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85 중원으로 갈래요? (3)
영호경은 마교 소교주다. 내 밑에 깔려서 앙앙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현 교주, 신마가 물러나면 다음대 명교를 이끌어갈 사람이 될 거고, 그녀의 남편이 되는 사람은 당연히 만만치 않은 위치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도취되지 않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단일세력 최강. 그런 마교의 2인자에 준하는 위치에 눈이 돌아가게 되면, 설령 처음에는 영호경에게 순수한 애정을 보내던 사람도 어느새 권력의 맛에 빠지겠지.
하지만 나라면 다르다. 영호경이 마교 소교주든 뭐든, 야한 몸을 가진 미망인이기 때문에 접근한 나라면 그 따위 일로 바뀔 일은 없다.
그 부분을 어필해보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야한 몸을 가진 미망인이 어쩌고 하는 부분은 제외하고.
"호오, 그래? 내 딸을 충분히 구워삶았다, 그 말인가? 자네 말고 다른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교주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딸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이 어떻게 저런 말로 해석이 되지?
"교주, 뭔가 오해가 있으신듯 합니다."
"그런가? 그럼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내 딸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
알만큼 아는 양반이 왜 이러지? 당연히 교주는 내가 암암리에 영호경이랑 떡치고 있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중원에는 순수하게 일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쉽게 간파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 상황은 사실상, 따님과 계속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니 허락해달라는 자리에 가까웠다.
"아니겠지. 혼인을 하지 않고 아이만 가질 생각이라고 딸아이가 그랬으니, 실컷... 재미를 보고 있을 것 아닌가?"
지난번에 쳐맞았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평온하게 말하던 교주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러다 또 맞는 건가?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죽이려고 덤빌지도. 교주는 완전히 내가 '니 딸 보지 맛있더라' 라고 말하러 온 것으로 낙인찍은 듯했다.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교주, 우선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 좋을대로 해보게. 하지만 그게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을 때는..."
말을 흐리며 은근히 기세로 압박해오는 것을 보니 나도 조금 짜증이 났지만, 상대는 내 여자의 아버지였다.
함부로 감정을 터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힘의 차이 때문에 수그리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영호경을 앞세워서 어영부영 넘어갈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는 것도 잠시, 나는 최대한 말을 골라가며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남들은 차기 교주의 배우자라는 자리에 눈에 멀겠지만 나는 아니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느라 진땀이 났다.
"아, 그러니까. 자네만은 다르다? 내 딸을 진심으로 계속해서 사랑해줄 수 있으니,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꼬일대로 꼬인 교주의 귀에는 신통찮게 들렸는지, '그래서 그게 뭐?' 라는 태도였다.
"사실이라면 아주 기꺼운 일이겠지만, 난 지금까지 자신만은 다르다고 외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았다네."
그건 그럴만했다. 어느 바보가 '난 교주 일가의 권력을 원하기 때문에 당신 딸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뿐이다' 라고 지껄이겠나.
모두가 진실한 사랑을 외쳤겠지만, 뭔가 문제가 발견된 덕분에 단 한 사람, 세상을 떠난 전 남편만이 혼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작에 재혼했겠지.
"내 딸을 한 번 보게. 자네만한 자식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야. 그런데 진실한 사랑? 그저 노리개겠지. 아니면 야망의 도구거나."
교주는 아까부터 터져나오기 직전이던 분노가 가라앉은 대신에, 내게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너도 결국 그런 흔한 놈들과 똑같은 놈들이었구나, 하는 실망. 그것을 감지한 나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굳이 따지자면 노리개겠군요."
"...뭐라?"
"지금 따님께서 왜 알맞은 상대가 없는지 아십니까? 바로 교주, 당신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정략결혼 선에서 만족할 일이지, 딸이 행복하길 바라니 뭐니 하면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헤매니까!"
교주에게서 피어오르는 압력을 느낀 나는 최대한 내력을 개방해 그것에 대항하며 계속 말했다.
"차라리 정략결혼을 할만한 상대 중에서 인격적으로 괜찮은 놈을 골라주던가 하지, 딸이 아무리 귀해도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있으니까 여지껏 짝을 못 찾은 겁니다!"
"...그만."
압력이 강해지고, 전신에 무게추를 매달아놓는 것처럼 몸이 바닥에 끌려갈 것 같았다.
"지난번에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따님께서 후계에 집착할 필요없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와중에도 기세는 더욱 강해져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아픔마저 느껴졌다.
"저는 따님께 후계가 아니라 귀여운 자기 자식을 낳게 만들 겁니다. 그녀가 원하는만큼, 몇 명이라도요!"
"이런 개...!"
