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136화 (136/383)

밀푸색마 EP.136 태어났으려나? (2)

남궁혜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강윤에게서 받은 서신의 내용을 전해주기 위해 어머니를 찾고 나니,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생겨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 정말 몰랐을까? 그저 생각하기 싫었다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우리 견이, 안아보겠니...?"

제 아무리 고수라도 아이를 낳는 것은 역시 힘이 들었는지, 약간 초췌한 얼굴의 어머니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아기를 안고 있었다.

"결국 그 이름으로 하셨군요."

"좋은 이름이잖니?"

강윤은 아들이 태어나면 굳세다는 뜻의 견(堅)이라는 이름을 붙여달라고 했었다.

이름까지 고민해서 가져오는 것을 보면 정말로 애정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 작아..."

어머니가 알려주는대로 힘이 없는 목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해서 받치면서 안아든 아기는, 굉장히 작았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데도, 눈, 코, 입, 귀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달려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머니를 닮은 것도 같고, 그 밉살스러운 남자를 닮은 것도 같았다.

"아이 아버지를 닮았지?"

어머니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듣고보니 꼭 감고 있는 아기의 눈이 능글맞게 휘어지며 밉살맞은 미소를 지을 것도 같았다. 마치 그 남자처럼.

그 남자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기를 감싼 강보 사이로 삐져나온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어, 그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자 작은 손이 가볍게 손가락을 쥐어왔다.

"아가야, 누나야..."

"으아아아앙!"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 아기는 아직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남궁혜가 젖을 주지 못할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았는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언소영에게 급하게 아기를 넘겨주자, 언소영은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잠시 소란스러워진 방이 금세 조용해졌다. 남궁혜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주는 모습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한편 아기가 열심히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드럽게 웃던 언소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

"상공이 말해주었단다. 산모가 처음으로 내는 젖에는 몸에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의원도 산파도 다들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라고 하더구나."

남궁혜는 헛웃음을 지었다. 의원도 아닐진대, 대체 그런 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어왔다는 말인가.

하지만 어머니는 믿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마음이 고마운듯 했다.

"어디서 잘못 알아왔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고맙지 않니? 어디 엉뚱한 것을 먹이라는 것도 아니니까..."

남궁혜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어쩐지 부러웠다.

넘치는 사랑을 받는 아기도, 그런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도.

분명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스스로가 느낀 감정에 당황한 남궁혜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조만간 황보 가주께서 세가를 찾으실 거에요.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혹시 어머니께서 참석하실 수 있으면 참석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가주께서?"

지금의 황보세가주는 남궁혜의 혼담 상대인 황보준의 조부가 된다. 부친이 아닌 조부가 찾는다는 말에 언소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팽가가 마교에 공격당했다는 것은 사실 같아요. 제 혼례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지만..."

일종의 대책 회의 비슷한 것이 될 듯했다.

"...그렇구나. 알겠다."

언소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기와 비교해보니 정말 다 자랐다는 사실을 실감케하는 딸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과 많이 닮은 얼굴, 이대로 혼담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황보세가의 며느리가 될 딸.

그런 딸이 20여년 전 아기였을 때를 언소영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니, 자라나는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했다.

"우리 딸... 어미는 여전히 우리 딸을 사랑한단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결과 소원해진 딸이었지만, 부디 혼인을 해서도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랬다.

황보준은 가주가 될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었으니, 분명 남궁혜와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으리라.

"그냥, 우리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럴 거에요."

남궁혜는 당연한 소릴 한다는 듯 흘려들었다.

하지만 언소영도, 남궁탄과 혼인하기 전까지는 분명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행복하다고 믿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자신의 행복은 반쪽짜리였다는 것을 알 정도였으니까.

'부디, 그러길 바란단다...'

차라리 여자로서의 행복을 얻지 못할 거라면, 평생 깨닫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언소영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신강.

마교의 총단이 자리한 그 곳에서, 마교의 소교주 영호경은 아버지이자 교주, 신마 영호상을 배알하고 있었다.

"이상한 장난질을 치다 온 모양이더구나."

"다 그들의 선택 아니겠어요?"

"그 먹음직한 영단이 마교 놈들이 만든 거라는 것을 알고 먹었다면 그렇겠지."

"교주, 그래도 탈없이 돌아오셨으니 이만..."

"탈없이 돌아왔으니까 문책을 당해야겠지. 죽거나 크게 다쳤더라면 이런 문책을 할 일도 없어!"

교주의 날선 일성에, 일장로는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다시 물러났다.

"네가 왜 그랬는지 안다. 영단을 먹고 본교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놈들이 본교에 적대적으로 나서길 바랬겠지."

