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60 도망치게! (2)
도를 든 놈 하나, 맨손인 놈 하나, 철조(鐵爪)를 손등에 끼운 놈 하나.
암기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듯 바늘 같은 암기가 계속 날아온다.
"거기 서라!"
나한테 돌멩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맨손이, 고함을 지르며 앞장서서 달려왔다.
어지간히 성질이 뻗치나보네.
"으악!"
내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리자 놈이 급격하게 내 뒤를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다.
즉시 몸을 틀어 지풍을 한꺼번에 쏟아내 다리를 쓸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피하면서 물러나는 맨손.
"이, 개자식이!"
"같은 수법에 두 번 속는 니가 바보지!"
아까 잡은 놈처럼 다릴 조져볼까 했지만 회피당한 탓에 나는 내심 초조함을 느꼈다.
황보효선의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니, 이 페이스를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다.
맨손이 뒤로 물러나는 사이, 도잡이와 철조 두 놈이 바짝 따라오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느새 거의 나란히 쫓아온 도잡이와 철조가 날리는 암기를 속도를 약간 낮추어 피하고, 다시 속도를 높여서 달아나려는 찰나였다.
서로에게 날아오는 암기를 처리하느라 속도가 느려진 두 놈을 다시 따돌리기 직전에, 뒤쪽에서 묵직한 장력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 나는 즉시 맞받아쳤다.
쿠쾅
어느새 내 뒤로 바짝 따라온 맨손이 날린 장력은 생각보다 손이 얼얼했다.
그렇게 타이밍을 빼앗긴 다음에는 이미 세 방향에서 포위당한 상태.
맨손은 나를 향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오른손 장심에 내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잠깐, 멈춰라!"
"왜 막는 거요!"
"놈들을 제압해서 데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차후 어떻게 해야할지는 우리가 정할 일이 아니야."
"...알겠소."
도잡이가 맨손보다 윗사람인지, 앙갚음을 할 생각으로 넘치던 맨손이 쭈구리가 됐다.
"자, 얌전히 있어라.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잠깐."
의아한 표정의 도잡이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우린 소교주께서 보내셔서 온 겁니다."
"소교주께서?"
"장로께 전해듣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그런 곳까지 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속지 마시오, 형님! 적당히 주워섬기는 것이 틀림없소!"
정답.
"애초에 그게 사실이라면 순순히 투항했더라면 될 일이오! 여기까지 달아나는 것 자체가..."
"내가 당신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사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난 오늘 당신들과 처음으로 접선하려고 찾아간 겁니다. 그렇게 살기를 풀풀 뿜어내면서, 내가 거기서 가만히 있는게 정상이란 말입니까?"
"..."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잡혔으니까 혹시나 해서 사실대로 말했을 뿐, 만약 힘이 허락했다면 지금도 도망가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이놈들이 하는 말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이 정도의 고수들인데도, 내 처우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이놈들보다 윗급이면 높은 확률로 장로.
사형, 이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른다. 무기도 서로 다르고, 사형제지간은 아닌 모양이다.
"믿지 마시오! 놈의 무공을 보란 말이오! 저건 틀림없는 정통 도문 무공이오!"
"피곤하게 구는군요. 반대로 물어봅시다. 소교주께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있긴 있습니까?"
"..."
"기껏해야 일장로 휘하의 사람을 빌려쓰시는 분이, 정통 마공을 익힌 직속 휘하라도 있느냔 말입니다."
이것도 찍는 거다. 이번에 쇼를 부탁할 때도 일장로 사람을 붙여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도잡이의 표정을 보니 대충 맞는 것 같다.
"진정, 소교주께서 우리와 함께 할 생각이시란 말인가? 하지만 장로께서는..."
"형님!"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어디 한 곳 부러져야 정신을 차릴게야!"
맨손이 나를 믿지 못하고 계속 소릴 질러댔지만, 도잡이가 버럭 외치자 시뻘개진 얼굴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소교주께서, 자네에게 준 증표가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교주께서는 제게 전권을 주셨습니다."
"하! 있을리가 없지! 형님, 긴말할 것 없소. 일단 끌고 가서..."
[뒤통수를 쳐맞아서 기분이 상한 건 알겠는데, 애새끼처럼 떽떽대는 것좀 그만할 수 없습니까?]
"뭐, 뭐라고! 이 개자식이!"
"이제(二弟)!"
기어코 눈이 돌아간 맨손이 내게 덤벼들자, 도잡이가 사이에 끼어들어 막아섰다.
"비키시오! 역시 저놈의 다리라도 부러뜨려놓지 않으면...!"
"왜, 왜 이러십니까! 지, 진정하십시오!"
[황보 여협, 다시 달릴 준비 하세요.]
나는 옆에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던 황보효선을 놓고, 도잡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맨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만두지 못하겠나! 이들이 정말로 소교주께서 보낸 자라면...!"
[혼자 얼빵하게 뒤돌아보다 쳐맞은게 망신스러워서 이러십니까? 이렇게 물고 늘어져봤자 당신 머리가 제일 멍청한 건 변함없...]
"으아아아! 이것 놓으시... 크헉!"
"아니, 이게 무슨...!"
됐다!
맨손이 흥분한 틈에 암경을 불어넣자마자 나는 바닥을 힘차게 걷어차며 내력으로 뭉친 흙덩이를 날리고, 뒤를 돌아 달렸다.
"이, 이놈이!"
