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303화 (303/383)

밀푸색마 EP.303 그거면 되겠습니까? (1)

성연군주는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듣고 아연해졌다.

"그, 그런 것이 가능했다는 말이냐?"

사내가 독특한 색공으로 기력을 보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피임을 위해 아기씨를 걸러내는 대법의 존재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아기씨에 내력을 심어서 무조건 아이를 갖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니?

"아, 무조건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여자 쪽이 선천적으로 불임일 경우에는 어떤지 확인을 안 해봐서..."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세상에 널렸는데, 이 방법을 널리 퍼뜨린다면 그들도 훨씬 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생각해보니 안 되겠군.'

무림인들이 제 무공을 목숨같이 아낀다는 것은 둘째치고, 만에 하나 악한 자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색마 하나가 못된 마음을 품고 아무 여인에게나 사용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인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아, 아무튼 그렇다면 다음에는 반드시 아이를 가질 수 있는게로구나. 그럼 꼭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괜찮겠어."

성연군주는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문득 심사가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 그녀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의 얼굴이 묘하게 밝아보이는 탓이었을까.

'본녀와 매일 하지 않게 된 것이 그리 기쁜 것이냐...?'

스스로 생각하고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결론지을 정도의 이성은 있었다.

사내는 이미 어지간한 황족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여인들과 밤생활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가 있다면 모르되, 이유도 없이 한 여인이 사내를 독점한다면 다른 여인들은 반갑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설명을 해주었다는 것까지도 전부 이해했지만, 여심이란 이상한 것인지 한 번 심사가 뒤틀리자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진정으로 부마로 들인 것도 아닐진대, 이런 괴이쩍은 감정에 시달려야한다니.

"하지만 본녀로서도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조금 곤란하구나."

"예?"

"마침 오늘 밤이... 그, 합방일이 아니더냐? 그러니, 오늘 밤까지만 다른 여인들을 안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사실 별 의미는 없을 것이었다.

간혹 사내가 다른 여인들과 낮에도 어딘가에서 교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밤에 그 정력이 쇠하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굳이 하루 낮을 참는다고 하여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을 것이었고 설령 참지 않는다고 해도 성연군주가 분간해낼 수는 없으리라.

단지 이것은 성연군주가 스스로의 뒤틀린 심사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성연군주는 그 표정에서 한 점의 불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연군주의 안목에 조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내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

적어도 대답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는 확실히 그러했다.

'죽겠다...!'

성연군주는 내 설명에 나름대로 납득한 모양이었고,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선까지 물러나주었다.

내가 낮에도 꽤 자주 여자들을 몰래 안고 있다고는 해도 매일 하는 것은 아니니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도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거였는데...!

'안 한다고 약속하고 나니까 괜히 더 하고 싶다!'

바로 저 뒤쪽으로 가면 내 여자들이 몇 명씩이나 있는데 일부러 안 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점점 욕망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의원 쪽 근처까지 견이를 안고 산책을 나온 언소영, 최근 미용 목적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생긴 것 같으니 당귀의 발주를 늘린다는 당혜원, 무공의 감을 찾는다고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어머니!

당장 적당히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가서 아랫도리를 벗겨버리고 쑤셔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이, 청개구리 심보가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는데 이렇게나 효능이 좋았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참자...! 참아...!"

바늘로 허벅지 찌르는 과부에 빙의해서 억지로 참았다. 어차피 오늘 하루, 지금껏 하루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오지 않았나.

여행 중에는 며칠씩 참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나는 못 참는게 아니다, 못 참는게 아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북돋고나니 조금은 참을만한 것 같았다. 이제 일이나 하고, 남는 시간에는 무공 수련으로 땀을 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자, 일하자, 일. 일단, 주약선이 요청한 도제 교육시간에 대해서... 비는 시간을 활용해서 기초적인 의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음음...

[강 소협, 있는가?]

"...들어오세요."

꼭 이럴 때, 평소에는 안 찾아오던 사람이 나를 찾고는 한다.

양하정은 의원에 왔을 초기에 나와 몰래 낮에 떡을 쳐대서 그런지 들킨 다음에는 낮에는 나를 잘 찾지 않았다.

사실 성연군주의 호위로서 동행했고, 지금은 호위 임무의 대부분을 동창 호위들에게 일임했다고 하니 특별히 용건이 없는 이상 나를 찾아올 일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얼굴을 안 보인 이유는 면목이 없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이유가 비중이 크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죠?"

"실은 아가씨에게 들어서 왔는데 말일세..."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내가 서류를 정리하는 방식에 대해서 배우려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팽연화에게서 듣고 찾아왔다는 것을 보면, 아마 당혜원이 팽연화에게, 그리고 팽연화가 다시 양하정에게 이야기해준 거겠지.

확실히 표나 그래프를 써서 서류를 정리하면 한눈에 알아보기가 편하니까, 유용하다고 생각할만도 했다.

"좋아요. 이리 앉아보시겠어요?"

나로서는 환영이었다. 일단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시간도 빨리 갈 거고, 비록 내가 생각해낸 것은 아니지만 자랑하는 것도 썩 사양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어차피 양하정이니까, 내 쪽에서 들이대지 않으면 딱히 아무짓도 안 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호오... 확실히 그렇게 만들면 분류가 간단하겠군. 지역별, 업종별로 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겠어."

