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36화 (236/383)

밀푸색마 EP.236 뭐라 했소? (3)

남궁학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죠? 그렇죠?"

어머니가, 그의 어머니가 마치 제 정인을 염려하듯 사내를 품에 안은채 몇 번이나 그의 안위를 확인했다.

자신을 막아선 것까지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사람의 목숨을 거둘 뻔한 것을 막아주었으니 고마울지언정 섭섭함이 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검을 후려치던 어머니의 일권에는, 희미하다고는 해도 적의에 가까운 감정이 실려있었다.

"남궁 가주, 괜찮으십니까?"

그것이, 어머니를 부드럽게 밀어내고 일어나는 저 남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남궁학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고, 허리 아래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허전한 감각이 들었다.

"가주, 어미가 과했지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움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사천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불리던 저 호칭.

가주라는 호칭이 굉장히 거리감있게 느껴진 남궁학은 몸서리를 치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남궁학은 사내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고 느꼈다.

"...아닙니다, 어머니. 하마터면 큰일이 있을 뻔했는데, 어머니 덕에 다행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어찌어찌 남궁학이 대답하자,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나 정다운 모습을 보여주고서도 들키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궁금했지만 남궁학은 차마 그것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흥이 과했던 듯 싶습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하는데, 강 소협, 소협은 괜찮겠소?"

"예, 저는 괜찮습니다."

본디 자신이 시작한 일이거늘, 남궁학은 강윤의 동의를 얻자마자 즉시 연무장을 떠버렸다.

남궁혜에게는 미안하게도 누이동생에 대한 생각조차 날아가버린 머리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을 원했던 것이다.

뒤에서 그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돌아서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던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황급히 가주전에 들어간 그는, 혼자 남은 다음에서야 한숨 돌리고 생각을 할 여유를 찾았다.

'언제부터지? 아니, 어째서?'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관계였다. 그 다정한 태도는, 그래, 어쩌면 아들뻘인 강윤을 아들처럼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상할 것도 없다. 생명의 은인에, 어머니를 부지런히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있다면...

'젠장!'

다시 생각해보니 수상했다.

친분이 생겼다고는 해도 매일같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동년배도 아니고, 어머니뻘인 사람에게? 뭐가 즐거워서?

무엇보다 남궁학은 어머니의 일권에 무의식적으로나마 적의가 섞여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소자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버지는 비록 병약했지만 가주로서 현명하게 세가를 이끌어왔다. 그런 아버지라면, 만약 같은 상황일 때 어떻게 했을까?

'당사자를 만나 정황을 파악하셨겠지.'

조모가 같은 상황에 처한 적이 있을리가 없으니 아버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궁학은 자신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윤.

썩 괜찮은 사내라고 생각했다.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것 말고는 단점다운 단점이 없을 정도의 사내.

만약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친구로서 사귀고 싶을만큼, 마음에 드는 사내였지만...

'꺼림칙하지만, 그 자밖에는 없다.'

어머니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기에, 남궁학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너무 깊었다.

그 자리에서 물어봐도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럴 정신도 아니었거니와, 어머니에게 의혹을 추궁하는 형태가 되니 곤란했던 것이다.

게다가 사정을 모르는 남궁혜에게 이런 사실을 밝히는 짓은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리를 피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궁학은 그 날 밤, 은밀하게 강윤을 자신의 처소로 부르고 나서야 자신이 가장 뒤처진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학아... 미안하구나..."

분명 혼자 와달라고 전했을텐데.

그 날 밤, 강윤은 언소영과 남궁혜를 대동하고 남궁학을 찾아온 것이었다.

"상공... 괜찮을까요?"

언소영이 가주의 처소 근처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남궁학이 대충 사정을 짐작했는지 충격받은 얼굴로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피한 이후, 도통 상황을 모르는 듯하던 언소영에게 나는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과연 언소영은 까무러칠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 시국 운운으로 약파는 건 물 건너갔네.'

장원이고 나발이고, 다 정리하고 세가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더 앞뒤가 맞았다. 그래서 호위도 억지로 물리고 언소영과 오랫동안 어떻게 설득해야될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궁학의 부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머니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지 나와 둘이서만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어차피 그 표정으로 봐서는 이미 남궁학은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입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언소영까지 끼워놓고 제대로 확인사살하는게 더 낫겠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이나 가루가 되는 건 똑같으니까.'

"괜찮게 만들어야죠. 아드님이 속상하지 않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주세요."

"그, 그럼 저는요...?"

남궁혜가 살짝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나는 여유가 생긴 김에 남궁혜에게도 일이 어떻게 된 거냐고 확인했는데 이 상황이 걸작이었다.

물론 남궁혜가 고자 남편이랑 살지 못할 정도로 보지를 개조한 건 나다.

내가 예상한 것은 몰래 불륜섹스를 하는 정도였다고 아무리 변명해봐야, 결국 이 상황까지 몰아넣은 것은 내가 맞다.

'그렇다고 평생 보지 내 거라고 했더니 그걸 청혼으로 알아들을 줄은 몰랐지...'

