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50화 (250/383)

밀푸색마 EP.250 뭐든지라고 했죠? (1)

인생에서 뭔가를 포기해본 적이 없는 상태로 어른이 된 사람은, 처음으로 그것을 포기해야할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나는 그 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인? 여기에는 어떻게..."

"지난번에는 못 봤는데, 여기 은 부인이 나와 꽤나 안면이 있는 사이라오.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내 자주 방문하기로 하였지."

"...그러십니까?"

지난 며칠간 몇 번에 걸쳐 나와 당혜원이 합세해서 이 성 부인인지 뭔지 하는 여자를 격퇴시켜왔는데, 끊임없이 쳐들어오더니 오늘은 기어코 일반 병실에까지 마수를 뻗쳐왔다.

"내 몸에 이상이 없든 말든, 내가 내 지인을 만나러 온다는데 뭐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은 부인이 아니라 엄 부인인데요... 남편은 꽤 알아주는 지주에 양잠업에도 관여하고 있고, 친척 중에는 자금성에서 관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당혜원이 전음으로 알려주었지만 딱히 지적해봐야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벌벌 떨면서 성 부인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엄 부인의 남편이 상당한 유력자라는데도 이 꼴인걸 보면 따져봤자 스스로 끼어들어서 영혼의 실드를 쳐주겠지.

"여기 은... 아니, 엄 부인이라고? 흠흠, 엄 부인이 받고 있는 치료를 보고, 혹시나 내게 적합한 치료가 떠오를 수도 있는 문제 아니겠소?"

"성 부인, 죄송한 말씀이지만 엄 부인께서는 현재 임신 4개월로 지극히 순조로운 상태셔서 별다른 치료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다."

"더욱 잘 되었군. 나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하였으니 엄 부인이 받는 치료를 보면..."

머리가 어지럽다. 이 여자의 얼굴만 봐도 귀에서 빼액대면서 단비꺼라고 외치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주약선이 옆에 서서 끈질기게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양하정은 진작에 손을 놓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어처먹는데 양하정이라고 어떻게 방법이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이미 총애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위험부담이 큰 선택을 할 리가 없다고 하시는데 나로서는 설득할 방법이 없었네.>

애첩에 대한 신뢰가 퐁퐁 솟아나는 건 아닌 듯했지만 아무튼 결과는 같았다.

'상대는 밀프다, 밀프다... 그것도 예쁘고 권력 있는 밀프다...'

내가 밀프 상대로 이렇게 인내심을 발휘해야되는 경우가 과연 있었을까? 그것도 이런, 상당한 미모를 뽐내는 밀프한테?

아니, 없다. 단언컨대 없다. 만난지 얼마 안 되던 시절, 싸가지없이 굴던 매소향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진맥을 받는 시간에는 자리를 비워야한다는 말이오? 흠...?"

"어, 어떻게 안 될까요? 여, 여기 성 부인께서는 괴, 굉장히 저와 친하신 분이라서..."

성 부인의 눈짓을 받은 엄 부인이 허겁지겁 나서서 주약선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짠할 지경이었다.

한편 상대가 적지 않은 후원금을 낸 엄 부인이기 때문에 주약선으로서도 마냥 매몰차게 내칠 수는 없었고, 그 결과.

"고맙소! 내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옆에 있으리다."

성 부인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기어코 여기에 또아리를 트는데 성공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더러운 세상이다, 정말.

강윤은 안 그래도 속이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성연군주의 머릿속을 알았더라면 그나마 관리되고 있는 표정도 다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쯧쯧, 그대가 본녀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멀었노라.'

무림이 복마전이라고 하지만, 관부는 그보다 더한 능구렁이들의 소굴이었다.

