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55화 (355/383)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개방 방주 노희방의 경우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 이익이라는 것은 꼭 물질적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개인적인 만족감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추구할만한 이익이 될 수 있을테니까.

"이번에는 아예 자리를 비워버렸다고?"

"예, 방주."

그 때문에 노희방은 사람을 볼 때 그가 가장 추구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뿌리를 알려준다고 믿었기에.

"육 소협이 아주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오는 참입니다. 말도 없이 떠난 모양입니다."

"흠... 그런가... 알겠다. 이만 물러가거라."

"예, 방주."

노희방이 후개가 될만한 인물 중 하나로 눈여겨보고있던 정탁은 거지답지 않게 절도있는 모습으로 물러났고, 그녀는 정탁이 물러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너무 담백한 성격도 조금은 고려해볼 일이로군...'

정탁은 그녀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갖는 기색이 아니었기에, 노희방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녀 자신도 강윤이라는 후기지수에게 이렇게까지 의혹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겨우 약관이 조금 넘은 젊은 청년...'

평소라면 가볍게 넘겼겠지만 그가 관여한 사건과 시기가 너무 공교롭다는 점이 문제였다.

단 한 번, 팽가에서 마교와 연루된 일을 제외하면 모두가 그 소위 '은령회'와 연루된 일이 아닌가.

그것도 평소에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틀어박혀 있다가, 어딘가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터진다.

하늘이 운명지은 그들의 숙적, 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면 편리하겠지만 당연하게도 노희방은 그런 것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했었지.'

정파 무림에 그들의 사람을 심어놓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급격하게 명성을 키우기 위해 아군과 투닥대는 시늉을 시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모습을 감춰버림으로써, 명성을 더욱 키울 기회를 내팽개쳐버렸다는 것. 즉, 그녀의 추측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여기서 생각이 막힌 노희방은 호리병을 기울였다. 알싸한 주향과 함께 머리에 도는 취기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왜지? 정말 우연히, 몇 차례나 그들과 조우해서 싸웠을 뿐이란 말인가? 무공 경지가 급격하게 올랐던 것도 속임수가 아니라 정말이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무림인들과의 접촉이 늘어나는 틈을 타서 어렵지 않게 정보를 캘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감춰버리다니.

지금이라면 아직 뒤를 밟을 수 있었지만, 그저 그녀의 편집증적인 의심이 아닐까 계속 생각이 기울고 있을 때였다.

[방주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냐?"

[무림맹에서 오신 손님이 계십니다만... 맹주께서 직접 보내신 분이라 합니다.]

"맹주께서 직접?"

노희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나 최근까지 서안에 머물렀던 그녀를 직접 사람을 보내 찾을만한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이없었다.

[예, 아무래도 황보 여협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만...]

"아, 그쪽이었군. 모시거라."

노희방은 우선 생각을 접고 손님을 맞이했다.

여기에 온 이후로 꽤나 얌전하게 지내지만, 맹주에게서는 몇 번이나 손녀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아마도 그녀를 염려했기에 보내온 것이라고 짐작하며, 노희방은 손님을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개방의 방주를 맡고 있는 노희방이라 합니다."

찌푸려진 표정으로 들어온 여인은 꽤나 미인이었는데, 노희방과 얼굴을 마주치자 곧 표정이 밝아지며 합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옥영개 시주. 빈니는 아미의 몽아라고 합니다."

노희방은 자신을 몽아라고 소개한 여승이, 자신에게서 풀풀 풍기는 주향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기색임을 알고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는 것이었다.

9명의 밀프를 동시에 상대하고 맞이하는 아침, 나는 일찍부터 여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호남성을 향해 출발했다.

말을 타고 가는 여행길은 꽤나 여유로웠다.

딱히 죄를 지어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귀찮은 일을 피해서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다.

만약 마교 밀프를 만나러 간다는 목적이 없었더라면 이 겨울에 여행이라니 꽤나 짜증이 날만한 일이지만, 목적지에 보테배 밀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고삐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렇게 느긋하게 말을 몰며 가던 도중에 깔끔하게 생긴 객잔이 있으면 음식을 시켜먹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길을 가다 현지인에게 요리 괜찮게 하는 집을 물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시대에 음식은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이니까, 건물부터가 깨끗해야지.

뜨거운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쌀쌀한 날씨에 조금 굳었던 몸이 풀어지고, 나는 천천히 젓가락을 놀리며 배를 채웠다.

'도착하기까지는 오래 안 걸리겠지...'

이번에 찾아가면 물론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은령회에 관해서 마교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었다.

'마교에서 나온 사람이 그놈들한테 가담한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줬지만, 본격적으로 꼭 대립해야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예전에는 이장로라고 불렸던, 황 노인이 은령회에 붙은 것은 확실하다.

다행히 누가 봐도 수상쩍은 집단에 가담해준 덕분에 내가 누구의 제자인지 입아프게 떠들어봤자 중상모략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테니 내 쪽의 시름은 덜었다.

'하지만 마교는...'

"아이쿠!"

옆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넘어지는 인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왜소한 생김새의 노인의 뒷덜미를 잡아채 붙잡은 나는, 그대로 잡아당기기는 조금 뭣했기 때문에 양 어깨를 잡아서 그를 바른자세로 일으켜세웠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고, 고맙구려..."

