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45화 (245/383)

밀푸색마 EP.245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이오 (1)

언소영은 오자마자 자기 밑의 시비들과 원래 여기에 있던 시비, 하인들을 모아서 정리를 시작했다.

여자들 중에 유일하게 거대세가를 제대로 경영해본 몸답게,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대장군 같았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아무래도 마초적인 이미지로 해석했는지 언소영이 살짝 섭섭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 밤에 만회해봐야겠다.

아무튼 언소영은 꽤나 사람들을 빡세게 굴렸는데, 내게는 몰래 전음으로 '윗사람이 고생시킨 다음 적당히 포상해주면 서로 다른 집단이 하나로 뭉치기 쉽다'라고 알려주었다.

당혜원이 입이 무겁고 재주있는 사람을 몇몇 뽑아온 것뿐인 여기 고용인들과, 오랫동안 세가의 일원으로 일해온 언소영의 시비들의 위치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벌이는 일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머지 세 사람,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순식간에 집안 전체를 휘어잡는 장악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미도 저런 일은 경험이 없단다..."

아무래도 표국은 세가와는 다르니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도 거의 다 아버지가 해왔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다들 혹시나 자기들 입지 같은 것을 신경쓸까 걱정했는데, 익숙치 않은 일을 대신해주니 오히려 고맙게 여기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굴려서 빠르게 짐을 풀어놓고 난 다음, 방사는 오늘 하루만 참아달라고 언소영이 부탁하는 것에는 다들 당황했다.

"아무리 주인이라지만, 내내 고생시켜놓고 밤새도록 그런 일을 하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미리 설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에, 아마도 꽤나 벼르고 있었던 것 같은 세 사람은 결국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벤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보테배 섹스를 기대하고 있던 나 역시도, 잠을 설치며 밤을 지새우다 아침을 맞이해야했다.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일찍 주약선 의원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주약선의 아침은 빠르다.

일찍부터 일어나서 물과 약재를 준비하는 도제들보다는 늦게 일어나지만, 그들이 준비하는 것을 최종 확인하는 것은 결국 그녀를 비롯한 의원들이니 그녀의 아침도 늦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 의원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의원들에 비해 바빴다.

그녀가 영입한 다른 의원도 여럿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주약선만한 실력을 가지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의원들의 좌장격이 되는 것은 필연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약선은 다른 건 전혀 걱정할 필요없이 의술을 베푸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매일이 즐겁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는 많은 후원자들과, 그 발판을 만들어준 강윤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렇군요... 전용구역을..."

그랬기에, 강윤이 '여인 여럿'을 전용구역을 열어서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주약선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당혜원이 반대한다거나, 하다못해 섭섭한 기색을 내비친다면 모를까, 의원인 그녀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지 지금은 시기가 좋지 못했다.

"어려울지도 모른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 준비가 부족합니까?"

"아뇨, 준비는 완벽합니다. 다만..."

[이놈들, 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이냐! 내 분명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일렀거늘!]

[이, 이러시면 아니됩니다요. 이, 이보게! 어서, 어서 주 의원님 모셔와!]

벌써 며칠째 의원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주약선은 찌푸려지는 미간을 손으로 문질러폈다.

"강 소협, 설명드리는 것보다 저와 동행해주시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의아한 얼굴의 사내가 주약선을 따라 일어섰고, 바깥으로 나섰다.

주약선은 사내를 대동하고 입구 근처의 접수처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성 부인, 무슨 일이십니까?"

"오, 주 의원. 마침 잘 왔소. 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의 약조를 받아내고야 말겠소."

얼핏 보아도 지체가 높아보이는 여인에 대해서, 주약선이 사실 알고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무림인으로 짐작되는 중년의 여인 한 사람을 대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여본 적이 없는, 귀한 댁의 여인이 분명하다는 것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뿐.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틀림없이 말씀 올렸습니다만... 어찌 그리 고집을 부리십니까."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듣는 귀가 없는 줄 아는가? 오랜 세월 고생하던 여인도 그대 덕에..."

여인은 부끄러운듯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그대 덕에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을 내 분명히 들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한 것은 그대라는 말이오."

"적어도 제가 파악하기로는 성 부인의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십니다. 이상이 없으신데 치료할 방법이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

"실례지만 혹 부군께 문제가 있으신 것은 아닌지..."

"...그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말이오?"

늘 반복되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여인은 가장 골치아픈 문제를 꺼내들었다.

"내 듣기로, 저쪽은 임산부나 출산을 마친 산모들과 아이들을 위한 곳이라고 하였소."

"맞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저 곳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는 말이오.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이오?"

"이미 병실이 만실이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분명히 비어있는 곳이 있지 않소!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이오!"

있기는 있었다. 단지 그것이 사내가 요구한 '전용구역'이기 때문에 사람을 받고 있지 않을 뿐.

