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19화 (319/383)

밀푸색마 EP.319 하나가 더 있었다는 말이네 (2)

황보효선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은령회라는 이름의 그들이 사파 집단이며, 정파에도 끈이 있다는 사실은 조부인 검성에게 전해들었다.

<아마도 구파에 그들과 연관된 자들이 있음이 분명하나, 좀 더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헤집어서는 안 될 일이니라.>

그런데 그들 가운데 사파, 그것도 편패가 있다고 한다. 눈앞의 사람들의 추측에 따르면 우두머리조차 아닌 위치로.

게다가 그들의 목적은 적어도 포로가 답하기로는 정사대전을 일으키고 강호를 혼란에 몰아넣는 것.

'이걸 대체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세력이 암약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나니 가슴이 답답한 탓에 무심결에 욕설을 뱉어버린 황보효선은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에게 시선이 쏠려있는 것을 깨달았다.

"황보 여협?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닐세. 편패라니, 확실히 엄청난 고수이긴 하군."

황보효선이 얼버무리자 사내는 쉽사리 수긍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희들의 생각은, 강호의 혼란이니 뭐니 하는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쪽입니다."

"응? 으, 음... 아니, 계속하게."

"아무래도 마교의 술책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사패의 일인이 그 사이에 끼어있는데, 마교의 뒷배가 없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황보효선은 상대의 추측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교가 한 패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일한 가능성은 아닌 것이다.

강윤이 그녀를 떠보고 있음을 짐작하지 못한 그녀는, 전전긍긍하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차라리 저들이 이 이상 조잡한 술책으로 정파의 전력을 깎아먹기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잠깐... 자네 나 좀 보세."

황보효선은 살짝 다른 여인들의 눈치를 보며 사내를 끌고 으슥한 곳에 갔다.

[자네 왜 이러는가?]

[무슨 말씀입니까?]

그나마도 남들이 들을까 걱정되어 전음으로 말하는데 사내가 뭐가 문제냐는듯 당당하게 대꾸하니 황보효선은 속이 터졌다.

[자네가 분명 그러지 않았나? 마교를 달래서 강호의 평화를 이룩하겠느니, 그런 소릴 분명히 내게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이야!]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제 앞에서는 그럴싸하게 싸움을 피하려는 척 했으면서 실제로 일을 벌이려는 자들 앞에서 무슨 고민이 필요하겠습니까? 마교는 없애야할 해악입니다!]

[...꼭 마교가 그들의 뒷배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럼 어디가 있겠습니까? 검림? 오독문? 그들이 화락궁에 힘을 보태준다고 해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마교 뿐입니다! 그 자들이...]

"이런 답답한 자를 보았나!"

황보효선은 사내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지만 사내가 가볍게 바닥을 딛는 것과 동시에 그 신형이 미끄러지며 그녀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대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아직도 남아서 제 의견에 반대를 하시는 거라면..."

멀찍이 떨어진 사내가 입을 열자 황보효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직도 종종 밤에 떠올리고는 하는, 눈앞의 사내에게 허락했던 하룻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 그 얘기는 하지말게!"

황보효선이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자, 사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내심 그녀의 반응에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적어도 불쾌한 경험을 떠올리는 표정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황보효선이 마교가 그들과 한 패가 아닐 가능성을 자꾸 제시하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점 역시 수확이었다.

'꼴리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제멋대로 힘이 들어가려는 아랫도리를 억누른 사내는 계속 반대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정파와 사파 사이를 줄타기하며 정사대전을 일으킨다는 허황된 생각이 사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단 말입니다."

"큭...!"

이대로 두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녀 혹은 같은 정보를 알고있을 다른 누군가의 힘으로 말미암아, 정사대전은 최대한 회피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도리어 쉽게 주장을 내려놓는다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기에 사내는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한편 황보효선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의 조부인 검성이 그녀에게 알려줄 때도 제법 고심했던 정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눈앞의 이 자에게 마음대로 알려주어도 되는 것인가, 황보효선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아..."

황보효선은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등 뒤에 메고 있던 거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내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검은 왜..."

"자네를 납득시킬만한, 그렇지만 쉽게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네."

곧게 뻗은 묵직한 검을 천천히 뽑아 사내를 향해 겨누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자네에게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모르겠어."

"..."

"그러니 결정은 이걸로 내리는 수밖에. 자네가 내게 이기면, 답을 알려주지. 하지만 진다면, 알려주지 않겠네."

황보효선이 기세를 끌어올리자 옷이 살짝 펄럭였다.