수틀리면 칼이라도 뽑아볼 수 있는 무림과는 달리 관부는 세 치 혀에서 비롯되는 정치력만으로 상대를 굴복시켜야하니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어려서부터 제 안색을 살피면서 꼬리를 흔들거나 뒷공작을 펼치는 관리들을 상대해온 성연군주의 눈에, 강윤의 표정은 속이 터지겠다고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성연군주가 다른 의원을 찾지 않고 이 곳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강윤과 주약선의 이런 뻣뻣한 태도가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의는 지킨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는 모를지언정 상당한 유력자라는 사실은 감을 잡은듯한데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숙이는 법이 없었다.

강윤이 알았더라면 진작에 드러누워 배를 까며 복종의 자세라도 취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등선공에 독심술은 없는 것이다.

"조카님."

그렇게 내심 승리를 자축하며 유쾌한 기분을 즐기던 성연군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는 양하정과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따라붙은 듯합니다."

"하아... 분명 괜찮을 것이라 단단히 이야기해두었거늘..."

"그들은 그것이 일 아니겠습니까?"

병실에 함께 있던 엄 부인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성연군주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본녀는 이만 가보겠노라. 다시 찾을 것이나, 그대는 본녀의 벗답게 행동해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야. 알겠는가?"

"예, 예... 살펴가시옵소서, 군주마마..."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황급히 손을 들어 제 입을 틀어막는 엄 부인을 두고 일어난 성연군주는, 의원을 떠나 통째로 사들인 그녀의 장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6명의 사내들이 그녀의 앞에 부복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군주마마를 뵈옵니다."

"...내 분명 팽 부인과 함께할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고 서신을 남겨두었을텐데?"

성연군주는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들이 따라온 이유를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인연이 있다고는 하나 결국 양하정은 한낱 무림인, 실력은 모르지만 군주를 호위할 격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그녀를 어떻게 무작정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양하정을 신뢰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서신을 남기고 몰래 빠져나온 것이었다.

"소인들도 팽 부인의 실력을 믿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혼자서는 대처하기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법이옵니다."

"..."

"소인들의 조력이 있다면 군주마마께서 더욱 안전하실 수 있음입니다. 그러하오니 부디 해량하여주시기를 간청드리옵니다."

이들은 이렇게 그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호할 것을 명한 것은 주왕,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가 거부한다면 아버지의 명이라는 점을 들어 결국 곁에 머물 것이 뻔한 것이다.

"안심하소서, 소인들은 위급시에만 군주마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옵니다. 귀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니, 부디..."

"이모님, 말해보시오. 진정 이들이 말한대로, 귀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 맞는 것이오?"

성연군주의 질문에 사내들의 시선이 뒤에 시립해있던 양하정에게 쏠렸다.

그들 몰래 성연군주를 빼돌린 사실에 대한 원망도 조금 섞인 시선에 양하정은 잠시 고민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조장은 모르겠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 소협이 알아차릴 겁니다."

"무슨...! 우리의 경지가 팽 부인보다 낮다고는 하나, 동창 비전의 은잠술을 너무 우습게 보신 것은 아니오?"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어쩌면 조장의 은신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강윤만이 아니라 어쩌면 당혜원도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강호에 알려지기로는 그리 무공이 뛰어난 여인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절정의 경지에 올라있지 않은가.

"호오... 젊은 나이에 경지가 상당한 모양이구려?"

"예, 이전에는 분명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고작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상당한..."

양하정은 말을 멈추었다. 성연군주의 눈꼬리가 휘어진 모습을 본 탓이었다.

"어쩐지, 둘이 눈을 자주 마주치더라니... 내 짐작은 했지만 이모님은 그쪽 편이었던게요?"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성연군주는 허둥대는 양하정의 말을 막아서며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양하정이 그들의 역성을 들었다고 한들, 그것은 그들의 의견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전부터 면식이 있는 상대라면 편하게 되었군. 그렇다면 이모님이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겠소?"

"...마마, 치료는 의원의 조언을 따르심이 어떠하신지..."

