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26화 (326/383)

남궁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약선은 사내가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뒤통수에 선명하게 올라온 혹을 생각해보면 꽤나 아프긴 했을 것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첫날에 이런 대형사고를 치다니, 대체 무슨 정신이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싫어하지 않았던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심성이 여린 남궁혜는 자꾸 주약선의 의방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괜찮겠지...?'

사실 그녀는 사내의 안위만이 아니라, 사내의 보복을 염려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남편의 뒤통수를 내리찍어 기절시킨 셈이니 여느 여염집이었더라면 소박을 맞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보건대 아까 언소영과 매소향 두 사람이 당했던 것처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범하는 것으로 만족할 듯하긴 했지만.

'어머...'

그 모습을 상상한 남궁혜는 다리를 모아 저릿거리는 아랫도리는 억누르며 몰래 얼굴을 붉혔다. 엉망진창으로 범해지는 스스로를 상상해버린 탓이었다.

얼마 전의 자신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에, 남궁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걸고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나치던 사람 몇몇은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빤히 응시했지만 남궁혜는 인식하지 못하고 스쳐지나갔다.

대체로 세가에서 나와본 경험이 많지 않은 그녀였기 때문에 자신의 미모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써본 적이 없던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을 보는 시선의 주인 가운데, 사천당가주의 딸인 당영이 있다는 사실 역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청 예쁜 사람...'

강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의원의 심부름꾼에게 강윤이 돌아오는대로 당가에 전해달라고 했던 당영은 남궁혜와는 면식이 없었다.

하지만 삼봉으로 꼽힐만한 미모가 어디로 가지는 않는 법. 당영은 직감적으로 남궁혜가 강윤과 관계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이런 사천 변방에는 왜...!'

지리적으로는 치우친 땅이라고는 하나, 사천은 변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풍요롭고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아무튼 거리로 치면 가깝지 않은 것이 사실임에도, 간신히 능휘연이 사라졌는데 또 쉽게 보기 힘든 미녀가 강윤에게 꼬일 것 같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초조함을 느꼈다.

"어머니..."

당영은 이제 자신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어영부영 시간만 끌고 있어서는 정말 손도 닿지 않을 곳으로 가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나름대로 친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어머니인 팽연화와 제갈미령이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이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팽연화를 통해서 혼담을 넣는다면 강윤은 쉽게 거절하지 못할 터.

게다가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여인도 없는 것 같고, 관계도 나쁘지 않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만 했다.

별다른 기반이 없는 사내라고 하지만 구룡의 일인이라면 절대 신랑감으로 부족하지는 않았으니 세가에서도 큰 반발은 없을 것이었다.

'우선 고모님께 여쭤봐야겠어.'

아마 당혜원이라면 팽연화의 행방을 알고 있으리라. 팽연화 역시도 강윤에게 무공을 가르칠 정도이니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을 터.

아버지, 당조명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진심을 다해서 설득한다면 아버지 역시 반대는 하지 않으리라.

당영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다음, 용기를 북돋우며 강윤이 아닌 당혜원을 찾아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말... 인가요?"

주약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사내에게 되묻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전부는 알려줄 수 없지만, 필요한 부분만이라면 어느 정도 알려줄 수 있어요."

그야 당연했다.

그 연원은 짐작할 수 없되, 사내의 무공은 상당한 절세무공이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절기에 비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어쩌면 더 위일지도 몰라...'

그러니 전부를 알려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라도 알려주는 것이 쉬운 결정인가 하면, 결코 아니었다.

강호에는 절기의 일부만을 채용해서 새로운 절기를 창안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았고, 그 절기가 심법이라면 더욱 쉽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약선은 문득 겁이 났다. 만약 그의 절기가 자신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새어나간다면?

"아, 아무리 일부라도 외인에게 알려주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글쎄요. 주 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게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니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잠시 고민하던 주약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제게 그걸 가르쳐주려는 거죠? 저는 강 소협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껏 수발을 들어준 값은 가문을 구해준 것으로 차고도 넘치게 돌려받았다.

사실 사내와 그 뒤에 있는 당가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녀가 이렇게 크게 의업을 일으키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니 그녀가 사내의 가족을 돌본 것도 일방적인 수혜라기보다 거래관계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베풀어주는 저의가 무엇인가, 주약선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글쎄요, 저는 사실 주 의원처럼 남들에게 베푸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긴 합니다."

