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140화 (140/383)

밀푸색마 EP.140 혈마가 왔다고? (1)

시간은 계속 갔다.

팽연화는 입덧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팽연화 대신 당혜원이 의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때로는 당혜원을 상대로 무공을 수련하기도 했다.

"암기무공이라는 건, 다른 무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일격필살을 추구해요. 일단 상대에게 첫 수를 빼앗기면 압도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이죠."

당혜원은 절정고수가 되면서 깨달음 역시 깊어졌는지, 내력빨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기기 힘들 정도로 나를 몰아세워왔다.

"지금은 수련이니까 하독을 하지는 않지만, 당가의 고수라면 언제든지 적에게 독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것도 조심해야해요."

천하이대독문 가운데 하나, 사파의 오독문은 몸에 독을 흡수시켜 독공을 익히고 몸에서 직접 독기를 뿜어내는 반면 당가는 독공을 버린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신체에 독을 담고 있는 것은 오히려 몸의 균형을 해치기 때문에 독공을 버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욱 경지를 높이는 길이라고 봤다고.

"마교에도 암기무공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을 거고, 언제 독에 당할지 몰라요. 어르신이 같이 가신다고는 해도,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으니까..."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암기술과 수공(手功)이 조합된 공격은 확실히 위력적이었다.

애초부터 암기가 날아올 것을 상정하고 사전차단하는 식이 아니라면 꽤나 낭패를 볼 것 같았다.

내 시간은 주로 이렇게 당혜원과 수련을 하거나, 섹스를 하거나, 팽연화를 살피러 가면서 사용되었다.

아직 배가 제대로 커지려면 한참 남았지만, 팽연화의 배는 천천히 커지고 있었다.

상태를 살피러 간 어느 날에는 매소향의 이야기가 나와서 진땀을 뺐지만, 다행히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나도 매소향이 불편하기는 해. 하지만 만약 매소향도 데리고 와서 살 거라면... 제대로 사이좋게 지낼 각오를 시키고 데려오면 좋겠어.>

솔직히 관계개선은 순전히 매소향의 의지에 달렸다. 관계가 불편해진 이유는 매소향의 열폭이 주된 이유였으니까.

'그러고보면 매소향 아들이 먹은 마단에 대해서도 알아봐주기로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사실 내가 가진 정보는 그 마단의 이름이 성혈단이고, 먹으면 내공은 상승하지만 대신 순수 마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먹을 경우 점차 내력의 성장이 더뎌진다는 것뿐이다.

이참에 마교에 가서 한 번 제대로 확인은 해봐야겠다.

'혹시 약효를 지우는 방법을 알아내면 그걸 미끼로 섹스해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수련을 하다보니 겨울이 가고, 마교로 출발하기로 한 날이 밝았다.

어느새 내가 무림에 떨어진지 1년도 넘게 지난,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

사부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빡셌다.

"사, 사부님... 저희 말 안 탑니까?"

"내력은 바닥까지 쓰는 연습을 자주 해야한다. 그래야 내력이 어떤 식으로 소모가 되는지 알지."

다리는 휘청거리고 내력은 바닥을 보일 때까지 신법으로 달린다거나.

"무공을 따로 나눠서 생각하지 말아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 이미 모든 무공이 등선공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지법, 신법, 장법, 권법을 따로따로 생각하고 있으니 내력의 흐름이 충돌하여 위력이 반감되는 것이다."

"잘 안 되는데요?"

"되게 해주마."

몇 가지 던져주는 무학의 이치를 따라가지 못하면 따라갈 수 있게 될 때까지 얻어맞는다거나.

갓대세가 커리큘럼에 단련되었던 내 몸이 다시 사부의 막무가내 교육법에 더럽혀져갔다.

"젠장, 이게 또 되네..."

"제자야, 궁시렁대지 말거라."

간신히 사부가 원하는 커트라인에 도달했는데 사부가 커트라인을 올릴 조짐이 보였다.

"사, 사부님! 그러고보니, 거긴 마공 익힌 사람 소굴 아닙니까? 마기는 어쩌죠?"

도문이나 불문의 내공과 마기는 상극이다. 근본적으로 삿된 것을 용납하지 않는 내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불쾌감이 치밀어오르기 마련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있었어."

사부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답은 스스로 알아내보거라."

"예?"

"이미 난 단서를 주었다. 현천의 길을 열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 일이니까."

만약 도착할 때까지 답을 알지 못하면 임시방편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사부의 말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현천의 길...?'

<음양이 부딪히면 서로를 상처입히지만 공존해야하는 까닭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현천의 길을 열 수 있게 되느니라.>

현천, 주역의 현천 64괘. 원래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 같지만 이것과 상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지금처럼 억지로 만들어낸 현천지기를 중심으로 천양지기와 현음지기를 묶어둔 상태를 해소하라는 뜻인가?

두 내력을 완전히 융화시켜 완벽한 현천지기를 만들라고?

하지만 결국 사부는 끝까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혈마는 제자가 끙끙 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를 제자로 들인지 1년, 최상의 신체를 갖춘 덕분인지 제자는 빠른 속도로 무학을 흡수해 절정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해...'

오성은 나쁘지 않았다. 가르치는 것은 그 때 그 때 잘 흡수해나갔다.

절정고수까지는 이끌어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제자에게는 향상심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강해지겠다는 마음. 천하의 모든 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겠다는 강렬한 욕망.

무학의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겠다는 열정이 없는 것이다.

'육욕이 강한 점은 참 다행이다만... 이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자야.'

절정에 도달하기만 하면, 내력을 쌓고 자신만의 길을 갈고닦아 절정의 끝에 도달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초절정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혈마는 회의적이었다.

제자가 차라리 평범한 천재였다면, 초연해질 수 있었으리라. 어차피 등선공의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테니까.

