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69 살아남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3)
운기요상으로 내상을 대략 봉합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이장로와 벌인 싸움을 복기했었다.
'역시, 지금까지와는 달라.'
지금까지 몇 번 겪었던,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싸워주는 것 같은 순간적인 감각이 내 통제에 따라주고 있었다.
만약 그게 불가능했었다면, 마지막 일격을 흘려내지 못하고 뒤통수가 뚫려서 시체가 됐겠지.
나는 절정고수가 되었다. 신체적으로는 변화가 없을지언정, 나는 내가 분명한 한 걸음을 내딛은 결과 절정의 경지에 섰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제가 내상을 한 번 치료해보려고 합니다만..."
지금까지라면 자지를 넣어야했겠지만, 이젠 굳이 자지를 넣지 않아도 치료는 할 수 있다.
영호경이 조금만 멀쩡했더라도 당장 바지를 내렸겠지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고통이 너무 심해 자지를 넣어줘도 기분이 좋다고는 손톱만큼도 못 느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나중에 마이너스만 되겠지.
게다가 보지가 너무 기분 좋아서 섹스에만 정신이 팔릴 위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자네가? 하지만 자네가 익힌 내공은..."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에잉..."
의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내게 허락을 해준 일장로는 곧 비명을 지르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자, 자네! 어디에 손을 대는 것인가!"
"회음부입니다만. 허락해주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 아니, 그게..."
"잘 생각하십시오, 잘. 이러다 소교주의 기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면 일장로께서 책임지실 겁니까?"
나는 이런 실랑이할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에 세게 나갔고, 일장로는 결국 내 손을 놓아주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고 있을수록 성공률은 계속 낮아집니다."
"...젠장."
일장로는 고개를 홱 돌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눈으로 말하는 듯했다. 빨리 눈 안 돌리고 뭐하냐고.
과연 나머지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는척 하며 나를 못 본 척하는 와중에, 나는 다시 회음부, 그러니까 영호경의 사타구니에 손을 얹었다.
'으읏...'
내력을 밀어넣자마자 영호경의 전신을 어지럽게 휘몰아치던 마기가 나를 노리며 쏟아져오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찍어누르려는 시도는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마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가늘고 농축된 내력의 줄기를 영호경의 기맥에 흘려넣었다.
'이걸로 준비는 대략 끝...'
여기까진 원래부터 할 수 있던 일이다. 문제는 등선공과 마공의 충돌을 해결하는 것.
"소교주, 들리십니까?"
영호경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심법으로, 소교주의 내력을 유도할 겁니다. 그 때 저항하지 않고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해주십시오."
"알... 았네... 크윽!"
자, 시간이 없다.
충돌을 피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유도고 나발이고 없다. 서로 반발하는 내력이 무리없이 마주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역생(逆生)은 답이 아닌건가?'
오행의 상생, 상극에서 비롯되는 특수한 흐름, 역생.
원래 화수목금토의 오행은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는데, 가끔 상극으로 인해 상생의 흐름이 뒤집어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본래 화생토, 불에서 흙이 생겨나는데, 토극수로 흙이 물을 억누른다면?
억눌린 물은 수극화, 즉 불을 누를 힘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불이 강성해진다. 화생토가 뒤집힌, 토생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지난번 음기만 남았을 때도 곤륜산의 추위를 무리없이 견뎌낸 건 이거 덕분일 가능성이 높은데...'
마공의 고수라고 해서 운기행공을 지구 바깥에서 하는게 아닌 이상, 마공 역시도 자연에서 비롯된 기를 축적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이 이치를 벗어날 수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선기(仙氣)와 마기(魔氣)의 반발을 사이에서 중화해줄 존재가 없어...'
애초에 중화가 답인지조차도 애매하다.
중화... 융화... 합일... 아, 하지만 하나로 합쳐지면 안 되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짚이는 것이 생겼다.
현천지기. 현천 64괘, 팔괘에 다시 팔괘를 더한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
나는 영호경의 몸에 담긴 내 내력을 다시 끌어당겨 내 몸 속으로 되돌리고, 현천지기를 제외한 내력을 흩어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천지기만을 다시 영호경의 기맥으로 흘려넣자...
'됐다...!'
애초에 현천지기의 성질은 천양지기와 현음지기와는 달리, 선기이면서 선기가 아니었다.
음양의 성질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것처럼, 선기와도 마기와도 부딪히지 않는 성질의 내공.
'이거라면...!'
미약한 양의 현천지기가 영호경의 몸 안에서 운행을 시작하자, 미칠듯이 날뛰던 마기가 그 뒤를 쫓아 혈도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영호경이 호응해준 탓도 있는지, 마기가 빠르게 현천지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버텨야된다...'
