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밀푸색마-123화 (123/383)

밀푸색마 EP.123 실은 제 사부가 (5)

해가 질 때까지 당혜원과 실컷 섹스를 즐기고 나서, 나는 당가로 돌아왔다.

저녁은 이미 당혜원과 먹었고, 이젠 씻고 자는 일만 남았는데...

밤 시간이 애매해져버렸다.

어머니는 임신 초기라 내력으로 보호를 해도 불안한데다가, 사실을 밝히기 전에 육체관계를 가지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사부는 범죄자나 다름없으니까.'

모든 것을 밝혀야된다는 주의는 아니다. 예를 들면 내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던가 하는 내용은 굳이 밝힐 이유가 없다.

밝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밝히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 얘기다. 누구도 피해를 볼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내가 혈마 제자라는게 세상에 알려지고, 그 때 가서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게 둘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두기는 할 거다. 하지만 선택은, 모든걸 다 알고 나서 하는 것이 맞다.

"아들...?"

어머니가 처소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아무래도 이맘때쯤 내가 돌아올 것을 알고서 나와있던 것 같다.

"저녁 드셨어요?"

"그래, 먹었단다."

나는 어머니와 처소를 향해 짧은 거리를 걸었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주로 곽청라를 상대했던듯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화하는 것을 많이 즐기시는 분 같기는... 해요."

오랜만에 당혜원을 만나러 가느라 졸지에 떠넘긴 꼴이 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곧 내 처소에 도착하고,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어머니가 내 뒤에 바짝 붙어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

"그게, 그, 아들? 어미가 다른 생각이 있는게 아니고..."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결국 내 가슴에 고개를 폭 묻었다.

"정말, 어떻게 하니... 아들 때문에 이게 다 뭐야...!"

어머니는 당연히 내가 어젯밤에 찾아갈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컷 섹스하게 만들어놓고 갑자기 확 안 하니까 안절부절 못하게 된 것 같다.

"어머니, 일단 하루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내일 다같이, 그러니까 넷이 모여서 할 이야기가 있어요."

넷, 이라는 말에 어머니는 금세 감을 잡았는지 표정이 진중해졌다.

"저번에 얘기해준다던, 그 이야기니?"

검성이 나타났을 때 나는 나중에 검성과 동행하면 곤란해지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로 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아쉬운듯 내게서 떨어졌다.

"너,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알겠니?"

"...네, 알겠어요."

어머니는 그렇게 총총 내 처소에서 멀어져갔고, 나는 어머니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얘기가 다 끝나도 어머니는 아마 못하실 거에요.'

그저 왜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고 납득하기야 하겠지만, 결코 만족은 하지 못하겠지.

나는 내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하루가 지나고, 나와 어머니, 팽연화는 각각 따로 당가를 나섰다. 같이 외출하는 것 정도야 상관없지만 목적지가 당혜원의 비밀안가였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우리는 그렇게 한 곳에 모였고, 미리 고용인들을 물려놓은 덕분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가 많이 자랐네..."

"네, 언니..."

여자들은 다들 임신 경험이 있지만, 마치 미혼의 처녀들처럼 당혜원의 부푼 배를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디 이 광경이 설명한 다음에도 이어지기를...

대강 대화가 끝나고 화제가 끊긴 틈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불러모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는 머뭇머뭇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내 사문에 대한 이야기부터.

고대, 몸을 단련하던 자들, 약을 만들어 먹던 자들, 이성과 교접하던 자들. 그들이 깨달음을 얻고 현세의 육신을 벗어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성과 교접하던 자들은 다른 두 부류에게 박해를 받았다는 이야기.

모두가 이 세번째 부류에 관한 이야기가 내 사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고, 어느새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사문의 비사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무공과 접목을 시켜 대대로 내려오며 발전을 해왔다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보면 색천문의 역사는 그 두 부류에게 박해받은, 패자의 역사였고, 승자의 유산을 이어받아 살아온 그녀들이 듣기에는 신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군... 일종의, 색공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팽연화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반적으로 색공이란 등선공처럼 상부상조하는 형식이 아니라 남이 쌓은 내공을 갈취하는 것이니 오히려 지금까지는 색공이라고 생각을 안 했나보다.

"그렇죠. 자, 이제..."

당혜원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 혈밍아웃 무섭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과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침이 마른다. 부디 사부에 대한 악명보다, 나에 대한 애정이 높기를 바라면서 포문을 열었다.

"실은 제 사부가..."

다행히 내용이 파악되자마자 욕설을 퍼붓는 경우는 없었고, 어머니와 팽연화는 안색이 조금 불안해졌지만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스스로는 잘 모르겠으나 아미산에 있었고, 사부의 도움을 받아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는 점.

그 무공을 바탕으로 지금껏 수련을 해왔고, 그것에는 여인들과의 방사가 포함되어있다는 점.

그 결과 지금 정도의 실력을 키웠으며 지금껏 이것을 써서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설명했다.

"아들..."

설명을 다 들은 어머니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힘들었냐는 듯한 그 손길에, 나는 어머니가 내 설명을 이해해주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ㄴ..."

"그러니까, 결국 자네는 혈마의 제자였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팽연화는 그렇지 않은듯 음성에 날이 서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응하려던 나는 움찔해서 팽연화의 말에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정말 죄송..."

"나에게 죄송할 일은 아니야. 그저 단지... 하..."

