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18화 (318/383)

밀푸색마 EP.318 하나가 더 있었다는 말이네 (1)

어머니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이미 나라는 인간을 알만큼 알았다.

무림맹에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탄성 한 마디로도 그 사람이 여자일 거라고 짐작할만큼은 말이지.

상대가 예쁜 밀프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스스로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것이다.

"하아..."

한숨을 푹 쉬는 어머니의 어깨를 팽연화가 가볍게 주무르며 달랬다. 한편 옆에 있던 당혜원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설마 황보 여협과 그런 관계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내 사부가 누구인지 말해줄 때부터 황보효선과 한바탕 붙었다는 것까지는 다들 알았지만, 역시 마교에서 있었던 일까지는 몰랐겠지.

"모를 수밖에 없지. 어떻게 마교에서 무림맹주의... 하아..."

"..."

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는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곧 이야기는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황보 여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질문에 대답하며 나는 마교 총단을 떠나가던 날의 황보효선을 떠올렸다.

마기 치료를 핑계로 내게 따먹힌 탓에 감정이 상한 것은 여전했지만, 마교를 달래서 무림에 장기적인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내 의견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설득만 제대로 한다면 분명히 도와줄 겁니다."

"그러면 먼저 어떻게 설득해야할지부터 고민을 해봐야겠구나."

"그런데 혹시 마교의 도움을 받는 방법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팽연화가 끼어들어서 입을 열자,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의원 부근에는 이미 일이 벌어져서 개방이 들쑤시고 다니고 있으니까... 괜히 어슬렁대다가는 좋을게 없어요."

"아... 그렇군."

"물론 무림맹 쪽의 일이 잘 안 풀리면 다시 고려해봐야겠지만, 우선순위로서는 나중으로 미루는 편이 좋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화씨일문에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거죠?"

"그래, 주... 화 의원이 결정되는대로 알려주겠다고 어미에게 전해주었단다."

아직 화씨일문에서는 무림맹에 연통을 넣지 않았다. 아예 근거지를 옮겨 무림맹에 의탁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쪽을 통해서 연락을 넣되, 황보효선에게 내 이름을 대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와달라고 부탁한다면 와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가장 먼저 충족시켜야할 문제는..."

그 다음은 이야기가 착착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어차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두었는지 청산유수로 설명을 하는데 우리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마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씨일문에서는 무림맹에 의탁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그 날로 바로, 화씨일문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화운천이 서안의 무림맹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호오, 여기가... 과연 산세 좋고 물 좋아보이는 것이 선풍도골의 명의가 살 것 같은 동네이긴 하군요."

"...방주, 우린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겁니다. 취한 상태로 가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은 말짱합니다. 게다가 그 임무는 주작단 여러분이 알아서 할 일이니 부단주께서 걱정할 일은 아니지요."

술에 취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거지 여인, 노희방은 킬킬 웃으며 손을 휘저었고 황보효선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성의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맹의 행사에 동행하신다면 마땅히 맹의 입장도 고려를 해주셔야죠."

"그 말씀도 옳군요. 그렇다면 저는 뒤에 빠져서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황보효선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노희방에게 한바탕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이번 임무는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었다.

백호단은 잘게 쪼개어져 정보 수집 임무에 집중하고 있었던데다가, 호위와 인솔에는 백호단보다는 정면승부에 강한 주작단이 적합했기 때문에 맹주는 주작단을 파견한 것이다.

황보효선은 문주의 동생이라는 화운천의 부탁을 받아 개인적으로 그들을 따라오게 된 것인데, 예상치 못하게 노희방까지 동행하는 상황이 되었다.

<강윤...? 지난 구룡쟁패에서 새롭게 구룡이 된 후기지수로군요?>

화운천의 입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강윤은 거의 혼자서 신출귀몰하게 싸우며 적들을 거의 분쇄하다시피한 장본인, 그들의 가장 큰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노희방은 잠시 그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는 듯하더니, 갑자기 동행하기로 요청해온 것이었다.

서서히 무리의 뒤쪽으로 쳐져서 따라 움직이는 노희방의 곁으로 다가간 황보효선이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말해주시죠. 대체 강 소협에게는 무슨 볼 일이 있는 겁니까?"

"아, 부단주께서는 계속 그것이 궁금하셨습니까?"

황보효선이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가운데, 노희방은 술이 담긴 호리병의 마개를 닫은 다음 입을 열었다.

"뭐, 별 일은 아닙니다만... 한 번쯤 얼굴을 봐두고 싶었습니다."

"어째서죠?"

노희방은 머릿속에서 많은 이유가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 전부를 황보효선에게 말해줄 이유는 없으리라.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 후기지수의 얼굴을 봐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이상하지는 않을텐데요?"

