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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215화 (215/383)

밀푸색마 EP.215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았습니다 (2)

주변은 아수라장이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나는 언소영과 잠시나마 남들 시선 신경쓰지 않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나마도 전음을 써야했지만.

[다친 곳 없어요?]

[괜찮아요. 상공이 와서 지켜줬는걸.]

나를 안심시키려는듯 언소영은 밝게 웃었지만 안색이 조금 파리한 것이 걱정스러웠다.

역시 그 두령이라는 녀석과 싸우면서 어느 정도 기혈에 타격이 간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요. 상공이 아니었으면 혜아가 어떻게 되었을지...]

[소영 딸이잖아요.]

내 말에 다시 한 번 싱긋 웃던 언소영은 갑자기 표정을 고쳤다. 내 뒤쪽에서 인파를 뚫고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감이 느껴졌다.

남궁혜 쪽을 먼저 보고 온 남궁학이 다가와서, 내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남의 집 경사에 재를 뿌린 놈들은 괘씸했지만, 덕분에 남궁학에게 점수를 딴 것도 사실.

'이대로 잘만 하면 정말 남궁학에게 제대로 인정받는 것도 가능하겠다...!'

침입자의 두령이 남궁혜 쪽으로 가서 보호하려던 황보준이 부상을 입었다는 모양이지만, 다행히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중상은 아니라고 한다.

뒷일은 남궁세가와 그들이 동원한 의생들이 처리할 문제고, 이제 고민해야될 문제는 하나였다.

그놈들은 누구이고, 대체 왜 내 주변을 맴도는 것인가.

'일단 마교는 빼자.'

나는 적어도 이놈들이 저지른 짓거리는 마교 교주의 뜻과는 무관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당장 쿠팡맨 뽑고 수동식 펌프 만드는 등 물류업 체계를 구성하기 바쁜 마교가 이런 짓을 하고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마교 놈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미 이것이 마교의 소행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마교라는 티를 낸 것을 보면 그렇게 오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남궁학과 몇몇 정파 유력자들의 지휘에 따라, 사람들은 우선 다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연배 있는 고수들은 모두 남아서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이 각 문파를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이 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지어보려는 모양이지.

제발 괜히 마교랑 싸운다고 난리만 안 치면 좋겠는데...

딱히 거기에 낄만한 체급이 되지 못하는 나는 우선 처소로 돌아가서 혼자서 휴식을 취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게 마교의 습격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결론 짓는 것에 대해서는 보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역시 다들 바보도 아니고, 그대로 속아넘어갈 리는 없겠지.

하지만 의외였던 것은 그런 지성파의 선두에 설 거라고 생각했던 제갈세가주, 제갈명은 마교가 틀림없다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룡이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수군대고 있었는데,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시체로 돌아오면 슬프기야 하겠지.

'어쩌면 제갈룡이 그놈들을 끌어들였을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제갈룡이 혼례식 중간에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의심은 하고 있겠지만, 아무도 입에 올리지는 않을 거다.

자식 때문에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제갈명과 적대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테니까.

아무튼 거기까지는 좋다. 당장 마교의 짓이라고 결론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사부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마지막에 그 두령이라는 녀석이 남궁혜를 잡아가려고 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혈마의 개입을 유력하게 보고 있었다.

누명이 틀림없었지만 어차피 변호도 할 수 없는 몸.

나는 그저 조용히, 황보준의 치료가 끝나서 어색하지 않게 여길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황보준은 며칠만에 부상을 완전히 치료했다.

남궁세가의 전속의원들의 노력과, 아낌없이 영약을 퍼부은 덕분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신랑이 아픈데도 매몰차게 떠나는 것은 피하고 싶어했지만, 서둘러서 자파로 돌아가서 대책을 논의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남궁세가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공, 조심하셔야 합니다. 쾌유하셨다고는 하지만 나은 직후 몸을 함부로 쓰다 덧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맙소, 혜... 부인. 조심하리다."

덕분에 남궁혜는 근심을 덜었다. 황보준이 자신을 위해 몸을 날려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혹시나 부상이 악화되지 않을까 매일같이 노심초사했던 그녀였다.

황보준이 거동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두 남녀는 많은 사람들의 덕담을 받으면서 손님들을 배웅했다.

비록 혼례식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이 행복해보인다고 느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머니를 채가려고 하는 어느 불한당을 만났을 때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오, 강 소협. 아직 머물고 계셨소?"

"아, 황보 소협."

남궁혜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강윤은 부드럽게 웃고는 황보준의 인사를 받았다.

"인근에서 볼 일이 있습니다만 시일이 아직 남아있어서, 조금만 더 실례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다가 가시오. 내 비록 처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몸은 아니오만, 남궁세가의 누가 소협이 여기에 오래 있는다고 해서 뭐라 할 수 있겠소?"

"고마운 말씀입니다."

사내는 고개를 꾸벅이는 한편, 남궁혜를 향해 한 번 눈길을 주었다.

그것이 꼭 '봐라, 네 남편도 괜찮다고 하잖아'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남궁혜는 고개를 홱 돌리고 걸음을 척척 옮겼다.

"혜... 아니, 부인. 같이 갑시다."

황보준은 살짝 목례를 한 다음 남궁혜의 뒤를 쫓아 서둘러 걸었다.