"아니, 그것이 아니오. 이들이 의원에 드나들더라도, 그들에게 묵인해달라고 하는 것이오."

"마마! 어찌 그까짓 무림인들에게...! 그저 명하시면 될 일이옵니다!"

"그리고 천하만방에 선포하면 되겠느냐? 본녀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라는 것을."

조장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고, 성연군주는 코웃음을 친 다음 양하정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허나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이모님도 잘 아실 거요."

"..."

"그들이 이모님의 말을 따른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아보이지 않소? 그러니..."

일단 작은 문제라도 해결해달라는 의미의 군주의 말에, 양하정은 알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장원을 떠나 다시 의원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혹시 그들을 의원에 들이더라도 문제가 안 되겠나?"

성 부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멘탈을 추스르고 당혜원에게 의원의 예산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나 배우던 나는, 양하정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당혜원이 자리를 피해준 다음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용건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대체 어느 댁 마나님인지는 모르지만, 이젠 여기에 호위무사까지 데리고 오겠다고?

"어차피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거라면야 상관없기는 한데... 대체 그 분이 누구시길래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보호를 받는 겁니까?"

호위라면 양하정 혼자서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 거기에 절정 하나, 일류 다섯으로 구성된 호위무사까지 추가로 붙인다니, 신분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안하네. 말할 수 없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려는 것을 보니 나는 점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조카님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누가 봐도 상하관계가 명확한 두 사람의 관계가 떠오르고, 나는 한 가지 예상에 도달했다.

'혹시, 정말 황족...?'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애초에 고칠 병증도 없는 황족이 굳이 여기까지 기어와서 없는 병을 고쳐달라고 진상을 부리는 노답 상황이 왜? 하필? 나한테?

"아니겠지..."

"무슨 말인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덥석

그 때 양하정이 손을 뻗어 내 모아쥔 두 손을 감싸잡았다. 보드라운 손끝의 감촉이 간지러웠다.

"소협, 조카님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아네. 하지만, 조카님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야."

"..."

"무작정 조카님의 의중에 따르라는 말은 아닐세. 그저, 마음이 풀릴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에 머물게 해달라는 말이야. 어렵겠는가?"

사실 양하정만 없으면 성 부인이 1달을 머물든 10년을 머물든 크게 상관없는 일인데. 하지만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내 이리 부탁하겠네. 나도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테니..."

"뭐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시선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양하정의 투실한 젖가슴에 내리꽂혔고, 양하정도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내 손을 놓았다.

"자, 자네는, 정말..."

"뭐든지?"

나는 손을 쭉 뻗어서 양하정이 뒤로 뺀 손을 다시 붙잡아당겼다.

슬금슬금 끌려오는 양하정은 잠깐씩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그 동작에는 내력 한 가닥 실리지 않은듯 허무하게 내게 끌려왔다.

"뭐든지라고 했죠?"

"어, 어떻게 그 말을 그렇게 이해한단 말인가..."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나는 충분히 가까워진 양하정의 어깨를 붙잡아서 슬슬 끌어당겼고, 양하정은 자신의 아랫배에 닿는 자지의 감촉에 깜짝 놀라 몸을 떨었지만 내가 단단히 붙잡고 있자 결국 포기하고 그대로 있었다.

"나, 날이 이렇게 밝은데... 여, 역시 이런 건 위험하네..."

"다들 바빠서 여기로는 안 와요. 당 여협도 가볼 곳이 있다고 했었고."

"그, 그래도... 아읏...!"

"딱 한 번만 해요. 돌아가서는 내가 고집을 부려서 설득하느라 고생했다고 하고."

엉덩이를 주무르는 내 손길에 양하정은 내 품 속에서 우물대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 내 가슴에 아예 얼굴을 묻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이야..."

"그럼요."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거지.

나는 익을대로 익은 여체를 오랜만에 다시 맛볼 기대로 자지가 팽팽해지는 것을 느끼며 양하정의 허리끈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