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12화 (312/383)

밀푸색마 EP.312 꼬마야 (1)

빠지지직

"흩어지지 마라! 내력이 심후한 자가 앞에 나서서 막아! 삼제! 자네가 앞장서게!"

"알겠소, 대형!"

적도들의 수괴로 보이는 자가 적절한 지시로 서서히 피해를 줄여나가는 것을 보고 중년 사내는 욕설을 억지로 삼켰다.

'형님은 빠져나갔나?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하는데...'

자신이 그나마 화씨일문에서 가장 무공이 출중하다고 해도, 이 많은 적들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뇌령신공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내력의 소모도 심할 뿐더러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를 상대로는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당장 삼제라는 자가 앞에 나서서 대부분의 타격을 받아내고 있으니 쓰러지는 자가 확연히 줄지 않는가. 반면 자신은 서서히 단전이 아려오고 있으니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흐흐, 번쩍번쩍 하는 것이 꼭 반딧불이 같구나!"

"보기와는 달리 문장력이 제법 뛰어나시구려. 언제 한 번 시구나 나눠봄이 어떠하오?"

삼제라는 자가 꼬챙이 같이 생긴 검을 빠르게 놀림과 동시에 검풍이 일어나고, 침이 검풍에 휘말려 적에게는 닿지도 못했지만 중년 사내는 여유를 가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목이 잘리고 나서도 그 잘난 시구를 읊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무래도 목이 붙어있어도 귀하는 쓸만한 시구를 읊을 문재가 없는 것 같구려. 내 실언을 하였소이다."

여유라도 가장하지 않으면, 언제 벼락에 통구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뒤에 움츠려있는 졸개들까지도 앞에 나설 것이었으나, 그마저도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얼굴생김은 산도적 같은 자가,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꼬챙이 같은 검으로 마치 허공을 꿰맬듯이 찌르기를 반복하는데, 그 틈에 사람이 들어가면 참혹한 꼴이 될 것이 분명한지라.

좁혀만 가는 간극 때문에 중년 사내가 허공에 흩뿌리던 내력이 갈무리되어 장심에 맺히는데, 뇌정의 기운이 불꽃 튀기는 소리를 내니 삼귀 역시도 그것을 감히 경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듣기로 화씨일문주는 무공은 형편없고 사람됨은 유약하기 그지없는 자라고 들었는데 소문이 잘못된 듯하구나!"

"사람됨이 유약하다는 평이 어찌 모두에게 한결같이 통용되는 바이겠소이까? 누군가에게는 유약함일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다정함일 수도 있는 것을."

중년 사내는 핵심을 꿰뚫는 삼귀의 말에 내심 움찔했지만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어지러이 찔러들어오는 검을 막거나 흘려내니, 과연 일문의 최고수라고 할만했다.

삼귀 역시 자신이 어떤 초식을 내보여도 상대가 척척 받아내니, 흥이 올라 점차로 그 검로가 거칠것 없이 뻗어나갔다.

그것을 받아내는 중년 사내 역시도 기세를 올려 맞서는 한편, 그 충돌에 휘말릴까 졸개들이 덤벼들지 못하는 것을 기껍게 여기고 있었는데, 삼귀가 문득 입을 열었다.

"크흐흐, 정말 제법이로구나! 대형! 내 이 자와 제대로 검을 겨루고자 하니 허락해주시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뒤에서 지시를 내리던 대형이라는 자가 순순히 수락하자 중년 사내는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적은 그렇게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삼제가 저 자를 처리하는 동안 너희는 절반을 이끌고 가서 주변을 뒤져라. 쥐새끼 한 마리 도망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천둥치는 것처럼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중년 사내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안 돼!'

의약전까지 뚫려있는 수로를 통해서 형을 비롯한 문도들이 빠져나가기야 했겠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나마 무공에 능한 편인 장로들 몇을 딸려보내기는 했지만 그들이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는가?

하지만 저들을 막아야하는 이 상황에서, 눈앞의 산도적 같은 자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흐흐, 뭔가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넌 나와 놀아줘야하니, 다른 곳에 신경쓰지말고 네 목이나 간수하거라!"

"어미가 개와 흘래붙은 자식이...!"

