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46 내 장난감이 되세요 (1)
"마님, 주인 어른께서는..."
숙수의 질문에 경현동의 아내, 채수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술도 들지 않으셨네. 아무래도 마음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야."
"아이고... 마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한 술이라도 드시지..."
안타깝게 말하는 숙수에게 죽그릇을 건네주며, 채수란은 아무렇지 않게 들리도록 신경써서 말했다.
"나중에 상태가 좋아지시면 허기가 지실 것이네. 수고가 들겠지만 자네가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내일 점심 때쯤부터 끼니마다 여쭈어주게."
"예... 마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나는 좀 나가봐야할 곳이 있다네."
숙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세한 사정까지 물어볼 위치는 아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뿐이었다.
채수란은 좀처럼 바깥으로 걸음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내일은 무조건 가봐야할 곳이 있었다.
'상공... 어쩌다가 그런 짓을...'
일장로의 수하라며 남편을 데리고 온 사람이 말해주었다. 남편은 비무에 패했으면서 그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고 암습을 시도했다고.
그리고 그 죄를 물어 비무의 승자에게 처분을 일임하겠다고 교주가 명했다는 것이다.
'교주가 명한 이상, 그 자가 목숨을 거두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된다.'
게다가 명분도 상대에게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에게 자비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상황.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하건만, 남편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채수란은 남편의 목숨이라도 살려달라고 하기 위해서, 교주전에 와있다는 손님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넉넉하게 성의를 마련해서 찾아간다면 분명 거절하지는 않을터.
마음 기댈 곳 없는 시댁이, 돈이 많다는 점만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황보효선은 마교 총단을 두리번거리면서, 최대한 기억 속에 꼼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들과 충돌하는 일이 과연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적에 대해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
하지만 그녀를 안내하던 무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는 조금 놀랐다.
"교주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교, 교주께서...?"
기껏해야 장로나 그 아래의 실무자들이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마인들의 절대자, 삼존의 일인. 그녀의 조부인 검성과 맞먹을 정도의 고수라고 알려진, 마도제일검.
천하의 대마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와 흥분으로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들어가시오."
무사가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 황제의 대전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웅장한 대전에서,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
'이 자가... 마교 교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은 전혀 마교 교주답다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
이미 한 번 당가를 뒤엎은 전적이 있는데다가, 이번에는 팽가에도 손을 썼을 것으로 의심되는 자였다.
"어서 오게,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군."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별로 힘들지는 않더군요."
"그런가? 이 곳의 토박이들도 사막을 오가는 일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대단한 강골이군그래."
의례적인 인삿말은 이 정도면 되었다. 황보효선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교주께서는 최근 팽가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 전해들었네. 그 자리에서도 말했다고 들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 우리 쪽의 하부 집단 가운데 일부가 마음대로 일을 꾸몄네."
분명 그 자리에서 소교주라는 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귀교의 소교주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팽가주를 공격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이십니까?"
"소교주는 그 자리에 우연히 있었을 뿐일세. 당연히 앞뒤 정황도 몰랐고, 그 상황에서 교도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단 말일세. 어떻게 해야했겠는가?"
우연?
관인으로 위장한 마교도들이, 거대 세가를 공격하는 그 순간에 정확히 나타날 우연이 과연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교주, 그렇다면 그 사건에 귀교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고는 하지 않았네. 다만, 수하들의 관리소홀로 발생한 일이냐, 적극적으로 계획하에 벌어진 일이냐에 따라 문제의 경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가?"
딴은 그러했다. 하지만 교주가 선선히 인정하는 모습은 도리어 황보효선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이미 그 자들의 처분은 끝이 났네.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칼을 뽑은 죄, 그리고 정파 무림과의 분쟁을 획책하려 한 죄로, 모두 목을 베었지."
청산유수와도 같은 답변, 무림맹의 사람이 오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사형이 집행되는 모습을 직접 보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누군지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죽였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혹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못해도 넉 달은 넘게 지난 일일세. 이미 시체도 자연 속에 녹아들어 사라졌을텐데, 무슨 수로 증명한다는 말인가?"
그 다음 교주는 고개를 가볍게 꾸벅여보였다.
"하지만 본교 총단의 관리소홀로 일어난 일인 것 역시 확실하지. 내 분명히 사과하도록 하겠네. 맹주와 피해자인 팽가에도 그런 문면을 담은 서신을 적어줄 터이니 가는 길에 가져다주겠는가?"
"예... 예?"
그녀가 상상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혀가 셋 정도는 달린 사악한 마교교주가 끝없이 부정한 끝에, 기어코 본색을 드러내는 그림을 상상했는데.
교주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미안함은 없을지언정 분명한 절도가 있었다.
황보효선은 대체 이 자가 무슨 꿍꿍이인가, 밝혀내야한다고 생각했다.
