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301 마교까지? (1)
"뭐라... 구요?"
며칠만에 어머니에게 문안을 온 능휘연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매소향의 표정은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말실수를 했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혹시..."
"아이를 낳겠다고 한 거라면, 제대로 들었단다."
매소향이 다시금 쐐기를 박자, 능휘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는 매소향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체를 망가뜨리는 것말고는 아이를 떨어뜨릴 방법이 없다는구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능휘연의 머리를 맴돌았다.
"네게는 거듭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셈이니 미안하지만... 부디 이 사실이 아버지나 풍연이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줄 수 있겠니?"
능휘연의 언행이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해도, 어머니의 외도와 임신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뭔가 사고가 있거나, 음적에게 겁간을 당했던 것인가 생각을 했을 뿐.
처음 자신의 앞에서 입덧을 했을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보아서는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거죠?"
"제갈 여협이... 맡아주기로 했단다. 이미 태어난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의 동생뻘로 길러줄 수 있다면서..."
"..."
능휘연의 표정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매소향은 능휘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제갈미령과 매소향의 사이는 능휘연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걸고 넘어지면 일이 성가셔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미령 말고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름을 꺼내고보니, 딸이 침묵한 것이다.
"저기, 휘, 휘연아..."
"네, 어머니."
막상 능휘연이 순순히 대답하며 눈을 마주보자 매소향은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딸이 특별히 의심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본인이 찔리는 것을 전부 털어놓고 해명할까?
지금까지 딸에게 이렇게 위축될만한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눈동자 앞에서 매소향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어미가, 못나서..."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죠."
그러나 막상 기세에 눌려 입을 연 매소향에게, 능휘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기실 그녀의 속도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에게 사과를 받아봐야 달라지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그보다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고, 그것은 매소향 본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풍연이에게는 적당히 말해둘게요."
빈말로도 말솜씨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자신이었지만, 아버지나 능풍연이나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관심해서, 능풍연은 어머니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고맙구나... 휘연아."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 잘하세요."
능휘연은 면목없는 표정의 매소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배웅을 나오려는 어머니를 만류했다.
물론 이제 몸을 관리하면서 아이를 낳아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능휘연은 화산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남겨둘 생각이었다.
[...조만간 사업이 본격화되는대로 또 서신을 보낼 것이네.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건강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부 부탁하네.]
힘있는 필체로 적힌 영호경의 서신을 전부 읽고 나서, 나는 천천히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옆에서 내가 서신을 읽는 것을 모조리 지켜보고있던 흑의를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바로 답신을 쓰겠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귀하가 부탁할 일은 아니오. 귀하가 답신을 쓴다면 기다렸다가 받아오라는 것 역시 소교주의 명이었으니."
흑의로 온통 몸을 감싼 남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다시 망부석처럼 내 옆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림 생활이 길어지고 붓을 쓸 일이 늘어나면서 나름대로 적응한 솜씨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내가 함부로 좆대가리를 놀리고 다닌 업보로 홍역을 치르는 동안 영호경은 상단과 전장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마교 쿠팡, 그러니까 물류업을 드디어 시작했다는 거였다.
사업 초기였기 때문에 배송료를 삭감해주는 정책으로 개인정보를 등록시켜 집으로 배송시키거나 집 근처 우물터 옆에 택배 수령장을 두고 시범구매를 시키는데, 꽤나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제 고작 반 년이 되어가는 상황인데도 벌써 시작했다는 것을 보니 꽤 일을 바쁘게 한 것 같아서 우선 아이도 있는 몸이니 상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고 있는 모양이기는 했지만.'
이제 5개월이 지나서 배가 그럭저럭 불러오기 시작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교 총단에서 이후 합류한 인력 중에 실력있는 의원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꾸준히 진맥을 받고 있다니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그 의원은 애초에 영호경(과 채수란)을 돌보기 위해 교주가 일부러 신경써서 딸려보냈다고 하는데, 자기 딸이랑 떡치는거 보고 눈돌아가서 줘팰 때는 언제고 손주는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나도 돈은 좋아하지만... 너무 급하게 수익을 떼줄 생각 안 해도 되니까 천천히 해주세요...]
