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20화 (320/383)

밀푸색마 EP.320 하나가 더 있었다는 말이네 (3)

"잠깐, 기다리게."

고개를 돌려보니 황보효선이 꽤 급하게 따라온듯 검을 든 상태로 서있었다.

나는 황보효선과의 비무에서 일부러 졌다. 아마 그녀 본인도 내게 이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리라.

"무슨 일이십니까?"

"꼭 그렇게 뻔히 알면서 자네는 한 번 더 물어보지. 내가 그리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네가 다 알면서 의뭉떨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그건 죄송합니다."

내가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황보효선은 여전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가?"

뭐라고 대답하면 될까.

거기서 당신을 이겼다가는 강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귀찮아질 것 같아서 졌다고 할까?

거기서 내가 이기면 당신의 체면이 망가지는 것이 신경쓰여서라고 할까?

둘 다였지만 둘 중 어느 것도 황보효선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터였다.

"말해두겠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네. 자네는 일부러 졌어.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는가?"

결국 황보효선은 후배 상대로 고전하긴 했지만 승리를 거두었고, 나는 패했을지언정 선배 고수를 상대로 꽤 선전했다.

둘 다 손해를 보지 않는 결과이건만, 황보효선은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 듯했다. 하긴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게 더 자연스럽긴 하다.

"자네가 이대로 대답하지 않겠다면 좋네. 내가 지금 가서 사람들에게...!"

"거기서 제가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내가 양보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모양이었기에 나는 얼른 그녀를 붙잡았다.

"무슨 소린가?"

"안 그래도 이번 일로 주목을 모으게 생겼는데, 아마도 더욱 강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겁니다."

"그게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모름지기 대협을 목표로 삼는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일세."

"제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적어도 지금은, 주목을 받아서 결코 좋을 일이 없죠."

"...그랬지. 그대는 분명 정파와 사파가 싸우지 않고... 응?"

황보효선은 잠시 미간을 모았다가 눈이 커졌다.

"나, 날 속인 건가?"

"아, 알아차리셨군요."

그렇다. 다시 이 입장을 내세우게 되면 내 마교 박멸 코스프레는 물건너가는 셈이다.

"그럼 애초에 이 비무를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 아닌가! 대체 왜..."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 알려주질 않으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아..."

황보효선은 이마에 손을 얹고 뻗쳐오르는 열기를 가라앉히는 모양새였다.

"그냥 물어봐도 알려주지는 않을 것 같고, 한 번 떠본 겁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화가 안 나게 생겼는가 말일세..."

내가 시위라도 해서 마교를 죽이자고 난리를 칠 줄 알았나? 열기가 가라앉자 이번에는 축 늘어진 기색의 황보효선에게 나는 이어서 말했다.

"황보 여협께는 불쾌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강호의 안정을 위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주시죠. 지금 주목을 받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이유가 전부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황보 여협이 납득할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물론 강호의 이목을 피해 내 하렘이 드러날 확률을 줄인다는 이유 따위는 말할 수도 없었다.

황보효선은 마뜩찮은 표정이었지만, 나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자 쉽게 거부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정 부족하다 싶으면 실질적으로는 제가 이긴 것으로 해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만 말아주세요."

"...그렇다면 적어도 자네가 알고 싶어하던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려주는 것이 도리겠군."

아, 그럼 또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내가 특별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황보효선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놈들은 단순한 사파 세력이 아니야. 아마도 놈들에게는 정파 세력이 힘을 보태고 있을 가능성이 높네."

"뭐라구요?"

이건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정파라고 무조건 선한 사람만 있다는 법은 당연히 없지만, 어지간히 절실하지 않고서야 사파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쁜 짓을 뒷구멍으로 하는 것과, 나쁜 놈과 손을 잡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정확한 것은 아직 모르지만, 구파의 속가제자들을 통해 운영되는 용운상단이 놈들을 은닉해준 정황이 포착되었네."

"구파..."

나는 유독 구파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매소향의 관계자를 제외하면, 글쎄, 무당의 단유란이나 견예진 정도?

"모두가 연루되었는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일부라도 연루되어있다면 충분히 강호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되네."

"이해했습니다."

아군도 못 믿게 생겼다는 정보를 얻었다면 신중해지는 것도 납득이 갔다.

굳이 마교의 결백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니 우리 개인을 위해서는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소식이리라.

"그렇다면 정파 쪽에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겠군요."

무조건 무공이 높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도, 정치력이든 재력이든 어떤 식으로든 사패급과 비벼볼만한 누군가가 정파 쪽에 있지 않으면 애초에 교섭이 성립이 되질 않는다.

교섭이 성립되질 않았다면 글쎄, 사파 밑에 기어들어갈만큼 수준 낮은 사람이 구파의 상단을 이용해서 그들을 돕는다? 가능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하나가 더 있었다는 말이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안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애초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던 것 아닌가."