"..."

"게다가 젊고 싹수가 보이는 놈들의 미래까지 잘라낼 수 있으니, 정말 상황이 그럴싸하지 않으냐?"

교주의 비아냥에 일장로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눌러참아야했다.

분명 사고치지 못하게 잘 모시라고 했거늘, 부하라는 놈들은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자, 말해보거라. 대안이 있느냐? 네 욕심 때문에 무의미하게 죽어갈 교도들의 미래를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서서히 끓어오르는 교주의 기세가 두 사람을 압박해왔다. 두 사람 역시도 초절정의 고수였지만 교주에 비하면 손색이 많았다.

마치 용암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교주의 기세는, 피부가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따끔따끔했다.

"우린 이긴다. 그래, 그건 사실이다. 어쩌면 전 무림을 장악하고 지금보다 훨씬 윤택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느냐!"

"교, 교주, 손속에 사정을 두어주십시오...!"

"자넨 닥치고 있어! 네가 이장로 휘하의 녀석들이 벌인 일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방법이 조금 더 온건했을 뿐 너 역시도...!"

"이젠 하지 않을 거에요. 잘못했어요, 아버지."

"...뭐?"

교주가 순간적으로 넋이 나간 탓에, 서서히 옭죄어오던 기세가 약해졌다.

영호경은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젠 그런 일을 벌이지 않을 거에요, 믿어주세요, 아버지."

"하..."

부녀 사이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정파 무림에 대한 입장만큼은 굽힌 적이 없던 영호경의 모습에, 교주는 슬쩍 일장로에게 눈짓을 했다.

일장로가 고개를 가로저어 자신도 왜 저러는지 모른다는 뜻을 표하는 것을 본 교주는 완전히 기세를 거두고 이마를 쓸어올렸다.

"그래, 생각을 고쳐먹었다니 아주 다행이구나. 그렇다면 앞으로는 얌전히..."

"하지만 본교의 미래가, 중원에 있다는 생각 역시 바꿀 생각은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앞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이죠. 그럴 필요조차 없어질테니까요."

교주와 일장로의 시선을 받으며, 영호경은 입을 열었다.

"혈마의 제자가, 본교에 올 거에요."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노인이 가는귀를 먹어서 그런지 제대로 알아듣지를..."

"혈마의 제자, 라고 했느냐? 그 자에게 제자가 있었어?"

현실을 부정하는 일장로의 말을 끊고 교주가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성혈단의 마기를 느낄 수 있는, 막대한 도문의 내공을 지닌 젊은 청년이에요."

"...그것뿐이냐?"

"예."

"나이와 무공 경지는?"

영호경은 교주가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이상했지만 우선 대답해주었다.

"20대 초반에 대략 일류 상급 정도..."

"네가 속았구나."

교주가 일축하자, 영호경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교주는 그것을 본체만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넌 그 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한 것이다. 난 그 자를 잘 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지."

"..."

"20대 초반에 겨우 일류? 고작 그 정도 재능을 가진 자를 제자로 들이다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내공은 틀림없는 절정 수준이에요. 게다가 성혈단의 마기를 감지한 것을 보면 혈마신공 말고는 설명이..."

"어지간히 영약을 퍼먹였나보군. 그리고 성혈단의 마기를 그 자가 감지했다는 법은 없지 않으냐?"

영호경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확실한 물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혈마를 상대로 정면에서 싸워 살아남은 자가 없으니 그의 무공에 대한 자료조차도 없었지 않은가.

덕분에 그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으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인가? 그래서 사기꾼에게 보기 좋게 속아넘어갔을까?

"그러면... 그 자는 어떻게 하면..."

"온다면 오도록 내버려두고, 안 오면 나중에 잡혔을 때 감히 본교의 소교주를 속인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지."

교주는 완전히 사기꾼으로 낙인을 찍은 것 같았지만, 영호경은 예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자는 분명히 혈마의 제자다. 아버지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영호경은 그 자에게서 운명을 느꼈던 것이다.

강윤, 그야말로 명교의 미래를 열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고. 혈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명교천하를 이룩할 날이 멀지 않다고.

"교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좋을대로 하거라. 나중에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네가 속았다는 사실 역시 밝혀져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전혀 그런 이유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중원무림과의 충돌을 찬성하는 자들에게도,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혈마와의 협력 가능성을 굳이 미리부터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도권은 자신이 잡는다. 만약 그 자가 진짜이고, 삼존 가운데 둘이 합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교의 여론은 급격하게 기울 것이었다.

'아무리 지존인 아버지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영호경은 부디 약속한 기한 내에 나타난 강윤이, 혈마의 제자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증명해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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