돈보다 당신이 더 소중하다고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혹시 내용을 몰래 보고 있었나 의심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곧 기감에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잡아냈다.
"제 손님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와주시겠습니까?"
"그러지. 그럼 오늘 유시(오후 5~7시) 정도에 다시 찾아올테니, 그 떄까지 준비해주시오."
그렇게 말하자마자 남자는 모습을 감추었다. 경신법이 솜씨가 상당한 것이, 가볍게 발을 구른 것 같은데 단숨에 창문 바깥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교의 고수 풀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강 소협... 잠시 괜찮을까요?]
"아,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역시 내가 짐작한대로 능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에 따라서 맹해보이기도 하고 예리해보이기도 하는 무표정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듣기로 오늘 능휘연에게 사실을 밝힌다고 했으니 이제 사천을 떠난다고 인사라도 하러 온 모양이지.
"꽤 잘 꾸며져있군요."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해주는대로 받은 것뿐이라서..."
아무래도 현대인이다보니 색감의 센스 같은 것이 많이 느낌이 달라서 아직도 그 갭을 메우는데는 고생하고 있었다.
당혜원이 만들어준대로 쓰고는 있는데, 보기에 괜찮다니 당혜원의 감각이 꽤 좋은 모양이었다.
능휘연은 적당히 인사치레 말을 짧게 나눈 다음,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를 잘 부탁드려요."
"물론입니다. 매 여협의 건강에 이상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능휘연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능 소저...?"
"제 말은 그 뜻이 아니에요."
능휘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앓고 계신 병환이 뭔지는 강 소협도 다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다른 곳으로 발설하지는 않을테니 염려마십시오.]
[고마워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능휘연이 전음으로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확실히 매소향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 너무 촉이 좋다.
[분명 어머니께서는 상대 남자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고 계셨어요. 그건 여기에 오면서도 간혹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오늘은 그게 전혀 보이지가 않았어요.]
즉, 매소향이 상대 남자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무언가 그 자가 수를 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라는 것이 능휘연의 생각이었다.
[뭔가 구실을 잡아서 협박을 하고 있는건지, 어떤 수를 쓰고 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어머니에게 접근해서 수를 썼다는 사실만은 확실하죠.]
[...죄송합니다. 저희가 매 여협을 잘 보호했어야하는데...]
[책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순순히 내가 범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지만 능휘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강 소협 밖에는 없어요. 강 소협 혼자서 완전히 어머니를 보호해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겠지만... 최대한 신경써서 지켜봐주다가 가능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능휘연의 확고한 눈빛이 나를 마주보자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건가? 모녀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소리나 툭툭 내뱉던 여자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를 응시하며 부탁해오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쁜 생각, 나쁜 생각.'
모녀덮밥 루트를 밟는 것은 언소영 모녀로 충분하다. 애초에 자기 엄마 따먹었다는 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이 또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다.
나는 나쁜 생각을 몰아내며 능휘연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매 여협께서 편안히 지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능휘연은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했고, 나는 어쩐지 민망한 기분을 느꼈다.
'실은 그 감시대상이 바로 난데.'
"느닷없이 찾아와서 부탁만 해서 미안해요. 기회가 된다면 꼭 은혜를 갚을게요."
안 돼... 그러지마...! 난 쓰레기야...!
내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능휘연은 방을 휘휘 돌아보더니 걸려있는 빈 족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
"혹시, 거북이에 관심 있으세요?"
"...거북이 말씀입니까?"
"학은 천 년, 거북이는 만 년을 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능휘연은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하는데, 혹시 필요하다면 본인이 거북이 그림을 하나 그려줄 수 있다고 하기에 정중하게 사양했다.
이게 능휘연이지. 그제야 나는 속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