황보효선은 툴툴대며 고개를 휙 돌렸다. 하지만 아마도 이 정도면 꽤나 고급정보 축에 들어갈 것이 분명한데 내게 알려준 것을 보면 황보효선도 꽤나 고민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자네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착각은 하지말게. 나는 언제고 자네가 수상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냥 두지 않을 거니까."

"지당한 생각이십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효선은 김이 빠진 듯했다. 그래서 그 틈에 은근히 뻗어나간 내 손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게 의심을 살만한... 꺄악!"

"계속 지켜보셔도 좋습니다. 언젠가는 저를 믿게 될 거니까요."

"아, 알겠으니까 이거 놓게! 대체 무슨...!"

손 잡은 것 가지고 난리는.

황보효선은 놀라서 내게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나는 부드럽게 잡으면서도 그녀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몰래 내력으로 살짝 방해하며 그녀의 손을 조물거렸다.

그녀가 점차 화가 나서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직전,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놓아주었다.

"미, 믿게 되기는! 이렇게 여인을 희롱하고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희롱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저 진실한 마음의 표시로 손을 맞잡았을 뿐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황보효선의 손은 참 부드럽고 기분 좋았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여성 내가고수는 수련을 해도 손에 굳은살이 안 생기도록 내력이 깊어진 다음 초식수련에 들어가는 것이 상례라는데 정말 잘한 짓이었다.

"아니, 그것이... 정말...! 아으..."

황보효선은 답답한지 어깨를 들썩이며 신음했다.

뭔가 수상쩍기는 한데, 이미 한 번 전과도 있지만 지금의 내 행동이 그렇게 이상한가 하면 그렇게 여기기도 어려웠기 때문이겠지.

"자네 일전에 그... 아, 그러니까, 그것이..."

"물론 방금 그것과는 별개로 황보 여협이 정말 아름다우시다고는 생각합니다. 특히 그 날..."

"그, 그만! 그 얘기는 하지 말게!"

자기가 먼저 꺼내려고 했으면서.

내 전과를 들먹여서 지금 손을 잡은 이 행동도 수상하다고 하려던 황보효선은 내가 돌직구로 들이밀자 도리어 꼬리를 마는 형국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허둥대며 본전도 못 찾던 황보효선은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대화를 원래 궤도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귀엽긴 참 귀여워. 아줌마 주제에.

"흠흠, 아무튼 이젠 자네도 상황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아마도 무림맹 차원에서 놈들을 쫓아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자네에게도 놈들이 해를 끼치려고 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네."

"저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놈들 역시 장님이 아닐테니 무림맹의 시선을 피해야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것이고, 게다가 자네의 동행들 역시 굉장한 고수들이니 별 일은 없을 거라고 믿네만... 너무 방심하는 일만은 없도록 하게."

"당연히 방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도 되겠죠?"

내 말에 황보효선은 피식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가 만면에 피어오르니 보고 있는 나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황보효선은 왼쪽 주먹을 살짝 쥐어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물론이네. 그 때는 분명 자네에게도 강호의 평안을 위해 한 팔 거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니 기다리고 있게나."

아니, 나로서는 그런 귀찮은 일보다는 어디 처박혀서 밀프랑 떡치고 싶은 심정인데.

하지만 이렇게 표정이 밝은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들지 않았고, 게다가 곧이어 그 따위는 아무 상관없어졌다.

찌이이익

"음...? 자, 잠깐!"

황보효선은 얼른 가렸지만 나는 매의 눈으로 그녀의 상의 앞자락이 쭈욱 찢어지며 젖가슴이 뛰쳐나오는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옷이 쭉 찢어지며 튀어나온 보기만 해도 부드러울 것 같은 젖가슴과 그 끝을 장식하는 귀여운 젖꼭지까지 완벽하게 감상하고 나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이, 일부러 그랬나? 일부러 그런 거지?!"

"전혀 아닙니다."

아무래도 내가 아까 마지막 일격으로 가슴을 노렸던 여파가 옷에 남아있었던 모양인데, 이런 구경거리를 일부러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 상황에서 옷이 찢어질락말락한 상태로 힘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음, 좋다, 아주 좋다.'

"아니긴 뭐가... 그, 그건 또 뭔가!"

"아, 이게 마음대로 제어가 되는 그런 부위가 아니라서..."

"줄여! 줄이란 말일세!"

두 손으로는 다 셀 수도 없는 밀프들을 훌렁 벗겨 따먹어온 인간이 고작 이 정도에 흥분을 참지 못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런 상황은 이런 상황 나름의 꼴림이 있는 법이다.

황보효선이 거의 검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로 내게 화를 냈지만 내 자지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내 겉옷 한 벌을 벗어주고 그녀를 일단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혼자 권장법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암송하는 것을 수 차례 반복하고나서야 간신히 아랫도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

'역시 황보효선도 어떻게든 자빠뜨려봐야되겠어.'

솔직히 저런 협박도 안 통할 것 같은 인간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아무튼 꼭 따먹어야지.

나는 일단 자지를 가라앉히고, 여자들에게 황보효선과 나눴던 대화를 전해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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