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56화 (256/383)

밀푸색마 EP.256 별로 다를 것도 없군 (1)

동창은 오롯이 황실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까아... 말해보라는 말이야아...! 거기서, 양... 아니, 팽 부인이, 뭐라 하였다고...?"

조장 역시 동창의 일원으로서 황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였으며 인간성을 마모시키는 끔찍한 훈련과정을 모조리 이겨낸 인간이었다.

"군주마마...!"

"어서 대답하지 못하겠느냐아! 본녀의 조부가... 대명의 주인임으을! 네가 모르느냐아!"

하지만 아무리 조장이 인간이기 이전에 황실을 위한 도구로서 살아갈 것을 맹세한 몸이라한들, 이 상황은 조금 감당하기 어려웠다.

술에 취해 방사 도중에 이뤄진 대화의 내용을 물어오는 군주에게 조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군주마마, 그런 천박한 내용으로 귀를 더럽히시지 않으셔도..."

"오, 지금 본녀의 명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냐아! 잘 알았도다! 그대가 바로 역..."

역적, 이라고 말을 하려던 성연군주는 얼른 입을 닫았다. 아무리 취기에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고 해도, 도를 넘어서는 언사였다.

조장 역시도 성연군주가 황급히 도로 밀어넣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러가라. 본녀는 이만 혼자 있고 싶으니라."

"알겠사옵니다, 군주마마."

"본녀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니니라. 진정으로 물러가라 한 것이야. 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몰래 살피지 말라는 말이다."

당연히 군주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려던 조장은 움찔했다.

"하, 하오나..."

"호위가 문제라면, 이 장원에 침입자가 없도록 하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

곁에서 바짝 붙어 한 사람을 지키는 것과 건물 전체를 지키는 것은 난이도의 차원이 달랐지만, 웃전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혹여 본녀를 속이려면 잘 해야할 것이야. 다른 다섯 명 중에 누구도 본녀에게 진실을 고할 수 없도록 하거라."

"...염려마소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마마."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꼼꼼하게 확인하는 성연군주의 말에 조장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조장이 모습을 감춘 다음, 성연군주는 혼자서 계속해서 술잔을 채우고 다시 비우는 일을 반복했다.

젊은 사내와 외도라니, 양하정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이모님, 그리 좋았소? 남편을 두고 외간 사내와 정을 통하는 것이 그리도 좋았느냔 말이오.'

사내와 몸을 겹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성연군주는 양하정이 사실은 속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정말로 사내와의 정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성연군주는 더할 나위 없는 실망감을 맛보고 있었다.

한 잔, 두 잔. 술은 끝도 없이 들어갔다.

목을 태우는 것 같던 술이 어느새 달게 목을 넘어가며 그녀의 쓰린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 같았다.

"나아쁜 놈. 내 양 언니만 아니었어도 네놈의 목을 쳤을 것이다. 추악한... 음적 놈...!"

양하정을 탓하고 싶지 않았던 성연군주는 비난의 창끝을 강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놈은, 양 언니를 무슨 수로 꼬여낸 것이란, 말인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님에도 양하정이 사내와 정을 통하게 된 것에는, 틀림없이 비열한 수작이 있을 것이었다.

강윤이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을 동원해서 양하정을 현혹했다고 생각하면, 양하정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 틀림없도다! 그 자가, 그 자가 양 언니의 눈을 가린 것이야!"

오, 가엾은 여인이여. 본녀가 반드시 그 자의 사악한 수법을 밝혀내 그대를 구하리라.

성연군주는 술에 취해 빈 술병을 거꾸로 쥐어들고 부절을 쥔 장수처럼 용맹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휘청대는 발걸음이 그녀를 인도하는 곳은 강윤을 꽁꽁 묶어 쳐넣어둔 광이었다.

포박 상태라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상 이상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플 정도로 단단하게 묶인 밧줄은 내 완력만으로는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력이 있어도 풀 수 있을까 얼른 확신하기는 어려울 지경이었다.

'대체 왜 날 묶어놨는지는 모르지만...'

내 앞에서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귀가 야무지게도 막힌 탓에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장 내게 손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해코지할 생각이 없거나, 그냥 죽이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뭔가를 체험시킬 생각이 분명했다.

솔직히 더럽게 쫄렸지만, 나는 지금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다.

'자자.'

난 일단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몸을 졸린 상태로 빠뜨려갔다. 자세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피곤하면 어디든 잠을 못 자겠어?

휴식을 취해두어야 막상 도망칠 기회가 왔을 때 도망칠 수 있다. 마음은 초조하고 몸은 답답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잠을 자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 상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냐?"

뭐?

"...냐!"

뭐라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알아듣는다고 해도 입에는 재갈이 물려 대응조차 할 수 없던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고는, 눈앞의 상대가 상당한 술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 정도.

