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214화 (214/383)

밀푸색마 EP.214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았습니다 (1)

흑호(黑虎)는 검을 뽑아든 수하들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는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이라도 꺼내라는 양 가볍게 지시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고수였다.

'남궁혜, 그리고 언소영...'

남궁혜는 납치하고 언소영은 죽지 않을만큼만 손을 봐주라는 명령.

남궁혜는 그렇다치고 그 어머니인 언소영을 건드리는 의미는 불명이지만, 자신의 휘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이놈들!"

여기에 모여있는 자들은 모두가 비무장. 혼례식에 참석할 자들이 허리에 검을 차고 있을리가 없다.

흑호는 그의 스승이자 주인인 호령(虎靈)의 뜻에 따라 검을 영활하게 움직여 적들을 베어나갔다.

권장법을 익힌 자들이나, 즉석에서 검법이나 도법을 내력을 실은 손으로 펼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마, 마기! 마교의 악적들인가!"

"알 것 없다!"

간혹 마교의 존재를 언급하는 자들은 바람잡이를 해준 상으로 죽지는 않을 정도로 얕게 베어주는 섬세함을 보이면서, 흑호는 수하들이 전개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남궁혜 쪽으로 수하들이 나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흑호는, 몇몇 장소에서 고전하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 제법...'

아름다운 신부의 어미답게, 나이가 들어 그 미모는 약간 퇴색했지만 여전히 고운 중년의 여인이 주먹을 쥐고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머니, 물러서십시오! 여기는 제가..."

"가주야말로 물러나십시오! 저 자는 어미가 상대할테니, 어서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가주가 해야할 일입니다!"

당차게 말하면서 나서는 언소영의 기세는 흑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나와 거의 대등하다고...?'

언소영은 물론 절정고수지만 강호에 알려진 무공 수위는 이렇게까지 강력하지는 않았다.

절정 상급에서도 상위에 가까운, 상당한 내력의 압박이 느껴졌다.

흑호가 잠시 감탄하고 있는 사이, 언소영의 손이 벼락같은 일권을 내질렀다.

공간을 휩쓸어가는 권기를 검으로 흘려내자, 언소영은 내딛는 발로 바닥을 박살내며 맹호처럼 달려들었다.

"아녀자라고 해도, 역시 언가권이로군. 부인이 이룬 성취에 경의를 표하오."

"너희는 누구냐!"

권을 내지르는 과정에서 주변을 울리는 내기가 천지사방을 뒤흔드는 듯한 압력을 주고 있었지만, 흑호는 그 기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조금씩 흘려내면서 연어처럼 천천히 거슬러올라갈 뿐이었다.

상대의 무공이 생각 이상으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언소영이었지만, 여기서 그녀가 물러나면 형세가 더욱 불리해질 것이 분명했다.

"아, 초대객 명부에 이름이 없는데 찾아와서 미안할 따름이오. 우린 우리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대들의 사정으로 본가를 뒤집어엎겠다고? 남궁이라는 이름이 그리 만만하게 보이는가!"

"뒤집을만한 힘은 있으니 염려마시구려!"

차츰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언소영은 서서히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모름지기 권의 고수라면 근접할수록 힘을 발휘하는 법이거늘, 상대의 기이한 검법은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가까운 곳에서도 위력이 쇠하지 않았다.

점점 빠르게 움직여오는 검에 점차 대응하기가 힘겨워진 언소영은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 위에서 찔러들어오는 검의 존재를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언소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흑호는 팔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걸 맞고도 팔이 안 부러지다니, 대단한데."

"너, 넌 누구냐!"

"남의 잔칫상 망쳐놓는 너희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흑호는 왼손으로 어설프게 장력을 뿌리며 언소영과 그의 뒤를 노린 사내와 거리를 벌렸다.

두 사람의 대결에 끼어든 사내는 물론 강윤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이놈들은, 그 때 나와 몽아가 설산에서 죽인 놈들과 비슷한 검법을 쓴다.

'나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나?'

나는 급한대로 쭉정이들을 기습해서 검을 빼앗고 검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겨주고는 언소영의 안위를 살폈다.

언소영이 적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뒤통수를 까주러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남궁혜가 위험해!'

고수 셋이 달려들고 있는 와중에 남궁혜를 보호하는 것은 검도 없는 황보준 뿐이었다.

언소영이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급한대로 남궁혜부터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한 놈의 뒤통수를 걷어차서 기절시킨 다음 검을 빼앗아 황보준에게 넘겨주고, 같이 싸우려고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언소영이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몸을 날렸다.

나는 치렁거리는 소매자락에 내력을 실어 언소영을 공격해가는 검을 순간적으로 휘감아 막고, 내력을 잔뜩 실어서 놈의 팔뚝을 걷어찼다.

"네놈이...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하지만 아쉽게도 놈의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자기들 방해받는 일이 화가 난다는 건 알면서 남의 혼례식 방해받는게 화가 날 줄은 모르셨나?"

기습으로 어떻게든 한 방 먹이기는 했지만 원래 내가 상대가 될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도 곁눈질로 어찌어찌 검을 얻은 남궁학이 황보준에게 가세하자마자 단숨에 남궁혜 쪽 상황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은 나는, 계속 이죽댔다.

"게다가 본교, 본교 하는데 언제부터 마교가 남의 집 선남선녀 혼례에 어깃장을 놓는 뒷골목 깡패가 되었답니까?"

"...네놈이 정녕 관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다시 검이 찔러들어왔다. 확실히 곤륜산에서 싸웠던 놈들에 비하면 훨씬 원숙한 검술이었다.