이건 아니다. 양하정답지 않다.

양하정은 세필을 놀려 표를 그리고 설명하는 내 팔에 계속 가슴을 들이대면서도, 입으로는 짐짓 진지하게 내 설명을 듣는 척을 했다.

"게다가 이렇게 특수한 기호로 수를 표시하면 확실히 더 작게 표시할 수 있군? 훌륭한 발상일세."

양하정은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 수동적인 축에 들었다. 나이 때문에 느끼는 자격지심 탓인지, 내 쪽에서 요구해오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줄 뿐, 자기 쪽에서 하고 싶다고 매달린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던 것도 있고, 양하정과는 공백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특히 심한 편이었다.

'성연군주가 시켰나...?'

두 사람이 꽤나 돈독한 사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자기가 하지 말라고 해놓고서 그걸 뒤집는다?

나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했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꽈악

"으윽...!"

진작에 책상 밑에서 발기해있던 자지를 양하정의 보드라운 손이 바지 위로 움켜쥐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바짝 붙어앉은 양하정의 몸에서 나는 살냄새가 안 그래도 미칠 것 같던 나를 자극했다.

군주님이 시켰어요?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양하정의 눈동자 너머의 갈망을 본 순간,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직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양하정은 지금 내게 발정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아..."

양하정이 뿜어내는 뜨거운 숨결이 내 손을 스치고, 그녀의 혀가 슬쩍 제 입술을 훔치는 순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성연군주의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달려들고 말았다.

양하정은 제게 달려들어 여체를 마음껏 주물럭대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녀가 자신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이렇게 사내를 유혹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좀 더 이전, 팽연화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알 필요가 있었다.

팽연화는 바로 얼마 전까지 제갈미령이 그랬던 것처럼 몸을 추스리며 제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양하정은 그런 그녀를 가끔 살피러 가고는 했다.

"정말, 아이를 낳은게로군?"

"네."

양하정의 말은 덤덤했지만 상당한 놀라움이 담겨있었다. 이미 진작 아이를 품은 배를 봤으나 그것과는 또다른 경이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많이 닮았지요?"

"그래, 많이 닮았군."

솔직히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인지 양하정의 눈에는 누구를 닮았다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양하정은 적당히 둘러댔다.

조금 더 자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동글동글하게 생긴 아이는 아비와 어미 중 누구를 닮았는지 얼른 짐작이 가질 않았다.

정확히 어디가 누굴 닮았는지 말이 나오기 전에, 양하정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실은 놀랐네. 설마 정말로... 그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할 줄은 몰랐거든."

강윤이 들었다면 쌀 때마다 임신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몰랐다고 하느냐고 따질 일이었지만, 양하정은 진심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상대가 아가씨라면 괜찮을 것도 같네."

"무슨 말이세요?"

"초절정의 고수가 아닌가. 앞으로도 그 모습 그대로... 30년은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니 당연한 일일세."

여인들 중에서 가장 외모가 젊기로 따지면 팽연화가 으뜸이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환골탈태하였으니, 사내와 붙여두고 저자의 사람에게 보이더라도 아내가 나이가 조금 많다고 생각할뿐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그에 비하면 자신은 어딜 어떻게 뜯어보아도 모자 사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요 며칠간 전혀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여자와 새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양하정은 몰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요,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아닐텐데요."

그런 양하정의 생각까지는 몰랐지만, 팽연화는 자신이 초절정고수이고 앞으로도 젊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품게 했을 거라는 양하정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사내는 살아숨쉬는 성욕의 화신 같은 인간이었다. 그것도 연배가 조금 되고, 남편이 이미 있거나 있었던 여자만 건드리는.

그런 여자만 골라서 건드리면서도 하나같이 미색은 뛰어나니 다리 사이에 달린 양물 하나가 참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셈이었다.

양하정이 다른 여인들에 비해 나이가 많고 젊은 시절의 미모가 퇴색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여인이었기에 사내는 아랫도리를 휘둘렀으리라.

'아마 환골탈태시킬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있겠지.'

일단 회가 동하면 아랫도리를 놀리고 보는 주제에 책임은 지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팽연화는 이제 그 정도 계산은 할 수 있을만큼 사내를 잘 알았다.

"아마 지금 당장 결심했다고 아이를 품겠다고 하면서 가면, 새언니도 임신시킬 사람이랍니다."

"그, 그런...!"

양하정은 팽연화의 직설적인 말에 얼굴을 붉혔고, 팽연화는 얼굴을 붉히는 양하정을 보고 나서야 어느새 제가 사내에게 물들어 이런 망측한 소리도 툭툭 내뱉게 되었구나 싶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지나가고, 기왕 말을 꺼낸 것 팽연화는 끝까지 양하정을 위로해주기로 했다.

"건드리고 싶으면 건드리는 사람인만큼, 건드리기 싫으면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사람이에요."

말을 내뱉고 보니 팽연화는 사내의 이런 경향 때문에 가슴앓이하고 있는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속이 답답해졌지만, 양하정은 그것을 짐작할 도리도 없이,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라' 라는 팽연화의 격려를 알아들을 뿐이었다.

이것이 양하정이 지금, 느닷없이 사내에게 들이닥쳐 육탄공세를 벌인 까닭이었다.

성연군주가 사내에게 하고 간 당부가 무엇인지, 양하정이 짐작할 리가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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