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181화 (181/383)

밀푸색마 EP.181 안 생기면 어떻게 하지? (1)

"그러니까, 일단 돈을 물건과 교환하기 위한 전용 전표로 교환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소. 그럼 고의로 물건을 교환하지 않은 경우에는..."

삼장로, 아니 이젠 한 단계 올라갔으니 이장로구나.

물류업, 이라고 부르기로 한 사업의 전체 흐름은 이제 이해한 모양인 이 할아버지와 정기적으로 논의를 하고, 혹시나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며칠에 한 번씩 계속된다.

아무래도 처음 시도하는 거다보니 이래저래 걱정이 많은듯 온갖 상황을 가정해서 들고 오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 못한 것도 많았다.

그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답을 떠올리거나 같이 얘기해서 답을 내거나 하는데...

'솔직히 아들에 대한 걱정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

경현동이 실종되었는데도, 태연한 얼굴로 사업 얘기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할아버지도 보통은 아니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이 지나고도 경현동은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다시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실종된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았다고 한다.

흑마단주니 뭐니 하더니 부단주에게 실무는 다 맡기고 있었던듯 아무도 그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못 느끼고 있던 것이다.

가솔들조차도 '몸이 괜찮아진 김에 정부라도 만나러 갔겠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만하면 되었소. 추가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다듬은 다음 정리해서 서면으로 갈 것이니 한 번쯤 읽어보고 소교주께도 설명드리는게 좋겠군."

"네, 확인하겠습니다."

이렇게 노인을 마중해서 보내고 나면, 진행상황에 대해 정리된 서류가 올라오고 그걸 다시 영호경에게 보고한다.

가끔 정말 바쁘다고 거절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몰래 숨어서 떡을 치는데, 정말 장소를 가리지 않아서 한 번은 영호경에게 크게 혼이 났다.

물론 반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리고 또 가끔은 물류업의 집적장소, 그러니까 짐을 찾아가는 곳에 설치할 수동펌프의 시제품을 보러 대장간에 가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형상과 원리이지 부품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거든. 이건 공밀레를 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매일 거르지 않고 지키는 일과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황보효선의 병문안이었다.

"이제 거의 나았으니 안 와도 된다고 했을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황보효선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근 열흘동안, 딴짓은 안 하고 얌전히 내력을 넣어주기만 했던 덕을 본 것이다.

사실 떡을 치거나 영호경에게 했던 것처럼 가랑이의 회음부에 손을 얹고 운공하면 하루 안에 고칠 수 있지만, 지금 그걸 했다가는 역효과다.

찐득한 허접보지를 쑤시는 쾌감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지만,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확실히 많이 좋아지셨군요."

나는 내력을 충분히 불어넣은 다음, 가느다란 손목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황보효선은 쾌활하고 시원하게 생긴 얼굴과는 안 어울리게, 무거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얼른 가라고 압박을 주는 것도 같지만, 분명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실 때는 무림맹으로 가십니까?"

"...자네는 알 것 없어."

일단 본인을 도와주기도 했고, 아무튼 정파의 후기지수로 알려져있었으니까.

내공조차도 마공이 아니라는 점도 있으니, 마교의 첩자가 정파 후기지수 노릇을 한다기보다는 정파 후기지수가 마교의 끄나풀이라고 생각하겠지.

"자네가 매일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 내가 돌아가서 자네가 마교의 주구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운 거지?"

응, 역시 그걸 모를 정도로 지능이 낮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네는 정파와의 다툼을 원하지 않지. 그래서 살인멸구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고."

"믿어주고 계셨군요?"

"며칠씩 자리보전만 하고 있다보면 생각할 시간은 남아도니까."

입막음의 최고봉은 살인멸구고, 당연히 사악한 마교놈 주제에 자길 안 죽이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본 모양이다.

"중원에 돌아간 다음 암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매일 오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군. 아니, 이렇게 안심시킨 다음 죽일 셈인가?"

"안 죽입니다."

나는 일단 그녀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심의 스파이럴을 부정했다. 꼴리는 밀프는 최대한 살려두고 싶은 것이 내 본심이었으니까.

하지만 황보효선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가 생각한 내 입장에서는 그녀를 죽이는게 훨씬 합리적이니까.

내가 극한의 밀프충이라는걸 모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제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일단 앞뒤는 맞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부인에게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부탁...?"

황보효선은 잠시 미간을 모으더니 고개를 저었다.

"불가!"

"아니, 내용도 말 안 했는데 뭐가 불가입니까?"

"뻔하지, 정보를 빼와달라는 것 아닌가? 내 목숨을 위해 무림 전체의 안녕을 팔아넘길 수는 없네."

"아닙니다."

역시 얘는 기본적으로 빡대가리과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줄 알았나?

'물어봐도 안 알려줄게 뻔한데.'

"먼저, 제가 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하제일무공을 찾아서, 아닌가?"

"...네?"

