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가르며 떨어져내리는 도.
화려한 도기도 강력한 강기도 머금지 않은채 느릿하게 떨어져내리는 도는 마치 천지를 양단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맞서는 두 개의 손은 마치 수십개로 늘어난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도를 때렸다. 아니, 가볍게 어루만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가벼운 동작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천지를 수직으로 가를 기세이던 도가 서서히 비틀어지고 그 힘을 잃어만 갔다.
힘과 기세, 방향성을 모두 잃은 도는 허공을 미끄러지다가, 형편없이 바닥에 박혀버렸지만 도의 주인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잘했네! 이제 쾌(快)로 중(重)을 상대하는 방법이 조금 감이 오는가?"
"글쎄요... 결국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손의 주인, 강윤은 얼얼한 손끝을 쥐었다 펴는 것을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면에서도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네. 하지만 뭐랄까... 힘의 낭비가 훨씬 심하다고 할 수 있지."
"으음..."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난 이후로, 팽연화의 교습법은 이런 식이었다.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이겨낼 수 있는 초식(물론 언제든지 초식을 회수할 준비는 되어있었다)을 날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나면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절정고수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자. 따라서 그것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 이해를 깊게 하는 것말고는 없었다.
사내가 이렇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이유도, 팽연화가 말한 것을 제외하고도 그녀가 말하지 않은, 아니면 그녀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을 무언가를 고민하여 답을 이끌어내야했기 때문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며, 자신이 알아낸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해야한다니.
상념과 함께 빠르고 경쾌하게 펼쳐지던 장법의 초식이 2번 정도 반복되었을 때, 팽연화는 사내에게 중지를 선언했다.
"잠깐,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네."
입구 쪽을 돌아보니 곤란한 표정으로 주춤대는 주약선이 있었다. 아무래도 사내의 수련을 방해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듯했다.
"저, 수련중인줄은 몰라서..."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본래 수련시간이 조금 불규칙하게 돌아가다보니, 사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다, 다른게 아니라 오늘은 원래 쉰다고 말했는데, 역시 여유가 있을 때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호, 혹시 오늘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머뭇대며 묻는 주약선에게, 사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이죠. 앞으로... 일 각 안에 수련이 끝날 것 같으니까, 잠시 기다려줄래요?"
"네!"
주약선이 연무장 한쪽에 비치된 의자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이,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 수련을 준비했다.
그리고 팽연화는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며칠 전.
주약선은 고민 끝에 내게 심법의 특징에 대해 배움을 청하기로 결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주약선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모, 몸에 손을 댄다구요?"
"네. 아무래도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이미 남궁혜가 발설해놓은 탓에 떡치면서 운기행공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주약선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다가는 대번에 거절할 것이 뻔한 일.
"뭐,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단전 위에 손을 얹는 것 정도인데... 어려울까요?"
"네? 그, 그런가요?"
"네."
내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주약선은 긴가민가한 눈치였다.
단전이면 대략 배. 평소에 남에게 함부로 만지라고 허락할 장소는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격렬하게 반대하기에도 애매할 것이었다.
"아무래도 완전한 구결을 알려주기는 어려우니까... 타인의 체내를 운행하는 요결만을 알려주고 실제로 운행을 겪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렵다면..."
"괘, 괜찮아요! 그 정도라면..."
내가 마치 그게 어렵다면 힘들겠다는 듯이 빼자, 주약선은 도리어 안심했는지 덥석 물었다.
허술하기는.
"자, 그럼 우선 배를 보여주시죠."
"네... 네?"
주약선은 내게 되물었지만 실상은 내게 시선을 주고 있지 않았다. 제 허리춤을 끄르다보니, 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래저래 옷에서 풀어야될 것이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저,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대로 둬도 됩니다. 맨살이 더 효율이 좋긴 하겠습니다만..."
"미안해요..."
주약선은 면목이 없다는듯 고개를 꾸벅였지만, 난 별로 상관없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는대로 써먹을 방법이 있으니까.'
옷 위라고는 해도 여전히 부끄러운지 머뭇머뭇 배를 내미는 주약선의 배 위에 손을 얹고, 나는 내력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
수태음폐경을 따라 노도와 같이 흘러나온 내력이 주약선의 뱃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일반적으로 운공할 때, 그것도 남의 내력까지 동원될 때는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법이니, 그것이 주약선으로서는 최대한의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말해도 돼요."
"...?!"
내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어버리자, 주약선은 더욱 경악한 듯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정말... 어머!"
"괜찮죠?"