"..."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비록 다른 고수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수십 고수와 맞선다는 것은 어지간한 후기지수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황보효선 역시도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노희방이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다만 추궁할 정도의 일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화씨일문에 도착할 때까지 그보다 더 나아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황보효선은 자신을 굳이 지목해서 부른 것을 보아하니 아마 남들 앞에서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정보단체인 개방의 수장이 관심을 가져 쫓아오니 껄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무고한 사람을 해코지라도 하겠습니까?"

그런 마뜩찮은 표정을 용케도 알아보았는지, 노희방은 태평한 태도로 말했다.

강윤이 무고한 사람인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 황보효선의 표정이 더 어두워지는 것까지 알아보았을까.

노희방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황보효선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도착하고, 나는 황보효선을 가장 먼저 만나보려고 했지만 이상한 훼방꾼이 끼어들었다.

[이 여자 대체 뭡니까? 무슨 사람을 이렇게...]

[개방의 노희방 방주일세. 조금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여전히 아름다운 황보효선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눈이 즐거워지던 참에, 갑자기 이상한 여자가 사이에 끼어들어서 대놓고 눈앞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제 소개는 황보 여협께서 해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윤 소협, 맞습니까?"

"...네?"

"부정은 하지 않는군요. 사실 얼핏 봐도 여기에 당신 말고 그럴듯해보이는 사람이 없으니 맞을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이 여자는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만 지껄이는 탓에 얼른 대화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런데, 개방?

"노 방주... 라고 하셨습니까? 어쩐 일이신지..."

"사천에서 의원을 열고 계신다구요? 의술도 모르는 사람이 말입니다."

"맞습니다만, 대체 무슨 볼 일이십니까?"

"구룡쟁패 이후 다른 외부활동은 전혀 없이, 오로지 남궁세가의 혼례식에만..."

"방주, 이게 무슨 짓이오?"

내 옆에 있던 팽연화가 살짝 기세를 피워올리며 끼어들자, 그제서야 노희방은 말을 멈추었다.

"대체 무슨 사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친우의 의자이고 내가 아끼는 아이요. 이 이상 무례를 저지른다면 나로서는 더는 넘어갈 수 없소."

헤으응, 연화마망...

"실례했습니다. 강 소협이 워낙 강호에 알려진 바가 없어서 말입니다. 제가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노희방은 뒤로 슬쩍 물러나더니 포권을 했다. 과연 살짝 돌아간 것 같던 눈이 멀쩡하게 돌아온 것이, 조금 이상한 여자 같았다.

애초에 알려진게 없다는 것 정도로 이성을 잃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게다가 이 여자 술냄새 나는 것 같은데.

"강 소협, 혹시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내줄 수 있겠습니까?"

"예,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녀가 상식적인 태도로 나오자, 나 역시도 딱히 거절할 명분은 없었기 때문에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개방은 거지소굴이라 당연히 꼬추밭일테니까 밀프는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거기에도 밀프가 있었네.

노희방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지면서 나중에 보자는듯 손을 흔들었고 나는 얼떨결에 마주 손을 들어 흔들다가 흠칫해서 얼른 내렸다.

"이상한 사람이네요..."

"...할아버님을 상대할 때도 큰 차이는 없긴 했어요."

어머니의 말에 황보효선이 에둘러 동의를 표하고 나서, 잠시간 침묵이 이어진 다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었다.

"...그럼, 이제 저를 찾은 이유를 들어볼까요?"

황보효선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나는 살짝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황보 여협, 혹시 강호에 피바람이 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진실을 감춰야한다면, 감출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황보효선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되물었지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교가 상업적으로 중원 민초를 얽어매서 중원에 뿌리를 내리면 정파는 지금껏 누리던 홈 어드밴티지를 포기해야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중원은 평화를 찾게 되겠지만 정파로서는 썩 반가운 전개가 아닌 것이다.

"말해주지 않으면 그것을 감출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없네."

하지만 역시 황보효선은 순순히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것 같았다.

'포장을 잘해야지...'

이건 어차피 그냥 밑밥이었다. 분위기만 잡고 나중에 본론을 꺼냈을 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게 만들 밑밥.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우선 알려드려도 지장이 없는 일부터 알려드리는게 좋겠어요."

그 다음은 어머니가 내 말을 이어받아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주약선의 부탁을 받아서 여기에 왔던 일, 도망쳤던 다수는 곧 구할 수 있었지만 미끼로 남은 소수를 구하기 위해 나와 당혜원이 따로 빠졌던 일.

그리고 간신히 승기를 잡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여고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뭐라고? 편패?"

"네. 추측이지만, 팽연화 여협과 동급의 여고수라면 달리 다른 사람이..."

"...젠장."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욕설을 내뱉은 황보효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야 초절정고수가 한 발 걸치고 있다는 소식이 좋은 소식은 아니겠지만 반응이 너무 극적이었기에, 나와 어머니는 슬쩍 눈을 마주쳤다.

뭔가 있다. 우리는 모르고, 황보효선은 알고 있는 무언가가.

어떻게 구슬려서 그 사실을 황보효선의 입에서 끌어내야할까. 나와 어머니는 몰래 전음을 주고 받으며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