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152화 (152/383)

밀푸색마 EP.152 교주께 여쭙시다 (3)

결국 마교의 고민은 이거다.

사파가 존나 힘세니까 일단 무조건 메이크 그레이트 명교 어게인을 향해 달리느냐.

어차피 나중에 도로 쫓겨날게 뻔한데 뭔가 다른 방법이 생길 때까지 공격하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느냐.

'일반적으로는 후자를 밀겠지만...'

마교가 좋아서 여기에 있는건 당연히 아니고, 중원에서 쫓겨난 결과 여기에 있는 거다.

당연히 원한 같은 것도 있다고 봐야겠지. 정파를 때리기도 했지만, 맞은 원한도 당연히 있다.

"소협, 말해보게. 자네는 어느 쪽이 맞다고 보는가?"

팔장로의 채근에 짜증이 났지만, 교주의 싱글대는 표정 때문에라도 나는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귀교는 최종적으로 중원을 차지해야한다는 것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이 동의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맞습니까?"

"맞네."

"단지 그 상태가 오래 유지될 방법이 필요한가, 아닌가의 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기는 거구요."

"소협, 본교의 전력은 압도적이네. 혈마 대협께서 가세해주신다면 더욱 그렇지. 가루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정파를 박살내놓으면 반발할 세력 자체가..."

"맞네, 소협."

팔장로의 말을 가로채고 일장로가 끼어들어 긍정해주었다.

"하지만 팔장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정파를 가루로 만들어버리고도 역습을 당한 사례가 없습니까?"

"...상당히 있지.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일세."

자연스럽게 일장로가 팔장로를 밀어내고 나와 문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중원에 꼭 싸워서 들어가야합니까? 사파들 중에 일부는 근거지가 중원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

아니, 사실 마교나 오독문 정도를 제외하면 검림이나 화락궁 같은 유명한 사파, 하다못해 하오문조차도 모두 근거지가 중국 안에 있다.

"다른 문파들처럼, 조용히 땅을 사서 거기에 터를 짓고 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자들에게 받아낼 핏값이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우리가 얌전히 있더라도, 정파 무림이 우리를 그렇게 얌전히 받아들일리가 없네. 우리가 중원에 가면, 충돌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어."

핏값 운운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장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마교가 조용히 살겠다고 해도 받아들일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 적을 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고 가정합시다. 정파를 가루로 만들었는데 기어코 다시 그들이 일어난 원동력이 뭐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문파가 가루가 났으면 기껏해야 핵심고수나 무공비급, 영약 정도나 챙겨갔을 겁니다. 돈이라고 해봐야 전표나 어느 정도 챙겨갔을 거고, 사업체는 전혀 관리가 안 됐을텐데 무슨 수로 부활을 했겠느냔 말입니다."

말을 하다보니 점점 가닥이 잡힌다. 결국 마교의 지배가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민초가 정파를 지지해주기 때문이겠지. 그것까진 우리도 알고 있네. 그래서 결코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주었는데도 결국 같은 일이 벌어진 사례도 있어."

일장로도 제법 생각을 해본듯 대답이 척척 나왔다.

"그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원을 제패하더라도 결국 다시 쫓겨나올 뿐이라고 수차례 이야기를 해도..."

일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노려보았다. 결국 뭐가 됐든 다 엎어버리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장로들이 문제구만. 쪽수도 많은 모양이던데.

"일단 정파들만 꺾어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똑같이 보호해준다고 보장을 해주면 민심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본교의 힘이 더 강하니 더 좋아할 수도 있겠죠."

이장로가 나서서 말하자 내 안의 반골이 깨어났다.

"민초들이 과연 믿을까요?"

"뭐라?"

"귀식대법으로 극도로 마기를 줄이지 않는 이상, 기감이 둔한 일반인도 어느 정도의 불쾌감은 느낍니다. 그런 마기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믿겠느냔 말입니다."

말할 것도 없는 상식이지만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인상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마기가 불쾌감을 돋우는 상황에서 아무리 진실을 말한들 쉽게 믿을까?

"믿지 않으면? 가슴이라도 열어서 속을 보여줘야하는가?"

"믿게 만들 방법을 생각하셔야죠. 그게 여러분이 하는 일 아닙니까?"

이장로가 꼬와서 굳이 언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팩트에 기반한 주장이란 말이지.

하지만 이장로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아주 보기 좋았다.

"네놈이 감히... 어디서...!"

"그만. 강 소협에게 의견을 물은 것은 이쪽이다."

교주의 말에 나를 이 판에 끌어들인 팔장로가 움찔했다. 나중에 이장로한테 깨질지도 모르지만 알아서 하시고.

그리고 교주는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 그럼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말해보게. 본교가 어떻게 해야, 중원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

"부담 가질 것 없네. 그냥 자네의 생각이 궁금한 것뿐이고, 자네의 말 한마디로 본교의 방침이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니."

