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263 죽여버린다 (2)
주약선은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이 벌이는 격전을 지켜보았다.
'이럴 수가...!'
백발사내의 무공은 잘 알고 있었지만 강윤의 무공은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강윤은 그녀보다 무공이 조금 위였지만 그녀는 의원으로서 육체의 발달 상태와 희미하게 느껴지는 내력의 크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강윤의 무공수위를 짐작하고 있었는데, 강윤이 보여주는 무위는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너무 강해...?'
너무나도 빠르고 강한 그 움직임에 그녀는 그 공방에 끼어들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잘못 보았나 생각했지만 강윤의 안색을 본 순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무리해서 억지로 강한 힘을 내고 있어...'
억지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시시각각 체내가 갉아먹히고 있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강윤의 손에는 힘이 넘쳤고, 기기묘묘하게 강윤을 포위하려 들던 사복검이 가볍고 쾌속하게 사방을 향해 뿜어나가는 권격의 경력에 휘말려 기세를 잃었다.
뿐이랴, 기묘한 신법은 강윤의 몸을 바람같이 이끌어 백발사내가 회피할 방위를 모조리 틀어막고 서서히 적의 목줄을 틀어쥐려 들었다.
"이놈! 어디서 괴상한 수법을 배워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수법이 오래 가지 못함을 내 알고 있느니라!"
백발사내 역시도 사정을 짐작하고 있는듯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위인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올려 시간벌이를 하는 듯했지만 그 신형은 갑자기 멈추더니 기우뚱하기 시작했다.
"병신."
"크으윽!"
자세히 보니 백발사내의 발목이 뭔가에 붙잡힌 듯했는데, 그것을 강윤이 잡아당기자 허공에 몸을 띄운 백발사내는 속절없이 끌려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듯 했지만 백발사내 역시도 고수,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쳐 몸을 다시 일으킴과 동시에 강윤에게 기묘하게 감겨들어가는 사복검의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강윤은 그조차도 예상했는지, 남은 한 손으로 사복검을 휘어잡아 같이 당기자, 백발사내는 한쪽 다리와 한쪽 손이 끌려가는 불균형에 기함했다.
사복검을 틀어쥐어 피를 분수처럼 내뿜는 한 손은 마음에도 두지 않는듯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그 모습에 주약선은 전율했다.
무식한 힘겨루기로 상황을 몰아넣은 강윤에게 끌려온 백발사내는 새하얀 진기를 잔뜩 머금은 강윤의 발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얼른 남은 손 하나를 내밀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다.
"으억!"
얼굴에 맞았더라면 머리가 뭉개져 죽었을 강맹한 발길질은 백발사내의 손을 박살내고 어깨를 탈골시킨 듯했지만 백발사내의 생명을 가져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뒤로 넘어진 백발사내의 얼굴을 향해 다시 한 번 사내의 발이 내리찍어졌고, 그것이 백발사내의 마지막인 것으로 보였다.
"쿨럭!"
주약선은 강윤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 결국 강윤의 육신이 버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래의 경지보다 훨씬 뛰어난 무위를 발휘하게 해준 반동이, 하필 지금 터져나온 것이다.
그 틈에 백발사내는 얼른 몸을 튕겨 강윤의 공격권에서 몸을 빼냈다.
"하아, 하아... 이, 빌어처먹을 놈의... 애송이가...!"
백발사내의 얼굴은 증오로 극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실제로 백발사내의 얼굴은 주름투성이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뛰어난 의원인 주약선은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주안술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고, 당연히 주안술을 유지하기 위한 내력을 별도로 소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 되돌리고 있는 건가...?'
제법 잘생긴 백발사내의 얼굴은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초라해졌지만, 노인이 된 대신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기세는 훨씬 광폭하고 무서워졌다.
"감히, 감히 이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어...? 내 반드시 네놈을 도륙을 내어주마...!"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회색의 탁한 내력이 가득 맺힌 사복검이 일어나 강윤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는 그저 짧게 내뱉을 뿐이었다.
"잘 어울리네, 병신."
그리고 또다시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허공에 녹아들었다.
다시 목 안에서 치밀어오르는 핏물을 꿀꺽 삼키고 나는 찢겨나갈 것 같은 경맥을 통해 장심에 진기를 모아 떨쳐냈다.
진기는 장력이 되어 공간을 휩쓸었지만, 노인의 채찍 같은 무기가 장력의 핵을 베어내자 산들바람처럼 공기에 녹아들 뿐이었다.
'죽이고 싶다.'
언소영은 강해졌다.
당장이라도 초절정을 노릴 수 있을만큼, 절정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언소영이 의원에 있다기에 서둘러 오기는 했지만, 그녀가 절대고수 이외의 상대에게 생명을 위협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내가 주여린과 몸을 겹치고 있는 사이 언소영이 저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나는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애송아, 아무리 쥐어짜도 소용없느니라. 순순히 목을 내놓거라!"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기 전에, 일단 이 늙은이만큼은 반드시 죽인다.