기어코 욕설이 입에서 터져나왔지만, 삼귀는 느물대던 사내가 기어코 가면을 벗어던진 것을 보고 도리어 기꺼워하며 절초를 꺼내들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찔러들어오는 세 줄기의 검영은 쾌속하기 그지없었는데, 찔러들어오는 간격과 방향이 절묘하기 그지없어 도저히 전부 피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력을 가득 실은 두 손으로 두 개의 검영을 지워버린 다음 남은 하나를 향해 두 손을 맞부딪혀 벼락을 쏟아내는데, 내력을 한껏 머금은 검은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비켜라!"

그 일격을 막는 사이 경직된 삼귀의 다리를 걷어차고 적들의 뒤를 쫓으려던 중년 사내는 다음 순간 몸을 날려야만 했다.

쐐애액

풍차처럼 회전해서 날아오는 도에 실린 경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중년 사내의 판단은 옳았지만, 그 사이 삼귀가 다시 그의 등을 노리고 검을 찔러왔다.

"어딜 쥐새끼처럼 도망치려 하느냐!"

단 한 호흡. 넘어진 몸을 다시 일으키는데 필요한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이 없어 속절없이 등줄기에 구멍이 뚫리려던 순간, 삼귀는 제 등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검끝을 돌렸다.

빠가가각

제 검이 꿰뚫어부순 것이 돌멩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삼귀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웬놈이냐!"

아직 마교에 몸담고 있을 시절, 어느 애송이에게 다리를 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정작 돌멩이에 당한 것은 둘째인 이귀였지만.

하지만 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 몸을 일으킨 중년 사내의 반격에 맞서면서 삼귀는 외쳤다.

"찾아라!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본... 교의 행사를 방해하는 놈은 모조리 죽여!"

그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검을 뽑아들며 수하들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주변이 수풀로 우거진 탓인지 좀처럼 찾아내질 못했다.

인적이 드문 산 속이어서 며칠간 공격을 계속하고 있어도 주변의 방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 지형조건이 그들에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으헉...!"

그 때, 수하들 몇몇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즉시 파악한 일귀가 외쳤다.

"암기다! 세 명이 한 조를 이뤄서 서로의 뒤를 지켜줘라! 셋이 하나다!"

외친 직후 일귀가 직접 암기가 날아온 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어느새 위치를 옮겼는지 흉수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돕는 것이 확실한 누군가의 등장에 용기백배한 중년 사내의 손길에 힘이 실렸고, 반대로 삼귀는 화가 나서 중년 사내를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려 들었다.

어떻게 보아도 내력이 달려서 호흡이 가빠진 자가 득의양양한 꼴이 보기 싫어 삼귀는 외쳤다.

"굳이 쫓으려고 하지 마라! 어차피 화씨일문 놈들을 모조리 죽이기만 하면 그만이야! 굳이 그 자들을 상대하려고 하지 말고...!"

[위.]

누구의 전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음이 들린 직후 삼귀는 제 머리 위에서 맹렬한 기세를 느끼고 바로 몸을 굴렀다.

그가 있던 바닥을 누군가가 발로 내리찍으며 바닥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잠시, 삼귀의 눈이 찢어질듯 커졌다.

"네, 네놈은...!"

"누구십니까?"

틀림없었다. 어설픈 복면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는 있지만 마교에서 비참하게 쫓겨간 이후로 이 얼굴을 잊은 적은 없었다.

"죽여주마!"

노성과 함께 검기가 넘실거리는 검이 문답무용으로 젊은 사내의 목을 노리고 뻗어나가는 동안에도, 사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에서 내게 원한을 품을 요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피해자였고, 정당방위로 맞서싸웠을 뿐인데 저렇게 원한을 품고 죽일듯이 덤벼도 되는 건가?

'그건 그렇고 찌르기 엄청 좋아하네.'

커다란 송곳 비슷하게 생긴 검을 덩치 큰 남자가 휘두르고 있으니 꼭 곰이 젓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위력은 그렇게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맞은편에 있던 꽤 잘생긴 중년 남자는 아무래도 이 녀석과 싸우던 것으로 봐서 화씨일문의 사람인 것 같은데, 그와 합공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괜찮습니까?]

[괘, 괜찮소. 버틸만하오.]

송곳을 상대로 싸우던 중년 남자가 자유로워지자 나머지 졸개들이 한꺼번에 덤벼드는데, 제법 수월하게 맞서싸우고 있기는 했지만 많이 지친듯 숨이 가빠보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오지 말고 팽연화가 여기로 오는게 나을뻔했나?'