현천지기의 양이 너무 미약한 탓에 마기의 흐름에 휩쓸리면 제대로 흐름을 유도하지 못하고 마기를 배출해낼 수 없다.
지금도 성혈단의 약효 탓인지 체내에서는 엄청난 양의 마기가 새롭게 생성되고 있었다.
이걸 전부 덜어내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해내지 못하면 영호경이 죽거나 무공을 잃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현천지기가 마기에 잠식되는 것을 버티면서 조금씩 내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생각했다.
이대로 버티다보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일장로는 사내가 소교주의 회음부에 손을 얹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도 상당한 내력이 휘몰아치며 조금씩 소교주의 마기가 배출되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치료가 될 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만...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 방법, 나도 쓸 수 있겠는가? 저 자가 지치면 내가..."
"...아마 어려우실 겁니다. 마공이 더해져봐야 오히려 소교주께서 고통만 받으실 수 있는지라..."
일장로는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곧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혈마! 혈마가 있었군! 그 자라면 제자와 같은 내공을 익혔을테니..."
"어쩌면 더 효과가 뛰어날 수도 있겠군요."
지금쯤이면 교주에게도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다. 흉수가 이장로라는 사실과, 소교주가 위태롭다는 사실도.
강윤이 이 자리에 있다는 보고도 보냈으니, 혈마도 동행할 수도 있을터.
껄끄럽기 짝이 없는 자이지만 소교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일장로의 희망과는 다르게, 색혈마 이자성은 교주와 동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 자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장로는 네 명의 수하들과 흩어져서 명교의 총단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외부에서 온 상인인척 변장해서 빠져나온 몇몇 수하들과 다시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낙타 가운데 하나에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는 경현동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 자가 장로께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필요없네."
"장로께만 알려드릴 좋은 정보가 있다고 사정을 하기에..."
자신들로서는 마음대로 버리고 올 수가 없었다는 수하의 말에 이장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추적자가 올 것일세. 서두르지."
"예, 장..."
수하가 말을 맺지도 못하고 갑자기 쓰러지는 것을 본 이장로는 즉시 내력을 끌어올리며 대비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요사한 술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수하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본 이장로는, 매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며 자신의 목을 잡아채는 노인의 얼굴에 경악했다.
"커억..."
"남의 귀한 제자를 그렇게 때리니까 기분이 좋던가?"
노인, 혈마가 이장로의 목을 잡아챈 상태로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이 조이는 상태로는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이장로는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금강역사 같은 팔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들어올려 걷어차려고 했지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내공이 한 올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건강한 정도일뿐, 완전히 그 나이대의 노인이 되어버린 이장로는 절망했다.
'과, 과연 천하제일인... 이걸로, 끝인가...!'
"자네가 아는 걸 전부 알려줘야겠네."
혈마의 말에 이장로는 절대 알려주지 않겠노라고 의지를 불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지만, 요사스럽게 빛나는 혈마의 눈을 마주 본 순간 심령이 제압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장로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혈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주로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던 것은 목숨을 건 일전 속에서 단숨에 절정고수의 벽을 깨어버린 제자의 모습이었다.
"정파와 사파 사이에서 암약하는 의문의 세력이라..."
이장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듯 했으나, 그들은 분명히 이장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장로의 머릿속은 그들과 손을 잡으면 반드시 정파 무림을 초토화시켜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던 것이었다.
혈마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다음 잠시 후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로부터 다시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장로와 수하들은 대체 자신들이 거기에 왜 누워있던 것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났다.
나는 눈을 떴다.
"모르는 천장이다..."
"당연히 모르는 천장이겠지. 정신이 드는가?"
옆에서 유쾌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영호경이 웃으면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교주... 괜찮으십니까?"
"내가 괜찮아졌을 때 그대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게나."
영호경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장로한테 개같이 쳐맞아서 생긴 내상이 제대로 낫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영호경을 운기요상시켜주려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한다.
"다행히 내력의 상성이 좋은 덕에 마기를 제거한 상태로 기절했더군. 아버지는... 아니, 교주께선 그대는 치료 안하고 뭐했냐고 의원을 닦달하셨다네."
나는 반쯤 비몽사몽한 상태로 내 손을 잡아오는 영호경의 손을 느꼈다.
"고맙네. 그대 덕분에 내가 무사할 수 있었어. 게다가 본교가 무의미한 다툼에 휩쓸리는 것도 피할 수 있었네."
뭐라는지 잘 모르겠지만 고맙다는 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영호경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내 은인이야. 반드시 보답할 것이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해주게. 우선 지금은 몸을 빨리 회복시키고..."
"섹스하게 해주세요."
"섹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영호경 옆에서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이놈의 주둥이가 뭐라고 지껄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