그 때는 파고드는 뱀의 대가리를 때리면 피할 수 있었는데, 이놈은 그마저도 비껴내며 독니를 드러내고 있으니.

정말 혼자서 덤비는 거였으면 진작에 도망갔을 거야.

"이, 이놈이...!"

내가 지풍을 튕겨 하반신을 쓸어나가자 접근이 둔해진 흑의인은 자신의 뒤를 노리는 언소영의 권을 황급히 떨쳐내면서 거리를 벌렸다.

나는 흑의인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데 집중하고, 언소영은 그 사이 필살의 일격을 먹인다는 공세의 조합은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졌다.

꼬우면 너도 마누라 데려오던가.

"두령!"

말이 씨가 되었는지, 마누라는 아니었지만 몇몇 흑의복면인들이 이쪽으로 가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적어도 절정에 준하는 고수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장력을 뿌려대면서 놈들의 접근을 막았고, 그 사이 두령이라고 불린 흑의인은 다시 언소영에게 공격을 집중했지만...

이 녀석들은 시간을 너무 끌었다.

습격자에게서 무기를 빼앗았거나, 바깥에서 무기를 조달해온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흑호는 언소영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이 일이 글렀다고 직감하고 있었다.

강윤이 속으로 생각했듯이, 그들은 시간을 너무 끌었다.

'대체 언소영은 왜...!'

명령이 내려왔으니 따르기는 했지만, 언소영을 건드릴 필요없이 빠르게 남궁혜만 납치했더라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마교에 장로로서 몸담고 있었다는, 지금은 '노사(老師)'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황두명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 화근이었다.

고수 전력이 둘로 나뉘어버렸고, 상대가 버텨낼 여지를 주어버린 것이다.

물론 언소영이 알려진 것 이상으로 강한 고수가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저 젊은 애송이가 설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속속 검을 되찾고, 고수가 보충되어 여동생의 안전을 확인한 남궁학이 다시 어미를 구하기 위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

흑호는 언소영에게 맹공을 퍼부어 잠시 위축시킨 다음, 빠르게 몸을 빼냈다.

휘이익

내력이 실린 휘파람을 불자 수하들이 반응했다.

그 때까지 상대하던 자들에게서 미련없이 몸을 돌린 수하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흑호는 가까이 있던 몇몇에게 전음을 날리고 남궁혜를 덮쳐들어갔다.

당연히 언소영을 비롯한 자들이 달려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수하들이 막아선 탓에 순간적인 전력의 공백이 발생했다.

"혜매!"

신랑인 황보준이 황급히 검을 들고 흑호에게 맞섰지만, 그 정도의 실력으로는 발목조차도 잡을 수 없었다.

콰앙

"으악!"

손속에 사정을 둘까 잠시 망설이던 흑호는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폭음에 등줄기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수하들이 낙엽처럼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또다시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내게 바치지 못할 거라면, 죽여라.>

그의 주인, 호령의 섬뜩한 음성을 떠올린 흑호는 남궁혜를 향해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검을 쾌속하게 내찔렀다.

푸욱

"제길...!"

남궁혜는 그의 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주저앉은 그녀의 목을 찔러야만 했을 검은, 몸을 날려 그녀를 보호하는 황보준의 허리를 찌르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를 시간조차 없는 이 상황에서 흑호는 뒤에서 추적해오는 자들을 피해 몸을 날려야만 했다.

"서라!"

흑호는 그 따위 무의미한 외침에 대응해줄 생각이 없었다. 사전에 확인해둔 탈출경로에 따라서, 전력을 다해 도주한 그는 나타날 때처럼 갑작스럽게 남궁세가에서 몸을 감추었다.

적의 두령으로 보이는 자가 사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난장판이 된 혼례식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이나 친지들 몇을 잃은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로, 혼례식장은 곧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법 가주로서의 일이 몸에 익은 남궁학으로서도, 이런 아수라장을 수습할 방법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 오라버니, 황보 가가께서, 흐윽...!"

남궁학은 급한대로 가까이 있던 세가의 제자에게 지시를 내려 즉시 세가의 전속의를 모두 불러모으라고 하는 한편, 인근 의방을 돌아 의생을 모조리 불러모으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에서야 황보준의 상세를 살폈는데, 남궁혜가 혼비백산하여 울먹이는 것치고는 대처를 잘해 이미 혈도를 짚어 출혈을 최소화한 상태였다.

쉬운 부상은 아니었지만,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남궁학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다행히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매제가 이 정도로 죽을 사람은 아니니, 너는 너무 염려하지 말거라."

그리고 잠시 이를 악문 남궁학은 씹어뱉듯 말했다.

"미안하구나, 오라비가 부족해서 가장 행복해야할 날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오라버니..."

"준아!"

황보세가의 사람들 역시 뒤늦게 황보준의 안위를 염려하며 모여들었다.

비교적 의연한 태도의 황보세가주와는 달리, 황보 노부인이 눈물짓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남궁학은 고개를 돌리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강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크게 다치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다. 남궁학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곁으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강 소협."

어머니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강윤이 허겁지겁 몸을 돌렸다.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듯한 태도였지만 지금의 남궁학에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으로 고맙소. 어머니와 혜아가 무탈할 수 있었던 것은 소협 덕분이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손님으로서 후의를 입은 몸, 주인에게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내가 하나를 베풀었는데 열이 돌아왔으니, 더 들어온 아홉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남궁세가의 도리가 아니오."

가주의 식솔을 구했다면 조금은 오만해도 될 것을, 시종일관 겸손함을 유지하는 사내의 태도가 갈수록 마음에 드는 남궁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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