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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253화 (253/383)

밀푸색마 EP.253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1)

성연군주는 멍하니 바깥을 지켜보았다.

이 의원은 정말 바쁘게 돌아갔다. 부인네들을 위한 의원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인근 부인네들 뿐만 아니라 제법 산다 하는 집안의 여인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물론 실력이 좋다는 점도 있어서 더욱 호평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사내들도 들어오고 있구나."

"예, 구... 부인. 가벼운 정도라면 모를까, 장애가 남거나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부상은 치료한다고 합니다."

"흐음, 그래서 사내는 전부 중환자만 들어오는게로구나. 이제야 알았다."

엄 부인의 대답에 성연군주는 흥미로움을 느꼈다.

지금 들어오는 사내만 해도 다리를 크게 다친 듯했는데, 옷차림을 보아하니 치료비를 지불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데도 이 의원에서는 망설임없이 받아들였다.

흔히 의술은 인술이라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병자에게도 뒷일 생각 안 하고 베풀게 되면 당연히 그 결과는 적자로 돌아오고 그것이 모이면 의원의 목을 조이게 된다.

아무리 공덕비에 가득 새겨넣을만큼 기부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화수분처럼 무한하지도 않을 터.

그런데도 이렇게 선행을 베풀다니, 성연군주는 황실의 일원으로서 이런 베품을 기특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허나 본녀는 아니된다는 말이지...?"

"부, 부인?"

하지만 그런 그들의 선행은, 한편으로는 그들조차도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정말로 내 몸에 문제가 없다면...'

정녕 애첩이 외도를 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까다로워진다.

이미 아들은 태어났는데, 성연군주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그녀가 아무리 황족이라 한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꼬리표는 그녀가 하는 말에 의심을 품게 만들 것이고, 오로지 주변에 여인밖에 없는 애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봐야 신빙성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황족인 그녀에게 면박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아예 애첩을 내치는 상황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시댁의 식구들은 성연군주의 행사를 불합리한 것으로 기억하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수군대리라.

'본녀의 몸에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거늘...'

"그, 그러고보니 팽 부인께서 보이질 않으십니다. 혹, 무슨 일이라도..."

상전의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괴로운 기색을 알아차린 엄 부인이 쥐어짜낸 화제에, 성연군주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일 아니다. 여기 주인과 안면이 있어 간혹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을 뿐이니."

"그렇습니까...?"

그러고보면 양하정은 요즘 기분이 좋아보였다.

문제를 안고 있는 그녀 앞에서 대놓고 드러낼만큼 양하정이 눈치없는 여인은 아니었지만, 성연군주가 보기에 그녀는 날이 갈수록 얼굴이 펴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가볍고 활기차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본녀를 볼 때만 잠시 일부러 침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지...'

"...군주마마?"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 혹, 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특별한 일이 있다면 잊지 않고 고해야할 것이야. 알겠느냐?"

엄 부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는 것을 듣지도 않고 성연군주는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섰다.

그녀로서는 조금도 감지할 수 없지만, 6명의 호위도 따라붙고 있을 터. 그녀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보시오. 혹시 내 수행인을 보지 못했소?"

적당히 의원으로 보이는 차림의 사내를 붙잡아 물어보자, 의원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의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닥치는대로 붙잡아서 물어보았는데, 성연군주와 양하정은 의원 내에서도 골칫거리였고 때문에 양하정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군주마마, 소인들이...]

호위들의 조장이 전음으로 수하들을 보내 찾아볼지를 물었지만, 무공을 하지 못하는 성연군주는 고개를 가로저음으로써 답변을 대신했다.

그래서야 친애의 의미로 이모라고까지 부르는 양하정을 죄인처럼 수색하는 것 같지 않은가.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찾아다닐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의원이 넓다고 한들 이렇게 찾아다니다보면 조만간 발견되지 않겠는가?

성연군주의 생각대로, 그리 오래지 않아 외따로이 지어진 건물의 문을 열고 양하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했다.

"조카님...?"

"오, 이모님.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아 산책도 겸해 찾으러 나왔다오. 이런 곳에 계셨구려."

반갑게 양하정을 맞이하던 성연군주는, 뒤이어 나오는 강윤의 얼굴을 보고 진한 웃음을 지었다.

"강 소협도 같이 있었소?"

"...예, 성 부인. 요 며칠 찾아뵙지 못했습니다만 '건강'해보이셔서 안심했습니다."

그녀가 보기에 강윤은 마치 성질나쁜 강아지 같았다. 그녀가 이 곳에 자리를 잡고 버티기 시작한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속이 터지겠다는 얼굴.

굳이 '건강'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아픈 곳이 없으면 얼른 나가라' 라는 의미를 담는 모습이 귀엽지 않은가?

주약선은 그녀가 처음 느낀대로 그저 의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그녀의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사내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짐작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인가?"