순후한 성격의 그에게 인생이란 늘 평화롭고 안온한 것이었지만, 지금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래서 아직 미혼인 형 황보강에게 어른들이 자꾸 혼인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느낄만큼, 제 반쪽과 영원히 하나로 묶이는 행복은 각별했다.

그 날 밤, 초야를 치르려 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러했다.

'어째서, 어째서...!'

평범한 정도의 성욕은 가지고 있는 황보준이었고, 대놓고 남들 앞에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수음(자위)을 한 경험도 있었다.

이번에 입은 부상을 회복하는 동안, 양물에 반응이 없는 것이 조금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혜가 기다리고 있을 침소에 들어가기 직전이 되어서도,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 하물의 문제를 직시하게 된 황보준은 마치 끝없는 나락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영 좋지 못한 곳을 맞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차마 남에게 말할 수 없어 남궁혜와 몰래 찾아간 남궁세가의 의원에게 들은 대답은 참담했다.

두 번 다시 양물을 세우지 못할 것이라니.

그래서야 환관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치, 치료할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만... 혹시나 환골탈태를 한다면..."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던 황보준에게, 다시 올라가지 못하도록 튼튼한 덮개가 덮이는 기분이었다.

사실 황보준은 참을 수 있었다. 이제 자손을 보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는 해도, 남궁혜만 곁에 있어준다면 괜찮았다.

하지만 남궁혜는? 아이조차 낳게 해주지 못할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하는가?

황보준은 남궁혜를 사랑했다. 가문에서 들이민 혼담이기는 하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답고 자상한 그녀는 황보준이 상상하던 이상적인 아내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남궁혜와 평생 함께 하고 싶지만, 그녀와 자신과 함께 한 결과 불행해진다면 차라리 자신과는 헤어지는 것이 나았다.

"싫어요."

그렇지만 남궁혜는 완강했다.

"모든 힘든 일을 함께 견뎌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부부 아닌가요? 상공이 힘들어하는데 저만 빠져나간다는 것은 옳지 못해요."

남궁혜는 마냥 부드러운 여인이 아니었다. 언소영을 꼭 닮은 그녀는 부드러운 가운데 강단이 있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부인..."

"어떻게든 고칠 수 있을 거에요. 환골탈태를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남궁혜는 황보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격려했지만 환골탈태를 해내는 사람 자체가 극소수였다.

유감이지만 황보준의 무공에 대한 재능은 준수한 편이지만 절대의 경지를 열어젖힐 거라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혹시 고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아이는 꼭 없어도 괜찮아요."

황보준은 비통한 심정에 무너질 것 같았다.

혼례를 치르고 나면 귀여운 아이를 낳고 싶다고 무심결에 말했다가 얼굴을 붉히는 남궁혜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도화빛으로 물드는 그녀의 낯을 보고 자신 역시도 그녀를 닮은 귀여운 자식이 태어나는 것을 상상했었다.

아름다운 그녀, 자상한 그녀, 강단있는 그녀, 때로는 샐쭉하게 화를 내는 그녀를 닮은...

"상공?"

아직도 두 손을 꼭 쥐어준채 황보준을 격려하던 남궁혜는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불렀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너무 심려가 깊은듯 합니다. 우선 쉬도록 해요."

"...알겠소."

남궁혜의 근심어린 시선을 받으며, 황보준은 얼른 얼굴을 돌렸다.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혹시나 남궁혜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제 황보준도 다친 곳이 다 나았으니, 언소영을 뭐라고 말하면서 데려가면 좋을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황보 소협이요?"

"예, 중요한 일이니 강 소협을 꼭 모셔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황보준답지 않았다.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만큼은 교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해가 질락말락하는 애매한 시간에 부른 것도 그렇고, 용건이 있다면 사람을 보내지 않고 본인이 직접 찾아올텐데?

게다가 황보준이 보낸 시비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강 소협께 말씀을 전해드리고 바로 처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라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런 애매한 시간에, 새신랑과 새신부가 곧 즐겨야될 공간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따로 주의를 주는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옷이 대강 단정한 것을 확인한 다음, 두 사람이 함께 쓰고 있는 처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시오, 강 소협."

"강 소협...? 어째서?"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반겨주는 황보준에 비해, 남궁혜는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황보 소협, 남궁 소... 아니, 부인께는 아무 말씀 안 한 겁니까?"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이오."

나와 남궁혜는 모처럼 한뜻이 되어 황보준에게 시선세례를 보냈다.

황보준은 나와 남궁혜를 번갈아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소협."

"예."

"이것은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비밀이오. 지켜줄 수 있겠소?"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채로 약속하기는 조금..."

"흐읍...!"

그 때, 남궁혜가 숨을 들이키며 눈을 부릅떴다. 황보준이 시선을 그 쪽으로 돌리자, 남궁혜는 허둥지둥 황보준의 손을 붙잡았다.

"아, 안 돼요, 상공...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몰라도..."

"내겐 이것이 유일한 선택이오. 부인, 내게 평생토록 그대를 고통스럽게 만들라고 할 참이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남궁혜는 황보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것인지 황보준을 붙잡으며 자기들만 이해하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강 소협, 지금은 그냥 가줘요. 제발..."

"강 소협!"

황보준이 서글서글한 평소와는 달리 비장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내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 하리다."

"...예, 우선 들어보고 결정하죠."

남궁혜는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황보준은 내게 이글대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며 끊어씹듯이 말했다.

"부, 부인과, 방사를 치러... 아이를 낳게 해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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