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237 뭐라 했소? (4)
남궁학은 강윤에 대한 평가를 정정했다.
미친놈이다.
일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놈은 미친놈이 분명했다.
남의 혼사에 축하하러 온 하객이, 신부와 그 어머니와 정이 통해서 아이를 임신시켰다고?
남궁혜는 아직 황보준과 명확하게 혼인을 없던 일로 만들지도 않았으니, 어머니와는 달리 명백하게 남편이 있는...
"하."
남궁학은 또다시 원치 않는 깨달음을 얻어야만 했다.
멀쩡한 신혼이 계속 다른 방을 쓴다면 남들에게 분명히 말이 나올터, 황보준의 남성이 불구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적어도 황보준은 남궁혜와 강윤의 관계를 알 가능성이 높다. 즉, 단순한 광인의 소행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내게... 원하는게 뭐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남궁학은 자신에 대한 끔찍한 악의를 느꼈다. 원한이 없고서야 이런 짓을 벌일 수는 없다.
신랑까지 끌어들여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벌인다면, 그것은 자신이나 세가에 대한 원한이 없고서야 불가능한 일.
"별 것 없습니다. 두 분을 데려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물론 상대가 희대의 색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인질인가? 그런 짓까지 하지 않아도 요구는 들어주겠소."
"아닙니다. 정말 제 요구는 그것뿐입니다."
"이러지 마시오. 내 요구는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소? 더 이상 어머니와 혜아를 희롱할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오, 제발..."
"...가주. 혹시 귓구멍이 막혀 있으신 겁니까?"
"소협이야말로 날 그만 놀리시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꺄악!"
"어머니!"
"쉬잇..."
사내가 갑자기 어머니에게 손을 뻗자 당황한 남궁학은 벌떡 일어났지만, 어머니에게 별로 해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 학이 앞에서 이러지 말아요..."
사내가 어깨를 잡아 다짜고짜 확 끌어당기자 당황했을 뿐, 언소영은 얌전히 사내의 팔 안에 안겨있었다.
모기만하게 칭얼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굉장히 낯설게 울렸다.
"아드님이 안 믿잖아요. 가주, 됐습니까?"
"어, 어떻게...!"
"어머!"
이번에는 남궁혜의 차례였다. 여동생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지자 남궁학은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그냥 데리고 살겠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정말 여기서 옷이라도 벗고 한바탕해야..."
"사, 상공...!"
언소영이 사내를 제지하려고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가 얼른 다물었다.
상공이란다, 상공. 아들과 같은 나이의 남자의 품에 안긴 어머니는 이미 그를 남편이나 다름없이 여기고 있었다.
남궁학은 자신이 반대해봐야 상처밖에 안 남을만큼 세 사람이 끈끈하게 엮여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아..."
어머니가 부르는 목소리가 더없이 멀게 느껴졌다. 남궁학은 전신이 노곤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어지는 심정이던 남궁학을, 언소영이 다가가 안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학아, 미안하구나. 어미가 좀 더 너를 생각해주었어야했는데..."
"...저로는 부족하셨습니까? 저희 형제로는 부족하셨습니까?"
"그렇지 않단다. 우리 아들들은 언제나 최고였지."
남궁학은 이렇게 어머니의 품에 안겨본 것이 몇 년만인가 생각했다.
어머니의 포근한 품은 따뜻하기 그지없어서 어릴 적에는 작은 일에도 일부러 울음을 크게 터뜨리고는 했던 기억이 치밀어올랐다.
"어미가 곁에 없더라도, 학이 너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란다. 창이도, 홍이도 모두."
"어머니..."
남궁학은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강철 같은 사내인 그가, 어머니의 품 속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궁학은 잠시 언소영의 품에 안겨있다가 빠져나왔고, 나는 그것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회통념상 나보단 저 쪽이 훨씬 언소영에게 안겨있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한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아들이니까. 내가 엄마를 빼앗아가는 거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우선, 진정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믿어주겠소."
"감사합니다."
남궁학은 현실을 수용한 것 같지만 내게 보내는 눈빛은 영 좋지 않았다.
응, 이해해. 나라도 나랑 똑같은 변태새끼를 보면 별로 반가울 것 같지는 않아.
그렇지만 남궁학은 그래도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수용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오. 소협은 어머니를 평생 가둬두고 살 작정이오?"
"그래서 가주께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세상에는 남을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고, 강한 세력을 바탕으로 밀프 하렘을 구축하더라도 씹어대는 놈들은 무조건 나올 거다.
그 때 남궁세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차후 저는 이 관계를 공표할 생각입니다."
"세력이라도 기른 다음에 말이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인데?"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남궁세가의 지지입니다."
"알만하군. 본가의 힘을 빌려 어중이떠중이라도 찍어눌러보겠다는 생각이오? 하지만 쉽지 않을 거요."