"이 곳은 약재창고입니다. 각 의원이 아침마다 이 창고로 와서 그 날 사용할 분량을 개인 창고로 가져가서 사용하지요."

[군부에서 부상으로 퇴역한 병졸을 대상으로 이 곳과 비슷한 의원을 운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 알아보는 중이었습니다.]

"호오..."

양하정의 전음에 성연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지금이 태평성대라고는 하나, 변방의 이민족들은 시도 때도 없이 풍요로운 중원에서 비롯된 물산을 노리고 산발적인 약탈을 계속하고 있었다.

숙련병들은 언제나 부족했지만, 병졸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면 병력을 수급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법.

만약 다치더라도 국가에서 책임지고 치료해준다면 병졸들도 두려움없이 적과 맞서싸울 수 있으리라.

'참으로 묘안이로다. 이를 주왕 전하께 말씀 올리면... 응?'

감탄하던 성연군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아주 어린 시절, 벌써 20년은 된 기억이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물건이었다.

"여기는 볼만큼 보았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강 소협, 고마웠네."

"아닙니다, 팽 부인.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시지요."

사내가 자연스럽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이자, 양하정은 성연군주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연군주는 양하정의 허리에 감긴 물건에 슬쩍 시선을 주고는,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휴, 들키는줄 알았네.'

요 며칠, 내 일과의 일부는 주로 의원에서 할 일을 배우는데 쓰였다.

주약선이 의원들의 우두머리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 운영은 거의 알아서 다 했지만, 돈은 당혜원이 지금껏 관리했기 때문에 순전히 약재나 기타 자재 수급 같은 문제는 꼭 파악해야만 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것만 해내면 나머지는 주약선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숫자를 위한 전용문자를 쓴다구요?>

솔직히 한자로 적힌 숫자는 너무 길다. 알아보기도 어렵고 글자가 차지하는 면적도 쓸데없이 크니, 나는 아라비아 숫자의 도입을 주장했다.

다들 이런게 과연 필요할까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주약선은 이것의 가치를 금방 알아보았고 지지해주었다. 오너와 원장이 명령하는데 누가 거부하겠는가.

아직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적응하는 단계에 있지만, 점점 다들 그 편리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고 주약선이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아무튼 나는 아라비아 숫자가 돌아오자 계산도 하기 편해졌고, 그 결과 업무에 투자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자, 내게 남는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티나지 않게 양하정을 전음으로 불러냈고, 양하정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우고 나와 몰래 섹스했다.

'두 번이나 하는 건 역시 위험했나.'

원래는 한 번만 하고 돌려보냈지만, 오늘은 약재 냄새 때문인가 묘하게 기분이 나서 한 번 더 했더니 사정한 직후에 멀리서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고 얼른 옷차림을 정돈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제법 거리를 둔 상태에서 문을 열고 나왔으니, 다행히 들키지 않고 넘어간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데...'

양하정과 즐기는 섹스는 물론 즐겁지만 이런 시간이 계속되는 것은 곤란했다.

한 달 정도야 조금 좁고 여럿이 같이 공간을 쓰더라도 캠프 기분으로 대충 넘어갈지 모르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피로감을 느낄 것이었다.

곧 있으면 어머니 뱃속의 아기도 태어날텐데, 태어나기 전에 빨리 이사해야하는 이 상황에 저놈의 성 부인은...

"강 소협? 여기서 뭐하고 계시죠?"

"주 의원께서는..."

"저야 당연히 약재 가지러 왔죠."

주약선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보통 필요한 양은 다 가져다놓지만, 예상 이상으로 재고 소모가 심하면 가지러 올 수도 있기는 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약재의 재고상태를 잠시 확인하러..."

"그렇군요.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실재고 확인은 어제 끝냈지만, 주약선은 기꺼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칭찬해주었다.

탈취제는 뿌렸으니까 걱정은 없지만, 대신 내 양심이 어마어마하게 찔렸다.

그러고보니 보통 다른 의원들은 다른 도제나 일꾼들을 데려다 약초를 나르던데, 주약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오셨군요. 혹시 양이 많으면 제가 들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은데..."

"기왕 사람이 있는데, 쓸 수 있을 때 써먹으시죠."

주약선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통통한 외모 때문인가 평범한 아줌마로밖에 안 보였지만, 대신 의술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고결한 그녀의 마음가짐은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의원을 세워서 하렘을 숨기기 위한 카모플라쥬로 써먹는 나 자신이 조금은 민망하게 여겨질 정도로.

'그러고보면 이 아줌마도 신기해.'

당혜원은 주약선의 의술이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 의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직을 운영하는 솜씨도 원활하다고 당혜원이 감탄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주약선 본인에게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정말 우리를 위한 맞춤형 인재가 주약선이었던 것이다.

'헤으응, 약선에몽...!'

우리 길게 갑시다, 주 의원님.

나는 차마 입으로는 하지 못하는 말을, 마음 속으로나마 주약선의 등 뒤에 대고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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