주약선은 화씨일문으로 바로 이어지는 수로를 통해서 그들이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그녀의 예측대로 우리는 화씨일문의 사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주의 동생이라는 사람과 몇몇 사람들이 남아있다기에, 어차피 곧 주력은 사람 많은 쪽으로 따라올 것 같으니 그쪽은 팽연화와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와 당혜원 둘이서만 여기로 온 것이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이미 일은 전부 이루어졌을 것이다! 네놈만 아니었어도!"

이장로, 아니 뭐라고 해야되나? 황... 뭐더라.

"황 노인이 못된 생각을 해서 일이 그렇게 된 것을 왜 나한테 따집니까?"

"듣기 싫다!"

팩트가 아팠는지 노호를 내지르며 검초를 펼쳐오는데, 낭창낭창하게 찔러들어오는 검격이 어디를 찌를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 이놈이...!"

물론 어려울 뿐이고 안 될 건 없었지만.

내력이 실린 손으로 검을 잡아채자 날카로운 검기가 내 손바닥을 뚫고 들어오려고 용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배를 걷어차자, 남자가 요란하게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굴렀다.

"쿨럭, 크헉...!"

스스로 물러나서 타격을 줄인 주제에 아프다고 엄살은.

"네, 네놈... 어떻게...!"

"뭐라는지 모르겠네. 다시 붙읍시다."

빠각

나는 바닥에 검을 비스듬히 꽂아넣고 발로 밟아서 부러뜨려버렸고, 그 직후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내가 이 남자보다 이젠 윗줄이었다. 지난번 사복검 노인을 상대로 싸웠을 때 이후로 나는 좀 더 강해졌고, 이제 이 남자 정도는 확실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주변에서 그것을 조용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검은 도가 순간적으로 시야에 끼어들자마자 나는 자세를 낮춰 피한 다음 권격을 교묘하게 뒤틀어 남자의 얼굴을 노렸지만 기세가 줄어버린 권격을 남자는 서툰 권장법으로 겨우겨우 막아냈다.

나는 그대로 남자의 옆을 지나쳐서, 화씨일문 사람, 아마도 문주의 동생일 사람의 옆을 노리던 놈을 걷어차며 멈춰섰다.

[화운천 대협, 맞습니까?]

[마, 맞소. 귀하는...]

[강윤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문주인척하며 시간벌이를 하기 위해 남은 그는 상당히 피폐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적은 절정고수 둘에 그보다는 못하지만 일류와 이류 수준의 고수가 수십이라. 평소의 나라면 아멘 한 마디로 명복을 빌어주고 도망나왔을 상황이지만...

'애초에 계획도 없이 튀어나올리가 없잖아.'

마침 이 두 놈이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어쩌면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르겠다.

이미 당혜원과 전음을 나누고 있는지 서서히 밝아지는 화운천의 낯빛을 힐끗 본 다음 나는 도를 내게 겨누고 있는 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사흉(四凶)?"

"사귀(四鬼)다."

"대충 비슷하게 맞췄네요."

"이놈이...!"

"삼제, 가만히 있거라."

울그락불그락해진 곰 같은 남자를 진정시키고, 도를 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일귀, 이쪽은 삼귀라고 부르면 된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저도 여러분과 엮이고 싶어서 온 건 아닙니다만."

"대답할 생각이 없나보군."

"물어봤다고 순순히 대답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삼귀에 비해서 일귀는 침착한 것이 오히려 더 껄끄러웠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일귀가 마냥 침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믿는가본데, 잘못 짚었다. 네놈은 여기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검은 도가 자색 도기에 물들며 일귀의 몸에서 폭발적인 살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삼귀는 본래 쓰던 검이 아니라 평범한 형태의 검을 어디서 구해 쥐고 있었는데, 그쪽 역시 기세만으로는 만만찮았다.

"대인께서는 네놈을 살려두라 하셨지만... 우리의 행사를 방해하는 이상은 네놈의 목을 치더라도 뭐라 하지 않으실터."

"칠 수 있다면 말이죠."

"정말 입은 끝까지 살아있구나."

"..."

그렇게 잠시동안 침묵이 오가고, 바로 다음 순간 나는 두 사람과 동시에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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