"..."

"하지만 저는 이래뵈도 자기 사람은 제법 잘 챙기는 편이라서요. 주 의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주 의원이 소중합니다. 그걸로는 안 되겠습니까?"

"네, 네...?"

주약선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사내의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을, 차마 마주볼 수가 없었다.

진지한 표정과 심유한 시선. 그 너머에 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껏 저희를 성심껏 돌봐주셨지 않습니까. 저는 주 의원도 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

가슴이 쿵쿵 뛰던 와중에, 사내의 입이 다시 열리자 주약선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한껏 긴장되었던 주약선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느닷없이 소중하다고 하니 설마했는데 역시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주책은.'

"만약 필요하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주 의원께서 원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생각해볼게요."

주약선은 다시 사내를 눕혀서 잠시 쉬다가 가라고 한 다음, 몸을 돌려서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작성된 일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도록, 그녀의 눈은 일지를 향하고 있되 그녀의 손은 좀처럼 다음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약선은 나를 다시 돌려보냈다.

누워있는 동안 주약선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적당히 와공으로 운기를 해준 덕분에 뒤통수의 붓기도 제법 가라앉았겠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나는 우선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시대가 시대라서 그런지 별이 참 많았다.

"주약선이라..."

지금까지는 고마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녀에게 작업을 치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른 여자들과 출발선이 달랐던 것은, 지금껏 나는 다양한 여자들과 엮여왔지만 그녀들 중에 누구도 주약선처럼 내 사정을 잘 알던 여자는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당혜원과의 관계를 알던 팽연화, 언소영과의 관계를 알던 남궁혜 정도가 전부랄까.

'하지만 그 여자들도 내가 밀프에 눈이 돌아간 건 몰랐지.'

그렇게 어렵다면 주약선에게 꼭 손을 대는 것이 옳은가, 묻는다면 당연히 옳다.

지금도 하렘의 규모적으로는 충분하다. 하룻밤에 한 명씩만 상대한다면 8일에 한 명씩 만나게 되어있으니 말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마교 밀프는 제외한 숫자인데다 한 명 한 명이 다 미녀라서 절대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주약선까지 노리는가 하면, 그녀의 꼴리는 몸매와 아름다운 미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탈속한 이미지의 미모는 어쩐지 구도자를 연상케하는 면모가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자지로 푹푹 박아서 섹스를 너무 좋아하는 음란성녀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산이 있으니까 산에 오른다. 밀프가 있으니 밀프를 안는다. 이보다 명쾌할 수가 있을까.

'그래도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

여인으로서의 그녀는 남자를 피하고 있다. 특히 나를.

이미 내게는 자기 연배의 다른 여자들이 많이 있으니 자신 역시도 노릴지 모른다고 한껏 긴장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사랑의 반댓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던가? 하물며 그녀는 나를 증오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경계하고 있을 뿐이니 사정이 훨씬 나았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조금 했을 뿐인데 반응이 있었다.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은.

'어차피 핵심구결을 제외한 부분이라면 알려줘도 괜찮겠지.'

주약선의 의술이 좋아진다고 해서 내게 나쁠 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혹시나 은령회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에게 여자들이 다칠 때를 대비해서 더욱 출중한 의술을 가져주는 것이 좋다.

'아주 차근차근 가르쳐주마...! 그리고 기회를 봐서...!'

"가, 가가, 왔어요?"

"혜매?"

협박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략해서 기억 속의 신비미녀를 자빠뜨릴 계획을 세우던 내 앞에, 남궁혜가 톡 튀어나왔다.

"호, 혹시 저녁 먹었어요?"

"아뇨, 아직..."

"시, 실은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했는데..."

"그래요?"

그러고보면 나는 최근 남궁혜의 요리를 대접받을 기회가 없었다. 아미산에 있을 때야 그녀가 식사당번이었으니 매일 먹었지만, 재회한 다음에는 직접 만든 밥은커녕 칼빵부터 먹을 뻔했으니.

"혹시, 생각 있으면..."

"당연히 먹어야죠!"

남궁혜의 얼굴이 확 밝아지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이렇게 기뻐할 일인가?'

기뻐하던 남궁혜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벌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다음날 매소향에게 보지 고문 2회를 마친 다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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