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46화 (246/383)

밀푸색마 EP.246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이오 (2)

'이놈 봐라?'

성연군주는 자신의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하는 젊은 사내를 보고 맹랑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신분을 숨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충분한 대가를 치른다고 하는데도 사내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어차피 비어있는 곳, 주 의원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우선 받아들인 다음 돈만 받아챙기면 그만일 터인데...'

성연군주는 그것이 사내가 그만큼 주약선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더불어 금전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자로 보여서 제법 마음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

혼인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감히 황족에게 불경한 생각을 할 수 있을리도 없으니, 남편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그 인식이 뒤집혔다.

남편이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들인 애첩이 덜컥 임신을 하더니,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남편의 씨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니, 결국 문제가 있는 것은 성연군주 쪽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는 생각 탓인지, 시댁 식구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시선이 묘하게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그녀는 초조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해 왕부에 소속된 어의의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별 문제가 없다는 대답뿐.

'여기가 아니면 안 돼.'

어의가 안 되면 민간의 의원 중에 실력이 있는 자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으나 전부 허탕을 치던 차에, 부인네를 전문으로 하는 이 의원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최근.

사천 일대에서 손꼽히는 명의라는 여기에서조차 그녀를 고칠 수 없다면, 갈수록 더한 찬밥신세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허, 허나... 아이가 들어서면 나아질 수도 있지 않겠소? 우선 치료를 해보아야..."

"부인,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과 똑같이 치료를 하면 몸에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무, 문제가 없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소?"

"부인께선 이 근방에 사시는 분이 아니시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더... 말이오?"

"아마 다른 곳에서도 명의라고 하실만한 분들께 보였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아닙니까?"

"..."

"그들 중에, 부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걸 발견하지 못한 여기 주 의원보다 그가 더 명의겠군요."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사내의 마지막 말에는 '그러니까 그 명의한테 가서 치료라도 받아보시죠' 라는 말이 포함되어있었다.

한치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태도에 말문이 막힌 성연군주는 우선 후퇴하기로 했다.

"주, 주 의원! 다시 한 번 진맥해주시오!"

"...예? 하지만 이미 성 부인께서는..."

"그 때는 그 때고! 혹시 지금은 다를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고작 며칠 사이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겠느냐만은, 주약선은 성연군주의 억지를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주약선은 흘러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성연군주를 의방으로 안내했다.

한편, 주약선이 떠나가는 동안 사내는 다시 중년여인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역시 안면이 있는 사이였나?'

주약선은 여인의 정체가 자못 궁금해졌다.

주약선이 성 부인이라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간 사이, 나는 양하정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캐물었다고는 해도 양하정은 대답을 해주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내가 답을 추측하고 확인하는 형식이었지만.

그리고 성 부인이 임신이 절실한 배경을 알게 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애첩이 바람을 피웠나보네요."

"..."

양하정은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내 말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주약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당혜원은 몇 번이나 그녀의 솜씨가 뛰어나다고 말했었다.

너무 뛰어나서 주목을 과하게 받는 것이 걱정될 정도라고 평가받을 의원인 주약선이, 몸에 이상이 없다면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직 의술 발달이 더뎌서 문제가 있어도 못 찾아내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성 부인에게 이상이 없다면 일단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게 맞겠지. 그런데도 애첩 쪽에는 아이가 생겼다면 바람일 확률이 높다.

"애첩의 주변에는 남편을 제외하면 전부 여자라고 해도, 바람을 피우려면 어떤 식으로든 못 피우겠어요?"

"알겠으니까 너무 바람, 바람하지 말게... 남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생각해보니까 나야말로 바람의 화신이었지. 남더러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어.

'...어? 그러고보니 마침 손룡이 팔괘 중에 바람의 손괘...'

"그건 그렇고 놀랐네. 설마 여기가 자네가 소유한 곳이었다니..."

"소유했다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군요. 후원을 받아서 유지되는 곳이니까요."

"독특한 방식이군.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은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네."

양하정은 독특하다고 했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진 않을 거다.

지금은 개업한지 1년도 되지 않았고 막 명성이 올라올 시기라 후원금이 미어터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질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세상 의원이 모조리 바보가 아닌 이상 따라하는 놈들도 많아질 거고.'

물론 원조의 명성에 주약선의 의술이 더해지면 쉽게 따라오진 못하겠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이어질 구조는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수익구조를 바꾸든, 다른 곳에서 수입을 갈음하든, 아예 의원이란 형태를 버리든 해야한다.

'그런데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아무튼 팽 부인께서 성 부인을 설득해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애첩이 바람 피운게 분명하다니까요."

"믿지도 않으실 뿐더러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 늦었네. 이미 애첩이 아들을 낳아버린 이상, 증거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구... 부인이 투기(질투)를 부린다고 여길 것이 뻔하다는군."