끄덕끄덕
주약선은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적응이 되고 나자 조금 안색이 차분해졌다.
"이렇게 타인의 내력을 보할 수가 있는 거군요..."
"네. 상대방에게만 득이 되는 건 아니고, 제게도 득이 되지만요."
일반적으로 훌륭한 내공심법이라 함은, 내력의 순수성과 모이는 양에 좌우되는 법이었다.
대자연의 기를 받아들여서 그것 중에 필요한 것을 골라내 얼마나 정순하게, 그리고 빠르게 많이 모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등선공은 두 사람분의 내력을 두 사람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일단 받아들이는 양에서는 도리어 조금 처지는 측면이 있다.
심법에 집중도 안 하고 떡만 치는데 받아들이는 양이 많을리가. 대략 1.8인분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뇌피셜이었다.
하지만 등선공의 강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내공을 익혔을 때도 기능한다는 점.
간단히 말해서 1에서 10까지의 열 종류의 기가 있다고 쳤을 때, 각각 필요로 하는 기가 1과 2로 다를 경우 1.8인분씩 가져가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에서도 앞서게 되는 셈이다.
"내력의 운행은... 제 심법을 따라 움직이는군요?"
"으음... 분명히 서로 다른 내공인데 충돌하지 않는다니..."
"아, 강 소협의 내력이 우위이기 때문에 주도해서 운공이 가능한 것입니까?"
주약선은 쉼없이 내게 질문을 건네왔고, 나는 질문의 대답을 구결의 설명과 병행해가면서 운공을 계속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 가끔씩은 하루를 건너뛰어가면서 며칠이 지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저, 정말 맨살에 하면 효율이 좋아집니까?"
심법을 어떻게 하면 치료에 접목할 수 있을지 연구를 거듭하던 주약선은 고민한 끝에 내게 질문을 건네오는 것이었다.
주약선은 질문을 건네면서도 사내의 눈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를 의심해서는 아니었다. 이미 지난 며칠간, 사내는 그녀에게 음행이라고 생각될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고, 주약선은 사내를 상당히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사내의 눈을 살피는 것은, 사내가 혹여 자신의 육체를 직접 만지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런 몸이니까...'
그녀에게 호의적이라한들, 사내는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사실은 이미 명명백백했다.
그녀 역시도 역용술을 풀면 어디 가서 미모로 아쉬운 소리를 할 여인은 아니로되, 어쨌거나 사내는 그녀의 이 살집있는 모습이 진짜 모습인줄 알고 있으니 불쾌하게 여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죠."
사내가 조심스럽게 밝힌 사실에 따르면, 이런 내공심법의 특성은 색공이나 흡정공에서 따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실제로는 따온 것이 아니라 색공 그 자체였지만) 맨살에 닿거나 여인의 비부를 통할수록 더욱 효율이 높아지는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 그럼 단전에 들어간 내기가 한 번 회음혈을 거치는 이유가...!"
"...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을 보며 주약선 역시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본래 이 심법은 비부와 이어지기 가장 좋은 회음혈부터 시작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차마 아무나 비부를 만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시작점을 임의로 바꾼 것이 분명했다.
아마 사내의 여인들은 이미 서로 몸을 허락한 사이이니 여인의 비부에 손을 올리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해주었을 것이니, 본연의 효과를 맛보았을 것이고.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것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무튼 맨살 위에 손을 얹으면..."
"효율이 높아집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사내의 단언에 주약선은 일단 그것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외간 남자 앞에서 허리춤을 풀고 배를 내보이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웠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는 아들뻘의 젊은 사내.
그녀와 동년배인 여인도 가리지않고 노린다고는 하나, 그것도 상대가 빼어난 미부일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지금의 자신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그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강윤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주약선은 잠시 망설인 끝에 서서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단단히 묶여있던 매듭을 천천히 풀어내자 바지춤이 헐렁해지고, 그 위로 여며져있던 상의가 살짝 흐트러졌다.
주약선은 조심조심, 상의의 옷자락을 천천히 열었고, 하얗고 동그란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 보기 흉해서 미안하지만, 부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면목없다는 듯이 배를 내민 주약선은 사내가 단언하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내의 말이 거짓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안도하게 되는 기분.
'주책이야...'
무공 수련으로 투박하지만 사내답기 그지없는 손이 이번에는 그녀의 맨살을 향해 뻗어왔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손길에, 주약선은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어깨의 긴장을 조금씩 늦추었다.
그 손의 주인이 그녀의 역용술 너머에 감춰진 진짜 얼굴을 기억하고, 그녀를 자빠뜨리는 것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