노인은 꽤나 놀랐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누추하지도 않은 깔끔한 옷에, 키는 작았지만 이제 보니 청수한 얼굴에 혈색이 좋아보이는 것이 꽤나 곱게 늙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그 노인이 진정하기까지 잠시 기다렸고, 노인이 제법 놀람을 가라앉힌 것처럼 보이자 나는 그냥 고개를 꾸벅이고 노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후우... 큰일날뻔 했군. 정말 고맙소, 소형제."

"아닙니다, 어르신.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노인은 다시 갈 길은 가지 않고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르신?"

"아니, 내 다른 것이 아니고. 소형제에게 이렇게 은혜를 입었으니 사람된 도리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소?"

내 물음을 들은 노인이 히죽 웃는데, 묘하게 사람이 좋아보이면서도 사기꾼 같은 그 웃음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괜찮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일 정도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굳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내가 괜찮지 않소! 소형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그래서 얼른 끊어버리고 보내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는지 노인은 나이가 들면 똑같이 다쳐도 낫는데 더 오래 걸린다면서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난리였다.

"...그러면 간단히 끝내지요. 저는 갈 길이 바쁘니 너무 시간이 걸려도 곤란합니다."

"아, 그건 걱정없소. 어차피 나이를 먹어 할 일도 없으니 남는 것이 시간이외다. 내 반드시 소형제가 흡족하게 여길만한..."

"이 망할 노인네! 거기에 있었구나!"

아, 제발.

객잔 문을 부수다시피 하며 들어온 남자들, 아마도 양아치 부류로 보이는 인간들이었는데 그들이 내 눈앞의 노인에게 흉흉한 시선을 보냈다.

노인의 안색이 핼쑥해지는 것이, 노인도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소, 소형제! 도, 도망갑시다!"

"저도 말입니까?"

갑자기 나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애초에 상대의 수준만 보더라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얼핏 보기만 해도 견적이 나온다. 저들 중에서 무공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도 전멸시킬 수 있지만, 문제는 저 깡패 같은 놈들과 이 사기꾼 같은 노인 중 어느 쪽이 잘못을 했느냐의 문제였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쳐다보자, 노인은 찔끔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먼저 잘못한 거 맞소! 하지만 이대로 내가 놈들에게 잡히면 죽을 거란 말이오! 소형제는 이 늙은이가 저 악귀 같은 것들에게 죽는 꼴을 꼭 보아야겠소?"

"하아..."

"너! 넌 또 뭐냐! 노인네와 한 패냐?"

노인을 쫓아온 패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손바닥만한 칼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면서 을러대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쩐지 느낌이 온다. 이 노인은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틀림없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머지않아 자기가 엿같은 꼴을 당할 거란 사실을 알고 나를 끌어들인 거다.

어쩌면 그럴싸한 상대에게 넘어질 듯한 시늉을 몇 번이나 해서 날 찾아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문제는 내가 이 노인을 빼낼 힘이 있고, '지금 날 구해주지 않으면 네가 날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나는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혀오는 남자들을 보고 한숨을 푹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냐! 정말 한 패냐?!"

"어르신, 꽉 잡으십시오."

"뭐, 뭘 말이오? 흐억!"

나는 노인을 내 옆구리에 끼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빈틈을 발견하자마자 등룡보법으로 몸을 날려 그들의 틈을 빠져나왔다.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닌 노인이었기에, 나는 내력을 사용해 노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시키며 움직였음에도 나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그들의 포위망 외곽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 무림인이다!"

"이 멍청한 놈들! 무림인이라고 칼이 안 들어가는줄 아냐! 어서 잡아!"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칼로는 내 호신기를 뚫을 수가 없을 거란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고, 난 그대로 노인을 데리고서 객잔을 빠져나와 마구간에서 내 말을 챙겼다.

그리고 그대로 넋이 나간 표정의 노인을 같이 태우고 제법 객잔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고 나서야 나는 노인에게 말할 수 있었다.

"어르신, 이제 됐습니까? 이만하면 제가 돕지 않아서 일을 당하게 생겼다는 말씀은 안 하시겠죠?"

"으음... 그, 그렇구먼."

말 위에서 그럭저럭 정신을 차린 노인은 바닥에 내려놓자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다시 갈 길 가겠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나는 노인이 또 무슨 소릴 꺼낼지 몰라 얼른 말 위에 올라탔다.

'더 꼬장부리면 그냥 상대하지 말고 버리고 도망가야겠다.'

아니나다를까, 노인은 나를 올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고 있었기에, 나는 얼른 말의 옆구리를 차려다 귓속을 파고드는 말에 다리를 우뚝 멈추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신법인데... 흐음... 소형제는 어디의 문하인가?"

"네?"

나는 분명 노인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노인이 무림인일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가물거려서 말일세... 분명 본 기억은 있는데 말이야..."

이제 어지간한 고수는 설령 귀식대법으로 기척을 감춘다고 해도 최소한 무공을 익혔는가의 여부는 알 수 있다.

즉, 내가 아무것도 못 느낀 상대가 무림인이라면...

'절대고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나?"

기억을 되짚는 모양인지 미간을 찌푸린 노인은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눈 깊은 곳에서 뿜어져나오는 희미한 정광을 나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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