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68화 (368/383)

아, 손떨린다.

그야 지금까지 밀프를 열 명도 넘게 건드렸으니, 언젠가는 나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갑자기 개방 방주? 시작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아?

"그럼 이제부터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군요. 우선 제가 생각해둔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의심이 상식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간 덕분에, 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점.

그 덕에 나는 그나마 마음 편하게 노희방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저희 둘만 빠져나간다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무슨 생각인지 내력을 봉쇄하지 않았으니까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요."

"소협도 면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황보 여협과 몽아사태가 저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 분이 말입니까...?!"

이미 알던 사실이지만 나는 짐짓 처음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황보효선은 몰라도 몽아는 왜 굳이 따라왔지?

한편 노희방은 혹시나 싶었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분의 명예를 위해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어디까지나 두 분은 제 부탁에 따라 동행해주셨을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딱히 신경쓰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노희방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오히려 나는 따로 말도 해놓지 않은 몽아가 노골적으로 나를 의심하고 있는 노희방에게 어째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으니까.

설산에서 어물쩍 뒷구멍을 따먹은걸 노희방한테 말해줬다면 훨씬 위험했을텐데, 아무리 봐도 노희방은 진상을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걸 자기 입으로 밝히기는 역시 좀 그랬나?'

"다행이군요. 아무튼 다시 본론입니다만, 저희가 탈출하기 전에 어느 정도 두 분의 위치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 황보 여협은 목소리가 닿을 정도의 위치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

"어쩌면 변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점도 미리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노희방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보효선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혹시나 싶어 영호경에게 강기막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달라고 했더니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긴 것 때문에 목이 잘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자꾸 시끄럽게 굴면 황보 여협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게다가 본의는 아니었지만, 당시 노희방(당시에는 누군지 몰랐지만)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해서 형완에게 조금 센 멘트를 주문했더니 막나가는 인상을 줘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탈출해야해요. 가능하다면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너무 서두르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줄어들어서 곤란한데.

하지만 노희방에게 여기 있는 마교도들을 옹호해줄 수도 없는 나는, 우선 그녀의 계획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이상입니다, 소교주."

"그런가? 수고했다."

영호경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형완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린 남편은 무사히, 의심을 사지 않고 개방 방주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지경이 되어가면서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가 의문이기는 했지만, 현 단계에서는 정파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그녀로서도 이득이기는 했기에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그런데 소교주, 진정 내력을 봉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혹시 놓치기라도 한다면..."

"상관없다. 그 부분은 강 소협이 알아서 조정하기로 했으니. 그리고 정 어려울 것 같으면 제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에 차질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형완의 질문에 영호경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최선은 회유하는 쪽이지만...'

끝까지 거부한다면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정파 쪽에 알려지는 날에는 골치아파질지 모르지만, 마침 은령회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는 것이다.

죽여서 화골산 따위로 시신을 뼛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면, 정파 쪽에서는 마교보다도 은령회에 의심의 시선을 보낼 것이 틀림없었다.

한 사내의 여인이 되어 조금 유해졌다고 한들, 영호경은 여전히 마교의 차기 교주가 될 몸.

자신과 같은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면, 자비 따위를 베풀다 교에 해가 되는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문제는 일이 그렇게 되었을 때 강윤이 꽤나 상심할 것이란 점이었는데, 영호경은 그 때 그를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에 생각이 쏠려있었다.

"무슨 일이냐?"

그래서 보고를 다 마치고, 다른 질문도 하지 않던 형완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뒤늦게야 느끼고 영호경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교주께 외람된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거라."

영호경이 보기에 형완은 좋게 말하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주변머리가 없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초고수인 일장로의 제자답게 출중한 무공을 가지고 있고, 교에 대한 충성심은 확고했지만 시키는 일을 해내는 것이 고작. 때로는 시키는 일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쓸만한 인재임은 틀림없었지만 그리 큰 관심은 끌지 못하던 그가 외람된 질문이라니, 영호경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소교주께서는 강 소협을 꽤나 신뢰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혹시나 형완이 강윤에 대한 의심이나 질투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불쾌함에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린 그녀에게, 형완이 다시 말했다.