"따님이 아름답고 꼴리는 노리개라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가지고 놀아주겠다는 겁니다! 문제 있습니까?"
진짜 죽을 것 같다. 사방을 조여오는 바늘들을, 얇은 천 한 장으로 간신히 막아내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막에 몇 시간은 내던져진 것처럼 목이 마르고, 눈은 어질어질해지는 와중에도 계속 버텼다.
얼마나 버텼는지는 알 수 없다. 엄청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밀려날 것 같은 감각을 상대로 다리에 힘을 세게 주고 버티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씻은 듯이 압력이 사라지고 몸이 두어발짝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춰세웠다.
다시 원래 서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보니, 교주는 미간을 찌푸린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듯 말이 없었다.
막상 머리가 회까닥 돌아버렸을 때는 얼마든지 터져나오던 외침이, 한 번 정신 챙기고 나니까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사부도 없는데.'
당장 옆에 없어도 어느 정도는 빽이 되어주겠지만 너무 긁은것 아닌가 싶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내 앞에서 자네처럼 떠들었던 놈은 없어. 그랬다간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머저리는 없었거든."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연 교주의 말에, 솔직히 약간 쫄았다.
하지만 다행히 교주의 검이 허공섭물로 날아와 교주의 손에 쥐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심유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던 교주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교주 전용 출입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교주..."
"연락은 자주 하라고 하게."
끝까지 허락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교주였다. 나는 그가 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제야 긴장이 탁 풀렸다.
결국 내가 준비한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네 딸 오래오래 따먹어준다는 말을 듣고서야 납득하고 허락해준 것이 현실.
나는 그저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되네.'
마교를 떠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올 때는 갈아입을 옷과 간단한 식량만 챙겼던 것과는 달리, 돌아갈 때는 무려 탈 것이 준비되어있었다.
"그러고보니 일장로에게 들었네. 이 사막을 맨몸으로 건너려고 했다면서? 중간에 길이라도 잃었으면 어쩔뻔했나?"
일반적으로 사막을 안전하게 건너려면 낙타와 길을 잘 아는 안내인이 있어야한다는데, 사부만 믿고서 닥돌해버린 나도 바보였다.
'그래도 능공허도가 되니까, 길을 잃을 것 같을 때는 높은 곳에서 대충 방향을 잡아줬겠지만...'
사막을 벗어나면 마교가 운영하는 마방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낙타를 말로 교환해서 타고 갈 예정이라고 한다.
경공을 수련한답시고 내력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죽어라고 달렸다가 다시 운기행공으로 회복하는 무식한 짓거리를 하다가 탈 것으로 편하게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호남에 있는 비밀지부에 모실 계획이오. 부디 차질없이 모실 수 있도록 힘써주오."
"알겠습니다, 장로."
소교주를 데리고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장로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듯했다.
나만 보면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하고는 했는데, 당연히 최대한 조심할 생각이었다.
"어, 그러니까, 영환 대협?"
"형완이다!"
사천에서 한 번 붙었던 일장로의 막내 제자라는 놈과도 만날 수 있었는데, 교주가 예전에 내게 비무를 하라고 했을 때 상대로 붙여주려던 것이 그였다고 한다.
몰라, 뭐래. 아무튼 이장로랑 싸워서 살아남는 것으로 실력이 증명된 상황에, 그런 기억도 잘 안 나는 떡밥 때문에 영양가없는 비무 따위나 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쿨하게 무시했다.
아무래도 형완도 물류업을 위해 중원에 파견될 무사들을 통솔할 상급무사로 파견될 모양이던데, 어쩌면 나중에 또 얼굴을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꼭 따로 가야할 이유가 있는가?"
"아무래도 동행이 많아봐야 남들의 눈에 띄기 쉬워질뿐 아니겠습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면 셋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본심은?"
영호경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통통한 엉덩이를 더듬어서 답변을 대신했다.
올 때보다야 돌아가는 길은 더 빠를 것이었다. 낙타나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짧지 않은 길. 나는 중원에 파견될 무사들과 동행해서 섹스할 기회를 줄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들르는 객잔마다 침상을 정액투성이 땀투성이 애액투성이로 만들 생각을 하니 자지가 단단하게 부풀어올라 남들 몰래 영호경의 엉덩이에 비볐다.
영호경은 기겁을 하며 나를 밀어내면서도 남들에게 발기한 것이 보이지 않도록 내 앞에 서서 잘 가려주고 있었다.
[나중에, 사람이 없으면 해줄테니까...]
그 전음을 듣고 나니까 더 꼴리지만 계속해서 사람이 들락거리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참아야지.
그렇게 밤을 보내는 나날이 반복되면서, 마교를 떠날 날이 가까워져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