뭔 헛소린가 해서 물어보니, 예전에 황보효선 앞에서 '천하제일이 되고 싶다'라고 적당히 입을 턴 것을 바탕으로 추측한 모양이었다.

"아니었나...? 그럼 대체 여기에는 왜..."

"천하제일 같은 건 하고 싶은 사람이 하라고 하고, 저는 그보다 중요한게 있습니다. 바로 무림 전체의 평화죠."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정파 밀프와 마교 밀프를 동시에 누리기 위해서는 두 집단은 어느 정도 화해해줄 필요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무림맹으로 왔어야지, 어째서 마교도들 틈에서 숨어있는가?"

"그야 싸움을 원하는 것은 마교 쪽이기 때문이죠. 살기는 힘든데, 힘은 남아도는 사람들을 달래야 싸움을 피할 수 있겠죠?"

황보효선은 잠시 미간을 모으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뒤는 맞는군. 그래서,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마교가 피한다고 해서, 정파에서도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죠. 오히려 우습게 보고 역으로 시비를 거는 놈들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런 자들을 내가 억눌러달라는 이야기인가?"

"네. 당신은 무림맹 인사이기도 하지만, 무림맹주의 손녀이기도 하니까요. 그 상징성은 무시하기 어렵죠."

사실 황보효선은 별로 필요없다. 적어도 사부가 늙어서 죽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검성이 알아서 억제해줄 것이 분명하니까.

이건 그냥 구실이다. 꼴리는 밀프니까 어떻게든 죽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황보효선이 납득하고 비밀을 감춰줄만한 구실.

"하지만 나를 이용해서 정파 무림을 묶어둔 다음 뒤통수를 치겠다는 계략이 아닌지는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마음만 먹었으면 팽가가 당한 일을 대규모로 벌여서 적어도 구파일방 오대세가 가운데 절반은 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만?"

내 허풍에 황보효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척박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자고 수련한 마교도들은 고수들의 분포 면에서도 평균적으로 타 문파보다 수준이 높다고 들었다.

마냥 허풍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어쩌면 정말로 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마외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자네가 진정 무림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지금이라도 속죄하고 무림맹에 투신하는 것이 올바른 길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사마외도를 없애려던 수많은 정파 대협들이, 마교를 깨뜨리고 사파를 척결하려던 자들이 이뤄낸게 뭡니까?"

서로를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기어코 살아남아서 결국 다시 대립하는 것을 반복해온 것이 무림의 역사다.

"사마외도도 사람입니다. 배고프지 않고 몸이 따뜻하면 굳이 남과 다퉈야겠다는 생각도 안 드는게 보통이라구요."

그 이후로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입아프게 설명하는 것이 한동안 이어졌다.

"한 가지만 대답해주게."

한동안 고민하던 황보효선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입을 열었다. 마기에 시달린 피로감에 젖은 눈이 아니라, 정광이 어려 맑기 그지없어보이는 눈으로.

"자네가 나를 범한 것도,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나?"

"어..."

너를 어떻게 믿느냐, 류의 질문은 대비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부인이 예뻐서..."

"사, 사족은 됐네!"

황보효선은 질겁을 하며 내 말을 끊고는, 씨근대는 숨을 고르고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알겠네. 우선 믿어보겠네."

"부인...!"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불리한 사실을 거짓없이 말해주었다는 것만은 높이 살만하니까 말이야."

황보효선은 이것이 일종의 시험이었던 모양이지만, 영호경은 황보효선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꼭 속여야되는 내용이 아니면 사실대로 알려주는 것이 황보효선에겐 더 좋을 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대로였던 것이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황보효선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더라면, 나는 다른 여자들은 몰라도 어머니를 위해 황보효선을 제거해야했으니까.

이럴 때는 황보효선이 또라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본인이 납득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도 씹고 깽판을 놓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납득을 하면 어지간한 일이 없고서야 입을 다물어줄 것이다.

'게다가 거짓말을 한 것도 없으니까.'

정파와의 충돌은 검성이 나서서 막아주겠지만 황보효선도 도와주면 좋을 것이고, 내가 무림의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지 그 평화로운 무림에서 밀프 보지를 훔쳐먹는 것이 최종목표일뿐.

황보 조손의 그 미쳐버린 직감이 아무리 날뛰어도 진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이거야.

"그런데 자네, 어딜 보고 있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일단 무림맹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야하고 살려둬야하는 이상, 황보효선은 더이상 건드리지 말거나 완벽하게 자지노예로 만들어야한다.

안 그러면 기껏 설득해놓은 것이 또다시 물거품이 될테니까.

허접보지 주제에 의지는 꽤 강해서 자지노예로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나로서는, 결국 황보효선을 건드릴 수 없는 것이 현실.

'언젠가 중원에서 다시 보면 거기서는 강간해서 임신시켜주마...!'

나는 얄팍한 침의 한 겹만을 걸쳐 몸매가 훤히 보이는 그녀의 몸을 훔쳐보다 반쯤 발기한 자지가 티가 나지 않게 옷으로 잘 가리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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