"..."
"다른 세가나 구파가 나선다면 어찌될지 모르오. 당장 본가에서도 어머니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러지 못하게 만들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언소영만 있다면 모를까, 당장 마교만 해도 절대 체급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처럼 마교가 악의 집단이란 굴레에 묶여있다면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무림세력으로 세탁을 마치고 나면 충분히 중원무림에도 콧바람이 통하겠지.
애초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까지는 아직 오픈할 수 없는 남궁학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남궁학은 언소영과 눈을 마주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빌어먹게도 엮였군..."
"그래서 요구가 아니라 청을 드린 겁니다만?"
"...강 소협, 이런 건 말이오. 청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하는 거요, 협박. 들어주지 않으면 어머니를 평생 가둬두고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오?"
팩트를 상대로는 입을 열어봐야 손해만 본다. 나는 입을 꼭 다물었고 남궁학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어쩌겠소. 결국 전부 요구를 들어주라는 말 아니오? 차라리 고민할 필요가 없는 부분은 마음에 드는구려."
"...절대 후회할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할거요. 만약 소협이 어머니나 혜아를 박대한다는 소식이 들어오는 순간 세가의 총력을 기울여서라도 그 목을 잘라버릴테니까."
스며드는 살기에 차가워진 등골이 시렸다. 나는 얼른 내력을 끌어올려 그 살기에 대항했다.
남궁혜는 별 반응이 없는걸 보니 내게만 살기를 집중시킨 걸 잘하는 짓이라고 해야하나.
"그건 절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아, 그러고보니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뭐요?"
"소영에게 배치된 호위를 좀 치워주십시오."
이 자리에 내 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과처럼 붉어진 언소영의 얼굴을 본 남궁학은 돌아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결국 거절은 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의붓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까득
아, 괜한 소릴 해서 치아 건강을 조질 필요는 없었나?
그 날 밤, 처소로 돌아온 언소영은 가슴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아들에게까지 진실을 밝히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가의 이름으로, 언젠가 언소영이 그의 여인이라는 것을 공표할 때 지지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아들에게는 부담이 될테니 미안하다는 감정도 있었지만, 정말 그의 아내로서 세상에 나설 생각을 하니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력을 키운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언소영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흔히들 차세대 천하제일인은 검성의 증손자인 황보강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소문으로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초절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던가.
하지만 언소영은 분명 차세대 천하제일인의 자리는 강윤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공을 익힌지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벌써 아들과 맞상대할 정도까지 성장한 잠재력.
그의 스승처럼 일부러 무림공적을 자처하면서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수하가 되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응?'
언소영은 문득 생각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지면 무림공적이 되는 수준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언소영은 부정했다. 혈마는 여자들을 모두 한 번 취하고 버렸지만, 남편은 모두 챙기고 다니지 않는가.
'응?'
언소영은 문득 생각했다. 정말 이러다 부인이 몇 명까지 늘어날지 모르는 것 아닌가, 하고.
언소영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 관계를 맺은 여자들을 모조리 끌어들여 같이 살다가는...
똑똑
닫힌 창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이런 시간에 사람을 창문 너머로 찾아올 사람이라고 해봐야 뻔했지만.
벌컥
"상공...!"
"아직 안 잤죠?"
호위를 물린다고 해도 날이 밝아야하기 때문에, 남궁학은 내일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안 그래도 학이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건데, 이 사람이 정말...'
"흐음...!"
언소영은 쾌속하게 자신의 손목을 잡아오는 사내의 금나수를 못 본 척하고 잡혀줌과 동시에, 자신의 입을 범해오는 사내의 혓바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한동안 뜨겁게 달라붙어오는 그의 입술에 호응한 언소영은, 잠시 후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칭얼댔다.
"아직 호위가 남아있는데... 왜 온 거에요?"
"아드님이 받아들여줬으니까, 꼭 오늘 하고 싶어서요."
언소영이 살짝 시선을 내려보니, 빳빳하게 일어선 양물이 그녀의 몸에 닿을락말락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조금만 하다가 갈게요."
말하는 것과 달리 언소영은 아직 갈아입지 않은 경장을 사내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여 슬금슬금 벗겨내는 것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창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이 그녀의 하얗고 풍만한 나신을 비추기 시작했고, 사내는 그런 그녀를 안아올려 침대 위로 걸어갔다.
"정말, 너무 오래 하면 안 돼요... 알겠죠?"
"...해뜨기 전에는 끝낼게요."
"너무 긴데...?"
하지만 사내는 언소영의 항의에는 더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은 다음 서서히 몸을 더듬으며 여인의 욕망을 달구기 시작했다.
언소영은 서서히 화끈거리기 시작하는 몸의 감각에, 남편의 바람기에 대한 이야기는 천천히 해도 될 것이라고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