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89 어머니를 모셔와야죠 (1)
조금만 더 가면 당혜원의 안가에 도착하는 상황에서, 나는 뒤늦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마교도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소교주.
'그런데 마교에 크게 데인 팽연화가 임산부란 말이지...'
20여년 전 마교의 끊임없는 기습에 시달렸던 당가인만큼, 팽연화도 엄청 고생했을 것이었다. 그 때 고생한 경험 덕분에 초절정을 뚫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른 때였다면 모를까, 하필 임신하고 있는 상태여서 상상도 못한 사람을 대면시키는 것이 괜찮을까 고민이 된다.
"우리는 이만 가보겠네."
그런 내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영호경과 채수란은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
"잠깐만, 역시 이대로 보내는 건..."
"가면 화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 아닌가? 괜히 무리하지 말게."
내 옆으로 말을 몰고 온 영호경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본교와는 악연이 있을 것이니, 당장 대면시키려고 애를 쓸 필요는... 이런."
영호경은 말을 하다 말고 정확히 안가 쪽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도 그녀가 시선을 돌린 이유를 깨달았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는 기척을 느꼈지만, 기척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는 하지 않았다.
척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역시 당혜원이었다. 깔끔한 동작으로 바닥에 내려선 당혜원은, 다른 여자 두 명을 잠시 살피고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잘 다녀왔어요? 어디 몸 상한 곳은 없구요? 그리고 어르신은..."
사부가 따로 말을 안 해준 모양이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괜히 나 혼자 마교에 있다는 것 때문에 마음고생만 하는 것보다야 낫지.
"사부님은 다른 곳으로 가셨어요. 나 없는 동안 별 일 없었어요?"
간단하게 안부를 주고 받는데도, 끊임없이 마교 진영을 힐끗거리는 것이, 마교도라는 것을 대강 짐작한 듯했다.
"걱정할만한 일은 없었어요. 그보다, 그 쪽 두 분은 역시..."
"...네, 혜원이 생각하는게 맞아요. 어느 쪽이든."
마교도이기도 하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긍정하자 당혜원은 이마를 짚고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결코 따먹었다는 사실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면목이 없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잠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당혜원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당가의 당혜원입니다. 두 분, 오늘은 저희 거처에서 머무시죠."
응?
"명교의 영호경... 입니다. 다른 분도 계시다고 들었는데, 저희... 를 데려가도 괜찮은 것인지..."
"괜찮습니다. 이미 이야기가 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데, 성이 영호씨라면 혹시...?"
영호경은 잘 쓰지 않는 존댓말로 선선히 자기가 교주의 딸이자 소교주라는 것을 시인했고, 당혜원은 경악하다가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어어, 잠깐, 당혜원씨.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마교 소교주라서 따먹은게 아니라 꼴리는 밀프라서 따먹은 거라니까?
잠시 일어난 혼란을 가라앉힌 우리는 곧 팽연화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팽연화는 순간 어지러워진 머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괜찮아요? 일단 편하게 눕는게..."
"이거 놔."
자신의 등을 잡고 눕히려는 사내의 손을 쳐낸 팽연화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사내를 마주 보았다.
매몰차게 말해버린 탓에 사내는 움찔해서 시무룩한듯 했지만, 사실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놀라웠다.
이 어린 남편은 마교의 소교주를 꼬신데다가 그것을 마교 교주에게 들키고서도 탈없이 살아나온 것이다.
'정말 무림일통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마교 여인을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 중 하나가 마교 소교주고, 이미 임신까지 시켰다고 하니 사내의 최종목적이 무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사내가 보이는 지독하리만치 격렬한 육욕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여인들을 자신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랬군요. 그럼 소교주께서는 다시 떠날 예정이시라구요...?"
"네. 원래 목적지는 이 곳이 아니라서..."
설마 마교 소교주와 같은 남자에게 안기고, 이렇게 예의를 갖춘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올 줄은 몰랐기에 팽연화는 어색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교주 역시 어지간히 어색한듯 자꾸 눈을 피하고 있었고, 이 모든 상황을 불러일으킨 남자는 죄인처럼 계속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세요. 편히 쉬고 가는 편이 여행길도 편안할 겁니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팽연화도 영호경도 잘 알았다.
당장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우니, 일단 남자를 문책해서 상황을 안 다음 마저 자신들의 관계를 정립하자는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잠시 후.
슬금슬금 배를 더듬으려는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사정을 들은 팽연화는 사내의 계획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마교를 중원에 들이겠다고? 그리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만들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내의 계획은 정파 무림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민초가 가진 마교에 대한 공포심을 희석시키고 호의적인 민심을 얻을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은, 정파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을 마교에게 나눠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러다 쫓겨날 염려가 없어져서 마교가 정파 무림을 멸절시키려고 하면?"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어느 쪽이 되었든, 다른 한쪽을 멸절시키려고 하면 민심은 단숨에 돌아설테니까요."