'하지만 네가 아니면 안 된다... 등선공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너뿐이야!'

결함무공인 등선공.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신체를 타고난 제자.

혈마는 그런 제자가 무학의 끝을 보도록 하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사부의 수련은 길을 가는 내내 이어지다가, 신강에 들어오자마자 뚝 끊어졌다.

그야 그럴만도 했다. 이 곳은 사막, 체력이 다 떨어지면 회복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다행히 내력이 있으니까 쉽게 몸이 상할 것 같지는 않지만, 찌는 와중에 푹푹 빠지는 길을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걷는 도중에 할 일은 사부가 던져준 숙제를 고민해보는 것뿐이었다.

'현천의 길, 현천의 길...'

등선공은 이상한 심법이었다. 근본적으로 이성과 몸을 섞으면서 내력을 성장시키는 심법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이상하지만 그것을 제쳐두고라도 그랬다.

예를 들면 당혜원의 현무심공이라던가. 그리고 지난번 몽아와 항문섹스를 했을 때도 돌이켜보니 이상하다.

현무심공은 그 이름대로 음의 기운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심법이다.

암기를 다루는데 존재감 넘치는 양기를 담아서 날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감지하기 어려운 음기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내 내력이 현무심공으로 변환되는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천양지기와 현음지기, 두 음양의 기운이 서로 비슷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현음지기만 사라졌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개가 비슷하게 사라졌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이지?

'게다가 눈보라에 갇혀있을 때도...'

분명 천양지기를 위주로 소모해서 천양지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남아있던 나는 차가운 현음지기를 바탕으로 추위를 극복해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잡힐듯 잡힐듯 한데, 답이 보이질 않는다.

"아, 마중이 나온 것 같구나."

이미 한 번 마교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부는, 척척 앞서나가다가 먼 곳을 척 가리켰다.

눈에 내력을 모아서 그 방향을 보니, 낙타를 탄 사람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저 자들이 마교인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 자들이 상행이라면 낙타의 등에 짐을 바리바리 실었을 거다. 하지만 봐라, 없지?"

과연 자세히 보니 낙타에는 아무런 짐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래, 답을 알았느냐?"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대신 이걸 알려주마."

사부는 내게 귀식대법을 알려주었다. 원래 살수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하는데, 숨을 최대한 죽이고 내력의 존재감을 죽이는 수법이라고 했다.

요령만 알면 간단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곧 내게서 피어나는 내공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다.

단순히 내공을 숨기는 정도를 넘어서서 완전히 존재감이 사라진 내공은, 더이상 내게 마공의 불쾌감을 전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놈들이 생각이 있다면 너와 접촉하는 녀석들에게는 모두 귀식대법을 쓰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만... 그래도 알고 있어서 손해될 것은 없겠지."

거북이의 호흡이라는 뜻에 걸맞게,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으면 내력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약해진다.

따라서 기습에 취약해질 수 있으니 항상 펼치지는 말라고 사부가 당부했다.

"가볍게, 어느 정도 존재감을 지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위험하니까 조심하거라."

"예, 사부님."

그렇게 귀식대법을 배우는 사이 낙타를 타고 어느 정도 가까워진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외쳤다.

"거기 오시는 분이 강윤 소협 맞으시오?!"

"예. 혹시 귀하는 마... 명교의...?"

자꾸 마교 마교 했더니 마교라고 말할 뻔했다.

"맞소. 나는 소교주의 명으로 소협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이오. 그런데 일행이 있구려?"

"아, 이쪽 분은 제 사부님으로..."

"이놈 남가야. 오랜만에 보았다고 그새 나를 못 알아보느냐?"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 사부의 말에 발작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남가는 또 누구야?

"이 늙은이가! 이 분이 감히 누군지 알고...!"

"멈추게."

노인의 목소리가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울리며 검을 겨누고 난리를 치던 사람을 제지했다.

"하지만, 장로님...!"

"지금부터 자네가 무릎을 꿇더라도 자네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대임을 모르는가?"

"예, 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남자를 외면하고, 노인이 앞으로 나서서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협. 이 친구가 안목이 좋지 않아 무례한 언행을 하였으나,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지요."

"뭐 나이를 먹고 보면 성격도 다 죽고 그런 법이라네. 너무 염려할 것은 없어."

"이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근데 자네는 뭐하러 나왔나? 내 제자가, 자네가 나서서 마중나올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닐텐데...?"

"노인이 할 일이 없으면 바깥바람도 가끔씩 쐬어주고 싶은 법이지요. 결과적으로 대협을 이렇게 가장 먼저 뵙게 되었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바깥바람이라...?"

두 노인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것이 꽤나 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 같았다.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해두세."

"그럼 함께 가시죠. 교주께서도 분명 반가워하실 겁니다."

노인의 안내에 따라 나와 사부는 낙타에 올랐다. 푹푹 빠지는 사막길을, 낙타가 알아서 가주니까 참 편했다.

대신 멀미가 올 것처럼 흔들거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멀미를 참고 낙타의 흔들림에 적응하려던 내 귀에, 사부의 전음성이 꽂혔다.

[아마 너 혼자 왔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예?]

[기억해두거라. 저놈의 이름은 마교의 일장로인 장패 남결이다. 젊었을 때는 전대 교주의 사냥개 같은 놈이었지.]

찌는 것 같은 날씨인데도,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제 내가 왔으니 당장 손을 쓰지는 않겠다만, 무슨 속셈으로 저놈이 나왔는지 알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장패. 장패라고? 사패의 장패? 초절정고수?

당연히 놀러나온다는 마인드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초절정고수가 날 죽이러 나왔다고 생각하니 뒷덜미가 오소소 일어났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더니, 왜 이러는데?

영호경을 만나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돌직구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