"자네가 이젠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마냥 불공평하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방금 전의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았을 때, 황보효선은 자신의 승산이 그다지 높지만은 않다고 판단했다.

자신보다 한참 경지가 떨어질 때도 그 미꾸라지 같은 신법 하나로 목숨을 부지했으니, 지금이라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닐터.

"거부하겠는가?"

"아뇨, 받아들이죠."

사내가 빙긋 웃으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황보효선은 저도 모르게 따라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간격을 살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격돌을 시작했다.

팽연화는 잠시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의 기세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자마자 얼른 신형을 날렸다.

그녀가 두 사람이 격돌한 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첫 번째 충돌을 시작하기도 전이었으니, 그녀는 이 비무의 전부를 보고 있었다고 해도 좋았다.

'엄청나군.'

비무를 나누는 두 사람의 수준이 그녀가 놀랄만큼 엄청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녀가 보고있는 것은 두 사람이 각자 사용하는 무공이 천외삼존의 무공이라는 점이었다.

두 무공 모두가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되, 당대에 이르러 혈마와 검성, 두 초고수의 손에 다듬어진 무공은 한층 더 고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문 역사상, 그들이 가장 뛰어난 고수였기에 가능했던 일.

비무 당사자 중 한 사람인 황보효선은 물론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대결은 일종의 대리전이라고 해도 좋았다.

"크윽...! 정말, 많이 늘었군!"

"그렇습니까? 사실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기는 합니다!"

두 고수가 느닷없이 맞붙고 있으니 이미 화씨일문에 머물던 모두가 무슨 일인가 놀라 달려와서 그대로 구경을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맞붙고 있으니, 누군가가 '아니! 저것은 혈마의 독문무공?!' 이라고 외치지는 않을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 걱정하는 것은 여인들의 몫이라.

이미 구룡쟁패에도 한 번 나갔고, 검성이 아니면 못 알아볼 것이라는 호언장담 역시 믿었지만 관객 가운데 다수가 무림맹의 사람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타앗!"

그 때, 사내의 입에서 호쾌한 기합소리와 함께 수도로 거검을 내리찍는데, 검로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검로에 힘을 보태어 땅에 아예 검을 내리눌러버리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황보효선은 내리찍던 검을 그대로 미끄러지듯 밀어버리니, 사내가 내리누르는 힘을 흩어버리고 검을 든 여인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사내와 위치를 뒤바꾸었다.

주변 일대를 장중한 검로로 광범위하게 찍어눌러 상대의 움직임을 막고, 묵직한 검격으로 치명타를 입히는 황보효선의 검술과 그것을 뚫고 나가는 사내의 권각술은 서로에게 소모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먼저 지치는 쪽이 진다. 팽연화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아마 먼저 지치는 쪽은 황보효선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밤마다 침상에 여인네를 끌어들여 안으면 그것이 곧 내공수련이 되는 괴물을 고작 동급의 고수가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아무리 상대가 살초를 자제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당혜원에게 절정고수 둘을 상대로도 거의 밀리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무공이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은 감개가 무량한 일이었다.

무공을 수련한지 고작 한 달 남짓이었던 애송이 시절을 보았던 그녀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이어지는 광경에 팽연화는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아, 아니? 어째서?"

그대로 황보효선과 적당히 수를 교환하고 있으면 조만간 이길 수 있을 것을, 사내가 갑자기 무리하게 검세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병기이기에, 접근을 허용하면 물론 권각술에 비해 불리해지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범부의 이야기, 권장지법에 통달하여 자유롭게 내력을 쏟아내 먼 거리의 적을 칠 수 있는 무림인이라면 굳이 억지로 검세를 뚫고 들어가려고 애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흡!"

아니나다를까, 황보효선의 가슴을 향해 뻗어나가던 손은 찰나지간에 검에서 일어난 하얀 빛무리 같은 검기에 휘말려 밀려나야했고, 황보효선은 그 기세를 밀어붙여 검을 사내의 어깨 바로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멈춰섰다.

"오오오오오오!"

그렇게 승패가 갈리자, 환호성이 주변을 울렸다.

구경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검기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겨 있었으니, 승패가 결정나고 패자인 강윤이 시원스레 받아들이는 모습에 열광한 것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그런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을 안목을 가진 사람이 몇몇 있었고, 그들은 대체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 가운데 사내에게서 승리를 거둔 장본인인 황보효선 본인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녀는 사내의 어깨에서 검을 멈춘 순간부터 잠시 얼이 빠져있다가, 사내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나서야 황급히 그 뒤를 쫓아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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