'일을 하는데 술을 마시고 있을리는 없고...'

혹시 술김에 찾아온 누군가가 내게 속이라도 풀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나는, 등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얻어맞는 정도라면 괜찮았다. 몸 안에 내력이 흩어져있어 쓸 수 없다한들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반탄지기를 형성해줄 정도의 내공이라면 있다.

혹시나 다른 짓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우선 의연하게 버티기로 했다.

톡톡

'부드러워?'

당연히 상대가 남자일줄 알았던 나는 내 뺨을 만지는 손길이 부드럽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안심했다.

아마도 여자인듯한 부드러운 손길은 내 뺨에서 턱을 지나 목을 부드럽게 쓸며 내려갔다.

왜 나를 만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길은 특별히 성적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이처럼, 처음 보는 물건을 만져보듯 손길은 여기저기 손을 뻗어 더듬고 그 형상을 기억하는 듯했다.

'조금 기분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맞거나 더욱 심한 짓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나는 그대로 있었다.

"...냐..."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잘 들리지 않았지만, 손길의 주인은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들리지 않지만 남의 몸을 만지작대면서 불쾌감을 토로해봐야 나로서는 엿이나 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맞는 것보다는 낫다 뿐이지,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남이 내 몸을 만지작대는 것이 좋을리가 없...

"으으으읍!"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던 건가? 이건 불손한 생각에 대한 벌이라도 내릴 작정인가?

손길은 내 허리춤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허리끈이 내 허리를 누르는 감각이 점점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친, 미친년아!'

왜 남의 바지를 쳐벗기고 있냐고! 이 빌어먹을 걸레년이!

"조용히 하거라. 시끄럽도다."

성연군주는 바지춤을 풀자마자 몸을 비틀며 난리를 치는 사내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그녀의 손길을 차분히 받아들이던 그가 싫어하는 반응은 그녀의 가학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사내가 아무리 몸을 비틀어댄들, 아까와는 달리 의자는 넘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넘어진 모습을 보고 문제를 인식한 조장이 의자를 기둥에 묶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쯧... 직접 물어봐서도 안 된다니, 너무 호들갑이 심하지 않은가..."

동창이 파악하고 있는 무림인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자들이었다.

강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슨 짓을 할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러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릴 수 있을지 모르는 이상, 그들은 절대 그를 묶어놓은 포박을 자신들의 호위없이 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내공을 금제하였다고 한들, 한낱 여인인 성연군주에 비하면 훨씬 강인하게 단련된 육체. 정말 재수없으면 군주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죽일 수도 있는 자들이 무림인인 것이다.

조장으로서는 비록 늦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기척을 파악하고 반격하려고 했던 강윤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리 경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지춤은 그대들이 묶어놓은 포박이 아니니 괜찮겠지?'

호위들에게 물었더라면 절대 아니라고 하겠지만 성연군주는 그것을 굳이 그들에게 물을 생각이 없었다.

직접 묻는 것을 그들이 막아서는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니 그들도 성연군주에게 책임을 묻지는 못하리라.

<그, 그것이, 임신을, 하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사람의 교접이라기보다 짐승의 교미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다는 조장의 증언.

양하정은 사내와의 대화에서 주로 안 된다고 하거나 묵묵무답이었기에 조장으로서는 그것이 억압의 증거라고 생각하여 보고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말도 못하게 좋아서 그런 거였다면?'

강호에는 색마라는 부류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춘약과 각종 술수를 동원해 여인의 이지를 뒤흔들고 능욕한다 하였다.

양하정도 그것에 당하였다면, 사내에게 눈이 돌아가 군주인 자신에게 대항하는 일도 있을 법했다.

'어차피 사내와의 방사란 거기서 거기... 약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별다를 것도 없겠지.'

사내는 저항했지만 포박된 몸으로 할 수 있는 저항이래봐야 대단치 않았다.

그조차도 그녀에게는 조금 버거웠지만 간신히 사내의 바지를 내리는데 성공한 성연군주는, 귀엽게 쪼그라든 남근을 보고서 코웃음을 쳤다.

"흥... 결국 별로 다를 것도 없군."

이 따위 우습기 짝이 없는 물건을 넣기 위해서 여인을 현혹해서 그 정절을 깔아뭉개다니.

그녀는 남근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그 끝을 튕기며 들리지도 않을 말을 사내에게 늘어놓았다.

"하물 아래에 깔리면 여인이 완전히 네 것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나... 이런 짓거리도 이젠 끝이다. 내 날이 밝는대로 너를 이 곳의 안찰사에게 넘겨 대명의 법도가 얼마나 엄정한지 깨닫게..."

성연군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제 손가락에 얻어맞는 남근이 조금씩 그 형상을 키우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하찮은 물건이 커지면 얼마나 커지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양물을 부풀리는 사내의 꼴이 우스워 성연군주는 그 꼴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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