다 잡았다고 방심하고 있었는지, 흙투성이가 된 도잡이와 철조가 나를 쫓아오는 속도는 한 박자 늦었다.
"역시 소교주께는 오늘은 만나기 어렵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어딜 소교주를 들먹이는 것이냐!"
내 뒤편으로 빠르게 장력을 한 번씩 뿌려준 다음, 먼저 도망치고 있던 황보효선을 따라잡았다.
"이, 이대로는 금방 다시 잡힐 것이네. 대체, 어쩌려고..."
"걱정마세요."
나는 숨을 헐떡이는 황보효선에게 다시 한 번 내력을 나눠준 다음, 계속해서 뒤를 힐끔거리며 열심히 도망쳤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가는 곳은 영빈각이 아니거든.
"저, 저놈들이...!"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대화를 나눠본 결과 영빈각을 굳이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다.
역시 저놈들은 뭔가 꾸미고 있다. 소교주가 자기들과 함께 하니, 뭐니 하는 것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이쪽도 솔직히 좆될 가능성이 높지만, 훨씬 가까운 곳.
나와 황보효선은 열심히 도망친 끝에 간신히 숨어들 수 있었다.
경현동의 집, 채수란의 처소에.
채수란은 자신의 방의 창문이 급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즉시 잠에서 깨어났다.
남자를 기다리다가 결국 찾아오지 않자 잠이 들어버린 그녀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을 때, 눈앞에는 야행복과 복면으로 두 눈만 드러낸 사람이 둘 있었다.
"누구...!"
[수란, 나에요.]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지만, 채수란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늘 이런 복장으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지금껏 동행이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런 상태로 찾아와서 미안해요. 원래 어제만 못 온다고 했었는데, 오늘도 말없이 안 온 것도 미안해요.]
"그, 그건 괜찮은데..."
먼지투성이인 모습을 보아하니, 제법 급박한 상황으로 보였다.
[일단 이 사람 앞에서는, 제 이름은 부르지 말아줘요. 나도 부인이라고 부를게요.]
[아, 알겠어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숨어있는 모습을 보고 채수란 역시 덩달아 숨을 죽였다.
한편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마도 여인으로 보이는 동행자를 살짝 살폈다.
'누구지...?'
느껴지는 내공수위로 보아 결코 경시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가 아니었다. 십중팔구 자신보다 위.
마기가 섞여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파의 내공을 익힌 여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채수란 자신보다 풍만한 몸의 굴곡은 틀림없이 이 여인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케 했다.
"늦은 시간에, 실례가 많소..."
"아, 아니에요."
여인의 목소리에 채수란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상대를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는 것을, 상대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목소리로 짐작한 나이는 대략 그녀와 비슷한 정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채수란은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이 여자하고는 무슨 관계지? 어제도, 오늘도 오지 않은 건 설마...'
"간 것 같아요."
사내의 목소리에 채수란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부인, 죄송하지만 잠시만 여기에 더 머물러도 괜찮을까요?"
"...문제없어요."
어차피 남편은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겠다, 이들이 숨어있어도 문제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채수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여인이 사내의 새로운 여인인지. 자신에 대한 관심은 가짜였는지.
'아냐, 그럴리는 없어.'
진실한 애정이 아닌 육욕에서 시작된 관계였다고 해도, 사내가 그녀의 육체를 탐하던 그 욕망만큼은 진짜라고 확신했다.
채수란은 두 사람이 다시 자신의 처소를 떠날 때까지, 사내의 관심이 그녀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생각을 사내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
"별말씀을."
황보효선은 사내의 부축을 받아가며 몰래 영빈각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오히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거기까지 데려가지만 않았더라도..."
"아닐세, 아니야. 결국 따라나선 것은 내 책임 아닌가? 자네가 꾀를 내지 않았더라면 난 틀림없이... 크윽!"
"여협!"
감사를 표하던 황보효선은 체내를 꼬챙이가 쑤셔대는 것 같은 아픔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기가 침투한 상태에서 너무 무리해서 움직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괜찮네. 이 정도는 운기조식을 하면..."
순간, 사내의 눈매가 웃는 것 같았다. 잘못 보았나 싶어서 다시 보니, 사내의 눈에는 시름이 가득했다.
'잘못 본 모양이군.'
"분명 그 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들을 찾아내려고 할 겁니다. 장로급과도 연이 있는 모양이니, 틀림없이 곧 여협의 존재에 주목하겠죠."
"..."
골치아픈 일이었다. 마교의 중심부도 아닐진대, 그런 자들과 갑자기 조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큰일이군... 적어도 하루는 꼬박 운기조식을 해야할 것 같은데..."
당장 마기를 몰아내지 않은 결과, 마기가 체내의 여기저기로 흩어져 몸에서 몰아내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그들이, 혹은 그들의 뒷배가 날이 밝자마자 그녀를 찾아온다면, 체내에 침투한 마기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되어주리라.
'자칫 잘못하면 간자라는 누명을 쓸지도 모르겠어...!'
"여협, 아무래도 제게 방도가 있을듯 한데..."
사내의 목소리에 황보효선의 귀가 쫑긋 섰다. 그녀의 간절한 시선을 받자, 사내는 매우 부끄럽다는 듯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되는...! 정말 그런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설명을 들은 황보효선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사내 역시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그녀를 어떻게든 속여서 남근을 찔러넣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색마의 연기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