이미 내부는 엉망이었지만, 음양의 두 진기는 내가 강하게 원하자 내 몸을 더욱 망가뜨려서라도 계속해서 부딪히고 현천진기를 생산해냈다.
지난번 영호경을 구해낼 때 얻은 깨달음으로 현천지기를 만들어내는 부담이 상당부분 경감되었기에 나는 여기로 오면서 현천지기를 두 번이나 소모해버렸음에도 이 무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위험해...'
상대의 초식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정묘함에도 무식한 힘과 속도로 어떻게든 찍어누르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 역시도 숨기고 있던 본래의 실력이 있었는지 현천진기를 물쓰듯 소모하는 나에 비해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힘과 속도를 보여주기 시작하자, 승부의 저울추가 다시 반대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크하하...! 감히 이 몸 앞에서 건방을 떤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마. 네놈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니라!"
노인은 승기를 잡기 시작하자 껄껄대며 웃었지만, 결코 그 손끝에서 방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채찍 같은 무기가 빠르게 움직이고, 주변의 지형지물까지 이용해가며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 나를 노려왔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정신을 놓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나는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위해 어거지로 내가 알고 있는 초식들을 즉석에서 변형시켜 맞섰다.
지금까지 상대해본 자들이 내게 보였던 것들, 그리고 그것에 맞서 내가 무의식 중에 펼쳐냈던 것들이 진정으로 지니고 있는 의미를 지금 한순간에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내 무기로 삼아야만 했다.
손만이 아니라 팔뚝, 팔꿈치, 손등, 어깨. 아직 박살나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내력을 집중시켜 공격을 튕겨내고 조금씩 조금씩 적의 공격권 안으로 들어갔다.
전신이 찢겨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묘한 희열을 느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갔다.
나는 점점 놈을 죽여야한다는 살의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면서도, 살의 자체는 점점 명료하게 형태를 갖춰가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녀석을 죽인다.'
그 순간, 내 손이 펼치는 초식의 흐름이 변화했다. 칼날에 씌워진 칼집이 벗겨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흠칫
'아니, 이건...!'
노인, 은호는 처음부터 스멀스멀 느끼던, 그리고 완전히 억눌렀다고 생각하던 공포감이 다시 명확한 형태를 갖춰 그를 위협하는 것을 느꼈다.
그 근원지는, 그의 앞에서 전신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애송이가 분명했다.
'대체 이놈이 뭐길래...?'
남궁세가에서 흑호가 이놈 때문에 실패했다는 보고에, 묘하게 이놈에게 관심을 가진 호령이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호령은 그보다 연배가 아래였기 때문에 순순히 따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무공의 심득은 너무나도 쉽게 그를 지금의 경지까지 끌어올려왔다.
아직 약관을 조금 넘은 애송이,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이놈은 뭐란 말인가...?'
억지로 특수한 대법을 써서 끌어올린 무위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구명절초의 일종으로서 이런 대법을 종종 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하지만 은호가 모든 내력을 발휘하고 있어 궁지에 몰아넣은 상황에서도, 애송이의 초식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오히려 더해져만 갔다.
그는 이 초식의 정체를 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의식이 감지하고 있는 것일뿐, 은호는 자신이 대체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은호는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 앞에 벌거숭이로 세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은호가 느끼고 있는 공포감의 정체 역시 명확하게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은호는 급하게 강윤에게서 거리를 벌린 다음 입을 덜덜 떨며 열었다. 그 모양이 마치 학질 걸린 병자와도 같았지만, 은호는 그에 대해서 생각할 여력조차도 없었다.
"너, 너...!"
젊었던 그 날, 마치 악몽 같았던 그 순간을 떠올린 은호는 상대에게서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평범한 체구에 놀라울 정도의 미청년의 모습이었던 그와는 달리, 강윤은 그럭저럭 준수한 외모에 장대한 체구로 전혀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초식조차도 당시 그가 사용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초식의 성질이 바뀌는 그 순간 그 안에 본질적으로 비슷한 무학의 이치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해야한다!'
절대 이 자를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한 번 밟아주면 죽어버릴 고양이 새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강호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의 새끼였다.
자신의 것을 건드렸을 때 그 자가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아는 자 중에 살아있는 자는 은호 뿐이었다.
만약 그의 제자를 해친다면 설령 세상 끝까지 도망가서 숨는다 하여도 그 자는 반드시 그를 찾아내리라.
'혈마...!'
겁에 질린 은호가 몸을 빼려는 순간, 강윤이 발을 굴러 다시 따라붙었다.
"어딜... 가려고?"
은호는 미칠 지경이었다. 입에서 피를 꾸역꾸역 토하고 있는 주제에 강윤은 끈덕지게 따라붙어 그를 놓아주려하지 않았다.