젠장.

사실 그 성 부인이라는 사람만 왔더라면 그냥 무시하고 강행돌파하면 그만인데, 양하정이 엮여있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그렇다치고 임신 8개월인 팽연화의 웅장한 배를 양하정이 본다면 아마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리겠지.

팽가에서 보낸 며칠동안 저 흐드러지게 풍만한 몸으로 내 자지를 몇 번이고 받아냈으니까, 팽연화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걸 잘 알 것이다.

"어, 어딜 보는 것인가? 대낮에, 그것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양하정이 살짝 자기 몸을 가렸다.

"착각입니다, 부인."

난 부인이라는 호칭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무리 저게 꼴리는 몸이고 내가 밀프라면 눈이 돌아가는 색마라지만 이런 곳에서 통제불능이 되진 않는다.

양하정은 한 번 주변을 둘러보고 조금 안심한 듯 몸을 가린 손을 치웠다. 바짝 긴장한 그 모습에 문득 장난기가 일었던 나는 전음을 보냈다.

[혹시 생각 있으면 밤에 찾아가고요. 객잔에 머물고 있어요? 어느 객잔?]

양하정은 다시 화들짝 놀라며 나를 흘겨보았다.

그렇게 양하정을 놀리며 전음과 육성을 넘나드는 대화를 나누다보니, 곧 주약선이 다시 성 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주약선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보니 역시 아무것도 안 나온 모양이었다.

"...내일, 다시 오겠소."

"그러시죠. 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상이 없는 것을 치료해달라 하셔도 못 해드린다는 점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큭...!"

일단 여기서 내가 내일 오지 말라고 해봐야 별 소용이 없어보인다. 나는 양하정에게 제발 말 좀 잘해달라고 몰래 눈짓을 보냈다.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겠지만... 휴우...]

어지간히 고집불통인 모양인지 양하정은 자신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겠지.

성 부인은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다 몸을 홱 돌리고 가버렸다. 그 뒤에서 양하정이 내게 미안한듯 손짓한 다음 뒤따라가는 모습이 짠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쟤는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길래 무려 팽가 가모를 끌고 다니면서 고생시키는 건지 원...

"사정이 이렇게 되서... 미안해요, 강 소협."

"아닙니다. 주 의원님은 할만큼 하셨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하여간 진상은 이래서 안 된다. 아무리 '이러저러해서 안 됩니다 고객님~' 해도 말이 안 통해.

내 말에 안심한 주약선은 슬슬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고서 내게 양해를 구한 다음 자리를 떴고, 당장 거기서 할 일이 없던 나도 우선 의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다들 넓은 집으로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었을텐데 당분간 거기 있어야될 것 같다고 말하면 실망할 것 같다.

어떻게 하지?

흑호는 매우 기분이 안 좋았다.

<놓친 고기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 회의 목적을 달성할 만큼은 했으니 되었다. 그만 쉬거라.>

흑호의 주인인 호령은 그의 보고를 받고 아무런 노여움도 실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흑호는 다시 가서 남궁혜를 잡아오겠노라고 말했지만, 호령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이미 처녀도 아닐 것 아니냐?>

그럴 것이었다. 무림맹 백호단과 주작단의 추적을 피하기 바빴기 때문에 흑호가 보고했을 때는 이미 혼례일로부터 며칠이나 지난 상태였으니까.

'빌어먹을...!'

그 임무가 하찮고 아니고를 떠나서, 호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계속 흑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마치 천상의 것과도 같은 호령의 무공.

그런 호령의 가르침을 받아 흑호는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그와 동격으로 꼽히는 수하들 중에는 그가 가장 앞서나가 있다고 자부했다.

<이해할 수가 없구려. 언소영을 죽인다면 모를까, 적당히 손을 봐주라는 지시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그런데 그 노인, 노사 황두명에게 속아 호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탓에 흑호는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하는 것이 아닌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두령!"

그 때, 멀찍이 서있던 수하가 급하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작은 쪽지를 보니, 전서구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공손히 내밀어진 쪽지를 받아든 흑호가 그것을 펼쳐보고는,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쪽지에는 호령이 흑호가 아닌 은호(銀虎)에게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거리상으로도 산서에 있는 흑호보다는 운남에 있는 은호가 훨씬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인선이었지만, 흑호는 묘한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애송이...!'

남궁세가에서도 앞장서서 날뛰던 청년의 모습이 흑호의 뇌리를 스쳤다.

나이치고는 굉장히 뛰어난 무공을 선보이면서도, 입으로는 쉴 새 없이 깐죽대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천불이 치밀었다.

그놈만 없었더라도 지금 이렇게 전전긍긍할 일도 없었겠지만, 얄궂게도 이번만큼은 흑호도 그가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죽지마라...!'

강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신뢰를 잃은 은호에게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빼앗아올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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