이것이 바로 강윤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 여인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는 이상, 사내도 쉽게 전용구역에 사람을 채워넣지는 못할 터였다.

이 의원의 주인은 엄연히 강윤과 당혜원이니 그들이 쓰기 위해 비워두었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만은, 세상사가 그렇게 뜻대로 되는 일은 드물었다.

얼핏 보기에도 한참 나이가 위인 주약선에게 대놓고 하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여인이라면,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을터.

그런 권력자가 자기는 못 쓰는데 너희는 왜 쓰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강 소협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여인의 몸에서는 일체의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약선이 내력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초고수가 아니고서야, 여인이 지닌 권력은 관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대화를 지켜보았다면, 강 소협도 대강의 사정을 파악했을 터.'

주약선이 강윤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기가 막혀 통통한 뺨을 파들거렸다.

강윤은 소란을 피우는 여인에게는 일체의 관심을 주지 않고, 중년의 여성 무림인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의원은 내 하렘을 당분간 감추기 위해서 만들어진 은신처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자금이 허락하는 한은 의료물품을 갖추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돈이 투입되는 곳은 당연히 우리가 머물 곳을 조성하는 것.

그런데 갑자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따라 바깥으로 나와보니,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하정? 여기서 뭐해요?]

몇 달만에 만나는 양하정 역시도 당황한 시선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자, 자네는 왜 여기에...]

옆에서 웬 여자가 시끄럽게 떽떽대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양하정을 다시 만난 반가움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참아줄 의향이 있었다.

[이 의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계신 분은 여기 주 의원님이지만, 일단 제가 세운 의원이거든요.]

돈도 처음에는 당가에서 끌어왔고, 최근 관리는 전부 당혜원이 도맡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심에 조금 찔렸지만 아무튼 내가 세운 건 사실이었다.

내 말에 양하정은 감탄하는 듯하면서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다시 한 번 여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이오!"

[기운이 넘치는 분이시군요. 저 분은 누구고, 여기는 어쩐 일로 찾으신 겁니까?]

[그, 그게...]

노여움을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도 절제된 위엄이 아주 인상적인 여자였다. 마치 군인 같다고나 할까.

그런 여인의 얼굴을 잠시 훑어보던 중 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양하정이 저 여자를 수행하는 모양새인데...'

무림에서 가장 지체높은 여인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양하정의 수행을 받는다?

짐작이 아주 안 가는 건 아니다. 양하정의 친정은 산동양가, 무관을 다수 배출한 명가니까 관부 쪽의 지체높은 여인이라면 말이 되지.

[누구신지는, 말할 수 없네. 단지, 불임을... 치료하러 오신 것이라는 사실만은 알려주지. 이도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일세.]

고관댁의 마나님인가? 황족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에이, 설마...'

황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아랫것들이라고 할만한 의원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상하다.

다시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니, 그녀 역시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여인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대가 이 의원의 주인이라고 하였소?"

"...네, 맞습니다. 귀하..."

"으흠! 으흠!"

내가 말을 하는데, 양하정이 얼른 헛기침을 하면서 내 말을 막아섰다. 그 직후 내 귓전을 양하정의 전음이 울렸다.

[그, 그 분께 극존칭은 최대한 삼가주게.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어서...]

까다롭구만.

"네, 맞습니다. 부인."

"주 의원의 말로는, 저 남는 병실은 그대의 허락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데 그도 맞소?"

잠시 양하정과 전음을 나누는 사이에 주약선이 결국 결정권은 내게 있다고 팔밀이를 한 것 같았다.

살짝 눈인사를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진상한테 시달려서 그런 것 정도는 이해해줄만 하다.

"네, 그것도 맞습니다."

"오, 그렇다면 잘 되었군. 근자에 이 의원이 제법 일대에 이름이 높다 하여 찾아왔는데, 치료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지 뭐요?"

그런데 아픈 곳이 없다는데 치료해달라고 떼를 쓰면 어떻게 하냐고.

"내 합당한 대가는 치를 것이니, 병실을 내어주고 주 의원에게 치료하라 명해주오."

주약선이 어렵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이런 사람이 떼를 쓰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들어가면 골치아파질 거라 그 말이지?

"부인."

"그래, 알겠다는 말이지? 역시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통하는..."

"저는 이 곳의 운영과 진료를 전적으로 주 의원의 판단에 따르고 있습니다. 주 의원이 건강하다고 판단했다면 부인께선 본 의원에서 치료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무어라?"

여인의 얼굴이 찌푸려졌고, 뒤쪽에서 지켜보던 양하정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말했잖아? 극존칭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런 주제에 자기 신분 들이밀고 찍어누르려는 것 아니지?

내 하렘 들어가기도 급한데 엉뚱한 사람 밀어넣을 여유 없다. 좋게 말할 때 가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