"이, 찰거머리 같은 놈!"
"찰거머리한테... 죽어봐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혈마의 제자가 하찮은 협의지심 따위에 목숨을 걸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초식을 교환하는 와중에도 빠르게 발전하는 실력은 과연 혈마의 제자라고 할만하지만, 이대로 가면 정말로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떨쳐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자를 죽이는 순간, 혈마가 그를 죽이기 위해 기를 쓰고 쫓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아직은 안 된다! 절대고수가 되는 그 순간까지는, 절대로 안 돼!'
그것을 위해서 자신보다 연배가 아래인 호령의 밑에 들어가는 수모도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 은호라는 거짓 이름이 아닌 그의 진짜 이름이 열세번째 절대고수로서 강호무림을 떨어울리는 미래를 위해서.
"크허억...!"
그 때, 상대가 다시 피를 흘리며 비틀대기 시작했다.
기어코 또다시 한계에 봉착한 강윤의 모습을 보며 은호는 쾌재를 울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 틈에 빠져나가면 된다...!'
수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릴 호각은 품 속에 들어있지만 그는 그것을 울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끝까지 싸워서, 그를 위해 죽어주어야만 했다.
피를 토해내느라 비틀거리는 강윤을 일별하고는, 은호가 몸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싸아아악
등골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은 감각과 동시에 옆으로 몸을 날린 은호는, 왼팔에 불이 붙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으아아아아!"
"쯧. 얕았네."
어느새 기침을 멈추고 달려든 강윤이 뻗어낸 용조각이, 그 이름처럼 용의 발톱 같은 세 갈래 예기를 품고 은호의 왼팔을 잘라낸 것이다.
처음부터 기침은 속임수였다. 한 번 그 기침 덕에 살아남은 은호로서는 걸려들 수 밖에 없는 속임수였다.
"네놈이... 감히!"
팔꿈치 아래가 뭉텅이로 잘려나가 외팔이가 되어버린 은호는 노여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강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을 죽이려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게... 누가 도망치라고... 했나?"
"닥쳐라!"
분노가 담긴 일격은 허무하게 빗나가버렸다. 팔을 하나 잃었다는 사실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몸이 쏟아내는 초식은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사내 하나 잡지 못할 정도로 그 정묘함을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초식이 흐트러진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외팔이가 절대고수가 되는 길은 더욱 지난하다. 게다가 은호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 적응하는데 드는 시간도 적지 않으리라.
그 절망감은 은호의 마음을 갉아먹었고 그 역시도 그의 초식을 흐트러지게 만든 것이다.
"흐억!"
그런 초식의 빈틈으로 강윤의 일권이 파고들자 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여기에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는다.'
그의 기감에 수하들을 뚫고 접근하는 고수의 존재가 또 한 사람 감지되었다.
만약 그 자가 강윤과 합세하여 그를 공격한다면 그는 정말로 죽을 것이었다.
그는 단전이 아릿하게 아파올 정도로 내력을 끌어올려 사복검으로 주변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다음, 이번에야말로 신형을 빼냈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지 않는지 잘 살폈지만, 강윤에게는 이제 달아나는 그를 잡을 여력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제야 안심하고 등을 돌려 접근해오는 또다른 고수와는 반대 방향으로 의원을 벗어나기 시작한 은호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
'언젠가, 꼭 갚아주마...!'
호령은 틀림없는 절대고수, 그것도 삼존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고수라고 추측되었다.
게다가 은령회에 속한 다른 영급 고수들 역시도, 호령보다는 떨어지지만 절대고수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은호를 지켜주는 것은 거부할지 몰라도, 강윤의 뒤에 혈마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분명 혈마를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보탤 것이었다.
은령회가 존재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혈마가 사라지면 반드시 돌아와서 네놈을 죽여없앨 것이야...!'
건방진 애송이를 요리할 생각에 즐거워진 은호는 갑자기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느끼고 안색이 굳었다.
갈무리했던 사복검을 풀어서 막아내려 했지만, 회색 검기를 진하게 머금은 사복검은 허무하게 박살이 났고 그 직후 은호 역시도 동강이 났다.
'뭐야... 붉은... 도?'
은은한 붉은 빛을 머금은 도 한 자루가 날아와 자신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일격을 분쇄하고 자신까지 베어버리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지만, 잘려나간 몸뚱이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이놈의 의원에는 대체 무슨 고수가 이렇게...!'
은호는 강호에 오랜 세월 몸담은 경험많은 노고수였지만, 아쉽게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을 때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한쪽 팔만 있었어도...'
이미 잃어버린 한쪽 팔이 있었다고 해도 강기가 실린 이기어도를 막아낼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빛이 사그러드는 노인의 눈에는 마지막까지 잃어버린 한쪽팔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