아니, 그 이상. 저 허름한 바지를 벗기고 큼직한 엉덩이를 틀어쥐고 자지를 밀어넣고 마음껏 내 정액을 싸지르고 싶었다.
'뒷감당만 할 수 있다면 말이지.'
협력자로 만들 수 있다면 보지노예로 만들어도 그만, 합리적으로 설명해서 납득시켜도 그만이었지만 아무래도 전자는 불안감이 남았다.
정말 다른 짓은 안 하고 그냥 같은 침대에서 잠만 자거나, 잠꼬대인척 하는 선에서 멈춘다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좋습니다. 정 강 소협이 저와 같이 눕는 것이 곤란하다면, 이렇게 하죠."
한편, 끈질기게 누우라고 권하던 노희방은 한숨을 푹 쉬고는 이불을 치우며 일어났다.
"제가 바닥에서 자겠습니다. 제가 옆에 없으면 강 소협이 여기서 자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건...!"
노희방은 말로만 끝내지 않았다. 즉시 침상에서 내려와서 몸을 낮추고 바닥에 손바닥을 짚으며 누우려는 자세로 들어가는데,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제가 졌습니다, 방주."
"잘 생각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침상에 도로 올라가는 노희방을 보고서, 나는 차라리 최대한 일찍 잠들어보기로 했다.
'나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인데, 당장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발정하진 않겠지.'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 겠지?
노희방은 이불 밑으로 머뭇머뭇 들어오는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다른 방도들과 한데 뭉쳐 체온을 나누며 잠드는 일은 예사였던데다, 두 사람의 연배 차이는 또 어떠한가. 어머니와 아들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외설적인 쪽으로 생각이 가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나이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평범한 무림의 여인이라면 조금이나마 꺼림칙함을 느낄 일이었지만, 노희방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소리.
'역시 많이 피로했구나.'
뛰어난 내가고수라면 운기행공을 통해서 어느 정도 피로를 회복하고, 그럭저럭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완전한 회복은 아니라는 의미.
아마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을테지만, 내력을 한 번 바닥까지 긁어낸 사람이 다시 내력을 회복시켰다고 해서 당장 몸상태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눕자마자 잠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노희방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잠든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는 얼굴은 평범한데...'
사내의 말마따나, 그가 남에게 의심을 사지 않게 행동할 생각이었다면 훨씬 능숙하게 감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결국 그녀로서는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한 셈이었지만,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이 사내뿐.
이렇게 안면을 튼 것도 인연이니, 무사히 빠져나간 다음에는 또 얼마든지 그를 예의주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노희방은 조용히 속삭였다.
"잘 자요..."
몸을 살짝 돌린 노희방은 눈을 감고 긴장을 풀었고, 만만치 않게 피로했던 그녀 역시 곧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 속의 그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드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다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둥실둥실 뜬 구름이 가리고 있어 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모습이 궁금했던 그녀는 구름 사이로 파고들었고, 부드러운 구름을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 실처럼 되어있는 구름을 계속 파고들어가자 그 실타래는 조금씩 그녀의 몸에 엉켜들었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둔 상태였다.
"안 돼... 으음... 흡?!"
갑갑함에 몸을 비틀며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던 노희방은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제야 자신이 보던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조금씩 자신의 주변 상황을 다시 인식한 그녀는,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 사내의 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지? 설마...?'
그리고 어느 정도 잠에서 깨어난 그녀의 머리는 자신의 둔부를 뜨겁게 문대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그녀의 머리가 더없이 맑게 깨어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명쾌한 답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