아니, 상식적으로 보면 청혼으로 볼 수도 있는 건가? 언소영에게 확인해본 결과 다행히 아니었다.

결국 나랑 썸타던 거냐는 질문에, 남궁혜는 자기가 청혼받은게 맞나 의심하느라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고, 덕분에 안 그래도 힘든 남궁학 설득의 난이도가 껑충 뛰어버렸다.

"일단 확인할게요. 정말 황보 소협과는 갈라설 거에요?"

"...네. 저 같은 여자랑 같이 살면서 고통받느니..."

애초에 시작한 건 황보준인데. 아무튼 남궁혜가 황보준과 확실하게 갈라설 생각이라면 내게 답은 하나뿐이다.

'모녀를 같이 데리고 산다...?'

남궁혜 뱃속에서 자랄 아이는 견이의 동생일까, 조카일까. 정말 답 안 나오는 개족보다.

내가 남궁학이라면 일단 괘씸죄로 모가지부터 칠 것 같은데.

"만약 어머니께 폐가 된다면... 저는 괜찮으니까... 꺄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애딸린 여자를 누가 데려간다고."

나는 남궁혜의 머리를 가볍게 가슴에 안았다. 근데 사실 얘 정도로 예쁘고 집안 좋으면 누군가가 데려갈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쓰레기는 맞는데, 내 아이 가진 여자 방치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에요. 내가 쓰레기라서 싫은거 아니면, 나랑 같이 살아요."

"청혼한 거 아니라면서요...?"

"지금 한 거에요."

남궁혜는 내 허리에 살짝 팔을 감아오면서 말했다.

"아내가 이미 여럿 있다면서요...?"

"여섯 명."

사실 관계를 가진 여자들을 다 합치면 이미 열을 넘겼다. 개족보보다 내가 더 답이 안 나오는 놈이었네.

"짐승..."

남궁혜의 말에는 상종못할 놈이라는 듯한 어감이 물씬 배어있었지만 정작 내 허리에 감은 팔은 풀지 않았다.

"그래서 싫어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같이 사는 거에요. 동의하는 거죠?"

남궁혜는 말없이 내 가슴에 머리를 묻은 상태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작전 변경."

"네?"

남궁혜만이 아니라 언소영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나는 남궁학을 설득하는 방향성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어머니."

문이 열리자마자 일단 언소영이 미안하다는 말을 박고 들어가자 남궁학은 말문이 턱 막힌 모습이었다.

어찌어찌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말문이 막혀있던 남궁학을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가주께서 많이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오? 내가 생각한 것이, 내 망상이 아니라..."

"대부인과의 교제를 말씀하신 거라면, 정확히 보셨습니다."

"어떻게...!"

남궁학은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니, 남궁혜에게 시선을 돌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혜아 너도 이미..."

"...네, 알고 있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내 양쪽에 자리한 여자들이 남궁학의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움츠러드는 것이 보였다.

그대로 두고볼 수 없었던 내가 언소영에게 살짝 눈짓하자, 언소영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학아, 정말 미안하구나..."

"어째서, 어째섭니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어머니께서 이런...!"

"그래, 네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지."

언소영의 말에 남궁학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재가도 드물지 않은 무림의 여인이,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다른 남자와 교제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의미를 제대로 캐치한 것이다.

사실 아미산 시절에는 아마 남궁탄이 살아있었겠지만 그 부분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어미는 새 인연을 찾았단다. 그러니 학아, 어미를 축복해줄 수는 없겠니...?"

"...혜아는 어찌하실 겁니까? 혜아 역시도 강 소협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리하시면 혜아는...!"

내 생각인데 여기서 언소영이 이 말에 납득하면서 물러선다고 해도 남궁학은 내게 남궁혜를 넘겨주지 않을 것 같다.

"혜아도 같이 간단다."

"무슨, 무슨 말씀이십니까? 같이 간다니, 설마...!"

내가 살짝 몸을 앞으로 내밀자 남궁혜는 남궁학의 경악한 시선을 피해 내 뒤로 슬쩍 숨었다.

[정말 잘 안 되면 어떻게 하죠...?]

[아마 될 거에요.]

정상적인 사회규범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을 잘 털어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한 남자에게 보내지는 않을 거다.

"이게 무슨 말이오? 강 소협, 말해보시오. 사, 사람이 어떻게, 어미와 딸을...!"

남궁학은 입에 담는 것도 망측스러운지 말을 맺지 못하고 경악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재주를 발휘했다.

"고금에 그런 일은 없었소! 나는 절대 허락할 수 없소이다!"

"두 분은 제 아이를 가지고 계십니다."

"...뭐?"

남궁학은 태엽이 다 풀려버린 것처럼 얼어붙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했다.

"두 분은 제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족으로, 남궁학은 잘못 알고 있다. 결코 이런 사례가 고금에 없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누군지는 기억 안 나지만 옛날 중국 황제 중에 황후의 자매랑 그 자매의 딸을 첩으로 들인 사람이 있을걸.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남궁학에게 부디 이 충격요법이 잘 먹혀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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