팽연화는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듯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답답한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지식한 성격의 팽연화. 아마 사부가 저지른 온갖 잘못들과, 그것에 당한 피해자, 그것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생각했겠지.

팽연화가 보기에는 나는 어디 마피아 집단을 물려받을 후계자 정도로 보일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와 어느새 다가온 당혜원이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아주고 있었고, 팽연화는 그것을 보고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이야기할 내용은 그것이 전부인가?"

"...네."

"고맙네, 골머리를 앓을 문제를 둘 이상 주지 않아서."

그걸로 나와 팽연화의 대화는 끝이었다.

팽연화는 어두워진 표정 그대로, 나와 그 날 하루 마지막으로 볼 때까지 그 표정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실은 은거고인이 죽으면서 남기고 간 제자가 아닌, 지상 최악의 대마두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후부터 이틀이 더 지났다.

나는 웬만하면 서로 원만하게 마무리되어 화기애애하게 다시 밤을 즐길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원했지만, 팽연화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가모께서 오늘은 조금..."

연무장을 드나들면서 안면을 익힌 경비무사가 미안하다는 듯이 내 방문을 거절해오는 것이 아닌가.

명목상으로는 수련과 가모로서의 일을 병행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라지만, 그걸 순순히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아..."

물론 섹스가 하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도 이렇게 거절당하니까 속이 상한다.

지금까지 숨겨온 내 잘못도 있고, 떡치는 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사부라는 존재를 악용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장 내쫓은 것은 아니었으니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정리가 되면 다시 어떻게든 결판이 나지 않을까?

'부디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주기를.'

팽연화의 처소 부근을 어슬렁대다가 물러나오는데, 멀리서 어떤 민머리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당연히 몽아였다.

"소협, 여기서 무엇하는가?"

"팽 여협께 잠시 볼일이..."

"아, 이쪽이 가모께서 계신 처소였나보군."

일반적으로 세가를 찾은 손님은 가모보다는 가주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맞기 때문에 정작 몽아는 가모의 처소를 간 일이 없었다.

"안내해드릴까요?"

"됐네, 이제 곧 떠날텐데 찾아뵈어 무엇하겠나."

"떠나십니까?"

몸만 추스리는 것치고는 오래 있기는 했다. 무려 나흘간을 머무르던 셈이었으니.

정작 나는 내 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서 이들을 상대한 것은 주로 어머니였지만.

"아미산으로 돌아가시는 거겠죠?"

"...난 달리 할 일이 있네."

또 돌아다닌다고? 나는 신음을 흘렸다. 또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습격당하는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미산에 계시죠. 제가 보았을 때 사태께서 돌아다니시는 건 여러 사람에게 민폐가..."

"그것은 자네가 알 바가 아니네."

애초에 곽청라도 딱히 몽아와 동행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오지랖 넓은 그녀가 몽아를 도와주었을 뿐.

운남에 있는 점창파로 돌아가고 나면 몽아는 또 혼자 남는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장 저번에 그놈들만 해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네!"

두 사람을 차륜전으로 궁지에 몰아넣었던 복면인들을 언급하자 몽아는 씩씩대며 내 말을 끊었다.

아니, 괜찮으면 괜찮다고 하고 말지 왜 화를 내고 난리지?

"으음... 나도 소협하고 같은 생각이긴 한데..."

몽아를 포기하고 곽청라를 만나보니, 역시 상식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곽청라 역시 참견을 극도로 거부하는 몽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곽 여협께서는 앞으로 여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 말인가? 이미 사천까지 왔으니 본파로 돌아가야되지 않겠나? 여기서도 충분히 쉴만큼 쉬었으니, 남편과 아들이 걱정하기 전에 돌아가야지."

그런 것치고는 당가나 사천 시전을 꽤나 적극적으로 구경하고 다닌 것 같은데.

아무튼 두 사람은 이제부터 가는 길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기 때문에 동행은 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따라가볼까?'

당가를 잠시 비우는 것은 사실 내 쪽에도 사정이 좋았다.

내가 계속 곁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팽연화도 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주 안 보이는 곳으로 잠시 나가있으면 어떨까?

"...그래서, 은신술을 알려달라고 나를 불렀느냐?"

"역시 이럴 때 제자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사부님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사부는 마치 퉁퉁이에게 맞고 온 진구를 보는 도라에몽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내가 사부를 도라에몽처럼 느끼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건가?

'그야 정직하게 따라가면 바로 알아차리고 쫓아낼텐데.'

몽아에게는 뭔가가 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뭔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이 함부로 남을 패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몽아를 노리는 손길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내 코가 석 자인 주제에 뭘 하는 건지...'

사부는 그렇게 자조하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알려줄만한 것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결코 이런 잡술에 의지해서는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부는 은신술을 알려주면서도 곱게 알려주지 않았다. 기어코 설교를 섞어서 알려주는 은신술은, 정말 은신을 하는 기술이었다.

기세의 노출을 막고, 지형지물을 사용해서 숨는 기술을 익히는, 은신술.

카멜레온처럼 주변에 녹아드는 기술이 아닌 것이 아쉬웠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자연과 감응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가 되면 이런 잡기를 익히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해진다는 것이 사부의 설명이었다.

요령만 알면 간단히 쓸 수 있는 정도의 은신술이기 때문에 솔직히 어디까지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당가를 잠시 나가자. 나는 머릿속에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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