남자의 성격상 이런 일에 끼어들어서 무림의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원대한 야망 따위가 있을리가 없었다.
"...마교 여자도 안고 싶은 거지?"
이번에는 둘로 끝냈지만, 실은 눈독들인 여자가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콩고물이 없고서야 사내가 이런 일에 굳이 관여하려고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찔끔한 표정의 사내가 딴청을 부리는 것을 보고 팽연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우선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세."
잘만 되면 최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무림 전체가 하나가 되어, 작은 분쟁은 일어나되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 이상적인 결과를 실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일이 어떻게 잘못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이상, 이 문제는 그녀보다 더 명석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 계획이 잘 돌아간다는 가정 하에서는, 그 두 사람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소리지?"
"...네."
두 사람 다 자신보다는 확연히 나이가 많아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상당히 뛰어난 미모들을 지니고 있었으니 남자가 참지 못한 것도 납득은 갔다.
소교주는 충분히 굽힐 줄 아는 사람 같았으니 괜한 충돌은 일으키지 않을 것 같고, 다른 한 사람은 상당히 온순한 성격으로 보였다.
"하아..."
오늘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팽연화의 한숨에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남자에게, 팽연화는 손을 뻗었다.
"우선 뭐라 성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두 사람이 썩 나쁜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
화색을 띠는 사내의 얼굴을 보며 팽연화는 생각했다.
'이런 남자인걸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제갈미령이나 언소영의 생각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팽연화는 굳이 반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눈앞의 남자조차도 사파였으니, 사파라는 이유로 사내의 곁에 있을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논리가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팽연화는 꼭 해야할 말이 있었다.
"그래도, 그대는 벌을 받아야겠어. 약속을 어기고 말도 없이 여자를 만든 죄로, 내일 동이 틀 때까지 어떤 여인에게도 손을 대지 말게."
언소영은 원래 자신의 장원에 체류하는 내내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는데 하루 정도면 자비로운 벌 아니겠는가?
하루 뒤에는 마교의 여인들이 떠나가겠지만, 팽연화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팽연화는 의외로 두 마교 밀프를 선선히 받아들여주었다.
아무래도 애초부터 내가 마교 밀프를 건드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일종의 체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하루 정도는...!'
사실 신체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신강을 벗어난 이후부터는 밤마다 고환이 텅텅 빌 정도로 섹스했으니 하루 정도 참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정신 쪽.
'보테배 섹스 개꼴리는데...!'
임신해서 배가 부풀어오른 팽연화의 몸이 너무 야해보여서 당장 오늘밤 섹스하고 싶었는데, 팽연화는 매몰차게 하루 정도도 못 참냐고 말해왔다.
오히려 하루만 참는 걸로 넘어가준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기는 한데... 아, 미치겠네.
'역시 전보다 회복력이 늘었어...'
이장로에게서 살아남느라 버둥댄 결과 경지가 올랐다고 해도 이전과 내력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같은 내력이라도 사용하는 효율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내력은 빠른 속도로 정력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보테배를 보고 흥분한 효과까지 더해지니 바로 어제까지 열심히 구멍을 쑤셔대느라 다망하시던 자지는 놀랍도록 새로운 기운에 넘치고 있었다.
"딸이라도 쳐야되나..."
잠시 고민했지만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애매하게 흥분을 가라앉히려다 괜히 성욕의 불꽃에 장작만 들어가게 되는 꼴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했다.
"괜찮은가? 눈이 빨간데..."
"괜찮아요..."
수면 대신 운기조식을 했기 때문에 피로야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눈에 어느 정도 피로가 남은 것이 이제 출발하려고 채비중인 영호경과 채수란에게도 보인 듯했다.
"미안해요, 서방님... 팽 여협께서 반대하고 있으니..."
완전히 내 잘못으로 벌을 받은 건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채수란에게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이제 말에 올라 떠날 준비를 마쳤고, 나는 혼자 문 밖으로 나와 마중을 했다.
당혜원은 의원에 할 일이 있어서 나갔고, 팽연화는 임신한 몸이기 때문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영호경이 말렸다.
"우리는 이만 가겠네. 만약 우리를 찾아올 거라면, 호남성 내의 운가전장을 찾게. 이걸 내보이면 내게 안내해줄 거야."
조금 커다란 동전 크기의 옥패를 건네받은 나는, 그것을 건네는 영호경의 손과, 채수란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꼭 갈게요.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계속. 아기를 가질 몸이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웬만하면 상황 파악만 꼼꼼히 하고 실무는 수하들한테 맡겨요."
영호경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채수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디 조금이라도 아프면 꼭 말해야돼요. 절대 참지 말고, 먹는 것도 잘 먹고.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자주 갈테니까..."
"서방님... 꼭 와야돼요..."
나는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그녀들을 보냈다.
앞으로 어디 갈 일도 당분간 없을테니까, 자주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