"그것은 혹, 그가 소교주의 부군이기 때문인지요?"

"...!"

생각지도 못한 곳을 찔린 영호경은 눈을 부릅떴다. 그가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가,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졌던 영호경은 다음 순간 기세를 끌어올렸다.

"흐억...!"

비록 강호에서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엄연한 절대고수였다. 아이를 품고 있다고 해서 그 내력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 것이다.

막강한 내력에서 비롯된 기세가 오롯이 형완에게 집중되자,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갔다.

"어찌 알았느냐? 너 말고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소, 소교주... 저, 저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기세를 견디며, 형완은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교주께, 크흑...! 충성, 합니다...!"

"...그런가?"

형완의 말의 의미를 단숨에 이해한 영호경은 기세를 거두었고, 형완은 기침을 하며 간신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쿨럭...!"

전신을 짓누르던 기세가 갑자기 사라지자 형완은 바닥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 숨을 고르고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영호경은 형완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스승님께서 귀띔해주셨습니다. 혹시나 소교주께서 아기씨를 회임하셨다면 어쩌면 그가 상대일지도 모른다... 라고."

"일장로가?"

영호경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그것을 아는 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서야 결과물이 나올리가 없으니 누군가 뱃속 아기씨의 아버지가 있기는 할 것인데, 도통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소교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부분은 과연 강자존을 숭상하는 마교다운 일면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호기심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터.

"모른체하면서 다 보고 있었군."

하지만 일장로는 혈마와 그 제자가 마교 총단에 왔음을 알고 있는 것과 동시에, 영호경이 혈마의 제자와 묘하게 자주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본 인물.

게다가 손녀뻘인 영호경이 아직도 한창 때라고 여기는 그였기에, 나이가 반절도 안 되는 사내와 그녀를 엮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스승님과 저는 교주께 충성합니다. 결코 이 사실을 다른 곳에는 알리지 않을 것이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믿어보겠네."

영호경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지만, 여전히 형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여기서 말이 끝나봐야, 자신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 말해보라는 의미로 지그시 시선을 보내자, 형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는, 소교주께서 그를 부군으로 맞이한 것을 만족하고 계신지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일장로가 그리 물어보라 하던가?"

"어디까지나 제 독단입니다."

"전에도 일장로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여서 단단히 혼이 났다고 들었는데, 버릇이 덜 고쳐진 모양이군."

자신의 말에 형완이 움찔하는 것을 보면서, 영호경은 일장로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떠올렸다.

영호경이 이미 한 번, 교를 위해서 별로 마음에도 없는 사내와 혼인을 한 전적이 있었기에 혹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으리라.

'만족이라...'

당연히 만족하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주제에, 침대 위에서는 마치 어린 여인을 다루는 것처럼 그녀를 농락해오는 사내와의 밤을 그녀는 사랑했다.

단단하고 커다란 육체에 깔린채 남근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녀는 꼼짝없이 사내의 암컷이 되어 쾌락을 갈구하는 신세로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안기는 순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여체를 순수하게 즐기려고 덤비는 사내의 불길 같은 육욕이었다.

'그건 정말... 거부할 수 없어...'

외모, 무공, 정력, 심지어 지식까지도 우월한 사내였지만, 수많은 여인들이 그를 갈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숨김없이 드러내는 육욕이 여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리라.

아들뻘, 어쩌면 그보다도 어린 젊은 사내에게 아름다운 암컷이라 인정받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영호경은 그의 씨를 받아들이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아마 그녀에게 후계가 필요하지 않았더라도, 영호경은 똑같은 결정을 내렸으리라.

"만족하고 있다. 충분히."

그런 영호경이 진심을 듬뿍 담아 대답하자, 형완은 안색이 밝아지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도 부군께 소교주에 준하는 충성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별로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인지, 강윤은 형완을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성격에, 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숙여오는 사람에게까지 모질게 대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영호경은 굳이 그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괜찮겠지...'

"그래, 끝이냐? 그렇다면 이만 물러가거라."

"예, 소교주."

형완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영호경의 앞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에는, 영호경의 머릿속은 지금쯤 개방 방주의 곁에서 강윤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지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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