1.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2. 하지만 그것을 대차게 까였고 여차저차해서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
3. 아무리 밉상짓을 해도 남편이기에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 3단계를 순서대로 밟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적어도 그 중 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소협이 다친 곳이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예, 소교주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보호해주신 덕분에..."
사실 이 여자의 남편이 암습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없을 일이었지만 그 부분까지 지적할 정도로 나는 잔혹하지 않다.
여자, 채수란은 까만 피부에서 건강미가 느껴지는 미인이었다. 외관으로 보이는 나이대는 대략 30대 후반.
영호경이 혼담을 수락했으면 이 여자랑은 이혼할 속셈이었나? 대체 이런 여자가 있는데도 어째서 영호경에게 집착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채수란은 대화를 조심스럽게 이어나가다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가지고 온 꾸러미를 탁자 위에 올리고 내게 내밀었다.
"상공이 이번에 소협에게 불행한 일을 저지른 것을 대신 사죄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감촉이 묵직한 것이, 아마 귀금속류라도 담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도로 돌려주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아저씨 한 명 죽이나 살리나 별 차이는 없고, 괜히 사람을 죽였다는 찝찝함만을 남기느니 그냥 사과만 제대로 받고 만족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돈이 매우 반가웠지만, 이런 걸 받아서 나중에 꼬리를 잡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소, 소협...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러지 말고..."
앗, 왜 이래.
내 말을 거절로 알아들었는지, 채수란은 꾸러미를 돌려주려고 하는 내 손을 잡아서 다시 내게 꾸러미를 밀어냈다.
"상공이 그런 짓을 하기는 했지만, 분명한 악의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었을 거에요. 부디 조금이라도 분노를 가라앉히고..."
필사적으로 남편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하는 태도는 가상했지만, 나는 내 손등으로 느껴지는 보드라운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호경이 일으켜세운 내 성욕은, 바짝 마른 장작처럼 불씨 하나에도 이글이글 타오르게 된 것이다.
"경씨는 소협이 베풀 호의에 더 큰 보답을 할 힘이 있어요. 지금은 저만 이렇게 왔지만... 관대한 결정을 기대할 수 없을까요?"
내 손을 꼭 쥐고 절실한 눈빛으로 선처를 바라는 채수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다. 내겐 경현동의 생사여탈권이 있다.
그리고 눈앞의 밀프는 경현동을 살리고 싶고.
그리고 마지막, 내 성욕은 한계치에 도달한지 오래다.
"부인, 제안이 있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내 손등을 잡아오는 손을 마주 잡았다. 채수란은 의아한 표정과, 일말의 불안감을 품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그래도 첫 만남에, 내게 협박섹스를 할 수 있는 재료가 모두 갖춰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서.
"무, 무슨...!"
채수란은 사내가 말한 내용을 듣고 경악했다.
"제정신인가요? 사람이 어떻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요. 그러면 부군은 살 수 있습니다."
어딜 보아도 준수한 외모의 후기지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상대가 내뱉은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닳고 닳은 색마나 할 법한 그런 부류의.
"겨우 열 번. 열 번입니다. 열 번 밤을 보내는 걸로 목숨값을 갈음하다니, 어떤 기녀도 이렇게 비싼 화대를 받지는 못할텐데요?"
"난 기녀가 아니에요...!"
남자와 밤을 열 번 보내면 남편을 살려준다는 제안에 채수란은 기가 막혔다.
자신의 딸보다도 어려보이는 청년이 할 소리가 아닌 것이다.
"거절하는 것도 상관은 없어요. 그 다음에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그건 부인의 책임이 되겠지만..."
대놓고 건네오는 협박에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리낌없이 잡았던 상대의 손이, 더럽게 느껴져 얼른 놓고 싶었다.
"왜 이러는 거죠? 차라리 기녀를 사면 되잖아요...!"
자신이 준 패물만 팔더라도, 고급 주루의 가장 비싼 기녀를 몇 번이나 안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남편이 있는 자신을 안겠다는 것은, 그저 욕보이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남자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채수란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 이게... 이게 뭐야? 양물?'
흉측하게 부풀어오른 양물이 손에 닿자, 채수란은 기겁을 했다.
"이게 답이에요. 당신이 손만 잡아도 남자 자지를 세워버리는 여자니까."
"무, 무슨 소리야...!"
허겁지겁 팔을 당겨 채수란이 팔을 빼는 동안에도, 남자는 천박한 말을 서슴지않고 내뱉었다.
급기야 그에게서 거리를 두고 몸을 떨어뜨린 다음에도, 마치 최후통첩마냥 말을 건네는 남자를 본 채수란은 절망했다.
"경 부인,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내 장난감이 되세요. 열 번만 가지고 놀게 해주면, 남편을 살려줄테니까."
실수했다. 이런 광인인줄 알았더라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이 실로 능숙한 것을 보니 한두번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받아들일 거죠?"
진심어린 사과와 성의를 보이면 될 줄 알았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자신이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내의 눈은 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정절을 버려야하는가?
채수란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답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음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