싱글싱글 웃는 교주의 얼굴이 얄미워서, 그냥 강호 전체에 내가 색마라고 공개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꿈틀 올라왔다.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아직 못 따먹은 정파 밀프가 얼마나 많은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보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주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는 사람이 첫째고, 쓸모가 있는 사람이 둘째죠."

"...자세히 설명해보게."

"첫째는 아마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좋은 사람. 예쁜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뭐 그런 사람이죠."

몇몇 장로가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누던 것도 멈추고, 이 대전의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둘째는 쓸모있는 사람, 다시 말해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듣기 싫지만 일을 잘하는 부하, 밉살맞지만 술을 자주 사주는 친구, 데면데면하지만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친척."

"그럴듯하군."

"제가 보기에 귀교는 둘째를 간신히 충족하고 있고, 정파는 첫째와 둘째를 모두 충족하고 있습니다. 그게 차이죠."

돌리고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은 '그냥 니들이 싫어서 그래'로 정리된다.

그것을 알아차린 몇몇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이었지만 교주가 한 번 제지해서 그런가 뭐라 말도 못하고 있었다.

"당장 똑같이 검을 차고 있어도, 한 명은 음산한 마기를 줄줄 흘리는 꺼림칙한 마교도이고 다른 한 명은 산뜻한 매화무늬 옷을 입은 화산파 무사입니다. 민초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믿음이 가겠습니까?"

"...화산파 무사겠군."

"그럼 자네 말은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로군. 결국 본교는 절대 중원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일장로가 끼어들었다. 속쓰린 현실을 들이밀어서 그런가 나에 대한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닙니다."

"자네가 설명한 걸로는 항상 귀식대법을 써서 마기를 지우지 않는 이상 민초 입장에선 정파가 동등하거나 더 낫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아니라고?"

"아, 귀식대법을 써도 정파가 더 낫습니다. 민초라고 귀가 없겠습니까? 귀교가 사악한 마교 놈들이라고 다 주워들을텐데요."

"이, 이...!"

일장로의 표정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다.

뜸을 들였다가 터뜨리려고 했는데 더 뜸들이면 진짜 좆될 것 같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있으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죠."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명교 교주, 신마 영호상은 자신의 앞에서 사악한 마교 놈들 운운하는 청년을 재미있다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 맹랑한 자를 만나는 것은 수십년만이었다. 사부의 뒷배를 믿고 설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문득 혈마 쪽을 돌아보며 교주는 전음을 보냈다.

[제자 농사 한 번 잘 지으셨소?]

[시끄럽다.]

이런 일에 끼어드는 것을 꺼리는 그의 성격을 잘 아는데, 의외로 제법 훈훈한 표정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혈마가 이렇게 제자를 제자답게 키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랫도리 놀리는 버르장머리까지 똑같이 가르친 것이 흠이지만.

감히 이 교주전에서 남의 아내를 끌어들여 방아를 찍어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오히려 이렇게 써먹고 보니 일이 재미있게 굴러가고 있었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 있다고 치죠.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올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 주인이 있는 겁니다."

"...그 주인이 그 마을을 좌지우지하겠군. 자네 말은 우선 식수원을 점령해서..."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랬다가는 즉시 수백만 황군이 일어나 명교를 없애려고 들 것이었다.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라고 해도, 그런 횡포를 눈감아줄 정도는 당연히 아니니까.

"그냥 예를 든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그 우물의 주인과 잘 지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그렇다면 자네 말은 본교가 그런 우물의 주인 같은 위치를 차지해야된다는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적어도 핏값을 받아내야한다고 외치기만 하는 장로들에 비하면 훨씬 건설적인 의견이기도 했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위치를 차지한다는 말인가? 각종 물산은 중원이 훨씬 풍부한데?"

이장로는 날카롭게 질문했다. 분명 뭔가 다른 의도가 섞여있겠지만 아무튼 질문 자체는 타당했다.

"꼭 물산만으로 모든게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니죠. 가령 국가도 그렇지 않습니까? 백성들을 지켜주고, 흉년에 구휼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걷죠. 그걸 잘하면 칭송 받고요."

"..."

"귀교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 귀교가 없으면 못 살겠다고 생각하게 만들만한 무언가를 만든 다음, 중원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청년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계속 같이 있다보면 명교인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느낀 민초들의 생각도 바뀌겠죠. 첫째 조건, 즉 '마음이 가는 사람'을 충족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정파와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훨씬 부담없이 싸울 수 있으리라.

"그, 그게 대체 무언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일장로가 숨막히는 목소리로 묻는 모습이 보였다. 항상 차분한 모습의 그가, 마치 아편쟁이처럼 발작적으로 묻는 모습이 볼만했다.

"그건..."

"그건?"

다들 목을 빼고 중앙에 선 청년의 모습에 집중한 상황에서, 청년이 말했다.

"이제부터 생각해야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